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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80화 (80/424)

080화 다시 루기아 가문으로

“하아… 으하아……!”

크로마제가 괴롭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의 시선이 곁에 있는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자신과 똑같은 시간에 훈련을 시작했고, 훈련의 방식도 훨씬 더 혹독했다.

그런데도 아시테르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질 수… 없습니다……!”

그도 악착같이 버텨내며 훈련을 이어갔다.

모래 위에 얹어진 커다란 바위.

그 위에 앉아 있던 비체가 두 눈을 게슴츠레 떴다.

“돌이 흔들리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품은 거냐?”

“예… 잠시 다른 생각을…….”

“여유가 있었나 보구나.”

비체가 유미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유미르가 곁에 있던 돌덩이 하나를 비체쪽으로 던져주었다.

비체가 그것을 가볍게 받아 바위 위에 얹었다.

“그렇다면 그 여유가 없도록 해주마.”

무게가 더해지자 모래의 형태를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크로마제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질끈 깨물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텼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팔다리가 후들거렸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비체가 바위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제자야.”

그의 시선이 유미르에게로 향했다.

곁에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던 유미르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환한 빛무리가 초승달을 그리며 바위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것이 끝을 알리는 것처럼 크로마제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모래도 흩어졌다.

“아시테르 너도 이만 쉬어라.”

“네……!”

두 손 위로 불길을 다루고 있던 아시테르가 이만 팔을 내렸다.

그러자 뜨겁게 타오르고 있던 불길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시테르는 닦을 수건을 갖고 크로마제에게로 다가갔다.

“고생 많았다. 마침내 반나절은 버틸 수 있게 되었구나.”

“그동안…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아시테르 선생님…….”

크로마제가 기진맥진한 얼굴로 아시테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눈빛만 봐도 아시테르는 크로마제가 자신에게 무슨 말들을 건네고 싶어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아시테르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또다시 묘하게 끈끈한 무언가가 이어진 느낌이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유미르가 피식 웃었다.

“자자, 오늘 훈련은 이만하면 되었고 고기나 먹자꾸나!”

유미르의 말에 크로마제가 반색했다.

이곳에 와서 가장 행복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식사를 한다는 것.

그동안은 몰랐는데 음식을 먹는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아시테르가 그동안 왜 음식을 먹는 것에 집착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거기다 아레나의 철칙이 이곳에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땡! 땡!

“모두 밥 먹어요!”

때가 되자마자 아레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목소리만을 기다렸던 크로마제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곳으로 온 뒤 몇 번 정도 몸이 너무도 고단해 음식을 먹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땅을 치고 후회했다.

끼니는 걸러선 안 된다.

그것은 곧 다음 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걸 몸소 깨달은 뒤로 크로마제는 절대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껄껄 저놈 보게나. 이제 이곳에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로군.”

비체가 그런 크로마제를 보며 웃었다.

유미르도 함께 웃고 있었다.

크로마제는 식사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두 눈을 반짝였다.

제일 좋아하는 와일드 보어 고기가 푸른 불꽃 위로 익혀지고 있었다.

그 황홀한 냄새에 절로 침이 꼴깍여진다.

“이제 너희는 그만 돌아가거라.”

그때 두서없는 비체의 말이 들려왔다.

이에 아시테르와 크로마제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예? 벌써요……?”

“벌써는 무슨. 너희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3개월은 흘렀을 거다.”

“예!?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단 말이에요?”

크로마제가 진심으로 놀라 말했다.

지금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나날들이었어서 정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심지어 어비스 던전에 들어온 뒤로는 집 생각은 단 한 번도 난 적이 없었다.

그저 이곳의 치열함에 녹아들어 생활하다보니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 기간이 3개월이 되었단다.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크로마제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는 생각이 있었다.

“아시테르 선생님! 아카데미는…….”

“괜찮아. 그보다 더 뜻깊은 반년을 보냈잖아. 그걸로 된 거지 뭐.”

의외로 담담하게 넘기는 아시테르를 보며 크로마제가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아시테르가 자신의 학업을 잠시나마 미뤄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로마제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약속드릴게요. 제가 가문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아시테르 선생님께 손해가 되지 않도록 만들 거예요.”

“그보다 너… 루기아 가문에서 널 걱정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아… 아아…! 아하!! 맞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한테 말씀도 안 드리고 나왔는데…….”

이제야 그런 것들이 생각난 크로마제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프라울리 성격에 분명 지금쯤 분노로 날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시테르도 그때서야 머리를 긁적였다.

“맞다… 그러고 보니 나도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구나……?”

