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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79화 (79/424)

079화 스승의 가족들 (2)

한층 더 체격이 좋아진 유미르가 덮치듯 아시테르를 끌어안자, 아시테르가 뒤로 밀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크로마제는 또다시 적지 않은 충격을 느낀다.

“세상에… 우리 스승님이 뒤로 밀려나셨어…….”

세상 선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성난 몸.

그 부조화를 완벽하게 이루어내고 있는 유미르를 보며 크로마제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때서야 유미르도 이곳에 찾아온 다른 손님을 확인했다.

“호오… 아시테르 네 친구니?”

“아니요. 일단은 스승과 제자 사이입니다만…….”

아시테르의 설명에 유미르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가 입을 떡하니 벌리며 크로마제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크로마제를 괜히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크로마제가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유미르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아하하! 우리 아들의 제자라니! 고생이 많겠어요!”

그의 말에 크로마제가 오히려 멍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유미르는 세상 좋아 보이는 미소로 크로마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 아들이 가르침만 받아봤지 누굴 가르치는 것은 엄청 서투를 텐데… 혹시라도 스승이랍시고 괴롭혔다거나 그러진 않았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 크로마제가 괜히 울컥했다.

이 정도면 자신은 울보가 틀림없다.

툭하면 눈물샘부터 차올랐으니 말이다.

그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자 유미르가 아시테르를 돌아보았다.

“아들… 너 설마 이 친구를 괴롭힌 거냐? 네가 아무리 그런 일들을 당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똑같이 그러면 쓰겠니?”

“네…? 네에…? 아버지… 설마 지금까지 그런 거였어요…? 진짜로 저를 가르친다는 빌미로…….”

“그럼 우리 두 사람이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고 뭐겠니…….”

유미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치 자기는 아니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아시테르의 표정이 점차 사색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얼굴.

“왜 그러냐?”

유미르가 세상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유미르의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

유미르가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일단 세상 좋은 미소부터 얼굴에 장착한다.

비체가 자신의 얘기를 어디서부터 들었을지 모르는 상황.

“아니 스승님! 제 말은 그런 것이 아니…….”

유미르가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의 앞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비체의 머리칼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헤에… 속으셨죠?”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은 유미르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녀석이 오랜만에 보는 아빠를 놀려?”

“어? 할아버지!”

“두 번은 안 속는다 이 녀석아.”

유미르가 아시테르에게 꿀밤을 먹이려는 때 아시테르가 자연스럽게 상체를 숙이며 꿀밤을 피했다.

그리곤 뒤에 걸어오고 있는 비체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호오…!? 이게 누구냐!”

뒤늦게 아시테르를 발견한 비체도 반가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시테르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게 유미르와 아레나라면, 비체는 아시테르에게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 이였다.

아마 인생의 스승을 꼽으라면 아시테르는 주저 없이 비체의 이름을 먼저 얘기했을 것이다.

백 살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한 그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크로마제도 비체를 보며 프라울리를 생각했다.

“할아버지…….”

루기아 가문 내에서도 자신에게 특히나 애정을 쏟아주었던 존재.

자신의 말이라면 태산이라도 뽑아서 가져다 줄 기세로 들어주었던 사람이 바로 프라울리였다.

크로마제는 프라울리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비체를 보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크로마제라고 합니다.”

“허어… 이건 웬 애송이냐?”

비체가 설명을 바라는 시선으로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저의… 제자입니다.”

“응? 으헣… 으허허허! 네가 제자를 두었단 말이냐?”

비체가 한 손으로 아시테르의 머리를 툭 쳤다.

아시테르를 때렸다기보다 마냥 애정어린 손길이었다.

“예끼 이놈아. 너는 아직 배울 것도 많은데 무슨 벌써부터 제자를 들여?”

“그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하하…….”

아시테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크로마제는 그저 낯설기만 하다.

그때 비체의 시선이 크로마제에게로 향했다.

“그러면 어디 손자놈 제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비체가 슬쩍 발걸음을 틀어 크로마제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오히려 멀뚱한 얼굴로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를 바라본 것이다.

크로마제의 시선을 읽은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말고 최선을 다해. 아마 평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기회일거야.”

아시테르도 던전 밖으로 나가서야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체같은 엄청난 실력자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

이것은 다른 이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크로마제에게도 오늘 같은 기회는 엄청난 행운일 터였다.

아시테르의 뜻을 읽은 크로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유미르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어디 우리 아들이 키운 제자 실력 좀 볼까?”

유미르도 흥미가 동했는지 팔짱을 끼며 아시테르의 옆에 섰다.

그때 아시테르가 유미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직접 나서진 않으시는 거예요?”

“응 나는 못해.”

“왜요?”

“요즘 힘이 한 번씩 폭주해서 조절이 안 되거든. 잘못해서 네 하나뿐인 제자를 크게 다치게 만들면 안 되잖아.”

