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시련의 던전
세아츠리스와의 만남은 짧았다.
그녀와 마녀들은 곧바로 마녀의 숲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쉽네요…….”
“다음에 또 볼 수 있을 거야.”
“물론이에요.”
세아츠리스의 시선은 아시테르에게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
친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두 사람을 보며 마르체니는 묘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마녀가 뭐가 부족해서 아시테르 같은 사람이랑…….”
“공주님. 세상 일은 모르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도 벌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아시테르에게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마르체니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하겠는가.
이 알 수 없는 기분에 묘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 세아츠리스는 아시테르와 작별을 고하고 이만 마녀의 숲으로 발길을 돌렸다.
홀로 서 있는 아시테르의 곁으로 테르세우스가 다가왔다.
“네 덕분이다.”
“뭐가요?”
“마녀들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준 덕분에 우리쪽에서도 쉽게 제안을 할 수 있었어.”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에게 호감이 있는 덕분에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근데 대단하구나. 마녀의 목숨을 구해주다니. 마녀들은 은혜를 절대 잊지 않는다고 하던데.”
“저 또한 세아츠리스에게 도움을 받았는 걸요.”
“그랬구나. 그나저나 아쉬워서 어떻게 하냐. 이제 세아츠리스가 마녀의 숲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못볼 텐데.”
“괜찮아요. 제가 마법기사단장이 되면 세아츠리스를 부르기로 했으니까요.”
“호오…. 그것 참 바쁜 몸이로구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도 빼내랴… 마녀의 숲에 있는 마녀도 데려오랴…….”
“어…? 그걸 테르세우스 영감님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봐.”
테르세우스가 웃으며 앞으로 걸었다.
아시테르가 그의 뒤를 쫓았다.
“아니… 어떻게 아셨냐니까요?”
“이 몸이 모르는 게 어디 있겠나?”
“허어…….”
“그런 의미에서 네게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주랴?”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오묘한 표정.
테르세우스가 저 오묘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뭔가 불안했다.
“듣자하니 네가 이번에 노스 왕국에 가서 시련을 받았다고 하더구나.”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시는 거에요?”
“다 듣는 귀가 있다니까. 나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말거라.”
“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왕국에도 시련의 던전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
“시련의 던전이요?”
“과거에는 많은 기사들이 도전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곳이나 다름 없지.”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위험하니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곳에 들어가려 하는 젊은 친구들이 없어졌다. 그보다는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겠지.”
“아아…….”
고개를 끄덕이던 아시테르가 다시 물었다.
“시련의 던전에선 뭘 하면 되는데요?”
“후후 그곳 지하 5층에 있는 고어타우로스를 죽이고 녀석의 뿔을 가져오면 된다.”
“그렇게나 간단해요?”
“간단하기는! 고어타우로스는 굉장히 강한 마수다. 거기다 지하 5층으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
“미노타우로스의 뿔만 가지고 오면 되는 거죠?”
“그렇다.”
“근데 시련의 던전을 통과하면 뭐가 있는 건가요?”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근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뛰어넘는다는 느낌이 아닐까.”
테르세우스의 말에 아시테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물질적 보상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 것들이었다.
아시테르에게는 그것이 더 와닿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테르세우스의 말이 더욱 아시테르의 관심을 끌었다.
“시련의 던전은 팀을 이루어 도전할 수도 있다. 5층까지는 최대 6명까지다. 그 이상의 인원으로 공격대를 꾸리는 것은 인정하지 않아.”
“함께 도전할 수 있는 인원은 꼭 아카데미 학생이어야만 하나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만… 너 설마 감옥에 갇혀 있는 그 녀석을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어림없는 소리다. 감옥이 무슨 동네 주점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들락날락할 수 없어.”
“아니요.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어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마녀는 안 돼. 그녀들은 우리 이스트 왕국의 사람이 아니니까. 마법기사도 단장이나 부단장급들은 데려갈 수 없다. 그들은 도전하더라도 5층이 아닌 10층에 도전해야 할 놈들이니까.”
“네. 둘 다 아니에요.”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맴버가 다 꾸려져 있었다.
사실 6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꾸릴 수 있었다.
그가 묘한 웃음을 보이자 테르세우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함께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시간 낭비라며 안 하려 들 테지만 아시테르는 다를 거란 생각이었다.
테르세우스의 생각에 세상에 무의미한 도전은 없다.
아시테르가 시련의 던전에 도전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어떤 형태로든 남을 것이다.
아시테르는 그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테르세우스가 만족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럼 도전 해보는 거냐?”
“네.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후후 그런 도전 정신이 보기 좋구나.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서는 보기 힘든 일이거든.”
“……?”
“특별한 보상이 없으면 하려 하질 않아서 말이다. 사실은 그런 경험 자체가 유의미한 것인데… 쯧쯧…….”
테르세우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는 팀을 꾸리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너의 팀이 어떤 성적을 가져오는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겠다.”
* * *
이스트 왕국에서도 동쪽 외곽에 위치한 시련의 던전.
이곳은 과거 많은 기사들이 스스로를 증명해내기 위해 도전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발길을 주지 않는 장소였다.
잊혀졌던 이 던전의 문앞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이걸 꼭 해야 돼?”
“그래. 특별 수련이라고 생각하자.”
라빈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간단히 답해주었다.
이어 뒤에서 주변을 살펴보던 에스파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시련의 던전에 들어간다니…. 저기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뭐가 있든. 우리가 함께 있는데 무슨 문제야?”
