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드래프트 미션의 시작
드래프트 미션.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최종적으로 거쳐야 할 미션이었다.
참여 조건은 1등급일 것.
그것 말고 다른 조건은 요구하지 않는다.
아시테르가 1등급에 올라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동안 다른 동료들도 차근차근 1등급에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알렌시아까지 1등급에 올라서고 나서야 마침내 아시테르 일행 모두가 드래프트 미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드래프트 미션이라고 했나?”
“네. 그래서 당분간은 이곳에 못 올 것 같습니다. 마르체니님.”
“됐고 떨어지지나 마셔.”
“열심히 노력해볼게요.”
“혹시나 떨어지게 되거든 얘기해. 내가 이쪽으로 꽂아 넣어줄 테니까.”
“그것 참 든든합니다.”
“하여간 말은…….”
마르체니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웃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아시테르가 드래프트 미션에서 낮은 성적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그는 일반적인 마법기사들보다 훨씬 더 높은 실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
마르체니도 아시테르의 실력을 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런 아시테르가 드래프트 미션에서 선택받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문제야.”
“예?”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야.”
“아아. 알겠습니다.”
아시테르는 마르체니에게 부탁받은 것들을 마저 다 해놓고 몸을 일으켰다.
마르체니는 오늘처럼 자질구레한 일들로 아시테르를 부르곤 했다.
대화할 상대가 필요할 때마다 아시테르를 부르기 위해 작은 핑계들을 만든 셈이다.
손을 털어낸 아시테르가 마르체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벌써 다 했어?”
“네. 이제 손에 익으니까 금방인 걸요?”
“나랑 있는 게 불편해서 빨리 해치운 것은 아니고?”
“후후 아니에요. 그리고 앞으로는 굳이 이런 사소한 핑계거리들을 만들지 않으셔도 돼요. 얘기할 상대가 필요하다고 하시면 언제든 이곳으로 찾아올게요.”
“그…. 아니 그게…….”
당황해서 마르체니가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반응에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설마… 게벨 아저씨가 말한 거야?”
“게벨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이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어요.”
“크흠……….”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알겠어. 가서도 열심히 해.”
“네!”
아시테르는 힘찬 대답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드래프트 미션은 총 1차와 2차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 1차와 2차의 점수를 합쳐 종합 순위가 매겨진다.
그리고 1차는 개인전, 2차는 팀전으로 치러진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아카데미 광장에 모여 있었다.
모두가 1등급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한쪽에 모인 이들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화제의 중심은 단연 칸이었다.
지금까지 최고를 놓치지 않은 그였기에 다른 학생들도 은연중에 칸이 이번 드래프트 미션에서 1위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칸의 다음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학생이 바로 옆에 있는 자비토였다.
아직 많은 것들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가 칸과 비등하게 겨룰 수 있는 유일한 학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팀을 이루고 있으니, 사실상 2차전의 1위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이기도 했다.
“칸과 자비토… 그리고 또 한 명 더 주목받고 있는 신예들이 있잖아.”
“어쩌면 2차전은 두 팀의 대립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시테르 일행이 서 있었다.
그 사이 아카데미 내에서 아시테르에게 붙은 별명이 있었다.
붉은 비 아시테르.
어느새 대회에서 보여주었던 불꽃의 비가 그를 상징하는 마법이 되어 있었다.
그날의 충격이 강렬했는지 아직까지도 그때의 마법을 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덕분에 아시테르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올라갔다.
물론 아직까지도 아시테르를 기생충일 뿐이라며 조롱하는 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시테르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알렌시아도 드래프트 미션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전격 마법은 칸과 함께 있을 때부터 유명했으니.
자연스레 아시테르와 함께 부각되었다.
학생들이 저마다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마침내 한 명의 교관이 그들의 앞에 섰다.
훤칠한 키의 여인이 파이프를 문 채 입을 열었다.
“반갑다. 난 글로리아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글로리아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학생들이 또다시 수군거렸다.
크실리아 글로리아.
5대 가문인 크실리아 가문의 사람이며, 빙결의 여제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마법기사단장으로 충분히 올라설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 뜻이 있어 마법기사 아카데미에서 교관대장을 지내고 있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어쨌거나 그녀의 등장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드래프트 미션을 시작하려 한다.”
그녀가 파이프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사파이어빛 눈동자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크실리아 가문 자체가 워낙 미남 미녀가 많은 덕분에 그녀 또한 빛을 발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거기다 키까지 훤칠한 굴곡진 몸매까지 가져 몇몇 학생들은 이미 그녀에게 반하고 있었다.
“1차 드래프트 미션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미션이다.”
이번 드래프트 1차 미션은 쉽게 말해 장애물을 통과였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장애물 통과는 아니었다.
글로리아의 손짓에 부하교관이 올라와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그녀는 파이프로 한쪽을 가리켰다.
“시작은 여기부터다. 이곳에서부터 출발해 x자로 표시된 이곳까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도착하면 된다.”
“생각보다 쉬운데?”
“뭐야… 이렇게 간단해?”
“에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을 듣던 글로리아가 코웃음 쳤다.
