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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22화 (122/424)

122화 다시 이스트 왕국으로

파쿠황에게 가르침은 받고 일주일.

그 일주일동안 아시테르는 홀로 수련에 매진했다.

가끔 마르체니 공주와 함께 노스 왕국 구경을 나섰지만 그때뿐이었다.

이외의 시간은 수련에만 몰두했다.

파쿠황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하루 빨리 온몸에 녹여내고 싶었다.

아시테르가 수련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이자, 마르체니가 그를 위해 나서주었다.

파쿠황에게 따로 부탁해 시련의 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허가한다.”

단 한 마디.

파쿠황의 한 마디에 아시테르는 시련의 길로 안내되었다.

상위 투사들을 길러내는 시련들은 이국 땅의 사람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곳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가 안내 되어진 곳은 추위로 가득한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허기지면 주위에 보이는 마수들을 사냥했다.

그곳에서 아시테르는 무려 한 달을 지냈다.

살을 아리는 추위 속에서 아시테르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발밑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시테르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화륵―!

그가 지나는 길로 불꽃의 길이 피어났다.

이어 아시테르가 주먹을 뻗었다.

파앙―!!

주먹끝에서 화염이 불타올랐다.

그 불꽃을 보며 아시테르가 웃었다.

한 달.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잠도 설치며 거듭한 수련이었다.

그 끝에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파쿠황이 보였던 기술.

아직 그만큼 강대한 위력을 자랑하진 않지만 마침내 그곳으로 도달할 실마리가 보인 것 같았다.

“제법이구나.”

먼발치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파쿠황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와있었던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수련에 집중해 있던 터라 아시테르가 화들짝 놀랐다.

“왕께서 어찌 이곳에…….”

“이곳의 시련은 끝마친 것인가?”

“아… 그게… 사실 시련은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아시테르가 먼발치에 보이는 괴조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서의 시련은 추위를 뚫고 높은 산에 살고 있는 저 괴조를 죽이는 것이었다.

녀석의 부리를 무사히 가져왔을 때 비로소 시련이 끝난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놓고 수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시련을 끝내기보다 이곳에서 더 수련을 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런 아시테르의 생각을 파쿠황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시련보다 수련할 공간이 필요했을 테지.”

“아… 예… 죄송합니다 제 멋대로…….”

“됐다. 그래서 원하던만큼 성취를 이루었나?”

“예.”

자신있게 대답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파쿠황이 웃었다.

그는 은근하게 이 이방인 소년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무언의 가르침.

거기서 과연 이 청년은 어디까지 얻어낼 수 있을까.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그동안 아시테르가 피워내는 불꽃은 신체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헌데 이제는 그 불꽃으로 상대를 공격할 줄 안다.

그가 만들어낸 불꽃의 길은 이 추위속에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듯 말이다.

“마치 그대의 마음을 투영하는 듯 하군.”

“예?”

“아니다.”

파쿠황이 죽어 있는 괴조에게 다가갔다.

그는 죽은 괴조의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이어 그의 굵직한 손이 부리에 닿았다.

콰직!

부리는 단번에 뽑혀 나왔다.

파쿠황은 잘 벼린 투기를 머금은 손으로 부리를 다듬었다.

부리를 좀 더 날카로운 모양으로 다듬은 파쿠황이 곧 아시테르에게 건넸다.

“받아라.”

아시테르가 얼떨결에 부리를 받아 들었다.

그것을 건네주며 파쿠황이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은 울투르라는 새다.”

“울투르…….”

“울투르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녀석들은 저 얼음기둥들에 늘 자신의 부리를 깎는다. 나이가 들어 부리의 날카로움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함이지.”

파쿠황이 울투르의 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물었다.

“그것은 적들을 사냥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다. 울투르의 부리는 적들을 사냥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는데 사용한다. 적들을 사냥하는 것은 녀석들의 날카로운 발톱이지… 이 시련을 통과해 울투르의 부리를 갖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앞으로도 무뎌지지 않게 너의 힘을 잘 가다듬어라.”

“예.”

“무뎌지지 않도록…….”

파쿠황이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는 울투르의 둥지가 있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울투르라는 새가 좋다.”

어쩌면 자신과 닮아 있어서일지 몰랐다.

아시테르는 그 생각을 입밖으로 굳이 꺼내진 않았다.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아시테르 일행은 노스 왕국에서 챙겨준 답례품들과 함께 다시 이스트 왕국으로 출발했다.

이그트는 이미 페시무스의 시련에 들어갔기 때문에 따로 작별을 고할 순 없었다.

마르체니는 기껏 노스 왕국까지 와서 수련만 했다며 아시테르를 나무랐지만, 아시테르로서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여행길이었다.

이곳에서 얻어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이 노스 왕국의 국경지역을 통과할 때까지 노스 왕국의 전사들이 함께 해주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노스 왕국의 투사들은 삼엄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왜 이토록 주변을 경계할까 의심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스트 왕국과 다르게 노스 왕국에는 아직 많은 마수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마수들을 경계한 것이다.

마침 국경지역에 다다랐을 때 수많은 오크떼가 튀어나왔다.

오크들을 목격한 투사들이 전투태세를 취했고, 정령술사들이 함께 움직였다.

정령술사들이 계약한 정령들을 불러내었다.

투사들은 투기를 끌어올리며 오크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인간을 발견한 오크 무리가 마침내 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사들과 정령술사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는 이가 있었다.

