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빈민가 (1)
대회가 끝난 다음날부터 아카데미는 아시테르와 알렌시아에 대한 소문으로 가득했다.
직접 대회를 본 사람들은 아시테르와 알렌시아의 마법이 대단했다며 칭찬일색이었다.
반면 대회 내용을 보지 못한 학생들은 알렌시아면 몰라도 아시테르에 관한 소문은 쉽게 믿지 못했다.
“아시테르가?”
“그 기생충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에이, 아시테르가 무슨? 잘못 본 것 아냐?”
그들은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써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아시테르와 한 번씩 겨뤄본 이들이었다.
반대로 아시테르의 존재를 흥미롭게 여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시테르는 정작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아카데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등급 학관으로 옮겼지만,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등급 학생들은 승점에도 관심 없다.
더 이상 승급할 등급도 없으니 그 시간에 모두가 수련에 열을 올렸다.
매년 있는 드래프트 미션에서 어떤 종류의 미션이 나올진 아무도 몰랐다.
그러니 다방면으로 준비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때문에 아시테르는 따로 할 것이 없어 무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알렌시아가 함께하게 되면서 에스파와 라빈, 데미리우스도 큰 전력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한 팀을 이루며 2등급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리에 누워있던 아시테르는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슬슬 움직여야겠다.”
그는 곧바로 아카데미 밖을 나섰다.
던전에서 오래 살아온 만큼 아시테르는 여전히 도시를 구경하는 것이 재밌었다.
시장에 모여 물건을 사고 파는 이들,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이들, 신나서 뛰어노는 아이들까지 어느 것 하나 바라보는데 즐겁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중간 중간엔 마을을 걸어 다니는 마법기사단원들이 보이기도 했다.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아시테르는 지나다니며 마주치는 마법기사단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시테르! 또 아카데미 밖으로 나온 거냐?”
“너 자꾸 그렇게 밖으로 새다간 성적 떨어진다?”
조율 마법기사단의 단원들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친 덕분에 안면을 튼 이들이었다.
“오늘도 순찰 나가시는 건가요?”
“맞아. 그나마 여기는 마법기사 아카데미가 있기 때문에 안전한 편이지만 사실 다른 곳은 좀 다르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 왕국이 뒤숭숭해. 반역자들이 모여 만든 비밀 집단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거든.”
“예에……?”
흥미로운 얘기에 아시테르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의 마법기사단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네가 벌써부터 알기에는 너무 이른 얘기다. 나중에 마법기사단에 들어오게 된다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지금은 알면 안 되는 얘기인가요?”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지금 네가 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지. 그냥 마음만 심란해질지 모르니까 당장은 마법기사단원이 되는 것에만 집중해라.”
“근데 아시테르 너. 대체 몇 등급인데 이렇게 농땡이 피우고 다니는 거야?”
그들 중 한 명이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에 아시테르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저요? 1등급입니다만.”
“호오……?”
“네가!?”
두 사람의 반응은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아시테르가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약간 의외라. 우리는 네가 한 3등급이나 4등급쯤 되는 줄 알았거든.”
“아아,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아시테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들의 말을 받아넘겼다.
마법기사단원 중 한 명이 아시테르의 망토에 손을 가져갔다.
“잠시만 실례해보자.”
망토를 슬쩍 걷어 올리자 가슴 쪽에 ‘I’가 드러났다.
1등급 학생들의 옷엔 ‘I’, 2등급 학새들의 옷엔 ‘II’가 새겨져 있다.
그러니 아시테르가 틀림없는 1등급 학생임을 옷이 증명해주고 있는 셈.
“세상에… 진짜였잖아……?”
“다시 보이네. 어쨌든 조심히 놀다 들어가라. 너도 잘 알고 있지? 아카데미 학생은 마법을 사용해서 시민들에게 해를 가하면 안 된다. 그러면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거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테르가 일부러 크게 대답하며 말했다.
그 모습에 마법기사단원들이 웃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들을 보내고 아시테르가 곧바로 향한 곳은 르네마리아였다.
아시테르가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르바타가 그를 마중 나왔다.
“오셨군요.”
“예. 부탁드린 것은 준비되었나요?”
“네. 그런데 갑자기 20인분의 음식은 왜…….”
“그럴 일이 있어서요. 어디 있나요?”
아시테르의 물음에 사르바타가 한쪽을 가리켰다.
다양한 음식들이 보자기에 감싸져 있었다.
이에 만족한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그는 품안에서 돈을 꺼내 사르바타에게 건넸다.
“아닙니다. 아시테르님께 돈을 받을 순 없지요.”
“자주 이렇게 부탁드릴거라 그럴 순 없어요. 그러니 돈을 받아주세요.”
“흐음… 자주라니…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말입니까? 혹시 무슨 팀이라도 꾸리신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이 많은 음식들을 준비해달라 하신 겁니까?”
“그게 말이죠…….”
아시테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1등급에 올라온 뒤로 도시 밖을 구경하고 다녔다.
