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마법
아시테르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괴로움에 잔뜩 젖은 그를 린이 따스한 손길로 안아주었다.
린의 새하얀 손이 들썩거리는 아시테르의 몸을 토닥여주었다.
“지금 이곳엔 당신과 저밖에 없어요. 그러니 괴로우면 마음껏 울도록 해요.”
린의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아시테르가 또다시 눈물을 보였다.
그가 부르르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니요. 당신으로 하여금 저 사람들을 죽이게 만든 것은 바로 저에요. 그러니 스스로를 원망하지 말고 원망하려면 저를 원망하세요. 당신에게 마법을 건 것은 저니까.”
린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린이 마법을 걸어주었다 한들 자신이 죽이지 않으면 되었다.
하지만 분노에 이성을 잃은 아시테르는 자신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화적들을 죽이고 말았다.
그 속에서 작은 희열마저 느끼고 말았다.
“무서웠어요… 순간적으로 제 자신을 잃는 것은 아닐까… 분노가 저를 지배하고 있는 걸 눈치 챘으면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 처음으로 제 자신을 놓은 것 같았어요…….”
“누구든 그랬을 거예요. 당신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분노하고 화냈을 거예요.”
“그치만 제가… 사람을 죽이고 말았잖아요…….”
아시테르가 피 묻은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수를 죽였을 때와는 달랐다.
그들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
그러니만큼 비체는 특히나 어비스 던전의 마수들이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다.
그래서인지 아시테르는 어렸을 때부터 마수와 인간은 공존할 수 없는 사이라고 믿어왔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관계인 이상 자신은 더더욱 강해져서 마수들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손에 묻은 핏물이 온기가 말라 차갑게 굳어갔다.
화적들을 죽일 때 이들은 마수보다 못한 존재들이라 혼자 되뇌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죄책감을, 무거워지는 마음을 덜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주변의 참혹한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벌인 일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괴로움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때 따스한 온기가 아시테르의 손을 감쌌다.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요…….”
린이었다.
그녀는 아시테르를 보며 함께 울고 있었다.
왜 그토록 그녀가 슬픈 눈을 하고 있는지 아시테르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음은 동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한참을 울던 아시테르가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린도 함께 몸을 일으켰다.
아시테르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아까 전 한 화적이 돌아갔던 장소였다.
등에 죽은 토흐를 업고 있었던 화적은 이곳으로 향했었다.
잡초를 아무렇게나 엮어 놓은 곳 위에 토흐의 시체가 있었다.
토흐의 시체 옆으로 몇몇 다른 시체들도 보였다.
“아…….”
시체들을 확인한 린이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토흐의 시체는 비교적 깔끔한 상태였지만 다른 시체들은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체들은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그 모습을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구더기가 핀 시체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곤 곧바로 몸을 돌려 한쪽으로 향했다.
아시테르는 근처 적당한 것을 잡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시테르… 뭘 하려는 거예요?”
“무덤을 만들어주려고요.”
짧은 대답과 함께 아시테르는 한참을 땅을 팠다.
어느새 린도 함께 아시테르와 땅을 파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그런 린에게로 향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린 당신은 쉬고 계세요.”
“싫어요. 분명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힘들게 땅을 파는 것 아니에요?”
“…….”
아시테르는 다시 말없이 땅을 팠다.
그리곤 하나둘 시체를 옮겨 그 안에 묻어주었다.
구더기가 가득한 시체는 도저히 만질 수 없어 린은 먼발치서 아시테르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틀 동안 모든 시체를 옮겨 묻어준 아시테르가 비석을 세웠다.
다른 이들은 이름 모를 사람이라는 말을 썼지만 오직 한 곳.
그곳에는 토흐라는 이름을 적어주었다.
‘세상 누구보다 맑은 미소를 갖고 있던 아이, 여기 잠들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모든 것들을 함께 한 린이 아시테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아시테르가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신기해서요. 제가 있던 곳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火葬)을 하거든요.”
“그런가요.”
“어째서 사람들을 땅에 묻어준 거예요?”
“예전에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인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며 태어나지만, 죽으면 결국 대지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한 줌의 흙이 되어 새로운 생명이 살아가는 근간이 되어준대요.”
“아…….”
아시테르의 말에 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죽은 화적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았다.
그리곤 자신의 마법으로 그들의 시체에 불을 붙였다.
이에 린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이 사람들은 왜 화장을 하는 거예요?”
“대지의 품에 안길 자격이 없으니까요.”
짧은 답과 함께 아시테르는 화적들의 시체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린은 그런 아시테르의 곁에 함께 서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불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마워요 린.”
“네? 뭐가요?”
“당신의 말이 위로가 되었어요.”
“제 품은 아무나 빌려드리지 않는데 특별히 빌려드린 거예요.”
린이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에 아시테르도 다시 웃음을 보였다.
아시테르의 미소에 린이 함께 웃었다.
“그래요. 그렇게 웃어요. 당신은 웃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아요.”
