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101화 (101/424)

101화 에스파의 성장

에이브릴이 사슬을 움직였다.

두 개의 화살이 에스파의 화살을 쳐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화살의 속도가 너무도 빨라 사슬이 미처 따라잡지 못했다.

“이익!”

에이브릴이 남은 두 개의 사슬을 엑스자로 교차시키며 자신의 앞을 막았다.

파앙―!!

간발의 차로 에스파의 화살이 쇠사슬에 가로막혔다.

지금까지는 툭툭 건드리는 정도의 위력이었다면 이번엔 달랐다.

에이브릴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화살의 위력은 묵직했다.

“이게… 고작 매직 에로우로 낼 수 있는 위력이라고……?”

에이브릴이 놀랄 틈도 없이 에스파의 화살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위력은 적지만 화살의 개수가 훨씬 많았다.

“말도 안 돼…….”

수십 개의 화살이 쉼 없이 날아와 에이브릴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녀의 모든 사슬을 화살을 막는데 사용해야 했다.

에이브릴이 이를 악물었다.

“이럴 순 없어……!”

그동안 그렇게 무시해왔던 에스파였다.

그런 에스파에게 자신이 꼼짝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에이브릴은 사슬로 방어를 한층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에스파의 공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녀가 알기로 에스파의 마력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동안 많은 화살들을 쐈으니, 분명 마력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에이브릴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에스파를 처음만났던 그때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

두 번째, 에스파는 다양한 마법을 배우는 것보다 한 가지 마법의 활용도를 높이는 쪽을 연구해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합은 현재 1대1이 아닌 2대2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체레드를 완전히 보내버린 라빈이 에이브릴의 뒤를 잡았다.

“까꿍.”

그녀의 등장에 에이브릴이 눈을 부릅떴다.

아차 싶었던 그녀가 빠르게 쇠사슬을 움직였다.

이를 본 라빈이 슬쩍 거리를 둔다.

“어라? 그래도 되는 거야?”

라빈이 웃으며 에이브릴을 쳐다보았다.

결과적으로 라빈은 에이브릴의 뒤에 나타나기만 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에이브릴이 지레 놀라 쇠사슬부터 움직여버린 것이다.

당연히 그 빈틈은 고스란히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에스파의 화살이 빠르게 날아와 에이브릴의 팔다리를 맞췄다.

“아…….”

뜨거운 통증에 에이브릴이 신음을 토해냈다.

그녀가 다시 자세를 고쳐잡기 전에 라빈이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진 뼈가 라빈을 넘어트렸다.

목에 다른 뼈를 가져간 라빈이 웃으며 말했다.

“항복해. 언니. 너네가 진 거야.”

“이익……!”

“기분이 어때? 줄곧 무시해 온 에스파 오빠에게 제대로 당해버렸는데? 솔직히 에스파 오빠가 이렇게까지 강해질 줄은 몰랐지?”

“……….”

에이브릴의 불같은 시선이 에스파에게로 향했다.

에스파는 무릎에 손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는 다른 의미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화살을 쏠 때마다 지나치게 많은 힘이 들어갔다.

거기다 마력의 컨트롤도 섬세함을 잃었다.

“아직, 한참 멀었구나…….”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홀로 두 명을 상대해 온 라빈도 대단했지만 관중들은 에스파의 실력에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멋지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 기본적인 마법으로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다니……!”

“저걸 기본 마법이라고 할 수 있나요? 조금 전에 공중에서 화살이 휘는 것 못 보셨어요?”

“마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냐?”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직접 해봐라 그게 쉽나.”

관중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파는 너무 얼떨떨해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그 표정이 재밌어 몇몇 관중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이거 정이 가는 친구로구만!!”

“귀족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속성 변환을 못 해도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응원할게요! 꼭 마법기사가 되어주세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마침내 에스파가 미소를 보였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라빈이 그런 에스파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다짜고짜 에스파의 등짝을 때렸다.

“거봐요! 하면 할 수 있잖아!?”

라빈의 미소를 보며 에스파가 울컥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정말 고맙다 라빈. 다 네 덕분이야…….”

“아 왜이래!? 질질짜지 마. 나 그런 거 싫단 말이야.”

라빈이 괜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래도 말과 다르게 그녀의 손은 에스파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에이브릴의 항복 선언으로 시합은 끝나 버렸다.

완전히 기절해버린 체레드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의 몸은 라빈의 뼈찜질(?)에 제대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우리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분노한 중년인이 라빈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가슴팍엔 레기아스 가문의 문장이 달려 있었다.

“호돌레츠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맞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호돌레츠의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분이 삭히지 않는지 호돌레츠가 라빈을 보며 외쳤다.

“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호돌레츠님.”

몸을 일으킨 에이브릴이 호돌레츠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녀를 바라본 호돌레츠가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오오 에이브릴!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복수는 내가……!”

“저 아이도 레프레시아 가문의 사람이에요.”

“뭐? 어……?”

노발대발하던 호돌레츠가 움직임을 멈췄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 호돌레츠를 보며 라빈이 방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에이브릴 언니의 동생인 라빈이라고 합니다.”

“아…….”

당황한 호돌레츠를 보며 에이브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이 아이를 건드리는 것은 우리 가문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데. 그래도 한 번 해보시겠어요?”

“히끅……!”

호돌레츠가 입을 꾹 다물었다.

레기아스 가문이 현재 떠오르는 가문으로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5대 가문 중 하나인 레프레시아 가문을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여기서 잘못 건드렸다간 기꺼이 잡은 상승세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레프레시아 가문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으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호돌레츠가 잠잠해졌다.

“크흠… 에이브릴 양의 동생이었다니. 어쩐지 마법 실력이 뛰어나더라니…….”

