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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37화 (137/424)

137화 백상의 아칼 단장

고어타우로스를 짓밟고 있는 것은 사마귀처럼 생긴 마수였다.

놈은 두 팔에 달린 날로 고어타우로스의 몸을 갈랐다.

그리곤 머리부분만 가져가 먹고 있었다.

이빨이 어찌나 단단한지 고어타우로스의 뿔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는 중이었다.

“아아…….”

“이런 제기랄……!”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간 놈을 보며 아시테르 일행이 분통을 터트렸다.

애써 힘들게 잡은 고어타우로스가 다른 마수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뿐만 아니라 놈은 고어타우로스를 먹으면서 삼각형의 눈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음 먹이는 너희들이라는 눈빛이었다.

“저 자식을……!”

크로마제가 놈을 향해 모래 마법을 사용했다.

채찍처럼 휘어져나간 모래가 녀석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날개를 펼친 사마귀 마수의 움직임은 모래보다 훨씬 빨랐다.

“키야아아―!!”

마치 식사를 하는 동안 방해하지 말라는 듯 놈이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아시테르가 화염을 일으켜 공격했다.

화염기둥이 치솟음과 동시에 화염구가 마수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마수는 허공에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아시테르의 마법을 우습게 피해냈다.

쩌정!!

그때 전격이 녀석의 등뒤를 때렸다.

“키엑!”

사마귀 마수가 먹던 것을 뱉어냈다.

분노한 것인지 놈이 이쪽을 바라보며 두 팔을 들어올렸다.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나?”

그때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모두가 위를 쳐다보았다.

새하얀 망토를 걸친 마도사가 사마귀 마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칼을 쓸어올린 사내가 손아귀를 펼쳤다.

조금 전까지 위협적으로 소리치던 사마귀 마수가 이번에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수들은 본능적인 생물이었다.

그것은 어비스 던전에서 살아온 아시테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놈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놈은 머리 위의 마도사가 자신보다 상위 포식자임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사마귀 마수가 먹던 것을 내려놓고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콰지직!!!

그러나 곧 사마귀 마수의 몸이 정확히 삼등분으로 갈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야……?”

“아…….”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빠르게 허공을 나는 것도 모자라 제법 단단한 갑각을 갖고 있던 사마귀 마수였다.

그런 사마귀 마수를 너무도 간단히 죽여버리는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마귀 마수를 단숨에 죽여버린 사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응?”

아래에 있는 몇몇 남녀들.

모두 아카데미 학생복을 입고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인가?”

“네? 네, 네……!”

“너희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그게… 고어타우로스의 뿔을 갖고 오라는 미션을 받았었습니다.”

“첫 번째 시련 말이냐?”

사내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을 본 사내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단숨에 아래까지 내려와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너. 이름이 뭐냐?”

“아시테르입니다.”

“가문은?”

“어비스 가문입니다.”

아시테르의 답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가문 이름이었다.

“이스트 왕국의 사람이 아닌 거냐?”

“아닙니다. 이스트 왕국의 사람입니다.”

“부모님도?”

“네!”

“부모님의 이름은?”

사내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던 아시테르가 이번에는 답을 망설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알렌시아가 나섰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길래 다짜고짜 이런 질문들을 던지시는 겁니까?”

“내 이름은 아칼이다.”

그의 답에 데미리우스와 크로마제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칼요…? 백상의 마법기사단의 단장님인… 그 아칼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러니 이제 답해봐라. 너의 부모님은 누구시지?”

아칼의 시선은 오직 아시테르에게만 꽂혀 있었다.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제 부모님은 이름 없는 평범한 분들이십니다. 아마 이름을 말씀드려도 모르실 겁니다.”

“그렇나.”

아칼이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르는 죽기 전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었다.

좋아하는 여인은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 여인과 연애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연애를 했더라면 24시간 붙어 있는 단원들이 알아차리지 못 했을 리 없다.

그만큼 비밀을 못 만드는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순간 눈앞의 아시테르가 너무도 유미르와 닮아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아직 미련이 남은 건가. 장례까지 치렀으면서도…….’

유미르의 허상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

그를 뛰어넘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유미르는 아직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어쩌면 지금 같은 기분이라 유미르의 허상이 눈앞의 아이에게까지 겹쳐 보였는지 몰랐다.

아칼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 사람에게는 아이가 없었으니… 하지만 만약 그날 살아남아 결혼을 했다면… 꼭 너만한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아칼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아시테르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어타우로스의 사체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거기다 사마귀 마수의 밑에는 고어타우로스의 머리로 보이는 부분이 떨어져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놓친 마수놈이 고어타우로스를 먹어 치워 버렸나보군.”

“그걸 어떻게…….”

“설마 너희들이 고어타우로스의 뿔까지 씹어먹진 않았을테니까.”

“아……!”

“너희들은 이미 시련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고어타우로스의 뿔이 망가졌으니… 그것은 내가 책임지고 구해주도록 하마.”

아칼의 말에 모두가 반색했다.

딱히 길을 나설 필요도 없었다.

다른 고어타우로스 한 마리가 마침 이곳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아칼이 녀석을 보자마자 마법을 사용했다.

스가각!!

스각―!!

고어타우로스의 질긴 가죽이 백색 마력에 가차 없이 찢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검에 베이기라도 한 것처럼 선명히 남은 상처를 보며 아시테르가 눈을 반짝였다.

“저건 또 무슨 마법일까?”

