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111화 (111/424)

111화 빈민가의 반가운 손님들

아시테르가 빈민가에 찾아오자마자 아이들이 뛰어나와 그를 맞이했다.

빈민가의 아이들을 본 일꾼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들 모두 평민 출신의 사람들이었는데, 이런 빈민가는 처음이었다.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잘 씻지도 않은 떼자국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장난도 쳤다.

아시테르의 부탁에 따라 일꾼들이 먹을 것들을 풀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음식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자. 여기 있다.”

일꾼들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마구잡이로 달려들 것 같았던 아이들은 놀랍게도 차례차례 줄을 서서 먹을 것을 받아갔다.

이어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 음식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다들 오셔서 드시고 가세요.”

아시테르가 외치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그들은 아시테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저… 정말 저희도 먹어도 괜찮은 겁니까……?”

“네. 물론이죠!”

아시테르가 가져온 음식들을 나눠주며 말했다.

그때 아시테르의 눈에 린이 보였다.

그녀는 먼발치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도 어서 와요.”

“아…….”

아시테르의 손짓에 린이 못 이기는 척 다가왔다.

그녀의 옆에는 토흐가 찰싹 붙어 있었다.

토흐를 알아본 아시테르가 한달음에 다가갔다.

“너도 왔구나? 어때? 아픈 곳은 괜찮아?”

아시테르의 물음에 토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아시테르가 웃었다.

그는 들고 있던 빵을 토흐에게 내밀었다.

“오늘도 맛있을 거야. 먹어봐.”

“네…….”

토흐가 조막만한 손으로 아시테르가 내민 빵을 받아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입에 가져갔다.

린의 손짓에 토흐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토흐는 아마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을 것이다.

“어제는 잘 잤어요?”

“네. 누우면 그곳이 잘 곳이죠.”

“와아…….”

“왜요?”

“제가 늘 하는 말이랑 비슷해서요. 누우면 그곳이 잘 곳이고 하늘이 곧 내 이불이다.”

아시테르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린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쪽은 귀족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것.”

“그럼 천민이나 평민 출신이에요?”

“흐음… 그것도 아니에요.”

“네? 그러면 당신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닌건가요?”

린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이스트 왕국의 사람이에요. 제 부모님 모두 이스트 왕국의 사람이거든요.”

“흐음… 저는 당신이 처음에 귀족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조금 경계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귀족인데 왜 경계를 해요?”

“여기 귀족들은 모두 천민을 무시하고 천대하니까요.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잘해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거든요.”

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마 그동안 많은 광경들을 봐온 모양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아시테르를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 욕심 없이 천민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귀족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처음엔 신기하고 또 이상했어요.”

“그런가요.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해요? 귀족이면 어떻고 천민이면 어때요.”

아시테르의 말에 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돈에 관한 생각도 그렇고 신분에 관한 생각도 그렇고, 확실히 아시테르는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아시테르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자라온 곳은요. 수많은 마수들로 가득한 곳이었어요.”

“세상에… 대체 어디서 살아왔길래 그런 곳에서…….”

“다행히 제 스승님과 부모님이 무척 강하시거든요.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스승님 덕에 무사할 수 있었어요. 그치만 그 험난한 곳에서 살아가려면 결국 저 또한 강해져야 했어요.”

“그렇겠네요… 그분들이 모든 상황 속에서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니까.”

“스승님과 아버지는 제가 강하게 자라길 바라셨기 때문에… 정말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며 강해지고 또 강해졌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두렵기만 하던 마수들도 하나둘 쓰러트리기 시작했고요.”

아시테르가 잠시 말을 멈췄다.

강해지기 위해 걸어왔던 노력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괴로웠던 적도 많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부모님과 스승님의 모습을 보며 버텨냈어요. 그분들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마수들과 싸우고 계시거든요.”

“왜죠? 그곳에서 벗어나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살면 되잖아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마수들이 노리는 건 인간들이거든요.”

“인간들이요……?”

“네.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그곳의 마수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한다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 곧 인간들에게도 커다란 문제가 생길 거라고.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운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믿기 어려운 얘기네요… 대체 어디서 살다 오셨길래…….”

“제가 태어난 곳은 던전이에요.”

아시테르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린이 두 눈을 꿈뻑거렸다.

던전에서 태어났다니.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 말들을 종합해보면 던전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질 않았다.

“세상에…….”

린이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놀라워했다.

그녀는 그때서야 아시테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던전에서 살아왔으니 돈이나 신분 같은 것들이 그에게 중요할 리 없었다.

가치를 두는 것이 다를 터였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당신의 행동들과 말들이.”

“처음이에요.”

“뭐가요?”

“제가 태어난 곳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것 말이에요. 아직 친한 친구들과 동료들도 모르는 얘기인데… 어쩌다가 이 얘기가 나온 걸까… 어쨌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아시테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린이 미소를 보였다.

“그 말을 들으니 제가 좀 더 특별해지는 것 같네요?”

