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83화 (83/424)

083화 크로마제 vs 달란 (1)

“어때? 오늘 자신 있어?”

“당연한 말씀을.”

“자신 있는 건 좋은데 자만은 하지 마라. 누구를 상대하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방심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크로마제가 씨익 웃어보였다.

크로마제가 루기아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달란에게 연락을 취해 대결 약속을 잡는 일이었다.

그동안 크로마제가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라 생각한 달란은 의외로(?) 크로마제 측에서 먼저 연락이 오자 내심 반겼다.

“멍청한 크로마제. 그냥 그대로 숨어 있을 것이지 끝내 자존심에 자기 자신을 망치는구나.”

크로마제에게 연락을 받고 달란이 내뱉은 말이었다.

당연히 이 말은 건너건너 크로마제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대결 날짜를 잡게 되었고 마침내 그 날이 오늘이었다.

아침부터 밥상을 들고 아시테르의 숙소를 방문한 크로마제가 맛있게 음식을 집어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제자야. 던전에서는 식기가 없었으니 그렇다치고 지금은 왜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있는 거냐?”

“아… 이게 손으로 먹는 버릇 하다 보니 가끔은 이게 더 편해졌습니다. 특히 이런 고기들은 손으로 집어서 뜯어먹어줘야…….”

변명아닌 변명을 하던 크로마제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스승님도 손으로 고기를 집어서 뜯어먹고 계시질 않습니까?”

“엥?”

그때서야 아시테르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습관이란 것이 참 무섭다.

그동안 아카데미에 머물면서 라빈에게 숱한 잔소리를 들어가며 고쳐놨는데, 어비스 던전에서 잠깐 살다 왔다고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고기를 집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무안해진 아시테르가 헛기침을 해댔다.

“역시 고기는 손으로 뜯어서 먹는 게 제일 맛있죠?”

“크흠… 당연하지.”

아시테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사내였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고기를 다시 이빨로 뜯어먹기 시작하자 크로마제도 빙그레 웃었다.

“어차피 여기는 저희 둘밖에 없는데 격식 차려서 뭐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스승님?”

“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나야 상관없지만 너는 대외적인 위치가 있잖아?”

“스승님 앞에서는 그저 제자일 뿐입니다. 밖에 나가서는 행동에 조심을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년 사이 지나치게 철이 든 크로마제를 보며 오히려 아시테르가 뻘쭘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가끔은 자신보다 크로마제가 더 어른스러워 보일 지경이었으니 머릿속이 혼란할 때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크로마제가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라준다는 것.

그런 크로마제를 위해서도 아시테르 역시 조금은 행동거지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처럼 마냥 편하게 굴기에는 크로마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병적으로(?) 따라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크로마제는 아시테르가 루기아 가문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이렇게 식사거리를 들고 직접 찾아왔다.

그리곤 아침을 함께 먹으며 하루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떠들기도 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다.

거기다 이제는 아시테르의 말에 따라 하녀들이나 가문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도 않으니, 가문 내에서 크로마제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당연히 긍정적이고 좋은 쪽으로 말이다.

“그동안에는 왜 이렇게 살지 못했나 싶어요.”

“뭐?”

“그냥. 한 번 해보니까 별 것 아니다 싶어서요. 진짜 죽을 뻔한 경험들도 해봤어서 그런가…….”

“됐고 이제 슬슬 가보자.”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찍 자리를 나섰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타란튤라였다.

달란이 정한 약속장소가 바로 타란튤라였다.

타란튤라 간판 앞에서 크로마제가 걸음을 멈추었다.

반년 전 이곳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과 감정이었다.

그때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왔나보네.”

달란의 목소리였다.

그는 한층 더 기름진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옆으로 한껏 빗은 그의 머리를 보며 크로마제가 인상을 썼다.

반면 달란은 다른 이유로 크로마제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거냐?”

평소 크로마제가 보여왔던 모습과는 달랐다.

하기사 던전에 다녀온 이후로 크게 겉모습에 신경쓰지 않은 크로마제이다보니 전보다 깔끔해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전에는 봐줄만 했는데… 지금은 격이 떨어진 것 같네…….”

달란이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정작 크로마제는 달란의 말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보다 그는 여유 있는 태도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나 이곳에 도착한 순간 크로마제의 편에 서려는 이들은 딱히 없어보였다.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어떻게 해서든 달란의 눈에 들기 위해 그의 편에 서 있었다.

“이것 참… 나도 전에는 저랬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던 크로마제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태도에 달란이 인상을 찌푸린다.

“뭐라고?”

“아냐. 됐고 빨리 시작이나 하자.”

“잠시만 기다려라.”

달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뒤편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푸른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크로마제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곱게 땋은 그녀를 보며 몇몇 귀족 자제들이 감탄을 흘렸다.

모르아네가 아름다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꾸며 놓으니 인형이 따로 없었다.

크로마제도 순간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모두 자리에 도착했으니 시작해보도록 할까.”

달란이 먼저 자리에서 움직였다.

