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알렌시아 vs 베릴니아
라빈과 에스파의 시합을 지켜봤던 아시테르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렇게나 좋아요?”
“물론이죠.”
“어쨌거나 우리들의 결승 상대는 정해졌네요.”
“네. 그래서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시합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을 본 관중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무패의 마도사인 알렌시아! 그녀의 실력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아시테르와 알렌시아 팀입니다. 거기다 깜짝 실력을 보여준 아시테르까지! 이번엔 어떤 놀라운 꾀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심판이 두 사람을 보며 소개했다.
알렌시아 혼자만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딱히 서운할 것도 없는 소개였다.
“다음은 이 두 사람을 상대할 베릴니아와 덱스입니다! 두 사람은 항상 압도적인 기량으로 상대를 무너트려 왔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이번엔 전격의 마도사 알렌시아를 상대로 어떤 시합을 보여줄지 궁금하군요.”
심판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를 보며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저런 말들을 했던가요?”
“준결승이라 다르게 하려나 보죠.”
“에이, 아까 라빈의 경기에서는 저런 소개들 없었는데요.”
“아무렴 어때요? 우리는 시합이나 이기면 되죠.”
“하긴 그건 맞는 말이네요.”
아시테르가 웃으며 답했다.
한편 그들의 맞은 편에 선 베릴니아가 곧바로 알렌시아를 향해 다가왔다.
“뭐 굳이 번거롭게 할 필요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깔끔하게 우리 둘이 승부를 내요. 덱스는 이 시합에 끼어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쪽도…….”
베릴니아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엉거주춤 서 있는 아시테르의 모습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쪽은 뭐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끼어들어도 별 상관 없을 것 같으니까.”
“그래요. 그러면 일대일 승부를 하도록 하죠.”
“안심해요. 덱스는 어차피 내가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 인원수만 맞춰주러 왔을 뿐이니까. 어차피 쟤 실력에 승급 욕심은 없을 거고. 내가 당신에게 진다면 깔끔하게 이 시합에서 패배를 인정할게요.”
“그거 간단하고 좋네요.”
알렌시아가 슬쩍 아시테르를 돌아보았다.
동의하냐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아시테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기고 와요.”
“내가 언제 지는 것 본 적 있나요?”
“아뇨. 없죠.”
아시테르가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 나가는 알렌시아의 뒷모습이 그토록 든든해 보일 수 없었다.
아시테르가 머리 뒤로 손을 올리며 물러나자 덱스도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중앙에는 알렌시아와 베릴니아만 남게 되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일대일 승부를 하려는 건가?”
“에이, 덱스랑 같이 싸워도 모자랄 판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거겠지. 거기다 베릴니아도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잖아?”
“나는 알렌시아에게 걸겠어.”
“난 그럼 베릴니아다! 솔직히 베릴니아의 빙결 마법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그들의 얘기가 오가는 동안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들의 대결이니만큼 마법기사단장들도 관심 있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베릴니아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손아귀에서 새하얀 빛이 일었다.
“자아, 그럼 내가 먼저 가본다?”
그녀가 자신 있게 마법을 시전했다.
주변에 형성된 얼음 덩어리들이 알렌시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쩌정!
알렌시아가 만들어낸 전격이 얼음 덩어리들을 모조리 부숴버렸다.
베릴니아는 멈추지 않고 다른 마법을 이어서 시전했다.
양옆에 생겨난 고드름이 알렌시아를 노리고 날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알렌시아는 전격 마법으로 고드름을 깨트려버렸다.
“이게 다인가요?”
“에이 설마. 겨우 이정도일까요.”
깨진 고드름의 파편이 힘을 잃지 않고 알렌시아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알렌시아가 만들어낸 전격이 허공에 퍼지며 고드름 파편들을 모두 떨어트렸다.
“확실히 전격 마법이 강하긴 강하네. 내 마법도 손쉽게 깨트리는 걸 보면.”
베릴니아가 두 팔을 움직였다.
