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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12화 (112/424)

112화 화적떼의 습격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화적떼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브르가뉴 마을.

바로 아시테르가 매일 같이 오고 간 마을이었다.

밤중에 화적떼가 마을을 습격했다.

놈들은 아이와 여자들 위주로 납치했다.

그리고 반항하는 사람들은 단칼에 죽여버렸다.

“크하하!! 모든 것을 유린해라!”

워크라의 명령에 고삐 풀린 화적떼가 소리를 질러댔다.

마을 바닥이 금세 붉은 피로 적셔졌다.

화적들이 습격한 악몽같은 밤은 길고 또 길었다.

마을 안은 여기저기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몇몇 건물들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음심이 동한 화적떼들이 여인을 겁탈하기도 했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마을이 불타오르는 동안 마법기사단은 단 한 명도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이에 워크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게 바로 정보의 힘이지.”

타디드의 말에 따르면 오늘은 성가신 조율 마법기사단이 반정부 집단인 발할라의 지부를 공격하러 가는 날이었다.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었기 때문에 가장 외곽에 위치한 이런 마을까지 신경써줄 순 없었다.

“어차피 천민들은 개돼지쯤으로 보는 귀족놈들이니까.”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여기까지 나오는 마법기사단원은 드물었다.

한 차례 화적떼가 휩쓸 고 간 마을은 그야말로 황폐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 * *

다음 날 평소처럼 마을에 찾아온 아시테르가 들고 있던 물건들을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이봐요… 이봐요……!!”

일꾼들도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달려나갔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 가까이로 다가갔지만 모두 숨을 거둔 상태였다.

검에 베인 팔과 다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참혹한 광경에 일꾼들이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그들에게 이런 장면은 굉장히 낯선 종류였다.

반면 던전에서 온갖 것들을 보고 자라온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들을 살피고 있었다.

“모두 날카로운 것들에 베인 흔적… 마수가 지나갔었나? 아니야… 그렇다기엔…….”

시체들의 상태가 너무도 깨끗했다.

마수들이 다녀갔다면 분명 뜯어 먹히거나 난자된 시체들도 있어야 했다.

놈들은 인간을 먹이쯤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시체들의 피로 냇가 주변도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아아…….”

아시테르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냇가와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자네!! 자네는 왜 여기에 있었어!?”

일꾼 중 한 명이 누군가를 알아보고 외쳤다.

이에 다른 사람들도 황급히 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쓰러져 있는 남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르네마리아에서 일을 하는 일꾼 중 한 명이었다.

“하아… 하아… 아이에게 이걸 주고 가는 것을… 잊어서…….”

그가 손에 힘껏 말아쥐고 있는 것은 작은 나무 장난감이었다.

말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는데 목 부분이 부러져 있었다.

“장난감을 갖고 싶어… 했는데… 후욱!”

사내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님…….”

“네 아저씨!”

“아이들을…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사내의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사내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마수입니까? 혹시 오크나 다른 마수들이 습격이라도 했었나요?”

“화적떼…입니다! 놈들이 밤중에 이곳을… 습격… 했어요!”

사내는 일부러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시테르가 두 눈을 부릅뜨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연히 마수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화적떼라면 일전에 그도 본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때 돈을 주고 모든 것들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간과하고 말았다.

특히나 화적떼는 신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인간들이었다.

사내가 아시테르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들이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분도 같이…….”

“여자라면……?”

“매일 같이 있던… 분이요!”

“아…….”

“제 품안에… 놈들이 넣어두고 간 쪽지가 있습니다…….”

사내의 말에 다른 일꾼이 재빨리 품을 뒤졌다.

그것을 꺼내 아시테르에게 보여주었다.

쪽지의 내용은 지도에 그려진 산으로 혼자 찾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인질들을 구하려면 돈도 함께 가져오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아시테르가 이를 악 물었다.

“결국 돈 때문에 이런 일까지 벌인 건가!”

아시테르가 쪽지를 찢어버렸다.

자신의 할 말을 마친 사내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일꾼들이 말없이 사내의 눈을 감겨주었다.

“여러분들은 여기 남아 이곳의 시체를 수습해주세요.”

“아시테르님 설마 혼자 가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혼자 가면 위험합니다! 놈들이 무슨 함정을 파놓았을지 모르는데! 그러지 말고 마법기사단원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요. 그랬다간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도망갈지도 모릅니다. 저 혼자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아시테르가 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런 아시테르의 표정은 처음이라 일꾼들도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지도에 표시된 산은 머릿속에 확실히 기억해두었다.

일부러 찢어버린 이유는 누군가 지도를 보고 자신을 따라 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일꾼들을 남겨둔 채 아시테르가 길을 나섰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편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가둬둔 화적떼는 일의 성공을 자축하며 고기를 뜯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술은 마시지 마라. 만약 놈이 마법기사들을 데리고 온다면 재빨리 도망가야 한다. 우리가 마법기사들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아하하!! 대장. 근데 그놈이 정말 여기로 올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혼자 여기로 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그냥 그놈이 마을에 있었을 때 한 번 더 급습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요.”

수하들의 말에 워크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놈은 반드시 온다. 왜냐?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지.”

워크라가 가리킨 곳엔 아이들과 린이 묶여있었다.