그는 미리 장소를 준비해두었다.

크로마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흔치 않은 기회이니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족히 천 명은 넘게 볼 수 있는 장소로 선정했다.

미리 이곳에 와있던 달란의 개인선생 부크로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곱게 빗은 갈색 머리며 깔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생김새가 과연 귀족가의 인물임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아시테르와 크로마제를 바라보았다.

“흐음…….”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적인 관리도 내면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크로드 입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실격이나 다름없었다.

“이것 참… 기분이 썩 좋진 않군요.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비교도 할 수 있고 경쟁도 할 수 있는 법인데… 이건 격 차이가 너무 나는 것 아닙니까?”

부크로드가 대놓고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를 들은 달란이 비웃음 흘렸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도발에 넘어가줄 아시테르와 크로마제가 아니었다.

아시테르가 부크로드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크로마제를 가르치고 있는 개인선생 아시테르라고 합니다.”

“저는 파실르 가문의 부크로드라고 합니다.”

아시테르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부크로드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기에 충분히 무례라고 할 수 있는 상황.

그만큼 부크로드가 대놓고 아시테르를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크로마제가 대놓고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저 인간이…….”

예전 성미가 나오려는 듯 인상을 일그러트린 크로마제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아시테르가 손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흥분할 것 없어. 우리는 우리가 할 것만 하면 되는 거야.”

“후우… 그치만 스승님이 이렇게 무시…….”

“크로마제.”

“네. 알겠습니다.”

아시테르의 단호한 어조에 크로마제도 한발 물러섰다.

그치만 부크로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이봐 크로마제.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아! 네 그 시답잖은 천민 선생이랑 어울려 다니다 보니 혹시 너에게도 천민 근성이 생긴 거냐?”

기어코 기름을 들이붓고 마는 달란이었다.

일단은 크로마제를 흥분시키는 것은 성공했다 생각한 부크로드와 달란이 남모르게 웃었다.

아시테르가 자리로 돌아가기 전 한 마디 더 건넸다.

“부디 매너 있는 좋은 승부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흥! 승부가 되긴 하겠어?”

아시테르의 말에 부크로드가 기어이 한 마디 더 붙였다.

아시테르는 부크로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왔다.

달란의 반대편에 서 있는 크로마제가 눈빛을 달리했다.

“크로마제.”

“예. 말씀하십시오 스승님.”

“상대는 마수가 아니라 인간이야. 알고 있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마세요 선생님. 하지만 이건 장담 못드릴 것 같습니다.”

“뭘?”

“달란을 죽이진 않겠지만… 개패듯이 패버리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스승님과 아버지와 대장님은 하나라고. 저는 방금 제 아버지이자 대장님인 스승님을 모욕당한 겁니다.”

크로마제가 이를 꽉 물며 앞으로 훌쩍 나가버렸다.

마침내 크로마제와 다란이 가까이서 마주서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곳엔 귀족 가문의 자제들뿐만 아니라 호기심이 동한 다른 많은 사람들까지도 와있었다.

그들을 둘러보던 달란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어떠냐? 우리 둘의 결판을 내기에 최고의 장소가 아니냐?”

“글쎄.”

“너무 걱정하지마라. 창피함은 잠깐일 뿐이야.”

“그래 맞아. 지금 네가 한 말을 꼭 기억해라 달란.”

크로마제가 입술을 질끈 깨물으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노발대발하며 흥분하거나 움츠려들었어야 할 크로마제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니 달란이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크로마제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졌다.

거기다 크로마제의 몸도 근육이 붙어 제법 불어나 있었다.

“뭐지……?”

그때 타란튤라의 주인, 마르필레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녀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부탁 때문에 이곳으로 오긴 했지만… 너희 두 사람은 적이 아니야.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패색이 짙어지면 내가 개입해서 대결을 끝낼 생각이야. 혹시 불만 있니?”

그녀의 물음에 두 사람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마르필레가 시작을 알렸다.

먼저 움직인 것은 달란이었다.

그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슬쩍 모르아네 쪽을 바라보았다.

모르아네는 이곳이 가장 잘 보이는 중앙 쪽에 앉아 있었다.

“잘 보라구, 모르아네.”

그가 머릿결을 넘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푸른 물방울이 허공에 맺혔다.

“오오!”

“우오오―!”

물방울의 개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쳤다.

아직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여러 개의 물방울을 동시에 형성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달란이 실력 있는 마도사라는 얘기였다.

크로마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흥.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군.”

달란이 손을 뻗자 물방울들이 크로마제를 향해 날아갔다.

크로마제가 그 자리에서 발을 구르자 지면에서 모래 파편들이 튀어나왔다.

모래파편들은 다가오는 5개의 물방울들을 사정없이 터트려 버렸다.

“어……?”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의 마법이 막혀버리자 달란도 당황하고 말았다.

반면 크로마제는 무심한 얼굴로 달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일부러 봐줄 필요 없어 달란. 최선을 다해서 공격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안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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