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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36화 (136/424)

136화 고어타우로스와의 전투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합류하면서 팀은 다시 완전체가 되었다.

라빈 일행은 그동안 많은 전투를 겪었는지 몰골들이 말이 아니었다.

“진짜 마수들이 끝도 없이 밀려 드는데… 아아… 이러다 스승님도 못 보고 지쳐서 먼저 죽겠구나… 싶었다니까요!?”

길을 걷는 동안 크로마제가 앓는 소리들을 뱉어내었다.

아시테르는 그런 크로마제의 귀여운 투정들을 받아주면서도 앞을 주시했다.

크로마제의 말에 섞여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푸르르……!”

이카루스도 뒷걸음질 치며 전방을 경계했다.

“모두 준비해!”

아시테르가 다른 일행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그들은 이미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는 중이었다.

데미리우스와 크로마제가 중심에 섰고 에스파가 후방으로 물러났다.

아시테르와 라빈이 가장 최전방으로 나섰으며 알렌시아가 그 뒤에 섰다.

“뭐가 올진 모르겠지만 꽤 깊이 들어왔으니 방심하지마.”

“알겠어!”

“응!”

“네!”

“알겠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대답했다.

쿵! 쿠웅!!

이어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엄청난 덩치의 마수였다.

황소를 닮은 얼굴에 양옆으로 우뚝 솟은 뿔.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신체는 질긴 가죽으로 뒤덮여 있다.

녀석이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아시테르는 눈앞에 나타난 마수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르세우스가 말한 모양새와 똑 닮았다.

“드디어 만났구나… 고어타우로스……!”

“쿠워어어-!!!”

인간들을 발견한 고어타우로스가 포효했다.

녀석의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고어타우로스는 커다란 뼈를 높이 들어 올렸다.

이를 본 에스파가 헛웃음을 지었다.

“야… 쟤도 뼈를 들고 있는데……?”

“쟤는 나랑 다르잖아. 나는 내 뼈를 사용하는 거고… 쟤는 죽인 놈의 뼈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거고. 엄연히 달라 이건.”

쿠웅!!!

그들의 사이로 고어타우로스의 공격이 떨어졌다.

아시테르의 불꽃과 라빈의 뼈가 동시에 고어타우로스를 때렸다.

고어타우로스가 다른 팔로 마법을 막아내었다.

녀석의 두 눈동자가 아시테르와 라빈을 쫓았다.

그 틈을 타 뇌신의 창이 고어타우로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릉!!

충격이 있었는지 고어타우로스가 휘청였다.

그러나 녀석은 곧 중심을 잡고 알렌시아쪽을 쳐다보았다.

놈이 근처의 바위를 들어 알렌시아에게 던졌다.

“크로마제!!”

“네!”

대기하고 있던 크로마제가 모래를 움직였다.

커다란 방패를 형성한 모래에 바위가 막혔다.

알렌시아를 보호한 크로마제가 이어 다시 모래를 움직였다.

그의 모래가 고어타우로스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고어타우로스는 그것이 가소롭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발을 움직였다.

모래가 발을 붙잡았지만 놈은 편하게 움직였다.

“뭐… 뭐야……!?”

행동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고어타우로스를 보며 크로마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테르가 불꽃을 일으켜 고어타우로스의 앞을 막아섰다.

“당황하지마!! 크로마제는 마법으로 저 녀석의 공격을 막는데 집중해. 에스파 너는 계속해서 놈의 빈틈을 노려!”

아시테르의 말에 에스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빈틈은 아시테르와 라빈이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는 고어타우로스가 아시테르와 라빈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동안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이는 알렌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에스파의 마력 화살이 고어타우로스의 몸에 꽂혔다.

“쿠워어어-!!!”

고어타우로스가 크게 소리치자 몸에 박혀 있던 마력 화살이 부서졌다.

녀석은 계속해서 자신의 가죽에 상처를 내는 라빈을 붙잡기 위해 움직였다.

팡!!

