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화 시합출전
대회 개막 하루 전.
아시테르는 교관의 부름에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나섰다.
회관에 도착하자 벌써부터 와있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어라? 쟤는…….”
“뭐야 아시테르잖아?”
“으흐흐 쟤 이제 어쩌냐? 라빈이 보호도 못 해줄 텐데.”
“그러게. 그동안 라빈 덕분에 편했을 텐데 이제 아쉽게 되었네?”
“쳇, 그래서 마음에 안 들었다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그러고 보니 라빈네 팀은 2등급 안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던데.”
“제일 발목 잡고 있던 녀석이 빠졌으니 이제 날개를 단 셈이지.”
아시테르를 알아본 학생들이 그를 두고 수군거렸다.
뒷담화를 하려면 조용히 할 것이지 그 목소리가 커 아시테르의 귀에도 다 들리고 있었다.
물론 아시테르는 그런 것들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는 이곳으로 모두를 부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아시테르가 앉을 자리부터 찾았다.
운이 좋게도 한쪽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 회관으로 들어섰다.
“모두 다 왔나보군.”
명단을 가져온 교관이 매서운 눈빛으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다른 필요 없는 말은 굳이 붙이지 않았다.
곧바로 본론부터 들어간 것이다.
“너희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번 비더블 대회에 자유 매칭으로 참가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칭 상대를 미리 알려주고자 부른 거다.”
예상하고 있던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교관은 명단에 적혀 있는 이름들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의 얼굴엔 환희가 스쳐 지나가고 어떤 이들의 얼굴엔 불만이 스쳐 지나간다.
교관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상관없이 명단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자, 다음 매칭은 알렌시아.”
그의 호명에 알렌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주위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알렌시아가 자유 매칭으로 비더블 대회에 참가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아카데미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와 팀을 이루게 되는 행운아가 누군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교관이 곧바로 다음 이름을 호명했다.
“알렌시아와 팀을 이루는 것은 아시테르다.”
교관의 말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최상위 실력자와 최하위 실력자의 만남이었다.
“뭐…!? 아시테르라고!?”
“크하하하! 이거 완전 대박이잖아!? 이제 보니 교관님들 팀을 짜는 솜씨가 엄청나신 걸?”
“볼 만하겠네. 최상위에 위치한 알렌시아와 아카데미 내에 유명한 최약체인 아시테르가 한 팀을 이루다니.”
“볼 만하기는… 알렌시아만 불쌍하게 되었지. 하필이면 아시테르라니. 강등처벌 때문에 금방 다시 올라갈 방법으로 비더블 대회에 출전한 것 같은데… 쯧, 상황이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질 않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지 않아? 요주 인물이었던 알렌시아가 더는 요주 인물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방심하지 마. 알렌시아 혼자만 해도 충분히 2인분 이상의 몫은 해낼 테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 비더블 대회 주제가 뭐였지?”
“글쎄… 그건 아직 발표되지 않아서.”
학생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교관은 마지막 한 명까지 이름을 호명했다.
호명을 마치고 교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내일이면 대회가 시작된다. 그래서 주제를 미리 발표하자면, 이번 대회의 주제는 결투다.”
“결투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겁니까?”
“아주 간단하다. 상대로 만나는 팀을 쓰러트리면 되는 거다.”
그야말로 간단한 룰이었다.
다른 때처럼 마수 사냥을 나간다거나, 팀끼리 또다른 팀을 구성해 서바이벌 형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방식들보다는 훨씬 더 간단한 방식이었다.
거기다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아마 이번 룰에 들끓기 시작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은근하게 누가 더 강하네 아니네 하는 말들이 오갔는데 이번에야말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을 터였다.
결투라는 말에 알렌시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주제였다.
아시테르가 알렌시아 곁으로 다가왔다.
“반가워요. 여기서 또 보네요?”
“그러게요.”
알렌시아의 표정을 살피던 아시테르는 은근슬쩍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는 난처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요. 하필이면 제가 당신과 같은 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상관없어요. 어차피 나 혼자 다 상대하면 되는 거니까.”
“네……?”
“대신 방해만 되지 말아요. 저는 당신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버릴 거예요.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스스로 지켜내요. 그 정도는 가능하겠죠?”
“아… 하지만…….”
아시테르가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수련장에서 다친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붕대가 감겨 있는 아시테르의 다리를 보며 알렌시아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다쳤어요?”
“네… 어쩌다보니…….”
“뭐, 상관없어요. 어차피 함께 팀을 이룰 사람에게 큰 기대는 안 했으니까. 아시테르 당신이 이번 대회에서 뭔가를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아아…….”
“뒤에 얌전히 있어요. 결투는 나 혼자서 다 할 테니까.”
하지만 못내 신경 쓰였는지 알렌시아의 시선은 자꾸만 아시테르의 다리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반응에 아시테르가 묘한 표정을 보였다.
“방해는 되지 않을게요.”
“그래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네. 그런데 우리가 팀이라면 뭔가 다른 것들도…….”
“다른 것 뭐요?”
“흠… 아니에요.”
아시테르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알렌시아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시테르도 알렌시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다.
자신도 자신만의 방식이 있듯이 알렌시아에게도 알렌시아만의 방식이 있을 터였다.
거기다 아시테르가 함께 해온 팀과 알렌시아가 그동안 함께 해온 팀의 방식도 달랐을 테니, 일단은 그녀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금세 하루가 지나고 대회 날이 찾아왔다.
예선부터 진행되는 대회는 그 기간이 무려 한 달이 넘도록 잡혀 있었다.
