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125화 (125/424)

125화 휴식

노스 왕국에 다녀온 이후, 아시테르는 밤마다 알렌시아와 함께 수련했다.

두 사람은 대련을 통해 서로 성장해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알렌시아도 꾸준히 자신의 전격 마법을 다듬으며 실력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었다.

“기다려. 곧 1등급으로 올라설 테니까.”

“그래. 빨리 함께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

아시테르의 말에 알렌시아가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은 근래 매일같이 만나며 부쩍 친해진 상태.

이제는 서로 말을 놓고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뭐야뭐야? 두 사람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라빈?”

익숙한 목소리에 아시테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곁에 에스파와 데미리우스도 함께 있었다.

“여기서 두 사람이 몰래 수련한다고 해서 찾아와봤어.”

“여기가 그렇게 수련 맛집이라며?”

“두 분이서 몰래 강해지려 하다니… 서운합니다.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들의 말에 아시테르가 알렌시아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한 건지 눈빛으로 물은 것이다.

이에 알렌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두에게 말했어.”

“후후, 그랬구나. 잘했네.”

말과 다르게 아시테르가 입맛을 다셨다.

둘이서만 만나다 보니 밤마다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아쉽게 되었다.

이를 눈치 챈 라빈이 슬쩍 아시테르의 가까이로 붙었다.

“뭐지? 우리가 왔는데 왜 아쉬워하는 눈치지?”

“내가? 아닌데?”

“그런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봤자인데…….”

라빈의 시선이 이번에는 알렌시아에게로 향했다.

이제 보니 그녀 또한 아쉬움이 담긴 눈빛이었다.

“끝까지 추궁해서 묻지 않았으면… 안 될 뻔했어.”

라빈이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동을 칭찬했다.

결국 그날 밤은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까지 수련을 함께 했다.

이들은 모두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가는 승급전을 앞두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성심성의껏 그들의 마법을 살펴봐 주었다.

아시테르가 리더이면서 실력 또한 다른 이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그가 동료들을 가르쳐 주는데 불만을 갖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아시테르가 살피며 가르쳐주는 것이 실력 향상에 더욱 도움이 되었다.

“라빈은 마력의 컨트롤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뿌린다는 느낌이 아니야. 밖으로 쏘아내는 느낌이어야 해. 그리고 에스파, 너는 아직도 발놀림이 약해.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적들의 마법에 당하지 않을 수 있어. 마법 화살을 빠르게 날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중요해.”

아시테르가 이번엔 데미리우스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독 마법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단점들이 있었다.

“데미리우스 형은 독마법을 사용하는데 캐스팅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흐음… 맞아.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긴 했는데…….”

“그렇다면 마력이 흐르는 길을 조금 더 간결하게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게 아니면 마력의 속성 변환을 이런 식으로…….”

아시테르가 눈앞에 직접 보여주며 데미리우스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렌시아가 슬쩍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에스파의 앞에 섰다.

“음?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요?”

“내가 상대가 되어줄게.”

“상대라니?”

“내 전격 마법은 다른 마법들보다 훨씬 더 빨라. 그러니까 내 마법을 피할 수 있는 실력이 되면 다른 마법들은 더 쉽게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건 그런데… 정말 내 연습상대가 되어줄 수 있어… 요?”

“물론.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아시테르와 친구라며.”

“아… 네, 네넵… 응!”

알렌시아가 자청해서 나서며 에스파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라빈이 데미리우스에게 다가갔다.

“그럼 오빠는 나랑 연습해요.”

“무엇을요?”

“저는 움직임이 빠른 편이니까 오빠의 마법으로 저를 붙잡으면 되겠네요.”

“그건… 좀 쉽지 않아 보이는 데요…….”

“쉽지 않으니까 연습하려는 것 아니겠어요?”

“흐음… 좋아요. 그럼 한 번 해볼까요?”

알렌시아와 에스파, 데미리우스와 라빈이 짝을 지어 수련에 들어갔다.

아시테르는 중간에 서서 그들 전체를 살펴보고 있었다.

부족한 점이나 고쳐야 할 부분들이 보이면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동료들과의 수련을 마친 다음날, 아시테르는 빈민촌으로 향했다.

그동안엔 혼자 길을 걸었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알렌시아가 함께 있었다.

“나 혼자만 가도 되는데.”

“나도 궁금해서 그래.”

“별로 재미없을 거야.”

“괜찮아. 간만에 아카데미 밖에서 바람도 쐬고.”

두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르네마리아가 보였다.

그곳을 바라보며 알렌시아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저기서 둘이 같이 밥도 먹었는데.”

“그때가 처음이었지? 둘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게.”

“그렇네. 그때 속으로 얼마나 생각이 많았는지 알아?”

“왜?”

“모르면 됐어.”

아시테르의 순진한 표정을 보며 알렌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는 꼼짝없이 자신이 음식 값을 다 내야 할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아시테르를 보고 르네마리아의 주인은 음식 값을 받지 않겠다 말했었다.

알고 보니 르네마리아를 관리하고 있는 루기아 가문에서 아시테르에게 큰 은혜를 입었단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몰랐다.

알렌시아가 아시테르라는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던 때가.

그 이후로 알렌시아도 아시테르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함께 대회에 출전했던 것이 가장 컸다.

그곳에서 보았던 아시테르의 동료들.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이었다.

어쩌면 아시테르가 그들을 모두 끌어 안아주었기 때문에 그들 또한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가 아시테르에 대해 좋은 얘기들만 전하니, 알렌시아로서도 괜히 아시테르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아시테르를 향해 툴툴거리긴 해도 그것이 깊은 정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임을 알렌시아도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이 이 사람에게 끌리게 하는 것일까.’