대지를 박차자 놈의 몸이 공간에 빨려 들어가듯 튀어 나갔다.

그 속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라빈도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킬 정도였다.

크로마제가 뒤늦게 모래를 일으켰다.

그러나 고어타우로스는 모래를 뚫고 지나가 라빈을 공격했다.

녀석의 커다란 손아귀가 라빈을 때렸다.

거친 타격음과 함께 라빈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아……!”

고어타우로스의 연속적인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동시에 움직였다.

알렌시아의 전격이 고어타우로스의 몸을 때렸고 아시테르가 몸을 날려 라빈을 데리고 나왔다.

“괜찮아?”

“안 괜찮아… 너무 아픈데.”

공격이 닿기 전 뼈를 내보내 충격을 흡수했는데도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라빈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아무래도 다리쪽의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아시테르가 그녀를 뒤로 물렸다.

“잠시 쉬어.”

“하지만…….”

“여기서 애써 무리할 필요는 없어. 오늘 실패하면 내일 다시 도전하면 돼.”

아시테르의 말에 라빈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이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크로마제의 모래 마법과 에스파의 화살 때문에 고어타우로스도 움직임을 멈출 줄 알았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화근이었다.

“제길…….”

아시테르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고어타우로스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움직임은 고어타우로스가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시테르는 고어타우로스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계속해서 반격을 가했다.

“저기!!”

에스파가 뒤쪽을 가리켰다.

고어타우로스보다는 몸집이 작은 인간형 마수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이때를 기다린 것처럼 데미리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저 녀석들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그의 양손에서 독무가 뻗어 나갔다.

데미리우스의 독 마법 때문에 마수들의 전진이 늦어졌다.

그 틈을 타 에스파가 엄청난 속사 실력을 보여주며 마력 화살을 날렸다.

고어타우로스만큼은 아니지만 놈들의 가죽도 상당히 질겼다.

때문에 에스파의 화살이 놈들의 몸에 꽂히긴 해도 치명상을 입히진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라빈이 크게 소리쳤다.

“에스파 오빠! 놈들의 눈이나 목쪽을 노려!”

“어!? 알겠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에스파가 화살을 비틀었다.

공간을 누비는 그의 화살은 어김없이 눈과 목에 명중했다.

사실 던전에 들어온 뒤,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잠도 편안하게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에스파는 놀라운 명중률을 선보이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

그는 분명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라빈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몸의 통증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더욱 괴로웠다.

거기다 크로마제는 부상당한 자신까지 챙겨주고 있었다.

“치잇… 이게 무슨 꼴이야.”

그렇지 않아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에스파와 다르게 자신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정체되어 성장이 멈춘 느낌.

이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아시테르가 시련의 던전에 도전하자고 제안할 때도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반겼다.

이곳에 들어와 애쓰고 또 애썼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꼴이었다.

“정신차려 라빈… 이렇게 있으려고 이곳에 도전한 게 아니잖아……!”

마수들의 공격에 점점 동료들이 다치고 여기저기 핏물이 튀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라빈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더는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순 없었다.

하지만 데미리우스가 이를 말렸다.

“무리하지마요 라빈.”

“하지만……!”

“우리를 좀 더 믿어줘요.”

데미리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와 에스파가 주변 마수들을 정리하는 동안 크로마제는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를 서포트 해주는 역할까지 자처했다.

확실히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는 강했다.

두 사람의 힘만으로 고어타우로스를 압박하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특히나 아시테르의 화염은 공격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한 위력을 드러냈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승기는 확실해졌다.

알렌시아의 전격에 고어타우로스의 피부가 갈라졌고 타오르는 화염이 놈의 몸 여기저기를 불태웠다.

그런 와중에도 버티고 서있는 고어타우로스를 보면 기가 질릴 정도였다.

더군다나 한번씩 가해오는 거센 공격들은 크로마제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위험할 뻔했다.

세 사람이 고어타우로스를 상대하는 동안 에스파는 고어타우로스의 급소로 보일만한 곳에 화살을 욱여넣었다.