프라울리 성질에 돌아가면 또 무슨 말들을 해댈지 몰랐다.

아니, 차라리 ‘말’만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시테르에게 제재를 가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아시테르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구만…….”

그때 유미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무슨 큰 걱정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요. 제게 큰 걱정이 어디 있겠어요.”

“하긴… 우리 아들한테 커다란 걱정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긴 하네. 하지만 뭐라도 좋으니 나중에 고민이 생기면 아버지한테도 꼭 말해주렴.”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너 혼자만 바깥 생활을 하게 해서 이 아빠가 얼마나 미안한지 몰라.”

“에이 아니에요. 아버지에겐 아버지의 삶이 있고 또 위치가 있잖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아시테르의 말에 유미르가 새삼스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자 아시테르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왜 그런 눈으로 절 바라보시는 건가요? 아버지 제게 그런 시선은 곤란해요.”

“아니… 아니다. 바깥에 다녀오더니 우리 아들이 부쩍 성숙해진 것 같아서 말이야.”

유미르의 말에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유미르가 그런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힘든 일이 있거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으면 언제든 돌아와라. 여기가 너의 집이잖니.”

“네. 그럴게요.”

두 부자(父子)의 대화를 듣던 아레나도 조용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아시테르와 크로마제도 이만 어비스 던전을 떠날 채비를 했다.

“정말 반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진짜 시간은 금방 흐르는구나.”

크로마제와 아시테르가 새삼스런 시선으로 어비스 던전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이곳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여전히 아포칼립스 문의 틈에서는 마수들이 빠져나왔고, 비체와 유미르는 그 마수들을 처치하기 위해 매일을 움직였다.

그때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째서 마수가 끊이질 않고 나오는 건가요? 심지어 마수들의 강함도 전에 우리가 있던 던전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런 곳이야. 여기가…….”

“예……?”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곳 던전의 마수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계시는 거야.”

“그랬군요…. 그럼 언젠가 선생님도……?”

크로마제의 물음에 아시테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강해지려 했던 이유.

그것은 단순히 마법기사가 되기 위함은 아니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 살다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긴 했지만, 그가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저곳에 있었다.

“뭐… 나도 언젠가는 이곳에서 마수들을 막으며 생활하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저도 함께 이곳으로 올 게요.”

크로마제의 말에 아시테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선생님 혼자 이곳에 오면 쓸쓸할걸요. 그러니 저라도 함께 해드리려고요.”

“괜찮겠어……?”

“걱정마세요! 그때까지 저도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서 선생님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도록 할테니까.”

“아니 내 말은 그 뜻이…….”

“저는요 이곳에 와서 감동했어요. 스승님의 아버지인 유미르님과 스승님이신 비체님 거기다 기품 넘치시는 아레나님까지. 모두가 너무나도 멋진 분이셨어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곳에서 세상을 위해 살아가신 다는 것… 생각이 짧았던 저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는 곳이었습니다.”

크로마제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아시테르도 괜히 뿌듯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런 아시테르를 보며 크로마제가 솔직한 진심을 전했다.

“저는 스승님이 부럽습니다.”

“내가?”

“네. 이런 멋진 분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부모로 모실 수 있어서.”

“크로마제. 너의 부모님도 멋진 분들이셔. 그러니 그런 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괜히 아버지가 보고 싶네요.”

크로마제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시테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제 슬슬 돌아가보자.”

“좋습니다!”

“어때? 돌아가면 달란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아하하하!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걔는 이미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호오… 자신감이 넘치는 걸?”

“물론이죠. 제가 어떻게 반 년을 견뎌왔는데요. 저번에 마주친 오우거에 비하면 달란은 그냥 어린아이 수준이죠.”

여기까지 말하던 크로마제가 문득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아시테르가 처음 자신을 마주하고 줄곧 지어왔던 표정.

그제야 아시테르가 어떻게 늘 그런 여유를 유지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달란을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처럼, 아시테르에게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특히나 이런 삶을 살아온 아시테르라면 더더욱…….

“정말 감사합니다 아시테르 선생님.”

“뭘 자꾸 감사하대. 그만 감사해 이제.”

아시테르가 괜히 툭 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아시테르 선생님 혹시 나중에 마법기사단을 창단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뭐?”

“원래는 아시테르 선생님이 들어가는 마법기사단에 저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시테르 선생님이 단장으로 계시는 마법기사단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가 마법기사단을 만든다고……?”

“네! 불가능할 것 없지 않습니까?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주세요. 저는 아시테르 선생님이 단장으로 있는 마법기사단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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