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트라우마 극복기 (3)
콰광!! 파바박!!
커다란 뼈방패에 수은 방울들이 박혔다.
라빈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쇠사슬이 뱀처럼 휘며 라빈을 노렸다.
그녀가 있는 힘껏 뼈검을 휘두르며 쇠사슬들을 쳐냈다.
그리곤 커다란 뼈를 땅에 꽂아넣었다.
“죽음의 요람.”
라빈이 영창을 외우자 대지를 뚫고 뼈들이 가시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에이브릴은 그 자리에 서서 쇠사슬로 뼈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어지러이 움직이는 쇠사슬들이 강한 힘으로 가시들을 부쉈다.
반면 체레드는 정신없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
대지에서 마구잡이로 솟아나는 뼈들을 보며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마법이 이따위야……!”
체레드가 놀란 눈으로 라빈을 쳐다보았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마법이었다.
커다란 뼈대에서 뼛조각이 날아드는가 하면 대지를 뚫고 뼈들이 솟아나기도 한다.
거기다 라빈이 휘두르는 뼈는 어찌나 단단한지 자신의 수은으로도, 에이브릴의 쇠사슬로도 부러뜨릴 수 없었다.
촤락!
“크윽……!”
뼈가시에 허벅지를 찢긴 체레드가 이를 악물었다.
분노한 그의 시선이 라빈을 쫓았다.
“왜? 아파?”
잠깐 숨을 돌린 라빈이 체레드를 쳐다보았다.
뼈로된 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사 그 자체였다.
그때 에이브릴의 공격이 다시금 이어졌다.
네 마리의 뱀이 공격하는 것처럼 사슬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라빈은 뼈로 사슬들을 쳐내며 에이브릴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슈슉! 슈웅!
수은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라빈을 노렸다.
쇠사슬을 피하며 수은 화살까지 온전히 피하는 것은 라빈에게도 무리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싸움이 길어지면서 그녀의 체력도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파악!
쇠사슬이 결국 라빈의 허리를 때렸다.
그녀는 쇠사슬에 공격당하면서도 자신의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라빈의 뼈가 체레드를 공격했다.
또다시 살갗을 베는 그녀의 공격에 체레드가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트렸다.
라빈이 그런 체레드를 보며 웃었다.
“왜. 고작 그 정도 긁힌 것 가지고 아프기라도 해?”
“너 이…….”
“너한테 받은 에스파 오빠의 상처는 얼마나 컸을 것 같냐?”
후웅― 처러러렁!
라빈을 향해 쇠사슬이 날아왔다.
그녀는 쇠사슬을 뼈에 감아버렸다.
“그러고 보니 너도 있었지?”
라빈이 쇠사실을 감은 뼈를 있는 힘껏 당겨버렸다.
그러자 균형을 잃은 에이브릴의 몸이 라빈쪽으로 당겨졌다.
후웅!
짝!
라빈의 손바닥이 에이브릴의 뺨을 때렸다.
놀란 에이브릴이 동그래진 두 눈동자로 라빈을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 처음 맞아봐? 어렸을 때 자주 맞아봤잖아? 형편없는 실력이라고.”
“이게……!”
인상을 구긴 에이브릴이 다시 사슬을 움직였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얇은 사슬이었다.
더 얇아진 덕분인지 사슬의 속도는 조금 전보다 훨씬 빨랐다.
라빈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날아드는 사슬들을 피했다.
“어디 너도 한 번 당해 봐라.”
빈틈을 노린 체레드가 수은으로 만든 화살을 날렸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사슬들 때문에 라빈은 다가오는 수은 화살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를 본 관중들이 탄식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수은으로 만든 화살들을 모두 쳐내버리고 말았다.
“아앙……!?”
당연히 성공할거라 믿었던 공격이 막혀버리자 체레드가 애꿎은 땅을 차버렸다.
그의 시선이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향했다.
“에스파 이 얼간이 새끼가……!”
그곳에는 마력으로 만든 활을 든 에스파가 서 있었다.
사슬들 틈에서 라빈이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미안하다. 너무나도 한심했지?”
“그게 원래 오빠 이미지야.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야 그게 방금 너를 구해준 사람한테 할 소리야?”