앞서 걷는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보며 알렌시아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침 르네마리아에서 나오던 사르바타가 아시테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시테르님!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아…! 사르바타님! 저는 지금 마을로 가는 길이에요.”

“마을이라면… 혹시, 아시린 마을에 가시는 겁니까?”

“아시린 마을이요……?”

처음 듣는다는 반응에 사르바타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이런, 말씀 드린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마을 사람들이 두 분께 감사를 드린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새로이 지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앞 글자를 따서요.”

“그랬군요. 그래서 아시린… 마음에 드는 이름이네요.”

“그렇죠?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마을을 꾸리니까 하늘도 돕는 것인지 올해는 작물까지도 풍년이라고 하더군요.”

“정말요!? 그것 참 기쁜 소식이네요!”

“후후 역시 기뻐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아시테르님의 조각상도 세웠습니다.”

“네? 제 조각상을요…? 아니 왜요?”

“왜긴요. 아시테르님이 그들을 모두 구해주신 거나 다름없으니 영웅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어우 참… 쑥스럽게 왜들 그러실까…….”

아시테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의 반응에 사르바타도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마침 저도 아시린 마을로 가려던 참이었으니 함께 가시겠습니까?”

“네. 좋아요.”

“그런데 여기 이분은…….”

“일전에 봤었죠? 알렌시아라고 해요. 제 아카데미 동료입니다.”

“아아!!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안녕하십니까. 르네마리아를 운영하고 있는 사르바타라고 합니다.”

“체르도네 알렌시아입니다.”

“오오…! 그 유명한 체르도네 가문의 사람이셨군요.”

귀족 가문들의 이름은 거의 다 외우고 있다시피 하는 사르바타였기에 체르도네의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어딘지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가세가 많이 기울긴 했지만, 체르도네 가문은 건국 때부터 함께 한 상당히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중 한 곳이었다.

사르바타는 짐꾼들과 함께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가는 길에 합류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아시테르를 보며 알렌시아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나다니는 동안 마법기사단과 여러 상인들이 아시테르에게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이 새삼 신기했다.

그렇게 도시의 외곽까지 한참을 걸어가자 한 마을이 보였다.

“저기가 빈민촌이라고요……?”

그곳을 확인한 알렌시아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시선에 보이는 곳은 일반 평민 마을보다 훨씬 더 잘 갖춰진 마을이었다.

건물도 모두 새 거였고 아이들도 옷을 잘 갖춰 입고 있었다.

거기다 아시린 마을은 처음 아시테르가 이곳에 왔을 때보다 규모가 더욱 커져있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으며, 놀랍게도 거리를 떠도는 상인들이 마을에 상주해 있었다.

“우와……!”

아시테르도 마을을 보고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토끼눈을 한 것을 본 사르바타가 나름 뿌듯해하며 어깨를 펼쳤다.

“어떻습니까?”

“여기가… 정말 제가 아는 그곳이 맞습니까?”

“네. 놀랍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다 아시테르님 덕분입니다.”

“제가요?”

“예. 그때 그 화적들의 재물을 모두 마을을 위해 사용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는 왕성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이 마을을 위해 여러 약속을 하고 갔습니다. 그 일례로…….”

사르바타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이제 보니 그곳에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서있었다.

“저렇게 병사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치안을 돕고 있습니다. 마을에 돈도 많아지고 치안도 훨씬 좋아지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랬군요… 약속을 잘 지켜주었네요.”

아시테르는 왕성에서 사람을 보낸 이가 누구일지 단번에 떠올릴 수 있었다.

“예?”

“아… 아닙니다.”

“어쨌든 보십시오. 다들 표정부터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사르바타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훨씬 더 밝은 모습으로 뛰어 놀고 있었다.

그 중 아시테르를 발견한 한 아이가 한달음에 이곳으로 뛰어왔다.

“아시테르 형아다!”

“혀엉!!”

“아시테르 오빠!!”

아이의 외침이 시작이었는지 다른 아이들도 아시테르가 있는 곳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 아시테르도 반가운 표정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놔! 내가 먼저 잡을 거야.”

“아니거든!? 아시테르 형은 날 더 좋아하거든!!?”

“무슨 소리야? 아시테르 오빠는 내가 크면 나랑 결혼도 해준댔어!”

아이들은 서로 툭탁거리는 동안에도 아시테르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 모습이 또 낯설고 간지러워 알렌시아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아이들에 이어 어른들도 아시테르를 보자 반가움에 달려 나왔다.

그들은 아시테르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르바타가 뒤로 물러나 있는 알렌시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신기하지요?”

“네? 뭐가요?”

“저 사람들과 저토록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아…….”

“이곳에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은 사실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의 병이 있었을 뿐이더군요. 그리고 그런 마음의 병을 서서히 치유해 주었던 것이 바로 아시테르님이십니다.”

“그랬군요…….”

“솔직히 처음엔 놀라웠습니다. 비록 아시테르님이 천민 출신이라곤 하나, 현재는 마법기사 아카데미 학생이시고 루기아 가문에게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등…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계시질 않습니까? 그런데도 아시테르님은 저들을 돕는데 늘 최선을 다하십니다. 아시테르님의 부탁을 받고 왕궁 사람까지 찾아왔을 때는 정말 경악했었습니다.”

“…….”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분이십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해주시는 분. 그래서 저들도 아시테르님에게 마음을 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르바타는 알렌시아의 곁에서 아시테르의 칭찬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으며 알렌시아는 아시테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처음으로 묘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