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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89화 (89/424)

089화 아시테르의 생각

그날 이후 알렌시아는 아시테르와 필요 이상의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동안 다음 시합이 다가왔다.

“벌써 16강인가.”

여러 번의 시합을 치렀지만 아시테르는 여전히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저 뒤에 서 있는 것밖에는.

본선부터는 다른 학생들도 시합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이미 아시테르에 대한 소문이 상당히 퍼진 뒤라 그가 움직이지 않아도 딱히 그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이도 없었다.

다만 아시테르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상당히 곱지 않았다.

이제는 아시테르뿐만 아니라 몇몇 교관들과 심판들도 아시테르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기생충.

대회 기간 동안 아시테르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기생 마법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아시테르를 조롱하기도 했다.

아시테르가 시합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이제 16강이라 그런지 상당수의 학생들이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긴장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지금까지처럼 하면 되니까.”

알렌시아가 그런 아시테르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고개를 저었다.

“긴장은 안 해요.”

“그럼 다행이고요.”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나타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강등 처벌을 받은 알렌시아도 평판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아시테르에 대한 평판은 더더욱 최악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팀을 이루었으니, 사실상 관중들에게 이들은 시합장에서 이미 악역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번에는 상대까지도 좋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등장하는 두 사람을 보며 관중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2등급 내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듀오였다.

“알렌시아, 아시테르 팀을 상대로 시합을 펼칠 팀은 마르드와 랫코 팀입니다.”

마르드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갈색 더벅머리의 사내였고 랫코는 긴 머리를 묶은 귀엽게 생긴여자아이였다.

두 사람은 아시테르보다 알렌시아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마르드가 두 주먹을 부딪히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맘 편히 잘 지냈냐 알렌시아.”

“어머 여기서 널 만나다니 세상 운도 좋아.”

알렌시아를 향한 두 사람의 목소리는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반면 알렌시아는 그들을 보며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두 사람도 이 대회에 출전했을 줄은 몰랐네.”

“아아 네가 이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너는 절대로 위로 올라와선 안 돼. 그러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막아주마.”

“맞아. 너 같은 인간이 마법기사가 된다니. 끔찍하잖아?”

“글쎄. 그건 두 사람이 결정할 몫은 아니지.”

“잘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네. 조금은 위축되었을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나.”

“역겨워 정말.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임무에서 우리들을 버리고 저렇게 뻔뻔한 얼굴이라니.”

랫코가 알렌시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르드도 알렌시아를 보며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시테르는 저 두 사람이 알렌시아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알렌시아가 앞으로 걸어 나가며 기름에 불을 들이부었다.

“나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너희들은 분명 그 임무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고. 너희들을 도와주다간 임무에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았으니까. 서운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조장으로서 우리 팀의 임무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 이해한다. 너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성적뿐이었지.”

“쳇… 우리도 칸이 아니었다면 너랑 같이 팀을 이루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마르드와 랫코가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먼저 관람석에 와있던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 브루네는 알렌시아보다 아시테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 그 사이에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잘 먹고 잘 지냈나보죠 뭐. 근데 다리는 또 왜 다친 거야?”

라빈은 아시테르의 발목쪽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부상을 달고 사는 아시테르였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는 모양이었다.

데미리우스도 마침 아시테르의 걸음걸이를 살피고 있었다.

“제대로 다친 모양인데요. 아시테르가 저렇게 절뚝이며 걷는 것을 보니.”

“지나가던 개한테 물리기라도 한 모양이지 뭐.”

라빈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브루네는 아시테르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아시테르구나…….”

마치 신기한 사람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데미리우스의 시선이 이제는 알렌시아쪽으로 향했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제대로 살펴볼 수 있겠네요. 알렌시아의 실력을.”

“흥.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실력 한번 보자.”

“나름대로 2등급에서 주목 받던 인물이었으니까 그 실력만큼은 진짜겠지.”

그 순간 마르드와 랫코가 움직였다.

마드르가 기합성을 터트렸다.

랫코의 마력이 커다란 가위를 만들어내었다.

“가위?”

랫코의 마법에 아시테르가 또다시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법을 접할 때마다 아시테르의 두 눈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알렌시아가 한발 먼저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서 떨어진 뇌전이 마르드와 랫코를 노렸다.

마르드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뇌전을 흘려냈다.

은은한 광채가 뇌전을 흘려내는 것을 아시테르는 놓치지 않았다.

이어 랫코의 마법이 다가오는 뇌전을 잘라버렸다.

“와아!”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랫코가 들고 있던 가위를 짚으며 말했다.

“네 마법. 다 잘라 버려 줄게 내가.”

“랫코는 건드리지 못할 거다.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마르드가 랫코의 뒤에 서며 말했다.

팟!

랫코가 땅을 박찼다.

작은 체구의 그녀가 날랜 움직임으로 알렌시아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알렌시아가 팔을 뻗자 여기저기로 뇌전이 빗발쳤다.

놀랍게도 랫코는 뇌전사이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오?”

지금까지 방어 마법으로 뇌전을 막아내는 상대는 있었어도, 이렇게 뇌전을 피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때 무언가를 확인한 아시테르가 눈매를 좁혔다.

