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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88화 (88/424)

088화 알렌시아의 방식

세 사람의 말에 여인이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소문으로 들은 거라…….”

“소문만 믿고 함부로 말하지 마. 아시테르 오빠가 어디 가서 그런 취급 받을 사람 아니니까.”

라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금세 표정이 풀리며 입술을 빼꼼 내밀었다.

“그래도 생각할수록 화나네.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어……!”

“마침 우리도 비더블 대회에 출전했으니 잘하면 서로 만날 수도 있겠지.”

에스파가 웃으며 말했다.

데미리우스도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함께 팀을 이룬 사람이 알렌시아 양이라고 하니 아마 우리들 중 누군가와 시합에서 만날 가능성은 굉장히 높습니다. 쉽게 질 리는 없을 테니까요.”

“뭐…!? 알렌시아!? 그 여자랑 같이 팀을 짰다고!?”

“뭐야. 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그래서 지금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거잖아. 아시테르가 또다시 능력 있는 사람 옆에 붙어서 편하게 놀고먹는다고. 그래서 지금 별명이 기생충이야 기생충!”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됐어! 왜 그 여자랑 같은 팀을 이룬 건데?”

“그야…. 그건 나도 모르지. 왜, 뭐가 문제인데?”

“하씨…….”

라빈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에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미리우스가 그런 에스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사이에 잊었습니까? 아시테르가 이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 중에 하나.”

“아… 아아……!”

그때서야 무언가 생각난 듯 에스파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다.

아시테르가 첫눈에 반한 여인.

그녀 때문에도 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 말했었다.

“맞아, 그게 알렌시아였지… 뭐야 그럼 차라리 잘 된 것 아냐? 근데 왜 넌 그렇게 뚱해 있어?”

“그건 저도 의문이로군요. 혹시 질투라도 하는 겁니까 라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번에 알렌시아가 왜 강등 처벌 당했는지 몰라?”

“몰라. 관심도 없었고.”

“이번에 알렌시아가 강등 처벌 당한 이유, 간단하게 말하자면 임무 중에 동료를 버려서잖아.”

“동료를 버려……?”

“응. 임무 중에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만 된다며 동료를 버렸나 봐. 그래서 알렌시아와 함께 갔던 몇몇 동료들이 위험에 빠졌었고, 그 순간에도 알렌시아는 그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임무 완수에만 몰두했다고 들었어.”

“하아……?”

아시테르와 함께 팀을 꾸려왔던 그들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시테르는 언제나 임무보다 팀원들의 안전을 중요시했다.

임무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팀원들의 목숨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테르는 임무에 실패해도 좋으니 늘 동료들의 안전부터 우선시했다.

거기다 아시테르는 뒤처지는 팀원이나 동료들이 있어도 언제나 그들을 이끌어주는 방향을 말해왔다.

뒤처지면 뒤에서 밀어주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면 된다는 것이 아시테르의 말이었다.

“혼자가면 빠르게 갈 순 있겠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어.”

에스파가 과거 아시테르에게 들었던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여인, 브루네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이네요.”

“그런 아시테르 오빠이기 때문에 알렌시아와는 결코 합이 맞지 않을 거예요.”

“그렇네… 그럴지도 모르겠어.”

“저는 아시테르 오빠가 혹시라도 그 여자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거라구요.”

라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데미리우스가 웃었다.

“그랬군요.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다들 잘 알고 있잖아요? 아시테르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강한 친구예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오히려 알렌시아 양이 아시테르에게 빠져들 것 같은데요?”

데미리우스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세 사람의 대화에 브루네만 오히려 호기심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 아시테르라는 사람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긴 하네요.”

“생각보다 별로예요 그 오빠.”

“진짜 특이한 녀석이지.”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있긴 하죠. 그래도 매일이 새로운 사람이라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우리 리더는.”

* * *

“시합 끝! 알렌시아, 아시테르 팀의 승리!”

지켜보던 심판이 시합 종료를 알렸다.

이번에도 아시테르는 딱히 한 게 없었다.

그는 뒤에서 잠자코 시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이 알렌시아가 상대를 모두 쓰러트렸다.

그동안에는 상대를 위협하는 선에서 끝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상대가 포기 않고 끝까지 알렌시아를 쓰러트리기 위해 달려든 바람에 알렌시아도 마법을 사용해 그들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

“어으…….”

시원하게 전격 마법을 맞은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곁에 있던 다른 사내도 입술을 떨며 알렌시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일 줄은…….”

사내는 이 말을 끝으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심판이 시합 종료를 알리며 치료 마도사와 함께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이 치료 받는 동안 알렌시아와 아시테르도 이만 자리를 떠났다.

지금까지 몇 번의 시합을 치르는 동안 아시테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딱히 할 게 없으니 늘 자리를 지키고만 있을 뿐이었다.

침묵이 이어지다 알렌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본선 진출이니까. 지루해도 조금만 참아요.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뇨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실 재밌거든요.”

“지켜보는 게 재밌다구요?”

“네. 다른 사람들의 마법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신기하네요. 그런 걸 좋아하는 거면 이참에 마법 연구가로 방향을 트는 것은 어때요? 거기라면 마법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괜찮잖아요.”

알렌시아의 말에 아시테르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그가 가장 눈 여겨 보는 것은 알렌시아의 마법이었다.

은근히 그녀의 성향과 마법이 비슷해 있었다.

