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130화 (130/424)

130화 크로마제의 실력

아시테르 일행은 과감하게 시련의 던전 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어두컴컴한 던전 안에서 시큼한 냄새들이 났다.

“으아… 이게 무슨 냄새야…….”

“엄청 지독한 냄새네.”

코를 막은 라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알렌시아도 냄새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반면 이런 냄새에 익숙한 아시테르나 크로마제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런 냄새로 영역표시를 해놓는 놈들은… 고블린들일까요?”

“고블린들이거나… 아니면 그 상위종인 마수들이거나?”

아시테르와 크로마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주변을 살펴보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시테르야 그렇다 치지만 크로마제도 당황한 기색 없이 주변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이들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뭐야…? 귀족 가문에만 있었을 애가 뭐 이렇게 자연스러워?”

“그러니까 말이야…. 잔뜩 인상 쓰고 있는 우리들만 이상해지네…….”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요?”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크로마제가 피식 웃었다.

그가 어깨를 한 차례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러분들과 다릅니다.”

“뭐……?”

“뭐가 다른데요?”

“저는 이미 아시테르 스승님과 뜨거운 열정으로 수련을 함께 한 사이입니다. 어디에서? 바로 사람이라곤 우리 둘밖에 없는 던전에서 말이죠. 하아… 그때가 정말 행복했는데… 왜 몰랐을까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사람은 어째서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까요…….”

크로마제의 얘기를 들은 라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 단 둘이? 둘이서 수련을 했다는 말이야!?”

“둘이서 함께 있었다니…….”

라빈과 알렌시아가 동시에 말했다.

그녀들의 놀람 포인트를 보며 크로마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하아… 고생 많았겠다. 그치?”

에스파가 크로마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크로마제가 그런 에스파를 돌아보았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힌다.

그것을 보며 에스파는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크로마제는 자신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느끼며 희미하게 웃었다.

“어라… 이것은 눈물……?”

그들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도 어이없어 하는 얼굴이었다.

“너희들… 너무 긴장감 없는 것 아냐?”

“반대입니다 아시테르. 다들 저렇게 긴장을 풀려는 거에요. 보기엔 저래도 다들 엄청 긴장한 기색들입니다.”

데미리우스가 아시테르의 곁에 붙어 말했다.

이제보니 그의 얼굴도 살짝 경직되어 있었다.

“데미리우스 형도 긴장되나 보네요?”

“당연하죠.”

“적당한 긴장감은 좋지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마침 저기 몸 풀 만한 상대들이 있네요.”

드디어 던전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마수와 마주했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고블린들이었다.

“뭐야!? 겨우 고블린들이야? 이 정도는 제가……!”

크로마제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휘릭.

슈파아앙―!!

뒤에서 마력 화살 여러 개가 동시에 날아갔다.

마력 화살들은 정확히 고블린들의 미간에 꽂혔다.

작은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고블린들이 절명하고 말았다.

“어?”

크로마제가 아직 마력을 끌어올리기도 전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마력 화살의 속도가 빨랐다.

마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이미 마력 화살을 쏠 정도라니.

크로마제는 에스파를 다시 보았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에스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블린 동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장비를 갖춘 녀석들도 있었다.

“갑옷을 입고 있는데……?”

“고블린들은 다른 종을 보며 학습을 하기도 한대. 아마 배운 거겠지.”

“아… 그래서……?”

라빈의 말에 아시테르가 답해주었다.

아시테르가 조용히 고블린들을 살폈다.

앞에는 무장한 녀석들이.

뒤에는 나무지팡이를 든 주술사들이 있었다.

고블린 주술사까지 있다는 얘기는 어중간한 고블린들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래봤자였다.

옛날이었다면 저런 고블린들의 모습에 긴장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시테르나 다른 동료들이나 수준이 달랐다.

고블린들은 자신들에게 비벼볼 수준도 아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라빈이 먼저 앞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몸 좀 풀게!”

라빈이 고블린 무리 사이로 파고들며 자신의 뼈를 꺼냈다.

크로마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 방금… 몸에서 뼈가…….”

“라빈의 마법이야. 자신의 뼈를 사용하는 것.”

“아니 세상에 어떻게 저런 마법이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게… 근데 지금 보고 있잖아?”

에스파는 크로마제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처음 봤을 때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때는 속이 울렁거려 토할 뻔했는데, 크로마제는 그래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뒤에도 있어요.”

알렌시아가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서는 놀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놀은 들개처럼 생긴 마수들이었는데, 고블린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자신들의 영역을 중요시하는 마수들이었다.

고블린과 놀의 조화라.

고블린들과 다르게 놀은 시체를 뜯어먹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아마 고블린들의 시체도 마찬가지.

반면 고블린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종이 발을 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상위 포식종이면 영역을 포기하고 도망치지만, 아무래도 놀은 싸울만하다 여긴 모양이었다.

“이제 보니 얘네들이 영역다툼 하는 곳에 우리가 들어온 모양인데?”

“그럼 어떻게 해?”

“뭐 별 수 있나?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곳을 접수해야지.”

아시테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렌시아가 전격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을 가로지른 전격은 단숨에 놀들을 덮쳤다.

파콰앙!!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마리의 놀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엄청난 위력에 크로마제가 놀라고 있었다.

“전격 마법!!!”

저렇게나 빠르고 위력적인 마법이라니……!

크로마제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살핀 에스파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닮았어…! 놀라울 정도로 아시테르와 닮아 있어!”

“아니야… 저 녀석… 나를 따라하고 있는 거야.”