자세히 살펴보니 랫코가 뇌전을 모두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은은한 광채가 랫코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촤라락!

스캉!!

날카로운 가위의 날이 알렌시아를 노렸다.

알렌시아의 앞에 떨어진 전격 때문에 랫코는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순순히 당해주진 않겠다 이거지?”

랫코가 대지를 디디며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녀를 향해 날라온 전격을 가위로 잘라내었다.

“우오!!”

“와아아―!!”

랫코의 실력에 관중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가위날에 잘려 반으로 갈라진 전격은 주변에 뿌려졌다.

랫코는 멈추지 않고 알렌시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알렌시아는 계속해서 전격을 만들어내며 랫코의 공격에 맞섰다.

그러나 그녀가 잠시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마르드의 존재였다.

랫코에게 방어마법을 걸어주었던 마르드가 팔을 움직였다.

후웅―

은은한 광채를 지닌 마력탄이 알렌시아를 향해 날아갔다.

뒤늦게 공격을 알아차린 알렌시아가 황급히 마력을 쏟았다.

팡!!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알렌시아가 뒤로 물러섰다.

이에 아시테르의 두 눈에도 이채가 어렸다.

지금까지 시합을 한 이래 알렌시아가 제자리를 벗어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빈틈을 노린 랫코의 공격이 알렌시아의 허벅지를 베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옷을 적셨다.

이를 본 아시테르도 순간 움찔했다.

알렌시아가 조용히 자신의 상처를 살폈다.

“후우…….”

그녀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이어 그녀의 전신에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르드, 준비해.”

“아아 그래.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겠군.”

마르드와 랫코가 한층 긴장한 얼굴로 알렌시아를 주시했다.

차가워진 표정의 알렌시아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쩌저정!!

뇌전이 그녀의 주변으로 몰아쳤다.

그 광경에 랫코가 한층 자세를 낮추었다.

“간다 마르드.”

“그래.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자고.”

파밧!

랫코가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녀의 양옆으로 모습을 드러낸 가위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어 마르드가 은은한 광채의 마력을 주변에 뿌렸다.

알렌시아의 주변으로 뇌전의 창이 형성되었다.

피슈웅―!

콰릉!!

빠르게 날아간 창이 단번에 마르드를 노렸다.

“이런……!”

마르드가 황급히 마력을 돌려 자신을 방어했다.

과연 알렌시아의 공격 마법은 대단했다.

견고한 방패라 불리는 마르드조차 몸을 절로 웅크릴 정도로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 사이 옆으로 빠진 랫코가 알렌시아의 빈틈을 노렸다.

슈콱!

가위가 알렌시아의 몸을 베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느새 날아온 뇌전이 가위를 튕겨냈다.

이어 알렌시아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뇌조(雷鳥)가 랫코를 향해 날아갔다.

“헙!?”

놀란 랫코가 황급히 몸을 뒤로 빼냈다.

뇌조가 방향을 틀어 끝까지 랫코를 노렸다.

“랫코!!”

달려나온 마르드가 마력을 움직여 랫코를 보호해주었다.

콰앙―!!!

뇌조와 마르드의 방패가 부딪히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크흑……!”

충격의 반동으로 마르드가 뒤로 밀려났다.

그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아마 조금 전 충격으로 마력의 흐름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괜찮아 마르드!?”

놀란 랫코가 마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마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잖냐. 내 마법은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다. 가은테 신의 가호를 받은 내가 이 정도로 무너질까봐.”

“고마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렌시아를 쓰러트릴게. 조금만 더 부탁해.”

“얼마든지.”

랫코와 마르드가 다시 자세를 갖추었다.

제법 듀오를 이룬 팀다운 모습이었다.

아시테르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며 맞춰 나가는 것.

저게 바로 아시테르가 생각하는 팀의 모습이었다.

“근데 우리는…….”

알렌시아는 여전히 아시테르를 이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마 아시테르에 관한 소문 때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알렌시아는 아시테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어느 것 하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못내 씁쓸했지만 아시테르도 이대로 스스로가 먼저 움직여 밝힐 생각은 없었다.

“원래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야 한다고 했잖아.”

알렌시아가 대놓고 아시테르를 무시하며 짐짝 취급하니 어느 누구 하나 아시테르를 노리는 이가 없었다.

상대로 만나는 팀마다 모두 어떻게 해서든 알렌시아만을 쓰러트리려 했다.

그녀만 쓰러트리면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리에 박힌 것이다.

아시테르는 모두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을 애써 바꿔주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지금도 상황을 지켜보는 쪽을 고수했다.

콰라랑!!

랫코와 마르드가 연이어 마법을 펼치며 알렌시아를 압박하려 했다.

하지만 알렌시아의 마법은 그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뇌전위로 우레가 떨어졌다.

뇌전의 창이 다시 대지에 박히며 결국 두 사람 다 쓰러지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랫코와 마르드를 보며 관중들이 안타까움의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 났다.

랫코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고 마르드의 견고했던 방패는 이미 깨져버린 지 오래였다.

“대단하구나… 저게 바로 알렌시아의 마법…….”

“결국 혼자 저 두 사람을 상대해 내다니…….”

“마르드와 랫코 듀오라면 알렌시아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지막지하구나 알렌시아는.”

지켜보던 이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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