린도 빈민가에 있다가 그들에게 붙잡혀 온 것이다.

워크라가 린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런 거지같은 곳에 너 같은 보물이 있었을 줄이야. 그 녀석이 왜 자꾸만 거기를 찾아갔는지 알 것도 같구만.”

“아뇨. 당신은 몰라요.”

“으흐흐… 이봐. 내가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하지.”

“저는 당신의 제안 따윈 받아들일 의향 없어요.”

“크하하하!! 그러지 말고 한 번 들어나 보라니까? 나는 그 녀석이 가진 돈의 액수를 먼저 물어볼 거다. 녀석이 적게 불러도 상관없어. 어차피 난 그것의 열 배를 부를 생각이거든. 그리고 선택하게 할 거다. 여기 있는 이 아이들의 목숨인지 그게 아니면 너를 선택할지.”

워크라가 신난다는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자 린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아이들을 택할 거예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왜냐? 너 같이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 애새끼들을 택할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그놈이 아이들을 선택하면 너는 내 여자가 되어라. 하지만 만약 그놈이 널 선택한다면? 그러면 순순히 보내주도록 하겠다. 물론 아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테지만! 크흐흐, 너희들은 그럼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아가겠지. 아이들의 목숨값으로 살아남은 셈이니까.”

“당신들……!”

“아하하!! 그렇게 눈을 뜨니까 더 예쁘구만.”

워크라가 린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음심 가득한 그의 눈이 린의 몸을 훑었다.

“어쨌든 기대하라고.”

워크라는 이만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의 수하들이 입맛을 다시며 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이 묶여 있는 린을 향해 말했다.

“누나…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언니…….”

“엄마아빠 보고 싶어요…….”

한 명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자 다른 아이들도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감옥이 시끄러워지자 화적떼 중 한 명이 검으로 감옥을 때렸다.

“울음 뚝 그쳐라. 그렇지 않으면 이 아저씨가 너희를 먼저 죽여줄 테니까.”

“이… 이익! 하나도 안 무서워!!”

그때 자그마한 아이가 사내를 보며 소리쳤다.

사내아이를 확인한 화적이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안 무섭다고?”

“형이 우리를 구하러 와줄 거야!”

“형?”

“아시테르 형이 그랬어! 아카데미 학생인데 자기는 짱 쎈 사람이라고!”

“으허! 으허허허허!! 그래그래. 근데 제 아무리 아카데미 학생이라도 수십 명을 상대로 이겨내긴 힘들지 않을까?”

“으아아앙―!!”

사내의 위협에 결국 여자아이가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난 애새끼들 우는 게 제일 싫은데… 왜 나한테 여기를 맡으라는 거야?”

“흐에에엥!!”

“야! 조용히 안 해!?”

사내가 감옥 안으로 들어와 여자아이를 더욱 윽박질렀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이 년이!”

사내가 아이에게 결국 손을 올렸다.

그러나 여자아이 대신 그의 손에 맞은 것은 토흐였다.

토흐의 작은 몸이 여자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괜찮아……?”

“토흐…….”

이를 확인한 사내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때 토흐가 뒤를 돌아 사내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조용히 할 테니까 때리지 말아주세요.”

“이 새끼가 근데 건방지게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사내가 발길질로 토흐의 얼굴을 차버렸다.

이를 본 린이 소리쳤다.

“그만!! 아이는 때리지 말아요!! 그만해!!”

묶여 있던 린이 발버둥쳤다.

하지만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토흐부터 시작해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광기 어린 눈의 사내가 아이들을 한 명씩 때리자 몸을 일으킨 토흐가 자신의 몸으로 이를 가로막았다.

“커헉!”

토흐의 작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녀석은 화적의 발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만해요… 그만 때려요!”

“아나 근데 이 새끼가!”

화적이 주먹으로 토흐의 머리를 때렸다.

그러자 토흐가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토흐! 토흐!!”

놀란 린이 쓰러진 토흐를 보며 소리쳤다.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는 토흐를 보며 사내가 웃었다.

“그래도 너는 끝까지 울진 않는구나. 네놈 때문에 다른 놈들은 봐줬다.”

돌아선 그가 린을 바라보았다.

린이 두 눈을 부릅뜨며 화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뭘 봐? 너는 워크라 대장의 명령만 아니었어도.”

화적이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하!? 뭐야 그 자식. 정말 온 거야?”

화적이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이 머무는 산채 입구 쪽으로 한 사내가 걸어왔다.

그를 본 화적들이 눈매를 좁혔다.

“뭐야? 저 새끼 진짜 왔잖아……?”

“크하하하, 병X같은 놈. 진짜로 찾아올 줄이야.”

“뒤에 다른 놈들은 없어?”

“방금 확인하고 왔는데 달고 온 놈들은 없다.”

“그럼 진짜로 혼자 찾아왔단 말이야?”

아시테르가 입구에 도착하자 화적들이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말없이 안쪽으로 걸었다.

그가 마침내 산채 중앙에 도착했을 때, 워크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정말로 이곳까지 찾아온 아시테르를 보며 워크라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야…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시테르의 차가운 눈동자가 워크라에게로 향했다.

“잡혀온 마을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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