“흥. 부디 너희들의 말대로 쉽게 통과해냈으면 좋겠군. 어쨌든 이곳을 지나는 동안 너희들은 어떤 마법을 사용해도 좋다. 무슨 방법을 사용하던 빠르게 도착하는 데만 집중해라.”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덕분에 이해하기도 쉬웠다.
학생들이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환호를 보냈다.
그들 모두 1차 미션 정도는 쉽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적어도 직접 그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 도전하게 된 학생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마력이… 마력이 잘 안 모이는데……?”
평소보다 마력을 사용하기가 훨씬 힘들었다.
거기다 대기 중에 느껴지는 마나량도 평소보다 적었다.
마법의 사용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니, 첫 번째 학생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울창한 숲이었다.
거리나 길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게 뭐야… 이걸 어떻게…….”
일단은 도착지점까지 나아가야 하니 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마수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처음 들어간 학생의 비명이 함께 들린 것도 잠시 후였다.
“벌써부터 비명이나 지르고. 이번 기수는 글렀나?”
파이프를 물고 있던 글로리아가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그녀의 시선이 다음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될성부른 학생들은 마력을 갈무리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재미없군.”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는 때, 시선에 들어오는 한 학생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정갈하게 느껴지는 마력이었다.
“호오…….”
글로리아의 시선 안에서 바짝 긴장한 채로 서 있는 사내는 바로 에스파였다.
그는 곧 다가올 자신의 차례에 잔뜩 굳어 있었다.
“어으아…….”
괜히 입을 한 번 푼 에스파가 주변을 살폈다.
하필이면 순서가 이렇게 정해져버린 바람에 동료들과도 떨어져 있게 되었다.
마침내 드래프트 미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대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
에스파가 자신의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이럴 때 라빈이나 아시테르라도 곁에 있었으면 장난이라도 치면서 긴장감을 좀 떨쳐 냈을 텐데…….”
막상 곁에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었다.
기다리다 보니 마침내 앞에는 한 명의 학생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에스파가 홀로 중얼거렸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어. 난 강하다.”
끝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에스파의 귓가에 교관의 음성이 들렸다.
“준비해라. 다음은 네가 들어갈 차례다.”
“네… 네!!”
힘차게 대답한 에스파가 가슴을 당당히 폈다.
혹시나 중간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들어갈 때만큼은 당당하고 멋있게 들어가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그의 손과 다리는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에스파의 어색한 걸음을 보며 뒤에 있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뭐해?”
“어……?”
놀란 에스파가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동안은 바짝 긴장하느라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의 뒤에는 에이브릴이 서 있었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를 좋아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속도 없이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순간 넋을 놓던 에스파의 머릿속에 대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때는…….”
“그때는 뭐?”
에이브릴이 인상을 찌푸리자 에스파가 입을 다물었다.
공연히 말을 덧붙였다간 한 소리 들을 느낌이었다.
잠시 입술을 질끈 깨물던 에이브릴이 입을 열었다.
“착각하지 마. 그때는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졌던 것뿐이니까.”
“아… 응.”
“그리고 기억해둬. 나는 너에게 아직 지지 않았어. 다음번에는 무조건 이길 거야.”
“그래. 근데 혹시 날 원망하지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너 따위를 왜 원망씩이나 해?”
“아하… 그것도 그렇네…….”
에스파가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에이브릴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기는 또 뭐가. 그딴 한심한 모습 좀 보이지 말아줄래?”
“미안…….”
“사과도 하지 말고.”
에이브릴의 말에 에스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의 몸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에이브릴이 한 마디 덧붙였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날 이겨놓고 드래프트 미션 하나 통과하지 못 하면… 너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아…. 으응…….”
“지켜본다.”
에이브릴의 말에 에스파가 활짝 웃었다.
이내 에스파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빨리 꺼져. 이제 네 차례잖아.”
“응!”
에이브릴이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그동안 에스파는 미션장으로 과감하게 몸을 날렸다.
그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에이브릴이 에스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과거 자신이 그토록 괴롭혔건만, 에스파는 눈앞에서 실없이 웃고 있었다.
“바보 아냐…? 짜증나게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고개를 한 번 세차게 저은 에이브릴의 시선은 여전히 에스파의 뒤를 쫓고 있었다.
한편, 에이브릴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몸을 날린 에스파는 한껏 웃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잔뜩 긴장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상쾌한 기분만 들었다.
바닥에 착지한 에스파가 팔을 들어올렸다.
벌써부터 마수들이 그를 노리고 서 있었다.
“아하하!! 미안. 나는 너희들을 뚫고 지나가야겠다!”
에스파의 화살이 단숨에 날아가 마수들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다른 이들은 마력의 사용에 상당한 제한을 받았지만 에스파는 달랐다.
속성 변환도 하지 않으니 그가 사용하는 마력의 구성이 단순하기도 했지만, 매직 에로우는 상당한 마력량을 요구하는 마법도 아니었다.
때문에 에스파는 큰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아시테르에게 배운 움직임까지 선보이며 빠르게 치고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