그녀의 푸른 마력이 움직이며 알렌시아의 머리 위로 커다란 얼음판을 만들어냈다.
“이것도 한 번 받아볼래요?”
베릴니아가 손짓하자 얼음판이 그대로 낙하했다.
떨어지는 얼음판을 보며 알렌시아가 손을 들어 올렸다.
허공에 만들어진 뇌신의 창이 빠르게 상승했다.
콰앙!!
뇌신의 창이 얼음판을 꿰뚫으며 하늘로 솟았다.
깨어진 얼음판을 보며 베릴니아가 마력을 쏟았다.
“얼음 감옥.”
깨진 조각들이 서로를 이으며 순식간에 커다란 감옥을 만들어내었다.
그녀의 마법을 본 관중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떨어지는 파편들이 순식간에 감옥을 만든 터라 알렌시아도 반응할 틈이 없어 보였다.
감옥 안에 갇힌 알렌시아를 보며 베릴니아가 미소를 보였다.
“자, 이제 천천히 요리해줄게요.”
그녀가 두 팔을 벌리자 허공에 얼음 송곳들이 생겨났다.
송곳은 곧 베릴니아의 손짓에 따라 얼음 감옥 안으로 쏟아져 나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얼음 송곳들을 보며 알렌시아가 웃었다.
그녀의 웃음을 확인한 베릴니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유리한 상황인데 알렌시아가 웃고 있으니 그 모습이 거슬렸던 것이다.
알렌시아의 손에서 뻗어 나온 전격이 단번에 얼음 감옥을 부숴버렸다.
그리곤 허공을 날은 뇌조가 사방으로 전격을 날렸다.
콰라랑!!
콰릉!
쏟아지던 얼음 송곳들이 뇌조의 전격에 모두 산산조각나버리고 말았다.
이어 알렌시아가 하늘을 가리켰다.
“이번엔 내 차례야.”
알렌시아가 손짓하자 하늘에서 전격이 내려쳤다.
콰르릉!!
대지마저 뚫어버릴 기세로 내려친 전격은 베릴니아의 머리 위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화끈한 공격이네.”
얼음으로 만든 지붕에 전격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베릴니아의 손이 한 바퀴 회전했다.
그러자 그녀의 마력이 발밑에서 퍼지며 순식간에 주변 대지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호오.. 벌써 저 정도 수준의 마법까지 할 줄 아는 거야?”
“과연..... 대단한 재능이로군.”
베릴니아의 마법을 본 몇몇 마법기사들이 감탄을 흘렸다.
그만큼 베릴니아의 마법은 다채롭기도 했지만 수준이 높은 마법들이었다.
대지가 얼어붙는 것을 확인한 알렌시아가 발을 움직였다.
그러자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얼음 파편들이 그녀를 쫓았다.
쩌정!!
알렌시아가 만들어낸 전격이 또다시 얼음 파편들을 격했다.
베릴니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얼음을 만들어내었다.
두 사람의 대결이 생각보다 호각지세로 흘러가자 덱스는 물론 아시테르도 흥미진진하게 시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 두 사람은 시합장에 나선 선수가 아닌 똑같은 관중의 마음이었다.
베릴니아가 만들어낸 얼음 구체가 알렌시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자 알렌시아도 비슷한 마법으로 응수했다.
그녀의 주변에 떠오른 전기 구체가 베릴니아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파바방!!
파방!
얼음 구체와 전기 구체가 부딪히며 커다란 폭음을 만들어내었다.
알렌시아의 마력이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전깃불이 베릴니아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를 확인한 베릴니아가 재빨리 얼음으로 된 작은 성을 만들었다.
“무한의 낙뢰.”
알렌시아가 영창을 외우자 전깃불이 있는 장소로 낙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떨어지던 낙뢰가 순식간에 숫자를 더하며 베릴니아가 있는 곳을 초토화시켰다.
콰르르릉!!
입이 쩍 벌어지는 위력에 관중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러 개의 낙뢰가 동시에 떨어지다시피 했으니 이 정도면 베릴니아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베릴니아의 모습이 드러나자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트렸다.