거기다 데미리우스까지 가세하자 고어타우로스도 점점 쌓이는 데미지에 괴로움을 토해냈다.

마침내 놈이 중심을 잃고 뒤로 물러났다.

이 팀을 놓칠 아시테르가 아니었다.

발끝에 불꽃을 일으킨 아시테르가 대지를 박차며 고어타우로스를 때렸다.

파앙!!!!

거친 폭음과 함께 고어타우로스가 핏물을 뿜었다.

“쿠어어어어-!!!”

마침내 고어타우로스가 고통스런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놈이 뜨거운 숨을 내뱉는 동안, 아시테르가 검으로 남은 숨통을 끊어주었다.

“끝났네…….”

고어타우로스가 죽은 이상 남은 마수들은 별다른 위협도 아니었다.

알렌시아와 아시테르가 남은 주변의 마수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라빈은 그저 씁쓸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에스파가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아?”

“몰라 나도.”

“네 몸인데 네가 왜 몰라?”

“후우… 망했어. 다 망했다고……!”

“망하긴 뭘 망해.”

“쳇… 이렇게 팀의 발목이나 붙잡아 버리고… 미쳐버리겠네 아주.”

“그런 말 마라. 네가 무슨 발목을 잡아? 여기까지는 뭐 편하게 왔나? 아시테르가 없는 대신 네가 더욱 나서서 싸워줬잖아.”

“그건…….”

“요즘 생각이 많은 거지?”

라빈이 움찔했다.

에스파도 사실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라빈이 그녀답지 않게 무리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도 그녀의 표정은 다른 때보다 훨씬 어둡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뭐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운내라.”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아.”

“뭐?”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고… 다들 무섭도록 성장하고 있는데… 거기다 새롭게 들어온 녀석도 아직 아카데미 학생도 아닌 주제에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고…….”

그녀의 말을 듣던 에스파가 꿀밤을 한 대 날려주었다.

난데없이 맞은 꿀밤에 라빈이 울컥했다.

“지금 뭐하는 ㄱ……!”

“그런 복에 겨운 말을 지금 내 앞에서 하냐?”

“뭐……?”

“나는 말이다. 지금 팀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이미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잖아. 거기다 네가 좀 강하냐? 아시테르나 알렌시아가 조금 더 강할 뿐이지 너도 이미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잖아.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아니…. 그래도 다들 성장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단 말이야…….”

“하!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너도 우리와 함께 성장하고 있어. 그건 내가 가장 잘 알아.”

에스파의 말에 라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오빠가 어떻게 가장 잘 아는데?”

“그야 내 목표가 너니까.”

“뭐……?”

“네가 정말로 네 말대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면! 나도 네 실력과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아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아직도 널 따라잡으려면 한참 남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내가 성장하면서 따라가고 있는 만큼 너도 성장하고 있으니 따라잡기가 벅차다는 말이야.”

“…….”

“그리고 발목 잡았다는 그런 서운한 말도 다시는 하지 마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나는 당장 코 박고 죽어도 할 말이 없다고.”

에스파가 투덜거리며 씩씩댔다.

그런 에스파의 반응을 보며 라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시테르가 웃으며 다가왔다.

“맞아 라빈. 빨리 뛰어갈 때가 있다면 때로는 천천히 걸을 때도 있는 법이잖아. 설사 지금 잠깐 멈춰 섰다고 해도 괜찮아. 정말로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그러면 지금의 정체도 더 큰 도약을 위한 휴식쯤으로 여겨질 거야. 그러니 잠깐 멈춰 섰다고 마음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바보 같기는.”

데미리우스에 이어 알렌시아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때 크로마제가 슬쩍 손을 들어 올렸다.

“저어… 훈훈한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잡은 고어타우로스를 어떤 마수놈이 들고튀려는 것 같은데요……?”

“뭐……!?”

“어?”

크로마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에스파가 목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소리쳤다.

“야!! 저 새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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