아시테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에 에스파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대체 왜!?”

“그건… 나도 잘 모르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라빈과 알렌시아가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했다.

데미리우스나 다른 사람들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뭐… 이 정도면 할 만하지.”

뼈를 다시 몸속으로 돌려보낸 라빈이 웃었다.

알렌시아도 힘든 기색하나 없었다.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에 크로마제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역시 스승님의 동료분들! 굉장하십니다!”

“뭐야? 갑자기 그런 말을 하고?”

“처음에는 우리를 무시하는 말투 아니었나……?”

라빈과 에스파의 말에 크로마제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그랬을 리 없습니다. 저는 단지 늘 궁금했거든요. 아시테르 스승님의 동료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앞으로 함께 할 저의 동료분들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야 그건 우리가 정해. 네가 우리와 함께 할 만한 자격이 되는지 말이야.”

라빈이 일부러 톡 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쩌면 이 던전은 제 입단 테스트가 될 수 있겠어요!”

“뭐……? 입단 테스트…? 너 아직 아카데미 학생도 아니잖아? 일단 아카데미부터 합격하는 게…….”

“제가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순간 파란이 일겁니다.”

“무슨 파란이?”

“새로운 역사를 쓸 거거든요. 아시테르 스승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실적을 내야 다른 마법기사단 단장님들이 저를 탐내지 않겠습니까? 그때 시원하게 외칠 겁니다. 저는 사실 가고자 하는 마법기사단이 있습니다!”

마치 그때의 상황인 것처럼 크로마제가 크게 외쳤다.

그리고선 아시테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발…….”

“저는 아시테르 스승님이 계신 마법기사단에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말이죠.”

결국 저 말이 입밖으로 나오자 아시테르가 시선을 피해버렸다.

“크하하하!!”

“으하… 으하학!!”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크로마제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그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시테르의 모습도 웃겼다.

“그런 얘기는 되었고… 이제 다시 출발하자.”

아시테르의 말에 모두가 걸음을 옮겼다.

1층은 무난했다.

그들을 위협할 만한 마수들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대부분 고블린 같은 하위종 마수들이 전부였다.

2층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오크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정도 수준이었다.

오크들 수십 마리가 몰려와도 아시테르 일행에게는 별다른 해를 미칠 수 없었다.

“이 기세면 금방 5층까지 갈 수 있겠는데?”

“그러니까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흐음… 괜히 겁을 집어먹었던 건가?”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그들 모두 상태를 점검했다.

딱히 점검이랄 것도 없었다.

다들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들이었으니까.

그들은 이곳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바로 3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3층에 도착하자마자 이제야 제대로 된 던전이 시작되었다.

크와앙!!

그들의 앞에 나타난 마수.

얼굴은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하반신은 인간의 것이었다.

“저게 뭐야……?”

“나도 모르지…….”

“라이칸스로프… 늑대인간입니다.”

데미리우스가 마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마주한 마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이었다.

크르릉…….

낮게 으르렁거리던 라이칸스로프가 아시테르 일행을 보며 침을 흘렸다.

라빈이 미간을 찌푸렸다.

“쟤 지금 우리 보면서 군침 흘리는 거야……?”

“좋은 먹잇감이니까…….”

“모두 긴장해.”

알렌시아가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총 다섯 마리의 라이칸스로프가 아시테르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제가 나설 차례인가요!”

그동안 달리 나설 자리가 없었던 크로마제가 팔을 걷으며 나섰다.

“야 꼬맹이. 가만히 있어.”

“그래. 위험하니까 물러나 있어 크로마제.”

라빈과 에스파의 만류에도 크로마제가 웃음기를 띄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두 손에 갈색빛 마력이 뭉쳤다.

“입단 테스트 보러 왔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어디 실력 한 번 볼까? 그동안 얼마나 늘었는지 말이야.”

“옙!”

크로마제가 마력을 움직였다.

그 순간 라이칸스로프도 몸을 움직였다.

놈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당황했을 테지만 크로마제는 달랐다.

“스승님이 훨씬 더 빠르네.”

쾅!!!

라이칸스로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모래벽 때문이었다.

크로마제는 모래 벽으로 간단하게 다섯 마리의 라이칸스로프를 막아냈다.

이어 그의 마력을 따라 허공에 모래가 일었다.

모래는 곧 파도처럼 밀려들어 라이칸스로프를 덮쳤다.

모래에 뒤덮인 라이칸스로프들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소용없지.”

크로마제가 마력을 불어넣자 모래가 압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두두둑―!!

라이칸스로프의 몸이 꺾이는 소리가 여기까지 적나라하게 들렸다.

놈들의 피가 곧 모래를 적셨다.

이어 바닥에서 솟구친 모래가 라이칸스로프의 몸을 꿰뚫었다.

키에엥―!!

비명을 지른 녀석이 휘청거렸다.

동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 나머지 라이칸스로프들이 크로마제를 노렸다.

하지만 미리 바닥에 모래를 깔아놓았던 크로마제가 웃었다.

모래들이 움직여 라이칸스로프의 발목을 붙잡았다.

“잘 가고.”

아시테르를 따라 마수들에게만큼은 자비가 없는 크로마제였다.

그의 손짓에 라이칸스로프들의 발목이 부러져나갔다.

이어 모래송곳이 놈들의 몸을 꿰뚫었다.

혼자서 라이칸스로프들을 모두 죽인 크로마제의 실력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물론입니다! 스승님!!!”

언제 그랬냐는 듯 크로마제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