전격 마법은 다른 마법처럼 섬세한 컨트롤을 요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주변마저 파괴하는 마법.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다면 더 큰 위력으로 부수며 나아가려는 마법이었다.

그 성향이 어딘가 알렌시아와 겹쳐 보였다.

게다가 전격 마법은 투박하면서도 위력만큼은 지금까지 봐온 다른 학생들의 마법보다 뛰어났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 아시테르를 보며 알렌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주제넘은 말이었다면 미안해요.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니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조금 놀랐던 것은 그래도 제게 아주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구나 해서요.”

“맞아요. 사실 그다지 관심은 없어요. 다만 조금 신경 쓰일 뿐이죠.”

“제가요? 왜요?”

“저 때문에 더더욱 안 좋은 소문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뭐… 그게 본래 그쪽이 살아온 방식이라면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요.”

“아… 소문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럴 것 같았아요. 소문을 신경 썼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을 테니까. 아무튼 제게 방해만 되지 말아요. 제가 강등 처벌을 받은 이유도 그것과 관련이 있으니까 저를 너무 믿지도 말고요.”

“네……?”

아시테르가 놀라 알렌시아쪽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알렌시아가 입 밖으로 꺼낼 줄은 몰랐다.

“나는 동료를 버렸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강등 처벌을 받은 거구요.”

“동료를… 버려요? 어째서요?”

“쓸모가 없었으니까.”

“네……?”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단해서, 그래서 버렸어요.”

알렌시아의 말에 아시테르가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알렌시아도 함께 멈췄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네. 그런 사람들까지 챙기다간 나도 뒤처질 뿐이에요. 나는 그런 동료는 필요 없어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인걸요.”

“상관없어요.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니까.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도 얼마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뒀음 해요.”

“마치, 버려지지 않으려면 당신에게 쓸모를 증명하라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좋을 대로 생각해요.”

알렌시아는 자신의 할 말을 마쳤다는 듯 훌쩍 떠나가버렸다.

아시테르는 그런 알렌시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마치 혼자가 되려고 하는 것 같잖아……?”

알렌시아에게선 여유가 느껴지질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홀로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말과 행동이 다르기까지도 했다.

정말로 아시테르를 버릴 생각이었다면 이미 그렇게 행동해왔어야 했다.

하지만 알렌시아는 은근히 아시테르를 신경 써주고 있었다.

아시테르에겐 그런 알렌시아의 행동이 조금씩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다음 시합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다.

알렌시아는 이번에도 홀로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전격마법이 시합장 안을 화려하게 메웠다.

이번에는 상대도 제법 반격다운 반격을 하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휘링―!

쩌저정!!!

전격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한 팔에 막혔다.

“우와…! 저건 또 무슨 마법이래……!?”

아시테르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체를 변형시킨 마도사를 보며 아시테르가 두 눈을 번쩍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법이었다.

알렌시아가 눈매를 좁혔다.

“의태 마법인가.”

마력으로 형체를 만들어 동물의 모습을 흉내 내는 마법.

그것이 바로 의태 마법이었다.

의태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들이 흔하진 않았기 때문에 아시테르가 처음으로 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알렌시아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전격 마법이 순식간에 여기저기 떨어졌다.

그러나 견고한 거북이 등껍찔은 전격에도 뚫리지 않았다.

그 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상대가 알렌시아를 향해 공격 마법을 날렸다.

총탄처럼 날아오는 마법을 알렌시아가 마법으로 막아냈다.

“오오……!!”

놀랍게도 알렌시아는 특별히 방어마법을 펼치는 것이 아닌 공격마법으로 날아오는 총탄들을 모두 맞춰버렸다.

이를 보자마자 아시테르가 감탄을 흘린 것이다.

다른 마도사들처럼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것이 아닌, 공격 마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상쇄시키다니.

알렌시아다운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격한 상대방도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일단은 몰아붙이자.”

의태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가 다른 팔을 들었다.

팔은 곧 사마귀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알렌시아를 위협했다.

그러자 알렌시아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처음으로 그녀의 전신에서 유형화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치지직!!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창이 형성되었다.

“뇌신의 창.”

알렌시아의 영창과 함께 허공에 만들어진 창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슈웅―

쾅!!!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시합장을 뒤덮었다.

상대는 황급히 거북이 등껍질을 만들어보았지만, 알렌시아의 마법을 온전히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쓰러진 두 사람을 보며 심판이 손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시합 종료였다.

“…….”

아시테르가 쓰러진 두 사람쪽을 바라보았다.

한쪽은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합이 끝나자 알렌시아가 마력을 거두었다.

아시테르가 그런 알렌시아에게 다가갔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었나요?”

“뭘요?”

“이런 결과를 내지 않더라도 당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저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었잖아요.”

“누구를 상대하든 최선을 다한다. 그게 내 방식이에요.”

“대회 때문에 시합장에서 만나긴 했지만, 저 사람들은 결국 적이 아닌 우리와 같은 아카데미 학생들이예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심한 방식으로…….”

“누구든 똑같아요. 저들도 결국 내 경쟁자일 뿐이에요.”

“경쟁자이기 이전에 동료예요.”

“당신이 그런 나약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앞서가지 못하면 뒤처질 뿐이고, 밟지 못하면 결국 밟히는 쪽은 내가 될 거예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서, 밀쳐내고 앞으로 나아가서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그것까지 당신에게 말할 이유는 없는 것 같네요.”

알렌시아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표정을 보며 아시테르도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자 알렌시아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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