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화 5대 가문의 개입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시합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 그들과 시합을 벌일 상대도 시합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8강부터는 아카데미 안에 있는 커다란 원형경기장 안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관중도 아카데미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함께 참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많은 관중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 수가 족히 만 명은 넘어 보였다.
아시테르는 관중들보다 마주 보고 있는 상대를 주목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다.
“베네피트 형?”
“오랜만이다 아시테르.”
“우와… 여기서 형을 보게 되다니.”
“그동안 잘 지냈냐? 소식은 간간히 들었다. 안 들으려고 해도 들려오더라.”
“형도 잘 지내셨나 보네요.”
“그럼. 이렇게 벌써 2등급까지 왔잖냐. 그나저나 이번에는 미안하게 되었다.”
“뭐가요?”
“이 시합. 우리가 이길 거라.”
베네피트가 옆에 있는 팀원을 가리켰다.
두 눈을 가릴 정도로 머리칼을 기른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알렌시아가 아닌 아시테르에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렌시아가 슬쩍 아시테르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시테르. 저 사람도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저렇게 부담스럽게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글쎄요…….”
아시테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때 베네피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근데 대체 누구한테 밉보인 거야?”
“제가요?”
“그래. 너 때문에 지금 이…….”
“쓸데없는 말은 그만.”
베네피트의 말을 자른 것은 옆에 있던 사내였다.
그의 시선이 심판에게로 향했다.
무슨 뜻인지 눈치 챈 심판이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경쾌한 소리가 울리자 관중석에 앉은 라빈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드디어 시작이다.”
“이번에는 아시테르가 뭔가 좀 보여주려나?”
“그런데 라빈. 베네피트 씨랑은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데미리우스의 물음에 라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입학시험을 같이 치른 적이 있어요.”
“강한가요?”
“나쁘지 않았어요. 징징거리긴 해도 마법 실력은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해요.”
“흐음… 라빈이 그렇게 말한다면 크게 신경 쓰일 만한 존재는 아니고… 문제는 저쪽인가요?”
“네. 저기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라빈이 베네피트의 옆에 자리한 사람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에스파가 한층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됐든 아시테르가 이겼으면 좋겠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데미리우스가 에스파의 얘기에 동의하며 말했다.
한편 그들보다도 좀 더 뒤편에 자리한 남녀가 시합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저기 있는 저 녀석이 테오도라의 동생 아니야?”
“맞아. 그 사이에 좀 더 성숙해진 것 같은 모습이네.”
“용케도 8강까지 올라왔네요? 그때 봤던 실력으로는 전혀 무리 같아 보였는데.”
“옆에 있는 저 여성분이 강해. 너도 들어봤지? 알렌시아라고.”
여인, 세밀리아의 말에 자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들었어요. 전격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라고. 근데 칸과 함께 1등급으로 올라왔다고 하지 않았나? 1등급인데 왜 저 대회에 출전한 거지? 이겨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잖아?”
“얼마 전에 강등 처벌당했다.”
“에…!? 그거 생각보다 받기 어려운 처벌인데… 뭐 동료라도 공격한 거예요?”
“동료를 버렸다고 하더군.”
“너무해…….”
“너무하기는. 임무에 방해되거나 발목 잡아서 팀을 위험하게 만든다면 팀원을 두고 가는 것도 과감한 선택이지.”
마르쿠드의 단호한 말에 자토가 혀를 빼꼼 내밀었다.
그가 슬쩍 세밀리아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세밀리아 누나는 다른 생각이죠?”
“글쎄. 상황에 따라서는 마르쿠드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테오도라 이 녀석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은 못 올 거야.”
세밀리아의 답에 마르쿠드가 인상을 썼다.
그의 시선이 세밀리아에게로 향했다.
“그 녀석이 여길 제일 오고 싶어 했잖아?”
“그랬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오지 못할 만큼 급한 일인가 봐.”
“쯧… 테오도라 녀석… 많이 아쉬워했겠네.”
“물론. 그래도 다음 시합을 보면 되니까 상관없다고 얘기하던걸.”
“그래? 근데 테오도라 녀석. 자기 동생이 마치 당연히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잖아?”
“문제없을 거라고 하던데?”
“그 자식, 동생에 대한 믿음이 너무 과한 것 아냐?”
“테오도라가 자기 동생을 이길만한 사람은 이 대회 출전한 사람 중 한 명도 없을 거라고 했어.”
세밀리아가 아시테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르쿠드가 못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테오도라만 알고 있는 뭔가가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아시테르가 반년 동안 모습을 감췄었다고 하던데, 테오도라가 특훈이라도 시켰던 것 아닐까?”
그때 자토가 익살스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시테르에 대해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네요? 혹시 미래 남편의 동생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늘 여기로 온 건…….”
자토가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의 몸 여기저기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을 아껴 자토. 내가 늘 말했지? 말 많은 남자는 매력이 없는 법이라고.”
“어… 언제 그랬어요 누나…? 그리고 말 많은 건 테오도라 형도 그런데…….”
자토의 몸에 붙어 있던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시합은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콰아앙!!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알렌시아가 시선을 돌렸다.
