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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28화 (128/424)

128화 세아츠리스와의 대화

세아츠리스의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제일 놀란 것은 마르체니 공주였다.

“마… 말도 안 돼…….”

인간을 벌레보듯 바라보는 마녀가, 인간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당황했던 아시테르가 이내 세아츠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지냈어?”

“못 지냈어요.”

“왜?”

“저는 오빠가 죽은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내가?”

놀란 아시테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세아츠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지금은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시테르가 손을 가져가 세아츠리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따뜻한 손길에 세아츠리스도 어렸을 때의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그녀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대기하고 있던 마녀가 입을 열었다.

“세아츠리스님. 아는 인간입니까? 당신을 울리다니… 죽여버리면 되겠습니까.”

“건드리면 내가 먼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마녀가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도 흘깃흘깃 아시테르쪽을 바라보았다.

이는 다른 마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아츠리스의 반응에 그녀들도 내심 놀란 것이다.

마녀들의 반응을 뒤로하고 세아츠리스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발걸음을 이었다.

마녀들이 지나가고 마르체니가 놀란 얼굴로 아시테르를 돌아보았다.

“지… 진짜였어……?”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정말이라니까요.”

“말도 안 돼…….”

마르체니는 벌어진 입이 쉽게 다물어지질 않았다.

세상에 정말로 마녀와 친구로 지내는 인간이 있었다니…….

심지어 마녀쪽에서 오히려 아시테르를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그 모든 광경들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더는 부저할 수도 없었다.

“대체 왜?!”

마르체니가 경악성을 터트릴 무렵, 세아츠리스는 곧바로 마녀들을 이끌고 왕성 내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다름 아닌 군단장 테르세우스였다.

“어서오게.”

“오랜만입니다. 베아릴 대신 제가 오게 되었어요.”

“후후 저는 꽉 막힌 베아릴보다 당신이 오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베아릴은 마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우리 왕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놈이니까요.”

테르세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세아츠리스는 곧바로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꺼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마녀들 중 일부가 마녀의 숲을 빠져나갔다는 얘기였다.

그녀들을 붙잡는데 이스트 왕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얼마든지요.”

“조사해보니 이번 일에는 발할라라는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그들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 왕국에서도 그들의 존재를 주시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그들이 마녀들에게 위해를 가했다면…….”

“가차 없는 응징이 들어가겠군요.”

“네. 결코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녀의 단호한 어조에 테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차를 한 잔 마신 그가 분위기 전환 겸 말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 재밌는 광경을 지켜본 것 같은데.”

“…….”

“아시테르와는 아는 사이입니까?”

“오빠를 아시나요?”

세아츠리스의 물음에 테르세우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기가막힌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마녀와도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나한테는 손자 같은 녀석이라. 녀석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알고 있는데요?”

“둘 다 나의 제자였고, 수하들이었으며, 동료였습니다.”

“그랬군요.”

시종일관 차가운 눈동자를 일관하던 세아츠리스가 처음으로 흥미를 드러내었다.

그녀의 상체가 슬쩍 앞으로 나왔다.

“아시테르 오빠의 부모님과 아는 사이셨다니…….”

“설마… 지금 그런 걸로 제가 다시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요……?”

“맞아요. 다시 보이는 걸요…….”

세아츠리스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을 본 테르세우스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차갑기로 유명한 세아츠리스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니…….

‘아시테르 이놈… 대체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것이냐……!’

테르세우스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는 줄도 모르고 세아츠리스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질 않고 있었다.

“못 보던 사이에 더욱 멋있게 자랐어요.”

“아시테르와는 어떻게 알고 지낸 겁니까?”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에요.”

“예?!”

테르세우스가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어렸을 때 호기심에 이끌려 마녀의 숲을 빠져나온 적이 있거든요. 그때는 마녀의 숲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근처를 지나가던 인간들에게 납치당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아시테르 오빠가 저를 구해줬어요.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

세아츠리스가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먹구름은 아직 걷힐 생각이 없어보였다.

빗줄기는 아직도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시테르 오빠는 그날 비를 처음 봐서. 물 마법사가 마법을 부려 비를 내리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기지 않아요?”

“하… 하하… 그 녀석 답다고 해야 할지…….”

“게다가 밤이 되니까 누군가 불을 끄고 있다고… 지금 생각해봐도 황당하고 웃겨요.”

세아츠리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테르세우스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표정이었다.

“다행이군요. 혹시 몰라 사람을 시켜 아시테르를 이곳으로 오게 했는데.”

“네……?”

이번에는 세아츠리스가 깜짝 놀랐는지 그녀의 두 눈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동그래진 눈을 꿈뻑거리던 세아츠리스가 황급히 거울을 찾았다.

“거… 거울이…….”

“여기 세아츠리스.”

근처에 있던 마녀 한 명이 거울을 건넸다.

세아츠리스는 황급히 자신의 외모를 살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모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녀는 머리칼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그러는 동안 아시테르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

그를 보는 순간 세아츠리스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까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보이며 끌어안았지만,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세아츠리스!!”

