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화 아시테르의 전략
“흐음…….”
아시테르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까부터 체커드의 공격이 알렌시아가 아닌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혹시 몰라 아시테르가 알렌시아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보았다.
그러자 체커드의 공격이 또다시 이쪽으로 날아왔다.
“역시… 나부터 노리고 있구나.”
알렌시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베네피트는 그런 알렌시아의 빈틈을 계속해서 노렸다.
그들의 마법을 막으면서도 알렌시아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아시테르의 위치를 확인했다.
“나한테서 떨어지지 말아요.”
“알겠어요.”
아시테르는 대답과 함께 미소를 보였다.
언제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버릴 것처럼 얘기하더니 지금은 대놓고 자신을 지켜주려 하고 있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니까.”
아시테르가 웃으며 알렌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묻어만 갈 순 없었다.
8강 정도면 슬슬 움직일 때도 되었질 않나.
아시테르의 시선이 베네피트와 체커드를 살폈다.
베네피트는 아시테르보단 알렌시아 쪽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반면 체커드는 아시테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알렌시아.”
“무슨 일이에요? 무서워도 참아요. 당신한테 공격이 닿지 않도록 해줄 테니까.”
“아니요. 그것 말고요. 지금 상대는 일부러 저만 노리고 있어요.”
“그건 저도 봐서 알아요.”
“아마 제가 당신의 약점일거라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아시테르의 말에 알렌시아가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당신이 제 약점이라고요? 왜요?”
“몰라서 묻는 거예요? 저를 지켜주기 위해 알렌시아 당신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못하고 있잖아요.”
“아…….”
그때서야 알렌시아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동안은 전투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지금껏 아시테르를 지키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뒤늦게 그것을 자각한 알렌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말했죠. 방해되면 언제든 버릴 거라고.”
“네네 그랬죠.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시합부터 이겨야죠.”
“어떻게요? 내 공격 마법은 저들에게 닿지도 않고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저기 둘 중에 한 명만 제 가까이로 와도 방법은 있어요.”
아시테르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알렌시아는 아시테르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용케 상대의 공격 마법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시테르가 그런 알렌시아에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전달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것 같자, 베네피트가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이를 본 알렌시아가 몸을 움직여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시아가 몸을 움직이는 사이 체커드가 비늘 마법으로 아시테르를 공격했다.
“으아아―!”
아시테르가 일부러 바닥을 뒹굴며 체커드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체커드는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시테르에게 공격을 이어갔다.
아시테르는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체커드의 공격을 어떻게 해서든 피해내었다.
그 꼴사나운 모습에 체커드가 확신에 찬 웃음을 보였다.
아시테르는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결국 알렌시아가 다시 다가와 아시테르를 보호해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아시테르 때문에 알렌시아가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질 못하니 그들도 답답했던 것이다.
“저게 뭐야?”
“완전히 민폐네…….”
“저럴 거면 왜 시합에 나선다고 한 거야?”
“심지어 다리도 다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 봐.”
관중들이 야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 중에 섞여 있던 여인 한 명이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아가씨, 재미가 없으신 겁니까?”
“저게 뭐에요? 저 사람 너무 약하잖아요.”
“후후 그렇군요.”
“이번 대회를 보려고 일부러 좋은 자리까지 잡았는데 괜히 기분만 나빠지고 있어요.”
“조금 더 지켜보실까요. 상황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요.”
“알렌시아 씨는 왜 하필 저런 사람이랑 팀을 이룬 걸까요. 보통 수준의 실력만 되었어도 손쉽게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여인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시합장에 머물러 있었다.
한순간도 놓치기 싫다는 듯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중년인도 피식 웃고 말았다.
파앙!!
그때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알렌시아의 몸이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베네피트의 화염 공격과 체커드의 끈질긴 공격 때문에 그녀도 지치고 만 것이다.
거기다 데미지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후우…….”
알렌시아가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베네피트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체커드가 문제였다.
“저 사람은 2등급의 실력이 아닌데.”
가끔 모종의 이유로 실력이 높은데도 승급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녀는 체커드가 그런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마법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거기다 공격과 수비의 전환도 빨랐다.
쩌정!!
알렌시아의 공격이 비늘로 이루어진 방패에 막혀버렸다.
상당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전격 마법이건만 방패에 이렇다 할 흠집도 내질 못했다.
체커드가 손을 뻗었다.
방패를 이루고 있던 비늘들이 흩어지며 탄환처럼 날아들었다.
이에 알렌시아가 마력을 다시 끌어올렸다.
전격은 아시테르를 보호하기 위해 날아갔다.
그 순간 체커드의 입꼬리에 호선이 그려졌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쪽이 아니야.”
체커드가 날린 비늘은 방향을 선회하며 알렌시아 쪽으로 날아갔다.
뒤늦게 그의 노림수를 파악한 알렌시아가 전격을 불러일으켰다.
“베네피트!!”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체커드가 크게 소리쳤다.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던 베네피트가 알렌시아를 향해 있는 힘껏 화염구를 발사했다.
파앙―!
화염구가 대지에 박히고 날카로운 비늘이 날아 들었다.
그 사이로 전격이 내려쳤다.
놀랍게도 알렌시아는 두 발로 서서 그들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었다.
“과연…. 쉽게 당해주지는 않겠다 이건가.”
체커드도 이번엔 적지 않게 놀랐는지 동그래진 눈을 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마력을 운용하자 비늘들이 움직였다.
화염 속을 빠져나온 알렌시아가 두 팔을 뻗었다.