“맞아요. 게다가 이렇게 다같이 모여서 뭔가를 함께 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 아닌가요?”
데미리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 이렇게 전부 모여서 미션 같은 걸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거기다 이번에는 다른 팀원도 있고.”
그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본래 아시테르와 함께 하던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에 더해 이번엔 알렌시아도 이곳에 있었다.
이렇게 다섯 명이서 밤마다 수련을 했으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된 느낌이었다.
“어쨌든 모두 지겨운 얼굴들이라 좋네.”
“말은 그렇게 해도 너는 이미 신나있다는 것 다 안다.”
“내가 뭘?”
“이미 표정에서부터 신나있어 넌.”
“멍청이 에스파 오빠가 뭘 알아?”
“네 말대로 지겹게 붙어 다녀서 이제 표정만 봐도 좀 알 것 같다 야.”
에스파와 라빈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던 데미리우스가 아시테르를 돌아보았다.
“이제 모일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은데… 이만 들어갈까요?”
“아니에요 형. 이번 던전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총 6명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을 더 불렀습니다.”
“한 사람 더요? 누군데요?”
“마침 저기 오네요.”
아시테르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크로마제였다.
그는 던전쪽으로 한달음에 달려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몸이 더 다부져진 모습이었다.
“스―승―님―!!”
멀리서부터 힘찬 함성을 지른 크로마제가 아시테르에게 손을 흔들었다.
척 봐도 앳돼 보이는 그의 모습에 라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아시테르 오빠. 지금 칸이나 자비토 같은 실력 있는 학생들을 데려와도 모자랄 판에…….”
“후후, 걱정하지 마. 크로마제도 굉장히 뛰어난 친구니까.”
“너무 어려보이는데… 아카데미 학생이야?”
“아니. 정확히는 아카데미에 지원할 학생이지.”
“에……!?”
“뭐라고!?”
아시테르의 말에 에스파와 라빈이 동시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려 보이는 것도 모자라 아직 아카데미 학생도 아니란다.
데미리우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쿡쿡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 재밌어요 데미리우스 형?”
“아아 미안해요 에스파. 하지만 뭔가 아시테르 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설마 이런 일에 아카데미 학생도 아닌 사람을 부르다니.”
“기대도 안 했어요.”
알렌시아가 낮은 목소리로 지나가듯 말했다.
벌써부터 크로마제에 대한 기대치가 이렇게 낮았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다들 막상 크로마제의 마법을 직접 보면 놀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크로마제의 마법은 아시테르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스승니이이임!!!”
그 사이 크로마제는 아시테르에게 안겨들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시테르를 올려다보던 크로마제가 헤실거리며 웃었다.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 무척이나 기다렸습니다!”
“왜?”
“왜긴요! 성장한 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함이죠!”
“호오…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단 얘기인가?”
“말하면 입 아프죠. 그날 이후로도 꾸준히 수련실에만 갇혀 살았습니다.”
크로마제의 말투에 자신감이 붙어 있다.
정말로 열심히 수련해왔음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시테르가 수련하는 모습을 제일 가까이서 지켜봤던 크로마제였으니까.
거기다 크로마제의 열정은 아시테르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그거 든든한 말이로구만.”
“이번 시련의 던전에 저를 불러주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 사랑스런 제자! 이 한 몸 바쳐 시련의 던전을 극복해 내는데 일조하겠습니다!”
크로마제도 어비스 던전을 다녀온 뒤로 확실히 성격이 변했다.
가끔은 처음 만났던 모습과 너무 달라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죽을 뻔했던 경험들과 유미르, 비체의 교육방식도 크로마제가 변하는데 한 몫 한 듯 했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루기아 크로마제! 인사드리겠습니다!!!!”
크로마제가 다른 이들을 향해 먼저 자신을 밝혔다.
루기아라는 이름에 알렌시아가 먼저 반응했다.
“루기아 가문? 그렇다면 아시테르에게 배웠다던 학생이…….”
“맞습니다. 그 행운아가 바로 저입니다. 아시테르 스승님 덕분에 저는 새로운 세상을 알았습니다. 아시테르 스승님은 제 인생의 뭐랄ㄲ…….”
크로마제가 다른 말을 더 꺼내기 전에 서둘러 아시테르가 말을 잘랐다.
“좋아. 그럼 이제 다 모였으니 시련의 던전으로 들어가 볼까?”
아시테르의 말에 모두가 눈빛을 달리했다.
과거 이스트 왕국의 기사들이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해내기 위해 도전했던 곳.
마침내 그 던전으로 발을 들일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래서 우리가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은 뭐야?”
“지하 5층에 있는 고어타우로스를 죽이고 그 뿔을 가져올 것.”
“고어타우로스? 이름만 들어도 강할 것 같은데…….”
에스파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라빈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만 문제겠어? 5층이면 그 전에 1층부터 4층까지 뚫고 나가야 한단 얘기잖아.”
“어마무시하겠군요…….”
“시간 제한은 없는 건가?”
“얼마나 걸리던 살아돌아오기만 하면 된다던데?”
아시테르가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아니 어쩜 저런 말을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말하지? 때리고 싶게?”
“야아… 지금이라도 우리 그냥 돌아갈까?”
“후우… 무슨 일이든 아시테르와 함께 하기로 했지만… 어쩌면 그게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억시 우리 스승님!!!!”
제각기 다른 반응을 뒤로하며 아시테르가 서둘러 던전의 문을 열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