“아신테르!!?”

마르체니가 그를 말리려 했지만 게벨이 그녀를 저지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련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런지요. 그동안 계속 수련에만 몰두하지 않았습니까. 무언가 얻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마르체니도 더는 아시테르를 말리려 하지 않았다.

게벨의 말을 들은 투사들과 정령술사들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이미 아시테르는 이그트와 동수를 이루었다고 소문이 퍼져버린 상태였다.

이국땅의 마도사가 상위 전사인 이그트와 무승부를 냈다고 하니, 그들로서도 아시테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긴 했다.

한편 대지를 박찬 아시테르는 단번에 오크 무리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버렸다.

그를 발견한 오크 무리가 산개했다.

놈들은 흉포한 괴성을 지르며 살기 가득한 눈으로 아시테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던전에서부터 마수들과 싸워온 아시테르였다.

이런 광경과 공기는 그 누구보다 익숙했다.

“오크는 오랜만이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시테르가 웃었다.

마수들에게만큼은 그 어떤 자비도 없는 아시테르였다.

화르릉―!!

아시테르의 손에서 불꽃이 뻗어나갔다.

화염구는 양옆의 오크들을 덮쳤다.

이어 아시테르가 주먹을 내질렀다.

화쾅!!!

아시테르의 주먹에 맞은 오크의 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것이 바로 새로 터득한 힘이었다.

아시테르는 멈추지 않고 춤을 추듯 오크들의 사이를 누볐다.

발밑에서 피어난 불꽃이 주변 일대를 화마로 감쌌다.

“세상에…….”

“허어…….”

아시테르의 실력을 본 마르체니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리고 말았다.

이는 게벨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한달 반 남짓.

그 기간동안 아시테르는 분명히 눈에 띌 정도로 성장했다.

성장 속도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모든 오크를 불꽃에 태워버린 아시테르가 옷을 털며 돌아왔다.

그를 본 투사들과 정령술사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상위 전사인 이그트와 동수를 이루었다는 소문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오크 떼를 전멸시키는데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중급 불의 정령을 불러내도 이보다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시테르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며 투사들이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모습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게벨이 곁에서 말을 보태주었다.

“투사들은 강자들을 존중한다. 너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뭐… 어차피 너의 목에 걸고 있는 그것.”

“예? 이거요?”

아시테르가 목에 건 울투르의 부리를 매만졌다.

파쿠황이 선물해준 것인데 함부로 할 수 없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마르체니가 이것을 목걸이로 만들어주었다.

게벨이 그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노스 왕국의 전사이자 투사라는 의미다.”

“예에……!?”

“크흐흐 너는 몰랐겠지만. 파쿠황님은 특별히 네게 노스 왕국의 전사직을 임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저는 이방인이지 않습니까?”

“노스 왕국의 왕께서 허락하신 일에 누가 토를 달겠나?”

“아……!”

“그것은 중위 전사라는 표식이다. 울투르의 부리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하위 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게벨의 설명에 아시테르가 멍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자 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네 녀석이 명령한다고 들어줄 전사들은 없다.”

“아…! 그렇죠? 역시…….”

아시테르가 안심하는 때 투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이런 실력을 지닌 분인 걸 안다면, 하위 투사들은 따를 겁니다.”

“울투르의 시련을 통과하셨다는 것만으로 이미 노스 왕국의 전사나 다름없습니다.”

“시련으로 맺어진 끈끈한 동료니까요.”

그를 시작으로 투사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에 질세라 정령술사들도 그에게 다가와 많은 얘기들을 건넸다.

덕분에 아시테르는 국경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엄청난 인기인이었다.

“이야… 아시테르 너 완전히 출세했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솔직히 나는 네가 자랑스러웠다. 노스 왕국에서도 전혀 꿀릴 것 없이 잘해주었잖아?”

“맞아. 무승부를 낸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졌으면 우리 왕국의 위신이 어떤 식으로든 깎였을지 모르고… 이겼으면 또 상황이 얼마나 불편해졌을지…….”

곁에 있던 기사들도 한 마디씩 거들어주었다.

그동안 아시테르를 은근히 차갑게 대하던 다른 마도사들도 슬쩍 아시테르에게 다가와 여러 가지를 물었다.

주로 그가 어떻게 마법을 익히고 단련해 왔는지였다.

그렇게 온갖 얘기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이스트 왕국에 들어섰다.

노스 왕국 투사들과 정령술사들은 돌아가기 전 인사를 건넸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게벨에게만 따로 인사를 건넸지만, 이번에는 아시테르에게도 따로 인사를 건넸다.

“중위 전사 아시테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들이 돌아가고 마르체니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노스 왕국에서 평안했던 만큼, 돌아가는 길도 평안했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누군가가 움직인 것이다.

그들은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시테르 일행이 원하는 위치에 당도할 때까지 말이다.

슈우웅―!!

탁!

게벨이 멀리서 날아온 화살을 쳐내는 것에서부터 그들의 습격은 시작되었다.

“습격이다!!!”

단 한 마디에 왕실기사단이 신속히 전투태세를 갖췄다.

아시테르도 어느새 마르체니의 곁에 서있었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십수 명의 인영들.

그들 모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복면인들의 가슴팍에 박힌 문양을 보며 게벨이 중얼거렸다.

“발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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