“뭐래? 오빠가 나서지 않았어도 나 혼자 막아낼 수 있었어.”
“어 그래그래. 너 잘났다.”
처억.
사슬 속에서 빠져나온 라빈이 에스파의 곁에 섰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에스파를 올려다보았다.
“보아하니… 이제 좀 극복했나봐?”
“무슨 소리야… 아직도 긴장돼 죽겠다. 바위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하아… 화살 잘못 쏴서 나 맞추는 것 아냐? 평소에 나한테 화살 엄청 쏘고 싶어했잖아… 이번 기회를 노리는 건 아니지……?”
“솔직히, 솔깃한 말이긴 한데… 이번에는 너보다 훨씬 더 급한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야.”
에스파의 시선이 체레드와 에이브릴에게로 향했다.
그가 이렇게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은 시합장에 들어서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럼 평소처럼 뒤를 맡겨도 되지?”
“물론.”
“이제야 좀 에스파 오빠답네. 아주 좋아 그 표정.”
라빈이 기지개를 쭉 켜며 몸을 풀었다.
그녀의 시선이 에이브릴과 체레드에게로 향했다.
“봤지? 이제 우리 팀원도 움직인다? 1대2가 아니라 2대2다 이거야. 그러니까 긴장해라?”
“그래봤자 에스파가 낀 건데 폼 잡기는…….”
“그래봤자인지는 아닌지는 직접 겪어보시면 아시겠지.”
라빈이 힘껏 대지를 박찼다.
그러자 라빈을 노리고 수은이 날아들었다.
슈팡!
빠르게 날아온 화살이 수은을 맞추며 방향을 틀어버렸다.
“뭐……!?”
놀란 체레드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이브릴의 쇠사슬이 라빈을 막으려 들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는 쇠사슬들을 보고도 라빈은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정신이 나간거야?”
라빈은 조금도 방어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그때 라빈의 뒤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왔다.
탕! 타당!!
여러 개의 마력 화살이 날아와 정확히 쇠사슬의 끝부분을 맞췄다.
덕분에 라빈을 향해 날아가던 쇠사슬들이 방향을 잃고 말았다.
“뭐……?”
전혀 생각지 못한 전개에 에이브릴마저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말았다.
그 사이 에이브릴의 가까이로 파고든 라빈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한 방 더 들어간다?”
그녀가 있는 힘껏 에이브릴의 복부를 때렸다.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에이브릴의 몸이 반으로 꺾였다.
체레드가 그런 에이브릴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였다.
슈슝! 파바방!!
그러나 곧바로 날아온 화살에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이익! 얼간이 새끼가……!”
체레드가 몸을 돌려 에스파쪽을 바라보았다.
격한 숨을 몰아쉬던 에스파가 다시 활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었다.
“감히 너 따위가 날 또 방해하려 들어!?”
체레드가 허공에 수은을 형성했다.
수은은 곧 화살의 형태로 변하며 에스파에게로 날아갔다.
에스파는 그 자리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트리플 샷.”
그가 직접 명명한 마법.
활시위에 세 개의 마력 화살이 걸렸다.
에스파가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세 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가 날아오는 수은 화살들을 맞췄다.
에스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수은 화살은 열 개.
그 수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네가 한 번에 열 개의 화살을 만든다면… 나는 빠르게 열한 개의 화살을 쏜다……!”
에스파가 곧 신들린 연사속도를 보여줬다.
그의 화살은 날아가는 족족 수은 화살을 맞혔다.
이 놀라운 광경에 관중들이 뜨거운 환호를 토해냈다.
기본이라고 하면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매직 에로우.
마력을 다룰 줄 아는 마도사라면 쉽게 할 수 있는 마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에스파는 그런 흔한 마법으로 놀라운 광경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때문에 관중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체레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줄곧 무시해왔던 에스파에게 자신의 공격이 모조리 막히고 있었다.
챙!!
빠르게 날아오던 화살이 쇠사슬에 막혀버렸다.
“아…….”
“뭘 멍 때리고 있는 거야? 정신 안차려?”
에이브릴이 체레드를 보며 한 소리 날렸다.
