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이터널 골렘
다른 일행들과 나뉘고 아시테르는 알렌시아와 함께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길을 걸었다.
갈림길 같은 것 없이 쭉 이어진 길이라 걸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마수들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 앞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아시테르.”
“응?”
“너는 마법기사단 단장이 될 거라고 했지?”
“그렇지.”
“그리고 나선?”
“그리고 나서?”
“응. 그 이후로는 뭘 하고 싶어?”
알렌시아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법기사단장이 된 후라…….
딱히 그때를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또 무언가를 해야 할까? 동료들과 함께하고, 이 아름다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데.”
“그렇구나.”
“너는 또 다른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아시테르의 물음에 알렌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나의 가문을 다시 일으킬 거야.”
“체르도네 가문을?”
“응. 너는 잘 모르겠지만… 힘을 잃은 귀족만큼이나 비참한 것은 없어.”
알렌사아의 표정이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아마도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녀는 어떤 기억들을 갖고 있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갖은 멸시와 조롱. 무시와 은근한 따돌림. 그동안 내가 당해왔던 것들이야.”
“네가……?”
“응. 그래서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어.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랬구나…….”
“힘을 잃은 귀족은 발톱과 이빨이 빠진 맹수 같아.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과거의 영광에만 갇혀 사는…. 그렇게 초라하게 늙어가는 느낌이었어. 왕국에선 아무런 입김도 내뱉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귀족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무리하고 또 무리하고…….”
알렌시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 돈이 부족한데도 사치품은 꾸준히 사들인다.
다른 귀족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체르도네 가문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서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런 와중에 사치품들을 사들인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조롱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들만의 자존심일 뿐이었다.
그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던 체르도네 가문은 결국 다른 것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바로 마법기사단장.
마법기사단장을 배출해 낸 가문은 명예를 얻게 된다.
또한 왕성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중심부의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을 수 있게 된다.
외곽으로 밀려나지 않고 중심으로…….
마침 그럴 때 두각을 드러낸 것이 바로 알렌시아였다.
그녀의 전격 마법은 위력적이고 뛰어났다.
거기다 알렌시아는 재능까지 갖고 있었다.
자연스레 가문의 기대가 알렌시아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알렌시아 또한 성장하면서 자신의 가문이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자신이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알렌시아의 마법이 본격적으로 뛰어남을 드러내고, 칸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서 몇몇 귀족들이 체르도네 가문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알렌시아는 처음에 그것이 자신의 실력 덕분인 줄로만 알았다.
아카데미에서도 거침없는 승급을 이어갔다.
이 기세라면 금세 마법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금방 부단장의 자리를 꿰찰 것이라 말했다.
그렇게 순탄한 대로를 걷다 보니 자연스레 귀족들이 자신과 체르도네 가문에 몰린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오만에 불과했다.
귀족들이 체르도네 가문에 접근한 이유는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바로 칸의 존재.
이스트 왕국의 5대 가문 중 하나인 오스카 가문의 아들.
차기 오스카 가문의 가주직에 오를 사내이며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바람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
그의 존재가 귀족들을 체르도네 가문에게까지 이끈 것이다.
칸과 알렌시아가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래를 점친 몇몇 귀족 가문들이 선수를 쳤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알렌시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뱉어낸 것 뿐이다.
‘나의 실력을 인정 받은 것이 아니었어…….’
실력을 인정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칸과, 아니 오스카 가문과 연결될 체르도네 가문에 연줄을 대놓고 싶었을 뿐이다.
거기까지 깨닫고 알렌시아는 자연스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칸의 존재감을 이길 수 없다.
오스카 가문에서 태어난 것도 모자라 세련된 바람 마법까지 사용하는 칸을 보며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사내의 곁에 머물러 있다간 자신은 점점 묻혀버리고 만다.
칸과 함께 하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아버리게 되고 말 터였다.
이는 자신의 가문 또한 마찬가지.
체르도네 가문도 ‘오스카’라는 거대한 이름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게 될 뿐이다.
칸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더 이상 그의 마음은 그녀에겐 답답한 새장처럼 다가왔을 뿐이었다.
자신을 가두는 새장처럼.
비상을 꿈꾸게만 할 뿐 현실은 높이 올라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답답한 새장 말이다.
그러던 중 미션에서 벌어진 일로 징계를 받아 마침내 칸의 팀을 나올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전했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알렌시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문의 부흥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 했으니까.
설사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다른 사람들이 비웃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칸의 동료라는 쉬운 길을 놔두고 왜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했냐는 가문의 원망을 사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자신 있었으니까.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때 아시테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알렌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뭐……?”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도와줄게.”
“네가 어떻게 날 도와줘?”
“뭐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알렌시아는 아시테르의 눈빛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을 것 같은 눈빛.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 보였다.
“너는 날 이해하지 못해.”
“맞아. 내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리고 이해해줄 순 없어. 하지만 공감하려 노력해볼 순 있으니까.”
“공감이라…….”
알렌시아가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야 칸과 아시테르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칸은 알렌시아의 상황을, 기분을 이해하고 있다며 선뜻 말한다.
그리곤 다 안다는 투로 자신이 길을 제시한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잘 짜여져 있는 길을.
하지만 아시테르는 달랐다.