“그리고 이곳은 시합장입니다. 라빈의 손속이 거칠긴 했지만 시합 중에 벌어진 일들로 이렇게 호돌레츠님이 나서시면 곤란해요.”

에이브릴은 이 말만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그런 에이브릴을 향해 라빈이 한 마디 던졌다.

“웬일이야? 내 편을 다 들어주고?”

“시끄러.”

“우리한테 진 게 어지간히도 억울하긴 한가봐? 표정이 잔뜩 굳어 있잖아?”

“다음 번에 만났을 때는 오늘과 같진 않을 거야.”

“그래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래도 오늘의 패배를 곱씹어 보도록 해. 사람 함부로 판단하는 그 습관도 좀 고치고.”

라빈이 손짓하며 에이브릴을 보냈다.

발걸음을 옮기려는 에이브릴의 앞에 에스파가 섰다.

그를 본 에이브릴이 인상을 구겼다.

“왜? 네가 이겼으니 이제 실컷 놀려주고 싶어?”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럼 뭐? 비켜. 짜증나게 하지 말고.”

“그냥 사과하고 싶어서.”

“네가 나한테? 사과할게 뭐가 있어? 널 괴롭힌 건 나잖아. 너 바보야?”

에이브릴이 미간을 찌푸렸다.

날 선 에이브릴의 목소리에 라빈도 혀를 찼다.

“저게 진짜…….”

가서 한 마디 하려는 때, 라빈이 발걸음을 멈췄다.

에스파가 에이브릴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그날. 네 승급전을 망쳐버렸던 것. 그건 정말 미안해. 그때의 나는 너한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에 욕심만 많은 놈이었어. 네 말대로 내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민폐도 그런 민폐가 아닐 수 없어.”

“이제 와서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에이브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발걸음을 옮겨 에스파를 지나쳐 가려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동안 나 같은 놈이 널 좋아해서 미안했어. 이제는 마음을 접어보도록 노력할게.”

에스파의 말에 에이브릴이 우뚝 멈춰 섰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이브릴이 그대로 걸음을 이었다.

에스파는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진짜 끝까지 바보 같은 오빠네. 마지막까지 그러고 싶어요? 나 같았으면 실컷 놀려줬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그래도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여자인데.”

에스파가 씁쓸한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말했다.

그의 진심에 라빈도 말이 막히고 말았다.

“뭐야… 진짜 멜로 눈깔이네. 아 하지 마, 그런 눈빛! 짜증난다고요.”

“나는 지금 내 오랜 짝사랑을 끝내는 중이라고. 그만 좀 방해해줄래?”

“이야… 물에 빠진 것 건져놨더니 이제 아주 살 만한가봐? 은인도 몰라보고?”

라빈이 혀를 차며 자리를 벗어났다.

에스파가 그런 라빈의 뒤를 쫓았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보다 봤어요?”

“뭘?”

“내가 체레드 실컷 두들겨 패놓은 거?”

“봤지. 속이 다 후련하더라.”

“깔깔 일부러 내 척추뼈로 골라서 야무지게 패줬어요. 뼈있는 부분들만 실컷 두드려줬으니 아마 지금쯤 온몸이 다 저릿저릿 할 걸요?”

“진짜 다시 한 번 고맙다.”

“그래도 아쉽지 않아요?”

“응, 뭔가 이런 상황이 오기만을 늘 꿈꿔왔거든? 근데 막상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네.”

“다 오빠가 바보같이 착해 빠져서 그래요.”

“그래도 제일 아쉬운 게 뭔지 알아?”

“뭔데요?”

“내 손으로 체레드를 두들겨 패주지 못했다는 것? 내가 그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한 나날들만 생각하면 아주 그냥……!”

“그럼 다음번엔 오빠가 하면 되겠네.”

라빈이 그를 보며 웃었다.

그러자 에스파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어떻게? 못해 난…….”

“못하긴 뭘 못해? 오늘 보니까 아주 살판나게 화살 쏴대더만.”

“그거야…….”

“그나저나 오늘 다시 봤어요.”

“날?”

“네. 오늘 좀 멋있었어요. 여러모로.”

“내가?”

에스파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라빈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드디어 마음을 정한 거야?”

낯선 목소리에 에스파와 라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을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자비토였다.

그를 본 라빈의 표정이 굳었다.

“여긴 왜 왔어?”

“네 시합이 있다고 해서.”

“그래? 그럼 끝났으니까 꺼져.”

“라빈.”

자비토가 그녀를 불렀지만 라빈은 차갑게 그를 지나쳐갔다.

두 사람의 상황을 잘 모르는 에스파로선 조용히 라빈의 뒤를 따라주는 게 최선이었다.

떠나가는 라빈을 향해 자비토가 말을 이었다.

“그날의 일은…….”

“말하지 마. 그리고 내 생각은 변함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하지만… 내 말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라빈.”

“미안하지만 난 너랑 할 얘기 없어.”

라빈은 그대로 매몰차게 자리를 떠나버렸다.

에스파는 자비토를 향해 한 번 고개를 숙여보이곤 라빈의 뒤를 따라갔다.

“야. 저 사람 자비토 아냐?”

“맞아요. 오빠가 쟤는 어떻게 알아요?”

“왜 몰라. 유명하잖아. 근데 저렇게 두고 가도 돼? 너랑 얘기하려고 온 것 같은데…….”

“저는 쟤랑 할 얘기 없어요. 그보다 곧 아시테르 오빠네 시합 아니에요?”

“응? 맞아.”

“빨리 간단한 치료만 받고 구경하러 가요.”

라빈의 말에 에스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 굳어 있었지만, 에스파는 그녀의 일에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알고도 모른 척 해주었던 라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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