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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85화 (85/424)

085화 아카데미로 복귀

오랜만에 정갈하게 차려입은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떠나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나도 내 자리가 있으니까.”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 나도 너한테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

“에이, 저 같은 녀석이 어떻게 아시테르 선생님께…….”

크로마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아시테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네가 어때서? 자랑스러운 내 첫 제자인데.”

“첫 제자…….”

크로마제가 얼굴을 붉히며 ‘첫 제자’라는 단어를 연신 중얼거렸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 단어인 모양이었다.

그런 크로마제를 보며 아시테르도 미소를 보였다.

첫만남부터 자신을 무시하며 배척하려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시간 참 빠르구나.”

“금방 흘러갈 겁니다. 시간…….”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네. 빨리 시간이 흘러서 제가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그다음 꼭 스승님과 같은 곳에서 적과 싸우고 싶습니다.”

아시테르와 크로마제만 아는 비밀.

크로마제가 말하는 적은 아마 마수들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그의 각오에 아시테르가 고맙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이거 두 사람만 계속 작별 인사를 나누면 나도 좀 섭섭합니다.”

곁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판데아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도 아시테르가 이만 떠난다는 소식에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어 이곳까지 찾아와주었다.

아카데미 학기가 다시 시작되기 전 한 달 동안 아시테르는 프라울리의 요청에 따라 루기아 가문에 머물렀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크로마제의 마법을 봐주는 한편 판데아에게서 루기아 가문의 검술을 배웠다.

그 기간 동안 판데아와 아시테르는 서로에게 좋은 검술 스승이자 동료가 되었다.

아시테르는 판데아에게 비체가 강조해 왔던 발놀림을 가르쳐주었고, 판데아는 아시테르에게 검에 마력을 싣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발놀림과 다르게 검에 마력을 싣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깨달음을 요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시테르의 발전은 더뎠다.

그래도 판데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은 아시테르가 꾸준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계속 그대로 정진하다 보면 분명 마나 소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하게도 마법과 검술 둘 다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다. 판데아님께서도 제 스승님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하하! 아니 우리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보다는 좋은 검술 동료로써 남는 걸로 하지요.”

판데아가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품 안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 아시테르에게 건넸다.

“받으십시오. 그동안 아시테르 선생님께서 제 아들을 열성으로 가르쳐주었다는 증거가 될 문서입니다.”

“아…….”

“아버지께서 이번에 특별히 신경 써주셨다고 하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꽤 괜찮은 보상이 들어 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도 오고 싶어했지만… 이번에 귀족 가문의 가주 회의가 있는 터라…….”

“이해합니다. 다음에 제가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이해해주니 고맙군요.”

판데아가 아시테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시테르도 판데아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나중에 꼭 전장에서 뵙기를!”

“네!”

크로마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곳에서 스승님을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스승님의 뒤에 항상 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야야… 이제는 내가 부담되려 한다…….”

“아닙니다! 늘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스승님과 아버지와 대장님은 하나다! 전혀 부담 갖지 말아주세요!”

“그래. 알겠다. 그럼 나는 이만……!”

아시테르는 두 사람과 작별하고 이만 몸을 돌렸다.

프라울리를 곁에서 보조해야 하는 것 때문에 로포와도 미리 작별 인사를 해두었으니 더는 아쉬움은 없었다.

그가 곧바로 향할 곳은 아카데미였다.

뜻하지 않게 반년을 쉬어버린 바람에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테르세우스와의 약속이 끝났다는 점.

극한까지 몰아붙여 수련한다는 마음으로 버텨내긴 했지만, 아시테르라고 답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좋아. 이제 제대로 해볼 수 있겠네.”

사실 그동안 수련을 거듭해 오기만 했지, 사실상 자기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지는 가늠할 수도 없었다.

물론 개인선생쪽에서 유명한 부크로드를 한 번에 제압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만, 아시테르가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이동해 아시테르는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의 말에 아시테르가 품 안에서 학생증을 꺼내 보였다.

그의 신분을 확인한 경비병이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이었군요.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아카데미의 풍경이 펼쳐졌다.

아시테르가 괜히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우선 뭐부터 해야 하지? 역시 벌점부터 다시 없애버려야 하겠지?”

그러려면 가장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이 있었다.

아시테르는 숙소에도 들리지 않고 곧바로 의뢰 창구로 향했다.

그곳에서 의뢰를 받아 빠르게 남은 벌점들을 채워 넣어야 했다.

그래야만 친구들이 있는 2등급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래도 그동안은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는데 막상 혼자하려니까 엄청 재미없을 것 같네…….”

아시테르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가 창구로 도착하자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창구의 직원이 그를 반겨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해주셨네요 아시테르 학생. 전에는 매일같이 봤었는데…….”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야 뭐 똑같죠. 그보다 아시테르 학생은 잘 지냈어요? 듣자하니 이미 아카데미에 소문이 많이 퍼진 것 같던데…….”

“소문이요?”