체레드는 그때서야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가 다시 에스파를 찾았을 땐, 이미 그 자리에서 에스파가 사라진 뒤였다.
“어디 갔어 이 자식?”
피슝!
날카로운 소리가 우측에서 들렸다.
이에 체레드가 본능적으로 수은 방패를 오른쪽에 형성했다.
팍!
그런데 등 뒤에서 뜨거운 통증이 일었다.
“뭐야……?”
이번엔 정면에서 화살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때문에 체레드는 수은 방패를 앞쪽으로 옮겼다.
팍!
그런데 통증은 왼쪽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니 마력화살이 그의 왼쪽 허벅지를 격했다.
“아…….”
당황한 체레드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에스파를 찾았다.
“찾았……!”
뒤편에 자리한 에스파를 본 체레드가 이를 악물었다.
이미 활을 쏠 준비를 마친 에스파가 그대로 활시위를 당겼다.
빛무리를 머금은 화살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체레드에게로 날아갔다.
“어림없다!”
체레드가 수은으로 견고한 방패를 만들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에스파가 쏜 화살이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화살은 초승달 모양으로 곡선을 그리며 체레드의 방패를 지나쳤다.
“뭐……?”
도중에 방향을 바꾸는 화살이라니……!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에스파의 화살은 그대로 체레드의 옆구리에 박혔다.
“크아아!!”
마법 갑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전해지는 통증은 상당하다.
분노한 체레드가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줄곧 무시해왔던 에스파에게 몰리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이것은 체레드의 머릿속에서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노한 그가 수은을 움직였다.
“야. 뭐 잊은 것 없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체레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커다란 뼈가 체레드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렸다.
뒤늦게 라빈을 붙잡기 위해 에이브릴의 사슬이 움직였다.
하지만 쇠사슬은 곧바로 날아온 마력 화살들에 의해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꺼억……!”
강한 충격에 숨인 텁 막혀버린 체레드가 몸을 고꾸라트렸다.
하지만 라빈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뼈를 휘두르며 체레드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으아!! 그, 그만……!”
“그만은 무슨.”
라빈의 뼈가 체레드의 가슴팍을 때렸다.
체레드가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었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그렇게 아파하면 어떻게 해?”
라빈이 그런 체레드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뼈를 어깨에 걸친 그녀가 체레드의 다리를 지그시 밟았다.
“그만, 그만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려는 거야……?”
“그냥. 재밌잖아?”
라빈이 미소를 지으며 체레드의 몸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어차피 체레드는 마법 갑옷을 입고 있으니 흠씬 두들겨 패줘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실력 좋은 치료 마도사들까지도 가까이에 대기 중이었으니 더욱 거리낄 것이 없었다.
라빈은 에이브릴의 공격은 신경 쓰지도 않고 체레드를 패는 것에만 집중했다.
에이브릴이 그런 라빈을 막아내려 했지만 여지없이 날아오는 에스파의 화살에 번번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거슬리게……!”
마침내 에이브릴의 목표가 라빈에게서 에스파로 바뀌었다.
그녀의 쇠사슬이 에스파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챙! 채쟁!!
에스파는 아시테르에게 배운 발놀림으로 쇠사슬들을 피했다.
이어 그는 활을 들어 마력 화살을 쐈다.
화살은 정확히 에이브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카라랑!!
쇠사슬이 뱀처럼 휘며 화살들을 막아내었다.
에이브릴이 쇠사슬을 채찍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박!
미처 피하지 못한 쇠사슬이 에스파의 몸을 때렸다.
상당히 묵직한 공격이었다.
그래도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스파는 조금 전의 두려움은 완전히 잊은 채 눈앞의 에이브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활을 들어 에이브릴을 향해 겨누었다.
“겨우 그딴 마법으로 내게 상처라도 입힐 수 있을 것 같아……!?”
“겨우 이딴 마법이라도. 내게는 소중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니까.”
호흡을 가다듬은 에스파가 온 마력을 하나의 화살에 집중시켰다.
그가 활시위를 있는 힘껏 비틀었다.
“래피드 샷.(Rapid shot)”
에스파의 손을 떠나간 화살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