“생각보다 큰 대회였구나…….”
아시테르가 놀라 말하는데 알렌시아는 조용히 대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날 이후로 알렌시아와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아시테르 입장으로서도 알렌시아가 심란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 애써 말을 더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간의 대기 시간을 거쳐 첫 시합에 출전했다.
상대는 4등급 학생들이었다.
“야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맞아. 4등급에서 오랫동안 낙제했던 사람.”
“이번에 3등급 올라가서도 한 건 했다며?”
“크흐흐, 벌점 때문에 승급하지 못한 건 아카데미 역사상 저 선배가 처음이라던데?”
그들은 아시테르를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알렌시아도 아시테르쪽을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까 아카데미에서 엄청난 유명인사였네요?”
“네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아하하…….”
“다른 의미로 피곤한 사람이네요.”
“근데 뭐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제부터 더 유명해질 거거든요.”
“하긴. 이번 대회가 끝나면 또 소문이 퍼지겠네요.”
“아마 그렇겠죠?”
아시테르가 또다시 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는 서로 다른 소문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아시테르 뿐이었다.
알렌시아는 그런 아시테르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에게 아시테르는 그저 능력 있는 사람들의 옆에서 덕을 보는 인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기대는 접어버렸다.
“뭐, 상관없겠죠.”
제법 쓸 만한 인물과 같은 팀이 되었으면 한결 편했을 테지만, 정말로 알렌시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가 자신과 팀을 이루건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합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알렌시아가 아시테르의 앞으로 나섰다.
“잠자코 보기나 하고 있어요.”
“옙!”
우렁찬 대답과 함께 아시테르가 뒤로 물러났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할 것처럼 팔짱을 낀 채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설마 지금 우리 둘을 선배 혼자 상대하겠다는 거예요?”
“아… 하긴. 아시테르 선배는 어차피 큰 도움이 안 될 테니까.”
“근데 미안해서 어쩌죠. 생각보다 우리 둘 만만치 않을 텐데.”
두 사람이 동시에 마법을 펼쳤다.
이를 바라본 알렌시아가 손을 움직였다.
콰직!
순식간에 허공을 가른 전격이 상대의 마법을 무력화 시켰다.
제대로 마법을 발휘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쩌저정!!
이어 여기저기 떨어진 전격이 두 사람을 위협했다.
“아…….”
“어……?”
호기롭게 마법을 펼쳐보려던 4등급 학생들이 말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알렌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렌시아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더 해볼 거야? 이번에는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텐데.”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어올렸다.
“저희가 패배했습니다.”
“그… 그만하겠습니다.”
그들의 선언에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되고 말았다.
정말 깔끔한 승부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시테르조차도 싱겁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진짜 대단한 마법이네.”
알렌시아의 마법을 지켜본 아시테르가 순수한 감탄을 내놓았다.
그녀의 전격 마법은 위력적이면서도 빨랐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떻게 아카데미 내에서 독보적인 루트를 걸어왔는지 단번에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시합이 끝나자 알렌시아가 뒤돌아 아시테르 쪽으로 걸어왔다.
“봤죠? 앞으로도 당신이 뭔가를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오늘처럼 저 혼자만으로 충분할 것 같으니까.”
“마법만큼이나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어차피 이번 대회는 대부분 2~3등급 학생들이 출전했을 거예요. 1등급 학생들도 아니고 그 밑에 있는 학생들 중 저를 상대할 수 있는 학생들은 없어요.”
알렌시아는 이 말과 함께 자리를 훌쩍 떠나버렸다.
시합장에 남은 아시테르는 입맛을 다시며 상대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충격이 가시질 않았는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그래도 같이 팀을 이루었으니 나에 대해 조금은 궁금해 해줄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완전히 짐짝 취급을 당하고 있네.”
그래도 왜인지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은근하게 알렌시아가 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금 전만 해도 상대의 마법은 알렌시아보다 자신을 노린 방향이었는데, 알렌시아가 마법으로 막아주었다.
아시테르가 턱을 긁적이며 이만 시합장을 벗어났다.
워낙 소문이 빠른 곳이라 이번 일도 금세 학생들 사이로 퍼졌다.
알렌시아와 함께 팀을 이룬 것은 아시테르라는 학생이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함께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이를 주워들은 누군가가 탁자를 내리쳤다.
“뭐!? 아니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고 뭘 하고 있나 했더니 비더블 대회에 출전했다고!? 우리한테 말도 없이?”
“워낙 자유분방한 친구잖아.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라빈. 내가 더 서운해할 거니까.”
“둘 다 진정해요. 아시테르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죠.”
“응? 아는 사람이야?”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가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인상의 여인도 그들과 함께였다.
데미리우스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잘 알죠. 우리팀의 대장인걸요.”
“아, 맞아. 2등급으로 올라오기 전에도 너희들 모두 같은 팀이었다고 했지.”
“네. 그 녀석이 우리 팀의 대장이었고요.”
“그러고 보니 나도 소문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라빈에게 업혀서 3등급, 2등급까지 올라온 학생이 있다고.”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히나 라빈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다 개소리야. 아시테르 오빠는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왔어.”
“맞아. 그건 친구인 내가 보증해. 아시테르는 누구보다도 노력해 온 녀석이라고.”
“그건 그렇지요. 확실히 아시테르는 실력에 비해 저평가 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아마도 그가 그동안 벌여온 기행 때문에 그런 거겠죠.”
“에휴… 결국 아시테르 오빠 본인이 자초한 일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