그러다 그의 발길이 미친 곳이 바로 외곽지역의 빈민가였다.
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중심가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멍하니 있는 아시테르에게 비쩍 마른 아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배가 너무 고파요. 먹을 것이 있다면 조금만 주세요…….”
다섯 살 정도 되었을까, 여섯 살 정도 되었을까.
아직 어려 보이는 아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빨면서 아시테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무릎을 굽혀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려는 때, 부모로 보이는 여인이 황급히 다가와 아이를 붙잡았다.
그리곤 아이의 머리까지 숙이며 아시테르에게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 교육을 잘못 시켜서…….”
여인의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죄송할만한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그는 여인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아이가 여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여인은 더욱 억세게 아이를 움켜잡았다.
“아이가 너무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아, 그보다…….”
아시테르는 마침 품 안에 넣어두었던 간식거리를 꺼냈다.
말린 빵이었는데 들고 다니면서 한 입씩 먹기에 좋았다.
아시테르가 그것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배고프면 이거라도 먹을래? 미안하지만 지금 갖고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와아……!”
아이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시선이 빵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때 여인이 다시 한 번 나섰다.
“아닙니다. 감히 저희가 어찌…….”
“‘감히’라 할 것까지 있나요? 배고픈 아이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것뿐인데.”
아시테르가 아이의 조막만한 손에 빵을 올려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서둘러 빵을 입에 가져갔다.
맛있게 오물거리는 작은 입을 보며 아시테르가 미소지었다.
아이가 맛있게 먹자 여인이 또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은혜를 입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가진 것도 없고… 또 보답해드릴 것도 없으니…….”
“괜찮아요. 그보다 이곳 사람들은 왜 다들…….”
아시테르의 의문에 여인이 차근히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프로메테 가문과 루기아 가문이 있는 도심에서만 생활했었다.
이곳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아카데미에서만 보내왔다.
이번에 1등급에 올라오면서 이제 겨우 돌아다녀보기 시작했으니, 사실 이스트 왕국에 대해서 그가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아시테르에게 여인의 이야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봐왔던 것들이 사실은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 많은 것들을 누리며 화려하게 사는 동안, 이곳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굶주림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주어지지 않는 곳.
도시로부터 외면당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다.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만큼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아시테르는 그 후로 빈민가의 많은 곳들을 돌아다녔다.
그는 그때 느꼈던 것들을 사르바타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도 똑같은 왕국민들이라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스승님과 아버지에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고, 누군가 넘어지면 함께 일으켜주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줄곧 그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어요.”
“하지만 그들은 천민이 아닙니까? 천민들을 직접 돕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천민이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그건 중요치 않아요. 어쨌든 모두 똑같은 사람 아닌가요? 마수도 아닌 사람이잖아요. 사람.”
사르바타가 조금 충격 받은 얼굴로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곤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아시테르라는 사내를 다시금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훌륭하십니다. 그들 또한 우리 왕국의 국민들… 어쩌면 우리 왕국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어두운 부분일지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저희도 나서서 돕도록 하지요.”
“예?”
“대신 다음번에는 값싼 재료들을 이용해 대량의 음식을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값비싼 재료로 많은 음식들을 만들기에는 저희도 부담이 크거든요. 하지만 저렴한 재료로 많은 양의 요리를 만드는 것쯤은 얼마든지 지속적으로 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요!?”
“예. 솔직히 조금 감동 받았습니다. 이곳 도시의 사람들 중 외곽지역의 사람들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도 같은 왕국민들인데 말이죠… 신분이 어떻든 아시테르님의 말씀대로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생각해보니 마법기사 아카데미는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곳 아닙니까? 테르세우스님께서 그것을 원하셨으니까요.”
“…….”
“그러한 점에서 아시테르님은 누구보다도 테르세우스님의 뜻을 잘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신분 이전에 그 사람들을 바라보시다니…….”
사르바타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정말로 많은 것들을 느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사르바타에게 인사를 건네며 음식을 가져갔다.
그가 곧바로 향한 곳은 도시의 외곽지역이었다.
빈민가쪽으로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몇몇 아이들이 아시테르에게 다가왔다.
“아시테르 형이다!”
“우와 오빠다!”
“근데 맛있는 냄새가 나!”
냇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아시테르를 보고 우르르 달려왔다.
아시테르는 그런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져온 먹을 것들을 풀어주었다.
“얘들아 배 많이 고프지? 일단 이거부터 먹어봐.”
아시테르가 가져온 음식은 르네마리아의 음식들.
일반 평민들도 먹기 힘들다는 고급진 음식들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에 아이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녀석들 중 한 명이 아시테르의 눈치를 봤다.
“정말로 먹어도 괜찮은 거예요……?”
“아이 그럼. 너희들을 위해 준비해 온 거니까 마음껏 먹어.”
아시테르가 재차 말하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손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생선살을 입안에 가져가는 순간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에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그때 아시테르의 시선에 먼발치서 울고 있는 사내아이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