“제 어머니 말고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네요.”
“어머 그래요? 어머니가 저처럼 미인이신가보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시테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 섞인 말들을 전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린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우열을 가릴 순 없지만 린은 분명 아레나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씨까지도.
이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렇게 대답이 없어지면…. 어쨌거나 저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저한테요?”
“네. 제 목숨을 구해주셨잖아요.”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에요.”
“참. 그런 점이 당신의 좋은 점이에요.”
린이 맑은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살다 보면 오늘 같은 일들이 또 벌어질지 몰라요. 어쩌면 더한 상황들이 펼쳐질지 모르죠. 그래도 오늘을 기억해주세요.”
“오늘의 마음을 기억해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당신만큼은 지금처럼,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아…….”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목적 없는 분노에 잡아먹혀 스스로를 놓지도 말아요. 감히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힘들어도 견뎌내고 이겨내 주세요.”
“이런 것도… 노력이 필요할까요?”
아시테르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노력이 무엇일까.
린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쉽게 짐작해낼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말없이 아시테르를 안아줄 뿐이었다.
“너무 힘들면 조금 더 쉬다 돌아가요. 제가 곁에 있어줄게요.”
“고마워요.”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이 정도도 못해 줄까 봐요.”
그녀의 목소리에 아시테르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참 이상했다.
금방이라도 들끓어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인데 린의 목소리를 들으면 또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아시테르의 귓가에 들렸다.
그동안은 본인만 신경 쓰느라 몰랐는데, 이제 보니 린도 몸을 떨고 있었다.
아마 그녀 또한 이번 일에 많이 놀랐으리라.
그런데도 그녀는 아시테르를 먼저 위로해주고 있었다.
아시테르가 손을 올렸다.
그리곤 린을 꼬옥 껴안아 주었다.
포옹의 힘은 강력했다.
불안과 공포, 두려움도 포옹 앞에선 그 기세를 굽히고 말았다.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면 많은 것들이 안정을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아시테르와 린은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며칠 동안 산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것 좀 먹어봐요. 생각보다 맛있어요.”
아시테르는 어딘가에서 곧잘 먹을 것들을 구해왔다.
가끔은 산짐승들을 잡아와 린에게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대단해요… 너무 맛있어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그쵸? 어머니의 비법이 들어간 거예요.”
린이 맛있게 음식을 먹을 때마다 아시테르가 뿌듯한 미소로 답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있는 동안 여러 얘기들을 나눴다.
주로 얘기하는 것은 아시테르였고 들어주는 쪽은 린이었다.
그녀는 아시테르가 어떤 말을 하던 곧잘 들어주고 반응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시테르는 저도 모르게 린에게 많은 얘기들을 꺼내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거기다 대고 말했죠. 그럼 나랑 내기를 하자고!”
크로마제의 얘기를 할 때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시테르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다 아시테르가 린의 얘기를 물으면 린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요. 지금은 당신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게 더욱 재밌고 좋아요.”
그녀는 자신에 대한 얘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혹시나 말하기 어려운 과거가 있을까 싶어 아시테르도 더는 그녀의 얘기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나서야 아시테르와 린은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제 덕분이랄 것 있나요. 저도 아시테르 당신의 얘기들을 들으면서 너무나 즐거웠어요. 솔직히 많은 것들이 허락된다면 이렇게 앉아서 당신의 얘기만 듣고 싶었을 정도였다니까요?”
“예…? 그 정도였어요?”
“어쩌면 그렇게 얘기들을 실감나게 잘하는지… 거기다 들은 얘기들도 모두 새롭고 좋았어요. 제 주변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었거든요.”
“어쨌든 재밌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정말 놀랍네요.”
“뭐가요?”
“당신은 그 자체로 마법인 것 같아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시테르의 말에 린이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웃는다.
“그냥… 마력을 아무리 사용해도 사람의 기분은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마법을 사용해서도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제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당신은 꼭 마법 같아요.”
“아… 아아…….”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린이 새삼 얼굴을 붉혔다.
태어나 이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린도 이런 묘한 감정은 처음이라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참… 여러모로 꿈 같은 일주일이었어요.”
“꿈 같은 일주일이라… 정말 그렇네요. 저에게도 아시테르 당신을 만난 건 꿈 같은 일로 느껴져요.”
“그렇죠?”
“기분 좋은 꿈…….”
린이 슬며시 미소를 보였다.
아시테르가 떠나기 전 린을 바라보았다.
“정말 같이 안 갈 거예요?”
“네. 저는 따로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이 아쉬워할 텐데…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시테르의 물음에 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 제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러면 그렇게 해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는 제가 잘 말해둘게요.”
“고마워요. 아시테르.”
린이 떠나가는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갔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린은 우두커니 서서 떠나가는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떠나셔야 할 시간입니다.”
“네.”
“그동안 얼마나 찾아다녔는 줄 아십니까.”
“미안해요.”
“조금 전 함께 있던 사내는 누굽니까?”
“친구에요. 아련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