유미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비체가 이쪽을 바라보며 인상을 쓴다.

“자랑이다 이놈아.”

“아… 아핫핫…! 여전히 귀가 밝으십니다 스승님.”

“어휴…….”

비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크로마제가 그런 비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신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초로인처럼 밖엔 보이질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고개를 돌린 비체가 크로마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들어오거라. 우리 손자가 부족해 가르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내가 손수 보듬어주마.”

비체가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 순간 크로마제는 알 수 있었다.

한순간 비체가 자신의 앞에서 엄청나게 거대해 보였던 것이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크로마제가 두 팔을 들어올리자 마력이 움직였다.

이어 허공에 형성된 모래가 비체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흐음…….”

다가오는 모래를 살핀 비체가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모래를 피했다.

커다란 손아귀를 펼친 모래손이 비체를 덮치려 했다.

비체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모래손의 중앙에 선명한 선이 그려졌다.

촤라락!

형체도 없이 사라진 모래손을 보며 크로마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단순히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모래손이 사라져버렸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가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주변으로 퍼진 모래가 일시에 비체를 노렸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모래를 보며 비체가 턱을 매만졌다.

그가 몇 걸음 움직인 것만으로 모래채찍들을 모두 피해내었다.

이어 단 한 걸음.

그 한 보를 내딛는 것만으로 단숨에 크로마제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다른 비체를 보며 크로마제가 놀라 까무러치고 말았다.

“쯧… 아직 한참 멀었구나. 아시테르 녀석이 제대로 가르친 것은 맞느냐?”

비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이쯤되면 크로마제도 약간의 오기가 생긴다.

그가 최선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때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을 시간이에요!”

그 한 마디에 비체와 유미르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확인한 크로마제가 마법을 멈추려 했지만 이미 마법은 발동되고 말았다.

모래들이 작은 파도를 형성하며 비체를 덮치려 했다.

이를 본 비체가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호오… 제법 좋은 마법이로구나.”

촘촘하게 연결된 마력들을 보며 비체가 감탄을 뱉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마법이 비체에게 위협이 될 리 없었다.

그가 검으로 모래 파도를 막으려는 때 멀리서부터 뻗어온 푸른 화염 줄기가 단번에 모래 파도를 없애버렸다.

“허어…….”

거세게 지나간 화염 줄기에 비체가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아레나를 바라보았다.

“아버님? 이제 그만하고 들어와 식사하세요.”

“껄껄… 그… 그럴까?”

천하의 비체마저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그게 바로 아레나였다.

그녀의 시선이 이번엔 크로마제에게로 향했다.

“크로마제라고 했지? 장난은 그만하고 들어와서 맛있는 밥부터 먹어.”

“네…? 네… 네!”

당황한 크로마제가 얼떨결에 크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선을 다해 펼친 마법이 저들에겐 겨우 장난 수준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지만 억울할 것은 없었다.

이미 아시테르를 보면서도 엄청난 벽을 느꼈다.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고 살았으니, 여기서 더 큰 벽을 만난다고 해도 그동안의 자신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비체가 크로마제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무 기죽지 말아라. 아시테르가 너만 할 때는 더더욱 형편없었으니.”

“예…? 스승님께서요……?”

“그래. 하지만 저 녀석은 엄청난 노력들로 그것들을 극복해내었다. 그러니 너도 얼마든지 지금보다 더더욱 발전할 수 있어.”

따뜻한 말이었다.

말에 온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크로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후후 별말을. 일단 밥부터 먹고 차차 네 부족한 점들을 살펴봐주마. 밥시간에 제때제때 밥을 먹지 않으면 여기가 불바다가 되거든…….”

“아하…….”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사실 조금 전 지나간 푸른 불꽃을 보며 크로마제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의 마법을 깨부수는 것은 물론 자신까지 단번에 태워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푸른 불 줄기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킨 크로마제가 아레나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런 수준의 적을 만난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이렇다 할 반격을 해보기도 전에 숯검댕이가 되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나는… 정말 한참 멀었구나…….”

그래도 아시테르와 함께 던전에서 수련하며 조금은 강해졌다 생각했는데 하늘 위에 또다른 하늘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읽은 아시테르가 슬쩍 다가와 크로마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무슨 마음인지는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급할 것 없어. 아직 우리는 어리고 젊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분들을 기준으로 삼지 마…….”

“에이… 저는 그런 생각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목표는 오직 단 한 사람이에요.”

“그래. 일단은 달란을 이기는 것부터 생각해.”

아시테르가 크로마제의 어깨를 토닥이곤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크로마제가 조용히 혼잣말로 말했다.

“달란은 이미 제 목표가 아니에요. 제 목표는 바로 당신입니다. 아시테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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