그는 알렌시아의 마음을 알아주려 한다.
언제나 중심이 자신인 칸과 다르게 아시테르는 때로 알렌시아를 먼저 생각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늘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그래서 한편으로는 거북하면서도 아시테르가 편했는지도 몰랐다.
이런 관심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거북했고, 그런 관심 덕분에 편했다.
어쩌면 아시테르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이런 아시테르의 태도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야 해.”
“알겠어. 늘 곁에서 응원할게.”
아시테르의 말에 알렌시아가 웃었다.
마음 편한 웃음.
그의 따뜻한 말에 괜히 미소가 베어나왔다.
“고마워.”
그때 아시테르가 알렌시아를 멈춰 세웠다.
두 사람 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골렘이었다.
“이게 뭐야……?”
녹빛이 무성한 골렘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시테르가 그것을 살폈다.
“골렘 같은데……?”
“이건 수호 골렘 같은데……?”
“수호 골렘이라고? 여기에 뭔가 지킬 것이 있는 건가?”
치잉―!
그때 골렘의 두 눈에 빛이 들어왔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아아!?”
황급히 뒤로 물러난 아시테르가 골렘을 지켜봤다.
골렘은 주먹을 움켜쥐며 아시테르쪽으로 돌진했다.
“우리를 침입자로 인식한 모양이야!”
“침입자는 맞긴 한데… 이거 어떻게 하지?”
“일단은 우리가 죽지 않으려면 골렘부터 쓰러트려야겠지?”
골렘의 공격은 단조로웠지만 파괴력만큼은 상당했다.
놈은 계속해서 아시테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휘릭!
주먹을 피한 아시테르가 화염을 만들어내었다.
화르릉―!!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화염이 골렘을 격했다.
이어 알렌시아의 전격 마법도 골렘을 때렸다.
하지만 놈은 멀쩡한 모습으로 계속 움직였다.
“이 정도로는 어림 없다는 얘기인가!?”
아시테르가 발 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화릉!!
불꽃이 타오르며 아시테르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마침 좋은 상대가 생겼으니, 노스 왕국에서 익힌 힘을 시험해볼 차례였다.
아시테르의 마력이 손끝으로 모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륵―
피어난 불꽃은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아시테르의 주먹이 골렘의 중심부를 가격했다.
퍼엉!!
휘콰아앙―!!
덩달아 뻗어 나간 불꽃이 골렘을 꿰뚫을 것처럼 쏘아져나갔다.
불꽃은 더욱 기세를 키우며 골렘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알렌시아도 넋 놓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진 않았다.
그녀 또한 뇌신의창을 만들어 골렘에게 날렸다.
파콱!!!
창이 골렘의 머리에 박혔다.
허공에 한 차례 몸을 띄운 아시테르가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해치웠나!?”
그러나 기대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불이 붙고 전격이 머리를 그을렸음에도 골렘은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엄청 단단하네 저거…….”
최선을 다한 공격을 연거푸 퍼부었다.
하지만 골렘은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콰앙!!!
골렘의 주먹이 벽을 때렸다.
그 충격에 천장에서 돌 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는 돌 무더기를 피하면서 골렘의 공격까지 피해야 했다.
화르륵―!
거센 화마가 골렘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헛수고에 불과했다.
“파이어 골렘을 만들어준 느낌이네 이거…….”
헛웃음밖에 새어 나오질 않았다.
엄청난 단단함에 아시테르의 머리도 덩달아 복잡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골렘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힘든 상황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방법은 늘 존재한다.
“생각해내라… 생각해 내야 한다!”
아시테르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가 지나다니는 길로 불꽃이 생겨났다.
아시테르가 무언가 하려는 것처럼 보이자 알렌시아가 전격 마법으로 골렘의 시선을 분산시켜주었다.
파바바방!!
전격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골렘은 알렌시아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녀석의 뒤를 점한 아시테르가 마력을 한손 끝에 집중했다.
“흐아아아압―!!!”
불꽃의 추진력까지 더해 아시테르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휘콰아앙!!!
거친 폭발과 함께 골렘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이번엔 데미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최선을 다해 마력을 끌어모은 보람이 있었다.
“됐어!!”
이를 목격한 알렌시아도 기쁨에 소리쳤다.
부우웅―
그러나 골렘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녀석은 육중한 팔을 들어 알렌시아를 공격했다.
놀란 알렌시아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알렌시아!!”
그녀가 위험한 것을 발견한 아시테르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대지를 박찬 아시테르가 쏜살같이 달려나가 알렌시아를 밀쳤다.
“아……!?”
알렌시아의 몸이 한 바퀴 뒹굴었다.
쓰러져 있을 시간이 없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그녀가 아시테르부터 찾았다.
“아시테르!?”
“흐아…! 흐으…….”
아시테르는 한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주먹이 닿기 직전 골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계속해서 빛나던 녀석의 눈이 시꺼멓게 죽어버렸다.
골렘은 그 자리에 멈춰있다.
“후아아… 후아아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아시테르가 연거푸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했다.
놀란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질 않았다.
“마력이 다한 건가……?”
“그런가 봐. 진짜 엄청난 타이밍이었어…….”
무서울 정도로 단단했던 골렘이었다.
골렘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하자 알렌시아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