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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14화 (114/424)

114화 화적과의 전투 (2)

평소보다 더욱 힘이 넘치고 몸의 상태도 가볍고 좋았다.

지금이라면 그때 해봤던 마법을 다시금 펼쳐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시테르의 마력이 몸 전체에 골고루 퍼졌다.

이어 마나 소드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마력으로 뒤덮었다.

팡!

대지를 박찬 아시테르가 쏜살같이 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시테르의 검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검이 선명한 선을 그을 때마다 화적들의 피가 허공에 튀었다.

“뭐… 뭐야……!?”

“저 새끼 마도사 아니었어!?”

“야!! 공격해!! 저놈 죽여!!”

“마법을 사용해라!!”

대기하고 있던 몇몇 마도사들이 아시테르를 향해 공격 마법을 펼쳤다.

아시테르는 마법으로 그것들을 방어할까 하다가 이내 멈췄다.

아직 몸 전체에 마력을 두르는 이 마법을 사용하면서 다른 마법까지 펼쳐본 적은 없었다.

사실 이 마법 자체만으로도 지난번에 크게 부상을 입고 꺼려했던 마법이었다.

그러니 이 마법을 펼치며 다른 마법까지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놀랍게도 신체가 마법의 부담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이게 린의 마법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검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는 다가오는 화염과 돌멩이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검을 정면에 가져간 아시테르가 다가오는 마법들을 쳐냈다.

공격 마법 속으로 뛰어 들어간 아시테르를 보며 화적들이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피하려고 도망쳐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공격 마법 안으로 뛰어들다니.

이는 곧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아시테르의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공격 마법 속으로 파고든 이유.

그것은 적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뚫고 마도사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아시테르가 검을 휘둘렀다.

“크학!”

“흐업……!”

마도사들이 아시테르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몇몇 화적들이 아시테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것만으로 화적들의 검을 모두 피해버렸다.

“대단해…….”

아시테르의 실력을 본 린이 진심으로 감탄해 말했다.

그녀의 치유마법이 곧바로 아시테르의 상처들을 회복시켜주었다.

아시테르는 정말로 적진에 뛰어들어 혼자서 화적들을 모두 상대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의 전투는 영리했다.

마도사들이 공격을 가하려 할 때는 일부러 적진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면 아군을 공격하게 될까 봐 마도사들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그럴 때 마도사들을 먼저 공격했다.

이어 무기를 든 화적들이 아시테르를 공격해 올 때면 적들이 없는 안전한 곳을 등졌다.

“이스트 왕국은 검술을 버렸다고 들었는데…….”

이를 본 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눈앞에 있는 화적들을 모조리 베어 넘겼다.

그의 움직임이 너무도 빠르고 변칙적이어서 화적들은 제대로 된 힘도 못 쓰고 당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뭣들 하는 거냐!! 저놈 하나 죽이지 못하고!!”

워크라가 손짓하며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남은 수하들은 쉽게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검술 실력을 눈앞에서 보고 두려움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검사가… 저렇게 강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마법 한 번이면 죽는 게 검사들 아냐?”

“검을 든 사람은 마도사를 이길 수 없는데…….”

화적들이 저마다 얘기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마도사들이 모두 아시테르의 손에 당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실력조차 발휘해 보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아시테르가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파고들어 마도사들의 숨통을 모두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뜨거운 숨을 뱉어낸 아시테르가 워크라를 노려보며 걸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워크라가 당황해 소리쳤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당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취한 겁니까?”

“뭐… 뭐……?”

“그깟 돈 때문에?”

“당연하지! 돈이 최고다!! 이 세상에 돈보다 귀한 것은 없어!”

“그래서 제가 당신들에게 돈을 쥐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겁니까!”

아시테르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가 소리치는 도중 워크라의 눈동자가 겁을 집어먹은 척하며 연신 무언가를 확인했다.

아시테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수들 중에도 꼭 있었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그들이 품고 있는 가장 약한 존재들을 노리는 녀석들이.

그 당시 약한 존재에 속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때문에 유미르와 비체는 늘 아시테르를 지키며 싸웠다.

자신은 그 ‘약점’이 되기 싫어서라도 강해지고자 했다.

아시테르는 워크라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시테르가 한순간에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향한 곳은 아이들과 린이 있는 곳이었다.

때마침 린을 붙잡으려던 사내가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왔다.

휘링―

스강!

아시테르의 검이 수평으로 움직이며 사내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어 몸을 돌린 아시테르가 검끝을 세웠다.

하늘로 치솟은 검날이 다른 화적의 몸을 베었다.

핏물이 터져 나오며 허공을 메웠다.

팟!

멈추지 않고 아시테르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화적들이 그의 검을 막아보려 해도 소용없었다.

아시테르의 검이 힘으로 상대의 검을 찍어누르며 어깻죽지를 베었다.

“끄으……!”

화적 한 명이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팍!

복부를 걷어 차버린 아시테르가 순간적으로 화적의 검을 빼앗았다.

이어 아시테르가 검을 수직으로 내리쳐 쓰러진 화적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아시테르가 워크라를 노려보았다.