허공에 형성된 뇌조가 체커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체커드는 조금 전과 같은 비늘방패를 만들어내며 알렌시아의 공격에 방어했다.
알렌시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뇌신의 창까지 만들어내었다.
그녀가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자 관중들이 뜨거운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알렌시아의 마법 실력은 대단했다.
뇌조가 비늘방패를 덮치고 뇌신의 창이 그 사이를 갈랐다.
쩌정!! 콰릉!
커다란 폭음이 들렸다.
그 속에 있던 체커드가 피를 흘리며 알렌시아를 노려보았다.
“이야… 1등급에서도 이렇게 마법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드문데… 이거 정말 장난 아니구만…….”
어떻게든 막아본다고 노력했지만 온전히 알렌시아의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그만큼 파괴력이 엄청난 마법이었다.
뚝. 뚝.
동시에 알렌시아의 몸에서도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신…….”
“뭐야. 이건 예상하지 못 했나봐?”
알렌시아의 상태를 확인한 체커드가 그제서야 웃었다.
그는 비늘방패로 알렌시아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남은 비늘들로 알렌시아를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
알렌시아는 공격 마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전투스타일이었다.
그 말은 즉, 그녀가 공격할 때만큼은 방비가 허술하다는 소리였다.
체커드의 예상은 정확했다.
공격에만 온 신경을 쏟는 통에 알렌시아는 미처 체커드의 공격을 방어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죠?”
“의미가 왜 없어? 솔직히 말해 지금 여기서 너를 완전히 제압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둘 다 쓰러질 각오로 너를 붙잡고 늘어질 자신은 있다. 자아… 그러면 생각해보자 너와 내가 둘 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전력 차이는 어떻게 될까?”
“어리석은… 당신과 양패구상할 정도로 제가 약해보였나요?”
알렌시아가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체커드에게 공격을 당했음에도 알렌시아는 무서울 정도의 마력량을 내뿜고 있었다.
그녀가 전격 마법을 사용하려 하자 체커드가 혀를 찼다.
“그래도 조금은 타격을 입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는 어림없어요.”
“그래. 그럴 줄 알고 차선책도 준비해두었지.”
체커드가 뒤쪽을 보라는 듯 가리켰다.
그때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알렌시아가 뒤늦게 두 눈을 크게 떴다.
당연히 체커드와 함께 공격을 해왔어야 할 베네피트가 너무도 잠잠했다.
그녀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체크메이트다.”
베네피트는 어느새 아시테르를 붙잡고 있었다.
그에게 붙잡힌 아시테르는 어색한 미소로 알렌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요 당신…….”
“아하하… 결국 붙잡혀 버렸네요.”
그런데 베네피트에게 붙잡힌 것치고 아시테르의 표정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긴장하는 기색 따윈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이에 베네피트가 인상을 구겼다.
“야. 너 너무 태평한 것 아니냐? 설마 내가 널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입학시험을 같이 치른 건 치른 거고 지금은 시합 중이야. 얼마든지 너한테 공격 마법을 가할 수 있다고.”
베네피트의 말에 아시테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말 진심이에요?”
“당연하지! 과거의 동료는 동료! 시합은 시합!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행이네요. 그 말 잊지 말아요 형.”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의 시선이 알렌시아에게로 향했다.
“내가 말했죠? 굳이 우리가 다가가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요. 이렇게.”
아시테르가 슬쩍 베네피트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체커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런…! 녀석에게서 떨어져!!”
그러나 그가 알아차린 것은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아시테르가 다른 한쪽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쏘아낸 마법탄이 베네피트의 발등을 때렸다.
“으악!!”
고통에 비명을 지른 베네피트가 아시테르를 노려보았다.
분노한 그의 손아귀에 화염이 만들어졌다.
“이 자식이!!”
베네피트의 화염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의 손이 빠르게 베네피트의 손을 쳐냈다.
그 모습에 알렌시아는 물론 체커드도 놀란 표정을 보였다.
이어 아시테르가 가볍게 베네피트의 몸을 넘겨버렸다.
털썩!
한 바퀴 돌아 바닥에 떨어진 베네피트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아시테르가 그의 팔다리를 완벽히 제압해버렸다.
베네피트의 위로 올라탄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방심했죠?”
그가 베네피트의 얼굴 쪽으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베네피트가 황급히 항복을 외쳤다.
“하… 항복…! 내가 졌어!!”
두려움에 물든 베네피트가 몸서리쳤다.
그는 아시테르가 입학시험 때 마수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순식간에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항복을 외치고 말았다.
그 모습에 체커드가 이를 질끈 깨물고 말았다.
“저 머저리가…….”
아시테르가 완벽히 베네피트를 제압한 것을 본 알렌시아가 피식 웃었다.
아시테르도 그런 알렌시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였다.
알렌시아가 뒤돌아 체커드와 마주섰다.
“자, 이제 2차전을 시작해 볼까요?”
“제기랄……!”
체커드가 눈을 붉히며 알렌시아에게 온갖 마법을 쏟아 부었다.
알렌시아도 전격 마법을 사용하며 전투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다 마침내 체커드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알렌시아와 아시테르 팀의 승리!”
심판이 크게 선언했다.
체커드를 쓰러트린 알렌시아가 뒤돌아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베네피트를 순식간에 제압했던 아시테르도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땠어요? 제 전략.”
“훌륭하네요.”
아시테르가 손을 내밀자 알렌시아가 새하얀 손으로 그와 손뼉을 마주쳐주었다.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