“네? 아… 그건…….”

“고마워요. 그런 비밀을 제게 얘기해주셔서.”

“아니요… 고마워 할 것 까지는…….”

린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시테르가 그녀의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저 손이 무안해지려고 하는데… 계속 보고만 있을 거예요?”

“아…….”

아시테르가 뒤늦게 린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자 린이 아시테르의 팔을 살짝 당겼다.

린의 손이 아시테르의 손목을 잡고, 아시테르가 린의 손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었다.

“저도 비밀 하나 말해줄게요. 제가 살아온 곳에서는 이렇게 친구의 증표를 맺어요.”

“아… 친구…….”

“네. 친구요. 우리 친구해요.”

“그래요. 좋네요 친구.”

아시테르가 웃으며 린을 바라보았다.

린도 아시테르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시테르가 순간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여기까지 와서 친구가 생길 줄은 몰랐네요. 그렇지만 꼭 친구하고 싶었어요. 당신의 마음씨에 솔직히 감동했거든요.”

“저는 별로 한 게 없는 걸요.”

“아니에요. 던전에서 태어났음에도 정말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어요. 아마 부모님이 그만큼 훌륭하고 멋진 분들이시라는 거겠죠. 누군가 그랬거든요. 사랑을 듬뿍 받아본 사람들이 더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잘 줄 줄 안다고.”

“맞아요.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어요, 부모님과 할아버지에겐. 그래서 저는 더더욱 그분들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훌륭해요.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린이 아시테르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주었다.

그녀의 손길이 느껴지자 아시테르가 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린이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니에요. 그냥…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나서…….”

정말이었다.

린의 손길이 머리에 닿을 때 순간적으로 아레나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따스하면서도 정겨운 손길.

마음을 몽롱하게 만드는 그 손길의 진심.

그것들이 이상하게 린에게서 전달되었다.

덕분에 아시테르의 마음만 싱숭생숭해지고 있었다.

린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빈민가 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혹시나 놀다가 다친 아이들이 있으면 상처를 보듬어 주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짖궂은 장난을 쳐도 화를 내거나 짜증도 내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아레나에게서 느껴지는 기품이 그녀에게서도 느껴졌다.

그녀는 종종 아시테르를 불러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었다.

아시테르도 어느덧 빈민가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어우러졌다.

이런 일상은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음식을 비롯해 옷가지도 가져와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고… 매번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시테르님.”

“저희가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찌하면 좋을지…….”

마을 사람들도 아시테르의 방문을 반가워했다.

비단 그가 가져오는 물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시테르는 마을을 다니며 부서진 건물이나 물건들도 보수해주었다.

그와 함께 다니는 일꾼들이 워낙 전문적이 사람들이라 그것들을 도와주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시테르에게 보답하기 위해 가끔 음식을 준비하거나 손수 만든 옷을 선물해주었다.

일반 귀족 가문의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이 내미는 선물에 인상부터 썼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투박한 음식들도 어렸을 때 기억이 난다며 맛있게 먹어주었고, 손수 만든 옷은 곧바로 입어보는 등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 아시테르의 곁에서 린은 진심으로 아시테르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는 아시테르를 따라오는 르네마리아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였다.

“귀족이신데… 어찌 저렇게 천민들과 잘 어울리시지?”

“그러게…. 보통 귀족분들은 천민들의 가까이에도 가기 싫어하시던데…….”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하시고… 매번 이렇게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진짜 대단하시네.”

그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연했다.

일꾼들이라고 처음부터 이곳에 오는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도심 최고의 음식점인 르네마리아에서 일하는 만큼 그들도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었다.

출신은 평민이라도 늘 상대하는 것은 귀족이었다.

그러니만큼 그들은 같은 평민이라도 어느 정도의 급은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천민이든 평민이든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

사실 귀족보다 천민을 더 천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평민들이었다.

그들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천민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일꾼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이제는 그랬던 과거를 반성하고 있었다.

그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빈민가 사람들이 그들 모두를 좋아해 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시테르님.”

“맞아요. 진짜 감사드립니다.”

“네? 저는 뭐 한 일이 없는데요……?”

“아닙니다. 아시테르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들은 평생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요즘에는 가게의 손님들이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는 것보다 여기 아이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행복합니다.”

일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말했다.

가게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개중에는 자신의 사비를 보태 빈민가 사람들을 돕는 자들도 생겼다.

아시테르도 그들의 선행을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들이 계속 이어질 줄로만 알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화적떼가 다시 움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아시테르의 동향을 파악한 화적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얘들아.”

“네 대장.”

“네 대장!”

워크라가 자신의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우리는 오늘 그놈이 다녀가는 브르가뉴 빈민가를 친다.”

“에? 거기를요? 왜요?”

“왜기는. 그놈이 뿌린 씨앗을 모두 거두러 가는 거지. 거기에 더해서 놈과 거래할 명분을 좀 만들 생각이고.”

워크라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