“이게 당신이 원한 결과입니까?”

“그… 그게… 아… 아으…….”

워크라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몇 남지 않은 수하들은 그 자리에서 병장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화적 동료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속에서 아시테르는 핏물을 뒤집어 쓴 야차(夜叉)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주… 죽는다…! 죽을 거야!”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흐아아―!! 사람 살려!!”

수하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평소의 아시테르라면 분명 이들을 놓아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것도 마법이 아닌 검으로.

사람의 피부를 베고 숨통을 끊는 느낌이 고스란히 손끝을 타고 머리까지 전해져왔다.

거기다 토흐의 시체를 확인하며 터져버린 분노도 아시테르의 이성을 마비시키는데 한몫해버리고 말았다.

아시테르는 맹수처럼 뛰어들어 도망치는 산적들의 목숨을 노렸다.

어렸을 때부터 마수들을 상대로 수많은 실전을 쌓아왔던 아시테르였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꼭 던전에서 마수들을 뒤쫓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당신들은 마수들보다도 못해… 마수들보다 못하다고……!”

그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자비한 검날이 화적들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이들 중 누군가가 토흐를 죽였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망치던 사내의 머리칼을 붙잡은 아시테르가 그대로 목을 베어버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아시테르의 모습에 워크라가 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감히 당신 같은 사람을 몰라보고 이런 짓을 벌였습니다! 제…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드리겠습니다! 저번에 받은 골드와 보석들도 다 토해내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납작 엎드려 빌고 있는 워크라를 향해 아시테르가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아시테르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린이 주변을 살폈다.

이미 이곳은 피바다가 되어버렸고 주변은 죽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이런 광경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순 없었다.

아시테르는 적어도 이런 광경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저번에 들은 아시테르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피해주세요. 어디 한 곳에 모여 있으셔도 좋고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가 계셔도 좋아요. 저희가 곧 찾아뵙겠습니다.”

“네… 네에…….”

“알겠습니다…….”

화적들에게 붙잡혀 왔던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아이들이 울면서 아시테르를 찾았다.

아이들이 애타게 찾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시테르가 워크라의 앞에 섰다.

그가 무릎을 굽혀 워크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미 죽은 토흐와 마을 사람들은요? 당신에게 돈을 받으면 토흐가 살아 돌아올까요? 저와 함께 마을에 찾아왔던 비즈로믈 씨가 돌아올까요? 그게 아니면… 당신들에게 무자비하게 죽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 돌아올까요?”

공허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아시테르의 말에 워크라가 고개를 들었다.

무서울 정도로 초점 없는 눈빛.

차갑게 가라앉은 것이 아닌 메마른 감정의 눈빛이었다.

이를 확인한 워크라가 이를 악물었다.

“나를 죽인다고 해서…….”

그는 미리 허리춤에 가져간 손으로 단검을 빼 들었다.

이를 본 린이 먼저 소리쳤다.

“아시테르 조심해요!!”

“그 놈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휘릭―!

워크라가 단숨에 뛰어들어 아시테르의 눈을 노렸다.

다른 곳보다 시야가 제한되면 워크라에게도 승산은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아시테르는 고개를 젖혀 단검을 피해냈다.

완전히 피해낸 줄 알았건만, 눈 밑쪽이 칼로 베어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아시테르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팍!

아시테르의 손이 워크라의 팔목을 쳐 단검을 떨어트렸다.

이어 그가 다른 손으로 워크라의 팔을 꺾어버렸다.

“끄아아아―!!!”

우드득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워크라가 비명을 토해냈다.

엄청난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그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맞아요. 당신을 죽인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돌아오진 않아요. 그런데 왜일까요. 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기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아요.”

아시테르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시테르를 붙잡고 있던 워크라의 팔목이 잘려나갔다.

이어 검끝이 워크라의 목을 겨눴다.

“사… 살려줘!! 살려달라고!!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

푸슉!

검끝은 사정없이 밀고 들어와 워크라의 목을 꿰뚫었다.

워크라의 목이 그대로 꺾이고 말았다.

발버둥치던 팔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후욱… 후욱…….”

워크라의 죽음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뜨거운 숨을 연신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화적들이 다섯 명이나 더 있었다.

그들을 죽이기 위해 아시테르가 몸을 일으켰다.

붉은 검신이 그들을 겨누기 시작하자 화적들이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망칠 수 없다.

때문에 그들은 살기 위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조용히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한 명의 화적에게로 옮겨졌을 때 누군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해요 아시테르.”

이성이 마비되어 폭주하는 아시테르를 붙잡은 것은 바로 린이었다.

그녀는 검을 들어 올리려는 아시테르를 꽉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흐… 흐이익!”

“으아아―!!”

그때를 틈타 화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끝까지 그들을 쫓았다.

하지만 린은 여전히 아시테르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그만 멈춰요. 다 끝났어요 아시테르.”

린의 목소리에 아시테르가 팔을 내렸다.

그의 잃어버렸던 초점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털썩.

챙그랑―.

아시테르가 그 자리에 주저앉음과 동시에 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아아―!!!”

곧 괴성을 지르며 포효한 아시테르가 괴로움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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