그러고 보니 아시테르는 그동안 던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곳의 사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거기다 돌아온 뒤에도 루기아 가문에 틀어박혀 수련만 하며 지냈으니, 다른 것들에 대한 소문은 더더욱 듣지 못했다.

“아, 모르셨구나… 몇몇 학생들이 아시테르 학생에 관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모양이에요.”

“악의적인 소문이라니…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으음… 그건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가 좀…….”

창구의 직원이 조금은 난처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때서야 아시테르가 손사래를 쳤다.

“아아 아닙니다. 소문은 나중에 제가 직접 알아볼게요.”

“그런데 진짜 그동안 뭘 하면서 지내셨길래 이곳에 한 번도 오지 않으신 건가요? 저는 그 날 이후 곧바로 창구로 찾아와 벌점부터 다시 없애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동안 루기아 가문에 있었습니다.”

“루기아 가문에요? 거기는 왜…….”

“그곳에서 개인 선생으로 있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보여드리라고…….”

아시테르가 품 안에 넣어두었던 서류를 꺼냈다.

그것을 본 창구의 직원이 미소를 보였다.

“잠시 살펴볼게요.”

직원은 아시테르가 준 서류를 펼쳐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리곤 아시테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훌륭하신 걸요?”

“예?”

“루기아 가문에서 개인선생을 다녀온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점수를 주셨어요.”

“예에……?”

“거기다 루기아 가문의 요청에 학기도 포기하고 반년이나 학생을 가르쳐주고 오다니… 어쩌면 아시테르 학생은 마법기사보다 선생쪽에 자질이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요? 에?”

아시테르도 서류의 내용을 읽어보질 않았으니 당최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그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직원이 서류를 건넸다.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니 프라울리가 나름대로 아시테르를 배려해 서류를 작성해준 게 보였다.

루기아 가문쪽에서 먼저 요청하는 바람에 아시테르가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크로마제를 더 가르친 걸로 써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아시테르가 다른 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중히 부탁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덤으로 만족도 점수는 최고 점수를 주었다.

“진짜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신기한 학생이네요. 어떤 의미로는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 중 가장 독보적이에요.”

“그게… 어떤 면일까요……?”

“글쎄요…. 종잡을 수 없는 쪽으로……?”

직원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이 아시테르 학생에 대해 뭐라고 떠들던 너무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겨요 안 좋은 말을 듣더라도 상처받지 말고.”

“에이, 저는 그런 것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좋아요! 자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줄까요? 벌점은 이것으로 한 번에 채워 넣은 것 같고. 이대로 승급 신청을 넣어둘까요?”

“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훗. 이렇게 한 방에 해결돼서 잘 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아시테르 학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미 반년이나 지나버린 바람에 이제와 팀을 새로 꾸리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2년 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에 출전해보는 것은 어떻겠나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그 대회에서 순위권 안에 들면 특전으로 승급할 수도 있고.”

직원의 말에 아시테르도 흥미가 생겼는지 슬쩍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직원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시기가 거의 마감 직전인데다 팀을 구성해서 오는 것이 아니면 자동매칭을 신청해야 하는데… 이번에 우연치 않게도 자동매칭을 신청한 사람 중 남은 사람이 딱 한 사람이에요.”

“그게 누군데요?”

“체르도네 알렌시아 학생이에요.”

직원의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놀라 입까지 동시에 벌어지고 말았다.

그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직원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누… 누구요?”

“체르도네 알렌시아 학생이요. 이건 솔직히 아시테르 학생이니까 몰래 말해주는 거예요. 그치만 뭐… 이미 승급까지 이룬 마당에 굳이…….”

“할게요!”

“네……?”

“저 이거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시테르 학생은 굳이 이걸 하지 않아도 이미 승급이 이루어진 상황이에요. 거기다 이걸 한다고 해서 2등급에서 바로 1등급으로 승급이 이루어질지는…….”

“…….”

“제 생각에는 아마 예정대로 2등급으로 승급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굳이 이 대회에 참가해서 고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요아니요! 저는 이 대회에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아시테르가 갑자기 열정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고 싶다는 데 직원이 말릴 권한은 없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직원은 참가신청서를 꺼내주었다.

“정말 신청할 생각이에요?”

“네. 신청하지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예? 그게 무슨…….”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구요.”

아시테르는 참가신청서를 받자마자 막힘없이 공란을 적어나갔다.

그는 신청서를 다 작성하자마자 직원에게 건넸다.

“뭐… 아시테르 학생이 신청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일단은 넣어둘게요.”

“네! 감사합니다!”

“자동매칭으로 신청을 해주셨기 때문에 자동으로 남은 한 사람인 체르도네 알렌시아 학생과 함께 팀을 이루게 될 거예요.”

“네!!”

아시테르가 힘차게 대답하며 직원이 보여주는 명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어라? 그런데 알렌시아의 등급이 잘못 적힌 것 같은데요……?”

“아, 그동안 루기아 가문에 있었으니 모르겠군요. 알렌시아 학생은 최근 강등처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등급이 낮아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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