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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81화 (81/424)

081화 돌아온 아시테르와 크로마제

다다닷―!

누군가 허겁지겁 발걸음을 재촉하며 건물 안쪽까지 달려갔다.

그의 다급한 표정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황급히 길을 열어주었다.

갑옷을 입은 경비병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끝까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란이냐?”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판데아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러자 달려가던 경비병이 뜀박질을 멈추고 판데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판데아님!”

“그래. 무슨 일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가냐고 물었다.”

“크로마제님이 돌아왔습니다!”

“호오… 우리 아들이?”

“네! 이제 막 외성에 들어오셨습니다.”

“함께 갔던 아시테르 선생님은?”

“아시테르 선생님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후후 예상보다 길어지긴 했지만 훈련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나보군.”

판데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경비병에게 돌아가라 손짓했다.

“전할 말은 그것 뿐이지? 수고했다. 아버지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리마.”

“아, 네! 알겠습니다. 저는 그럼 다시 자리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비병이 몸을 돌렸다.

판데아는 들고 있던 검술 교본을 덮고 곧바로 프라울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크로마제가 모습을 감춘 반년.

프라울리는 그동안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화를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제법 잠잠해져 있었다.

조금은 우울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 그를 보며 판데아가 대놓고 고개를 저은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크로마제가 돌아왔으니 이제는 프라울리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여간… 손자 사랑은 유별 나시다니까.”

정작 크로마제의 아버지는 자신인데, 가끔은 프라울리가 자신보다 더욱 크로마제를 아끼는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판데아가 인상을 썼다.

“가끔이 아닌가.”

아무튼 좋은 소식이 들어왔으니 서둘러 알려주긴 해야 할 터.

그는 곧장 프라울리를 찾아가 크로마제의 귀환을 알렸다.

그러자 프라울리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뭐라고!? 크로마제가 돌아와!?”

“네. 아시테르 선생과 함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어딨느냐!? 내 사랑스런 손자가 지금 어디있느냔 말이다!”

“외성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금방 이곳까지 올 겁니다.”

“내 그 빌어먹을 개인선생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아시테르 선생은 크로마제를 훈련시키고 왔을 뿐입니다. 자꾸만 그렇게 반응하시면…….”

“시끄럽다! 그런 형편없는 놈이 어떻게 내 손자를 훈련시킨단 말이냐!? 제기랄!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너무 믿은 게 실수였다! 나의 눈을 믿었어야 했어!”

프라울리가 탁자를 치며 후회했다.

하지만 판데아의 생각은 달랐다.

프라울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솟구쳐 올랐지만 오늘 같은 날 괜히 프라울리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진 않았기에 끝내 말을 삼켜버렸다.

크로마제와 아시테르는 곧바로 프라울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크로마제!!”

안으로 들어선 크로마제를 보자마자 프라울리가 크게 외치며 뛰쳐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손자의 얼굴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디 다친 곳은…….”

프라울리가 말끝을 흐렸다.

이제보니 크로마제의 몸 여기저기가 다 상처투성이였던 것이다.

아시테르가 크로마제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프라울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시테르 이놈!!”

그가 두 눈을 부라리며 아시테르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프라울리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아시테르가 곧바로 무어라 말하려는 때 크로마제가 먼저 나섰다.

“할아버지! 일단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뭐!? 나더러 무슨 얘기를 들어보라는 말이냐!?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구나 우리 손자…! 이 할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저 무식한 놈이 얼마나 괴롭혔을 거냐…!?”

프라울리가 아시테르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화를 냈다.

그런 프라울리의 앞에서 크로마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아시테르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서 절 가르쳐주었고. 제가 미숙한 바람에 그 훈련을 소화하다가 다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우선 진정하시고 제 말부터 들어주세요. 예?”

크로마제의 말에 프라울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프라울리의 예상으로 크로마제가 자신보다 더더욱 날뛰면 날뛰었지 이렇게 침착하게 자신을 진정시키려 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반년 사이에 크로마제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전과는 달라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진정을 되찾은 프라울리가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자와 할 얘기가 있으니 자리를 피해주게. 자네와는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아시테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자리를 나서는 아시테르의 곁으로 판데아가 다가왔다.

“그럼 선생님은 저와 대화를 나누실까요.”

“아! 판데아님!”

반가운 판데아의 얼굴에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었다.

판데아의 옆에 있던 로포도 아시테르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루기아 가문에서 그나마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판데아는 자신의 서재로 아시테르를 데려오자마자 미소를 보였다.

“제가 보기엔 많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예? 잠깐 보고 무엇을…….”

“크로마제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어리광부터 부려야 할 녀석이 갑자기 저렇게 의젓해진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저 녀석의 아버지이다보니 아들의 변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같군요.”

“아…….”

“거기다 크로마제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전보다 갈무리되었습니다. 중구난방으로 뻗치던 마력들이 말이죠.”

“예…?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으신 겁니까?”