그 많은 낙뢰 속에서 베릴니아가 자신을 지켜낸 것이다.
작게 만들어졌던 얼음성은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와아… 살벌하네 진짜…….”
베릴니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까스로 막아내긴 했지만 방금은 그녀에게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전깃불을 발견했더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알렌시아가 만들어낸 전기구체가 베릴니아를 향해 움직였다.
이를 본 베릴니아가 마법을 이용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기 구체가 그녀를 쫓았다.
“뭐!?”
전기 구체가 자신을 쫓아오니 베릴니아도 놀란 기색이었다.
그녀가 얼음을 창성하며 전기 구체를 막아냈다.
이어 다른 한쪽으로는 얼음 송곳을 만들어 알렌시아를 공격했다.
콰릉!
알렌시아는 간단한 전격 마법만으로 얼음 송곳을 막아내었다.
“쳇!”
베릴니아가 혀를 차며 알렌시아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알렌시아의 전격이 베릴니아를 향해 날아왔다.
베릴니아가 또다시 마법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알렌시아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격이 갈고리처럼 휘며 베릴니아를 쫓아온 것이다.
쩌정!
“으아악!!”
베릴니아가 전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그녀가 두 눈을 부릅 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전격이 방향을 틀다니!
마치 자신의 위치를 알고 쫓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 거야?”
베릴니아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가 양손을 가운데로 모았다.
“이렇게 된 이상……!”
베릴니아가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으로 마력이 몰아쳤다.
푸른 마력은 허공에 맺히며 커다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차가운 한기가 주변 공기를 바꿨다.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골렘이었다.
“오오오!!”
“우와!!”
“이야아아아―!”
아이스 골렘의 등장에 관중들이 탄성을 터트린다.
마도사의 역량에 따라 아이스 골렘의 성능은 천차만별이다.
베릴니아가 만들어낸 아이스 골렘은 알렌시아보다 두세 배는 더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막아봐.”
골렘 소환 마법은 베릴니아로서도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는 마법이었다.
대량의 마력이 빠져나가자 베릴니아도 지친 기색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알렌시아의 전격이 골렘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아, 이제 어떻게 할래요?”
골렘은 육중한 몸을 움직여 알렌시아에게로 달려갔다.
커다란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쾅!!
알렌시아가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전격 마법으로 골렘을 공격해봤지만 작은 흠집밖에 나질 않는다.
그만큼 많은 양의 마력이 투입돼 강도가 단단하다는 얘기였다.
그녀가 한쪽으로 팔을 뻗었다.
체인처럼 이어진 전기가 허공에 날아갔다.
슈웅―
치지짓.
체인은 공중에서 회전하며 베릴니아를 쫓았다.
골렘에 정신을 빼앗긴 베릴니아가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전기 체인을 눈치챘다.
“끈질기네 정말……!”
그녀가 마법으로 전기 체인을 막으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덱스가 소리쳤다.
“조심해 베릴니아!!”
그와 동시에 베릴니아의 머리 위에서 낙뢰가 떨어졌다.
쿠르릉!!
베릴니아의 몸에 전격이 떨어졌다.
그녀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어떻게……!?”
덱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알렌시아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금 골렘의 공격을 방어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베릴니아는 습관적으로 여기저기 얼음벽을 세워두어 자신의 위치를 가렸다.
그런데 알렌시아의 공격은 마치 베릴니아가 어디 있는지 훤히 꿰뚫어보는 것처럼 날아들었다.
덱스가 베릴니아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쓰러질 정도의 타격은 아닌 모양.
마법 갑옷과 미리 세워둔 얼음벽 덕분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이런 식의 공격을 당한다면 아무리 베릴니아라도 버텨내지 못할 터였다.
그 순간 덱스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알았다……!”
그제야 덱스의 의문이 풀렸다.
어떻게 알렌시아가 보지도 않고 베릴니아에게 공격을 가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