베네피트의 화염 마법이 알렌시아를 덮쳤다.
알렌시아의 전격이 날아가 화염을 막아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또다시 공격이 날아왔다.
작은 비늘처럼 생긴 마력이 알렌시아의 하단부를 노렸다.
“쳇.”
알렌시아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발밑에서 시작된 전격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퍼버벙!
마력으로 형성된 비늘이 모두 부서졌다.
그녀의 방어마법을 확인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로군.”
사내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는 우두커니 서서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로 할 줄 아는 마법이 없는 건가?”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베네피트가 말을 받았다.
“내가 말했잖아요. 저 녀석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몸을 직접 움직여서 검 몇 번 휘두르는 게 다인데, 지금은 다리 부상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니까 별 볼 일 없을 거라고. 우리는 저기 있는 알렌시아만 이기면 돼요.”
“이해할 수 없군. 고작 저런 녀석 때문에…….”
사내, 체커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본래 그의 실력은 1등급 수준.
그럼에도 체커드가 2등급에 머무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가 청부업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체커드는 돈을 받고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가려는 이들을 떨어트리거나, 올려주는 일들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청난 의뢰가 들어왔었다.
시합이 시작되기 이틀 전 누군가가 자신을 은밀하게 찾아왔다.
의뢰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밝히지도 않고 다짜고짜 돈부터 내밀었다.
돈의 액수를 확인한 체커드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돈은 선수금이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이 돈의 두 배를 더 주도록 하지.”
엄청난 액수를 내민 의뢰였다.
그러니 그 내용도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헌데 의뢰인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미 안데르아스 가문에서 의뢰를 받은 것은 알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베네피트를 우승시켜달라고 했을 테지?”
“호오… 제가 받은 의뢰까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우리는 그 의뢰를 방해할 생각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의뢰와 함께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알겠으니까 말씀해보세요. 대체 무슨 의뢰를 하려고 이렇게나 많은 돈을 내미는 겁니까?”
“의뢰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라빈과 에스파 팀의 우승을 막을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시테르를 죽일 것.”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를 죽이라고요?”
“아시테르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저와 시합에서 만날 수가…….”
“이번에 대진표가 다시 바뀔 거다. 그러면 너와 아시테르는 만날 수 있을 거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알렌시아라면 모를까 기생충 아시테르는 왜…….”
“그런 것까지 내가 너에게 설명해야 하나?”
의뢰인의 반응에 체커드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학생을 죽이는 의뢰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체커드도 이 의뢰를 거절하려 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의뢰를 수행해내고 싶진 않았다.
그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의뢰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꼭 죽일 필요는 없다. 대신에 다시는 마법기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아줬으면 좋겠군. 불구로 만들어버리면 더더욱 좋고.”
그 말에 체커드가 돈을 챙겼다.
죽이는 것이라면 꺼려지지만 불구로 만드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의뢰인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알렌시아는 꽤나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거기다 라빈의 우승을 방해하려면 제가 결승까지는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인데…….”
“알겠다. 돈은 더 얹어주겠다.”
“감사합니다.”
그때의 일을 떠올렸던 체커드가 이내 미소를 보였다.
자신은 어쨌거나 의뢰를 완수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체커드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멍하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에게 원한은 없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해서 말이다.”
체커드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주변으로 날카로운 비늘들이 생겨났다.
비늘들은 곧장 아시테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베네피트의 화염 마법을 상대하고 있던 알렌시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마주한 모든 상대들은 아시테르보다 알렌시아를 노렸다.
사실상 알렌시아만 제압하면 시합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뒤편에 있는 아시테르를 노리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치잇……!”
알렌시아가 비늘의 방향을 살폈다.
자신을 노리는 공격이 아닌 것이 확실했다.
마력으로 만든 비늘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아시테르는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알렌시아가 먼저 움직여 전격 마법을 사용했다.
콰릉!
전격 마법이 아시테르를 향해 날아가던 비늘을 막아내었다.
“호오…….”
알렌시아가 무리한 움직임을 보이자 체커드의 두 눈에도 이채가 어렸다.
솔직히 말해 알렌시아는 체커드에게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녀는 1등급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였다.
그나마 그녀와 한번 겨뤄볼 수 있겠다 생각한 것도 베네피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알렌시아는 아시테르라는 짐짝을 메고 있는 상태.
충분히 해볼 만한 시합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알렌시아와 마주하니 그 생각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저렇게 알렌시아가 무리해서 아시테르를 지켜주려 한다면 상황은 바뀐다.
“이길 구석이 보이네.”
체커드의 비늘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비늘이 향하는 곳은 아시테르가 있는 쪽이었다.
베네피트가 그런 체커드를 보며 말했다.
“왜 자꾸 쓸데 없는 아시테르를 노리는 겁니까?”
“잘 봐. 아닌 것 같아도 알렌시아는 은근하게 아시테르를 지켜주려 하고 있어.”
체커드가 알렌시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알렌시아는 마법으로 비늘을 막아주었다.
이에 체커드의 두 눈이 빛났다.
“저기 아시테르가 바로 알렌시아의 약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