아시테르가 먼저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의 인사에 세아츠리스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핀 테르세우스가 이만 몸을 일으켰다.

“내가 또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가 먼저 인사를 고하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떠나기 전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왠지 모르게 네가 부럽구나 아시테르…….”

“예?”

“진심이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인 테르세우스가 다른 마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입니까? 함께 나가시죠.”

“……?”

“무슨 소리를…….”

테르세우스의 말에 마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테르세우스가 나오라며 손짓했다.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줍시다.”

“그럴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우리는 인간들을 백퍼센트 신뢰하지 않아요.”

“끝까지 곁에서 세아츠리스를 지키는 게 우리들의 임무다.”

마녀들의 말에 테르세우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가 이리도 없다.

그의 시선이 세아츠리스와 아시테르를 향했다.

이미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하며 서로에게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주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얘기였다.

“허허이…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잠깐 자리를 비켜주자 이 말입니다. 그리고 세아츠리스와 아시테르의 안전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스트 왕국 내에서 제 시선에 머무는 것만큼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요.”

테르세우스가 자신감에 가득찬 어조로 말했다.

그는 그런 자신감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마녀들이 잠시 세아츠리스의 눈치를 살폈다.

세아츠리스가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어?”

“알겠어요.”

“그럼 잠시 동안만…….”

세아츠리스의 부탁까지 있고나서야 마녀들이 움직였다.

테르세우스는 그녀들을 자연스럽게 옆방으로 안내했다.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부탁해놓을 테니 편하게 대화를 나누렴.”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테르세우스가 한 마디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나가고 나서야 아시테르와 세아츠리스만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세아츠리스가 쭈뼛거리며 아시테르를 흘끔 쳐다보았다.

“저는 오빠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내가? 왜?”

“베아릴의 마녀들이 그랬어요. 고블린들에게 당해 죽어 버렸다고…….”

“아…! 고블린……!”

고블린이라고 말하자 아시테르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시 던전 안으로 들어간 것에서부터 유미르가 분노의 일격으로 고블린들을 모두 죽여버린 것까지.

이후에는 자신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도 얘기 해주었다.

세아츠리스는 단 한 번도 지루한 기색 없이 아시테르의 얘기들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종종 아시테르에 대한 것들을 묻곤 했다.

“그러면 이제는 꿈이 생긴 건가요?”

“응.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 왕국을 지켜내고 싶어.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동료들도 생겼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거든.”

“친구들도 생겼군요…….”

어딘가 씁쓸한 표정이었다.

이내 웃음기를 되찾은 세아츠리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가 될 생각인거에요?”

“맞아. 그럴 생각이야.”

아시테르의 답에 세아츠리스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아시테르를 빤히 바라보다 웃었다.

“왜 그렇게 웃어?”

“역시 꿈이 있는 모습이 더 멋져서요.”

“아……!”

“기억해요? 제가 했던 말.”

“당연히 기억하지.”

“꼭 하고 싶은 것 다 이루세요. 제가 오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세아츠리스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제가 함께 마법기사가 되진 못하겠지만요.”

“마녀는 마법기사가 될 수 없는 건가? 테르세우스 영감님한테 특별히 부탁해볼까?”

“후후 그런다고 가능할까요?”

“아…! 방법이 있어.”

“무슨 방법이요?”

“내가 마법기사단장이 되면. 그때 내가 널 부를게 세아츠리스.”

“……?”

“마법기사단장은 자신이 직접 마법기사단원을 뽑을 수 있거든. 마녀인 너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요?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물론! 가능할거야. 아니지… 안 되려나? 아냐… 안 돼도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볼게.”

아시테르의 답에 세아츠리스도 그제서야 미소를 보였다.

다행이 아시테르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았다.

모습은 한층 더 성장했으나 속은 여전히 순수하고 맑아 보였다.

“다행이에요.”

“뭐가?”

“제가 생각한 오빠의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있어서. 저도 기다릴게요. 오빠가 불러주는 그날을.”

“알겠어. 그때는 꼭 함께 해줘.”

“네.”

세아츠리스와 아시테르가 시선을 마주했다.

우르릉… 우당탕!

그때 한쪽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며 테르세우스와 몇몇 마녀들이 바닥에 엎어졌다.

“크흠……!”

테르세우스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다른 마녀들도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 우린 신경 쓰지 말게.”

“설마… 우리들의 대화를 엿들으신 겁니까?”

“어? 아… 어… 아니… 그게 무슨 얘기를 나누나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여기 마녀들도 상당히 궁금해 했거든…….”

테르세우스가 괜히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마녀들이 세아츠리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세아츠리스님.”

“아니야. 어차피 알고 있었어.”

세아츠리스의 말에 마녀들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그때 테르세우스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충격적인 소식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내가 알기로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보다 나이가 더 많다! 즉, 연상이라는 소리지.”

그의 말에 세아츠리스와 아시테르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순간 어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때 세아츠리스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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