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아시테르의 마법이 드러나다
“베릴니아!”
덱스의 외침에 베릴니아가 그를 돌아보았다.
덱스가 베릴니아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정답은 네 아래쪽에 있어. 거기 있는 작은 전깃불들.”
그가 가리킨 곳엔 반딧불이처럼 움직이는 전깃불들이 보였다.
전깃불은 베릴니아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전깃불들이 네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거야.”
“하아? 그런 거였어……!?”
베릴니아가 마력으로 단숨에 전깃불들을 얼려버렸다.
그녀가 두 눈을 무섭게 뜨며 알렌시아를 노려보았다.
“앙큼하네. 이런 마법도 할 줄 알고.”
그래도 이제는 전깃불들을 모두 얼려버렸으니 안심이었다.
그녀는 혹시 몰라 자신의 주변에 얼음벽들을 더 세워두었다.
이제는 골렘으로 천천히 알렌시아를 밀어붙이면 된다.
그녀가 알렌시아쪽을 살폈다.
아이스 골렘을 피해 알렌시아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전격 마법으로는 안타깝게도 골렘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아하하!! 이제보니 전격 마법도 별 것 아니었네?”
승기를 잡은 듯 하자 베릴니아가 곧바로 웃음을 보였다.
이제는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지지도, 얼음벽을 피해 전기 체인이 날아오지도 않았다.
알렌시아는 골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마법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던 알렌시아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얼음벽에 몸을 숨긴 탓에 베릴니아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베릴니아는 기껏 잡은 승기를 다지기 위해 추가적인 공격을 가해오지 않았다.
그 말은 즉, 그녀도 상당히 지쳐 있다는 얘기였다.
알렌시아가 골렘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전격으로는 흠집 정도만 낼 수 있는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알렌시아로서도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만 했다.
그녀는 손끝으로 마력을 모았다.
체인처럼 이어진 전깃줄이 형성되었다.
알렌시아는 그것을 골렘을 향해 던졌다.
정확히는 골렘의 팔부분이었다.
전기 체인이 단숨에 골렘의 팔에 감겼다.
이어 알렌시아가 다시 한번 체인을 만들었다.
이번엔 다른 팔에 체인을 걸었다.
그녀가 손바닥을 모으며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양팔의 체인끼리 이어지며 수갑처럼 묶이기 시작했다.
골렘의 두 팔이 한데 모아지며 일시적으로 봉인되었다.
어차피 이 방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골렘이 언제 전기 체인을 풀고 다시 공격해올지 몰랐다.
그래도 골렘의 팔이 묶인 잠깐의 순간.
이 잠깐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골렘의 움임임이 멈춘 것을 확인한 알렌시아가 곧바로 내달렸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베릴니아가 있는 얼음벽쪽이었다.
“어디 갔지!?”
한편 얼음벽 사이에서 알렌시아를 살펴보고 있던 베릴니아가 당황한 낯빛을 보였다.
무슨 일인지 날뛰어야 할 골렘도 우뚝 멈춰 서 있었다.
그녀가 알렌시아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뒤에 있던 덱스가 놀라 외쳤다.
“조심해야 해 베릴니아!”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알렌시아가 마법을 펼쳤다.
그녀를 중심으로 터져나간 전격이 얼음벽들을 모조리 깨부쉈다.
얼음벽이 모두 무너지자 알렌시아의 시선에 베릴니아가 들어왔다.
“찾았네요.”
골렘에게 당한 상처들로 피를 뚝뚝 흘린 알렌시아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릉!
한줄기의 낙뢰가 베릴니아를 향해 떨어졌다.
현재의 베릴니아는 절대 이 낙뢰를 견뎌낼 수 없다.
알렌시아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낙뢰를 막아낸 것은 베릴니아가 아니었다.
그녀의 위에 나타난 기괴한 모습의 인형이 배를 뒤집어 까고 있었다.
“뭐……?”
그때 알렌시아의 옆으로 다른 인형이 나타났다.
인형은 알렌시아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읍!”
뜨거운 통증에 알렌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베릴니아가 분노를 토해냈다.
“이게 진짜!!”
“뒤에 가서 쉬어.”
“야 덱스! 누가 마음대로 끼어 들래?”
“방금은 정말 위험했어.”
“내 힘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고!”
베릴니아가 알렌시아 쪽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녀를 쫓은 인형들이 무차별로 검을 휘둘러댔다.
그런 알렌시아의 뒤로 전기 체인을 풀어낸 아이스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조용히 묵직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휘쾅―!
주먹은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이를 본 관중들이 안타까움의 탄식을 흘렸다.
알렌시아가 베릴니아를 상대로 결국 승리를 쟁취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했는데, 결국 이렇게 무너지고만 것이다.
“일대일 승부 아니었어? 덱스가 끼어드는 건 반칙이지!”
“반칙은 무슨… 애초에 이 시합은 일대일 시합이 아니었잖아.”
“하아… 그래도 알렌시아가 골렘을 묶어놓고 직접 베릴니아를 치러 갔을 땐 전율이 돋았는데…….”
“졌지만 잘 싸웠다. 이럴 때 팀원이라도 좋았으면…….”
“같이 나온 팀원이 하필 기생충 아시테르라니…….”
그들이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마르체니는 시합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녀 생각에 알렌시아는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
그런데 정작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알렌시아가 멋지게 공격들을 막아낸 것이 아니었다.
아이스 골렘이 주먹을 내리치는 순간, 그녀를 빼낸 것은 다름 아닌 아시테르였다.
이를 본 라빈과 에스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아시테르의 목소리가 들리자 알렌시아가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어떻게…….”