“아칼님의 마법은 클로 마법이야.”

“클로 마법?”

“응. 마력으로 모든 것을 찢어버린다고 들었어.”

그 말을 곧바로 증명하듯 아칼의 마법에 고어타우로스가 피투성이 모습으로 쓰러졌다.

아칼은 쓰러진 고어타우로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슈쾅!!

단번에 고어타우로스의 뿔을 잘라낸 아칼이 그것을 집어 아시테르에게 던져주었다.

“가져가라.”

“네!”

아시테르가 고어타우로스의 뿔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아칼이 잔잔한 미소를 흘렸다.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오른 탓이다.

“요즘 시대에도 시련의 던전에 도전하는 멍청이들이 있었군.”

“예?”

“아니다.”

아칼은 아시테르 일행이 다시 1층까지 나오는 동안 함께 해주었다.

그가 함께 있는 동안 던전의 길이 그토록 편할 수 없었다.

마수들이 공격해오기도 전에 아칼의 마법이 마수들을 찢어발겼다.

“이게 바로 단장의 실력이구나…….”

그동안 고생한게 무색해질만큼의 실력 격차였다.

홀로 수많은 마수들을 도륙내는 아칼을 보며 라빈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를 본 에스파가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내가 앞으로 목표로 할 사람이 생긴 것 같아서.”

“엥?”

“에스파 오빠도 나를 목표로 삼고 있다며. 나도 왠지 목표로 할 사람이 생기면 더 빠르게 강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지금… 목표로 삼을 사람을 저 분으로 결정했다는 말이야?”

“응. 어차피 우리 모두 마법기사단의 단장을 목표로 하고 있잖아?”

“아니… 아니야… 나는 마법기사만 되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게 무슨 허접한 소리야? 꿈은 크게 가지라고!”

라빈이 에스파의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데미리우스가 슬쩍 한 마디 덧붙였다.

“저는 나중에 아시테르의 기사단에서 함께 싸우는 게 꿈입니다.”

“데미리우스 형! 그건 제가 먼저 꾼 꿈이에요.”

에스파가 슬쩍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에 크로마제가 질 수 없다는 듯 팔을 들고 나섰다.

“저도 스승님과 함께 마수들과 싸울 겁니다!!”

“마수들?”

“아, 모르셨습니까!? 아시테르 스승님은 마수들과 싸울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로마제의 말에 모두가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게 마음대로 되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아시테르 다운 생각이네.”

“저는 뭐든 좋습니다.”

그들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알렌시아만 혼자 생각에 잠겨있었다.

확실히 칸의 팀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목표도 달랐다.

아시테르와 함께 싸우는 것이 목표라니…….

“바보 같아.”

그녀에게는 더욱 큰 꿈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의 아시테르와 다른 사람들은 친구이자 동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라이벌이었다.

알렌시아는 슬쩍 뒤로 물러나 아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를 알아본 아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체르도네 가문의 아이로군.”

“아칼님. 혹시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지?”

“저를 제자로 받아주실 순 없나요?”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아칼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요. 저는 좀 더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지려는 이유는?”

“가문을 일으켜야 해요. 그러려면 저는 좀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지금도 충분히 강한 것 같은데.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 마법기사가 될 가능성도 굉장히 높은 편이고.”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저는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아칼이 알렌시아를 바라보았다.

힘 있는 그녀의 눈동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익숙한 눈빛이었다.

“결국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강해지겠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맞습니다.”

“재밌군.”

아칼이 시선을 돌렸다.

유미르의 모습을 닮은 아이.

그리고 과거 자신의 눈빛을 갖고 있는 아이.

그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었다.

“내 제자가 되고 싶다 했지?”

“예.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저는 지금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들 중 누구보다도 재능이 뛰어나니까요.”

“그 자신감만큼은 마음에 드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성격이 그리 좋지 않아서 제자가 되더라도 다른 단장들처럼 곱게 가르쳐주진 않는다.”

“네. 각오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 각오라는 것을 먼저 보여주면 되겠군. 곧 드래프트 미션이 열릴 거다. 그곳에서 넌 무조건 5위 안에 들어라. 5위 안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네가 내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도 없었던 일로 하겠다.”

“3위 안에 들어 보이겠습니다.”

“기대하겠다.”

아칼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닌 척 하고 있지만, 그도 분명히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아칼이 함께해 준 덕분에 아시테르 일행은 금방 시련의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던전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폐부를 찔렀다.

“우와!!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공기지!!”

“진짜 얼마나 그리웠는지…….”

“어휴… 두 분 다 던전에 얼마나 있었다고 벌써부터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건지…….”

“야 크로마제 너는 아니냐?”

“저는 예전에 아시테르 스승님과 훨씬 더 오랫동안 던전에 머물렀던 적도 있습니다.”

크로마제가 가슴을 당당히 펴며 말했다.

그러자 에스파가 볼멘소리를 냈다.

“나도 가고 싶어지네… 그놈의 던전. 대체 거기서 무슨 수련을 받았길래…….”

“후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너도 데려가 줄게. 일단은 이것부터 전해주고 미션을 끝내러 가자.”

아시테르가 고어타우로스의 뿔을 보이며 말했다.

아칼과 헤어지고, 아시테르 일행은 무사히 고어타우로스의 뿔을 아카데미로 가져갔다.

시련의 던전 미션을 무사히 클리어하자마자, 그들이 전해 들은 말은 곧 드래프트 미션이 시작될 거란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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