아시테르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판데아가 옆에 걸려 있던 검 한 자루를 집어들었다.

“성장한 것은 제 아들만이 아니죠? 선생님께서도 반년 전에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성장하신 것 같습니다만.”

“그건…….”

“아들에 관한 것은 제가 차차 알아가면 될 것 같고… 이렇게 만난 김에 저와 검이나 한번 나누지 않겠습니까?”

판데아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크로마제가 돌아온 것만큼이나 아시테르의 귀환을 좋아하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검술을 겨룰 수 있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

그 표정을 보니 아시테르도 쉽게 판데아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좋습니다.”

사실 아시테르도 판데아가 어떤 검술을 사용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동안 아시테르가 경험한 것은 비체와 유미르의 검술뿐.

갑자기 드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결정만큼이나 행동도 빨랐다.

프라울리와 크로마제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아시테르와 판데아는 근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판데아가 한쪽에 있는 무기고를 가리켰다.

“어떤 스타일의 무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어지간한 종류의 무기들은 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과연 판데아의 말대로였다.

무기고에는 갖가지의 무기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살면서 처음 접해보는 무기들도 더러 보였다.

아시테르는 그중에서 가장 익숙한 모양의 검을 집어 들었다.

이를 본 판데아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겁니까……?”

“그것… 무겁진 않으십니까?”

“네. 뭐… 그럭저럭 휘두를 만합니다.”

아시테르가 들고 있던 검을 여기저기 휘두르며 말했다.

그러자 판데아의 표정이 또다시 변화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시테르가 휘두르고 있는 검은 사실 양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검이었다.

그런데 아시테르는 저 무거운 검을 저렇게 눈앞에서 휘둘러대고 있는 것이다.

“과연…….”

거기다 휘두르면서 보이는 검선이 예사롭지 않다.

많이 휘둘러보지 않으면 저렇게 곧은 검선이 나오질 않는 법.

두 사람이 연무장 가운데에 섰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시테르 선생.”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판데아님.”

두 사람 사이에 인사가 오가고 판데아가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양손으로 드는 클레이모어.

아시테르는 검을 들고 판데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에 판데아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럼……!”

한달음에 달려나간 판데아가 아시테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시테르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는 판데아의 보폭과 움직임을 살폈다.

흔히들 검술이라 하면 검을 어떻게 휘두르면 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비체는 달랐다.

검을 어떻게 휘두르는지도 중요했지만, 발을 어떻게 움직여 검을 휘두르기에 최상의 조건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때문에 아시테르도 판데아의 발걸음을 먼저 살핀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발놀림은 평범했다.

비체처럼 화려하게 움직이지도, 유미르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검술까지 평범하다 말할 순 없었다.

후웅―!

쾅!

양손으로 휘두르는 만큼 판데아의 검은 위력적이었다.

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에 아시테르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검의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저 검에 잘못 맞았다간 뼈도 못추릴 것만 같은 느낌.

아시테르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판데아는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아시테르의 공격들을 방어해내었다.

아시테르의 공격은 날카롭고 빨랐다.

비체의 검은 현란하면서 부드럽다면 유미르의 검은 무겁고 드셌다.

반면 아시테르의 검은 빠르고 간결하게 발전해 왔다.

아무래도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검을 배우다 보니 간단하고 빠른 움직임만으로 마수들의 숨통을 끊는 게 더욱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때로는 비체처럼 변칙적인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마수들을 상대로 자주 쓰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시테르는 가볍고 표홀한 움직임으로 사방에서 판데아를 압박했다.

아시테르의 엄청난 움직임을 보며 판데아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아시테르는 잘 몰랐지만 본래 이스트 왕국의 검술은 베는 것보다 부수는 것을 위주로 한 검술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판데아로서도 아시테르의 검술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역시 이렇게 검술을 나눠보길 잘한 것 같습니다!”

기운차게 외친 판데아가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가 힘차게 검을 수직으로 내려치자 연무장의 대리석이 균열을 일으키며 부숴지고 말았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비체의 검처럼 특별한 기운이 실린 것도 아니었다.

그때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판데아의 검을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것이다.

“마력……?”

판데아의 검을 감싸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마력이었다.

비체와 유미르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검에 직접적으로 마력을 씌운 것은 처음 보는 경우였다.

“그것은 강화 마법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마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거든요.”

“예……?”

아시테르의 반응에 판데아가 웃음을 지었다.

옛날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시테르처럼 젊은 친구들이라면 이런 현상을 신기해할 만했다.

“대신에 이렇게 마력을 다룰 줄은 압니다.”

판데아가 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리자 그의 마력이 검끝에서 늘어났다.

검 끝에 맺혀 있는 마력을 보며 아시테르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이건 마법이 아닙니다. ‘마나 소드’라는 겁니다.”

“마나 소드…….”

“네. 검 면에 마력을 실어 일반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말이죠.”

슈웅―!

콰앙―!

판데아가 작정하고 검을 휘두르자 연무장 대리석이 완전히 박살나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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