“어지간하면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반칙은 저쪽에서 먼저 했어요. 괜찮죠?”
“그야…….”
아시테르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알렌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알렌시아의 상처를 살폈다.
“상처는 괜찮아요?”
“아… 네. 빗맞았어요.”
“다행이네요.”
아시테르의 눈빛이 어쩐지 차갑게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그가 덱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그 공격. 너무 심했다는 생각 안 들어요?”
“무슨 말이죠?”
“자칫 잘못 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구요.”
“내가 살아온 곳에서 그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오… 그래요?”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베릴니아 쪽으로 향했다.
“어쨌든 패배는 인정하시는 거죠?”
“뭐……?”
“방금 덱스 씨의 개입이 아니었더라면 당신의 패배가 확정이었잖아요?”
“무슨 소리야! 덱스가 끼어들지 않아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어. 내 승리였다고!”
“글쎄요. 제 눈에는 다르게 보였는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시는 것도 하…….”
“웃기는 소리마! 난 지지 않았어!”
베릴니아가 아시테르의 말을 자르고 소리쳤다.
이에 알렌시아가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저럴 것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잖아요.”
“나참…….”
그 틈을 노려 덱스의 인형이 다시금 알렌시아를 노렸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팔을 움직였다.
알렌시아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자 인형의 검이 허공을 지나쳤다.
“이게 그쪽 방식인가보죠?”
“빈틈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덱스의 인형들을 본 아시테르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의 뒤편에선 아이스 골렘이 다가오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베릴니아가 괴성을 지르며 아이스 골렘을 움직였다.
“어차피 이 시합의 승자는 우리들이야! 버러지 같은 너희 둘은 바닥을 기는 게 맞는 거라고!”
그 사이 마력을 조금 회복했는지 얼음 조각들이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이를 본 알렌시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마력을 끌어올리려 하자 아시테르가 팔로 막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하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어요.”
“지긴 누가 져요? 질 생각 없어요, 저도.”
아시테르가 알렌시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수고 많았어요. 이제 저한테 맡기고 뒤로 물러나 계세요.”
그리곤 알렌시아의 앞으로 나섰다.
대회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아시테르가 알렌시아보다 앞으로 나선 순간이었다.
이에 관중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아시테르를 향한 조롱으로 이어졌다.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나서냐!?”
“괜히 자존심 부리지마라 아시테르!”
“객기 부리지 말고 항복해!”
“아냐! 잠깐이라도 시간을 끌자!! 알렌시아가 조금이나마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는 거야!”
그들의 외침을 듣던 라빈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불만 가득한 표정의 그녀가 혀를 찼다.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입만 살아선…….”
“그나저나 기대되네. 아시테르가 앞으로 나서다니. 분명 생각이 있어서겠지?”
“보나마나 또 이상한 잔꾀를 쓰려는 거겠죠. 그나저나 저 인간, 마법 수련은 하고 있는 거야?”
“마법 수련? 아! 그러고 보니…….”
“왜 그래요?”
“아시테르의 마법 말이야…….”
“아시테르 오빠의 마법? 오빠 마법이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 이제야 기억난 거지? 내 기억에 아시테르는 분명 어렸을 때부터 속성 변환을 할 줄 알았어!”
“에!?”
에스파의 말에 라빈이 깜짝 놀라 소스라쳤다.
그녀는 에스파쪽로 완전히 몸을 돌려 말했다.
“아시테르 오빠가 속성변환을 할 줄 안다구요?”
“그래. 아시테르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 봤어.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부터 속성 변환을 할 줄 알았던 거잖아……?”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시테르의 속성 변환 마법을 본 적이 없었다.
이에 궁금해진 라빈이 에스파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아시테르 오빠의 속성 변환 마법은 뭔데요?”
“아 근데 그게 기억이 잘 안 나. 뭐였지?”
“아니 이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만 빼놓고 기억하면 어떻게 해요!?”
“분명 전에 봤는데… 왜 기억이… 아! 기억났다. 화염!! 화염이야!!”
에스파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때마침 아시테르와 베릴니아, 덱스가 한 판 붙으려는 모양이었다.
베릴니아가 앞으로 나선 아시테르를 한껏 비웃어주었다.
“주제도 모르고 나서기는. 당신이 나서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할 것 같나요? 더러운 천민 수준에 뭘 하겠다고…….”
베릴니아는 지금 상당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지금 상황이 마치 알렌시아에게 패배한 모양새였다.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베릴니아가 억지로 마법을 사용했다.
자신은 아직 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주변에 떠있던 얼음송곳들이 아시테르를 향해 날아갔다.
날아오는 얼음송곳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웃었다.
“어쨌든 먼저 룰을 위반한 것은 그쪽입니다? 이제부터 이건 정당방위에요.”
아시테르가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팡! 파방!
작은 마력탄들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얼음송곳들을 깨부쉈다.
마력탄은 얼음송곳들을 부수고도 힘을 잃지 않고 베릴니아를 향해 날아갔다.
퍼버벅!
덱스가 인형으로 마력탄을 막아주었다.
이를 본 베릴니아가 이를 악물었다.
“천민 따위가…! 상관없어. 어차피 저 자식 따윈 내 아이스 골렘으로……!”
베릴니아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너무 놀라 다음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아시테르가 아이스 골렘에 자신의 손을 가져간 순간이었다.
화륵―
갑자기 치솟은 불길이 순식간에 아이스 골렘을 녹여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덱스도, 베릴니아도 손쓸 틈이 없었다.
베릴니아를 돌아본 아시테르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 이거요? 거추장스러워서 이만 태워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