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첫 대결 (2)
폭발하는 마력의 흐름을 느낀 아시테르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에 마력이 거침없이 흐르기 시작하니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전신에 흐르는 마력을 발끝으로 집중했다.
화륵.
아시테르의 발끝에서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이를 본 글로리아가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아시테르 학생. 출발하십시오.”
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시테르가 대지를 박찼다.
그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테르가 머물던 자리에선 불씨가 남아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불꽃의 힘을 추진력으로 사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확실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화염 마법이로군.”
글로리아가 순수한 감탄을 내놓았다.
한편 대지를 박찬 아시테르는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앞을 막는 마수들을 일일이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
화르릉―!!
나선으로 회전한 화염이 마수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아시테르는 나선의 중앙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크아아!!”
“키에에!!!”
아시테르가 지나가는 곳마다 마수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는 오우거들의 머리를 짓밟고 단숨에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저기구나.”
목표 지점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멈추지 않고 발을 굴렸다.
나무에서 나무로 움직이는 그의 몸놀림은 지켜보던 교관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건 무슨 마법일까요?”
“허어… 칸은 바람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띄웠다곤 하지만… 저런 마법은 정말 처음 봅니다.”
“그러게요… 몸에서 저렇게 불꽃이 피어오르다니… 저런 마법이 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게 과연 평범한 학생이 낼 수 있는 속도인가……?”
마치 화살처럼 수풀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시테르를 보며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놀란 것은 교관들만이 아니었다.
사실 드래프트 미션은 교관들뿐만 아니라 마법기사단의 단장이나 부단장급 인사들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침 그들도 아시테르의 마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들 중에 저런 친구가 있었나?”
“그러게요… 화염 마도사 같은데… 저런 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호오… 칸과 비교했을 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속도로군요.”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닙니다. 마수들을 처리하는 수준이…….”
“맞아요. 이미 학생의 수준이 아닙니다. 저 정도라면 이미 엄청난 실전을 겪었다고 봐야 해요.”
아시테르를 지켜보던 단장들이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그만큼 아시테르가 그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칸도 분명 대단한 마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테르만큼 화려하진 못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은 모두 불길로 휩싸이는 바람에 물과 얼음을 다루는 마도사들이 황급히 뛰쳐나갔다.
서둘러 불을 끄지 않으면 주변 일대가 모두 불바다로 바뀔 판이었다.
“제기랄… 대체 어떻게 마법을 펼치길래 불이 이렇게 꺼지질 않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말 대단한 것 아냐? 아직 제대로 마법기사도 되지 못한 학생이… 이런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마도사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시테르의 불길에 마수들뿐만 아니라 나무와 풀들까지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예전에 테오도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친구의 불꽃은 뭐랄까… 좀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었지.”
“하긴. 그때는 정말 소름이었어. 불꽃이 허공에 날아다니면서 주변 마수들을 모두 죽였으니까.”
“그 광경을 봤을 때는 정말 소름이었는데… 이건 뭐 차라리 그때가 더 나은 것 같네…….”
마도사들이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아시테르는 마침내 늪지대까지 이르렀다.
나무줄기들이 아시테르를 휘감기 위해 움직였다.
“호오……!”
어비스 던전에서도 한 번씩 마주했던 마수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식물형 마수들에게 아시테르는 아주 최악인 존재였다.
그의 불꽃이 새빨갛게 타오르자 줄기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화염에 줄기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붙어버린 화염이 남은 줄기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늪지대쪽을 살핀 아시테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보다 면적이 넓은 데다 저기에 또 어떤 마수들이 있을지 몰랐다.
그럴 바엔 좀 더 편한(?) 쪽으로 길을 트는 것이 나았다.
“시간 없다. 미안하지만 그쪽으로 좀 지나갈게.”
아시테르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식물형 마수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한 차례 미소를 지어 보인 아시테르가 마력을 움직였다.
대지에서 치솟은 불기둥이 식물형 마수들을 거침없이 태워버렸다.
아시테르는 그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다른 학생들은 늪지대를 통과하느라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만 했는데, 아시테르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개척해낸 것이다.
그의 판단을 확인한 글로리아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완전히 골 때리는 놈이었잖아?”
다른 학생들은 바보라 비켜 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식물형 마수들은 다른 마수들과 다르게 귀찮은 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놈들의 줄기를 아무리 잘라놔도 다른 줄기들을 이용해 공격해 온다.
거기다 놈들의 본체는 어지러운 덩굴 속에 가려져 있다.
때문에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본체까지 공격이 닿기도 힘들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마법은 불꽃.
확실히 식물형 마수들에게는 최악인 마법이었다.
불꽃은 빠른 속도로 식물형 마수들에게 옮겨 붙어버리니까.
하지만 이것도 마도사의 역량에 따라 갈린다.
상성은 말 그대로 상성일 뿐.
불꽃과 얼음이 싸운다고 해서 늘 한쪽만 이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힘의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 말은 즉, 아시테르의 불꽃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식물 줄기에 막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불꽃은 상상 이상의 위력을 자랑했다.
던전에서 갓 나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시테르의 마법이 강해진 덕분이었다.
그 예로 조금 전 이곳을 지나갔던 베네피트는 식물형 마수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줄기들을 조금 태워버리면 불꽃은 금방 사그라들어버렸다.
때문에 베네피트는 늪지대를 통해 가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마법의 힘으로 이곳을 밀고 지나가 버리는 중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하하!! 화끈한 놈이 하나 있었구만!!”
“근데 저 아이가 사용하는 불꽃…….”
“칸은 어차피 여명의 기사단 아니면 섬광의 기사단에서 데려갈 것 같고… 저 친구는 우리가 데려가 보도록 할까?”
순록의 마법기사단 단장인 창파울로 단장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창파(滄波)의 마법기사단 단장 무그레날로 단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봤을 때 저 아이는 홍련의 마법기사단에서 욕심을 낼 것 같은데.”
무그레날로 단장의 시선에도, 홍련 마법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시리아스 단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조금 전 아시테르가 보여준 마법 중 하나.
그는 그 마법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우연인가…….”
불기둥을 일으키는 마법은 전 단장인 아레나의 주특기 마법이었다.
때문에 홍련의 마법기사단에 있는 단원들은 모두 알 수 있는 마법이었다.
헌데 어떻게 아시테르가 저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그가 보여준 마법은 아레나의 마법과 유사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긴 했다.
그래도 괜히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화염 마도사니까 당연히 홍련의 마법기사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런 편견은 버리게.”
“맞아요.”
“그나저나… 들장미의 아그리나 단장님께서도 눈여겨보는 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레프레시아 가문의 아이를 데려갈 생각 중입니다.”
아그리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레프레시아 가문의 아이는 바로 에이브릴이었다.
하지만 아그리나가 눈여겨 본 이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나저나… 아칼 단장은 이곳에 오지 않은 겁니까?”
“아칼 단장이랑 백상 마법기사단은 특별 임무를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특별 임무라니…….”
“발할라와 관련된 것들 아니겠습니까.”
“열심히군요.”
“여명의 마법기사단도 이곳에 없으니… 마찬가지로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마법기사단 단장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시테르는 어느새 목표 지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질주하며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 아시테르의 앞에 나타난 마수가 보였다.
미션장에 있는 가장 강한 마수, 미노타우로스였다.
“아이고… 하필 이 시점에 미노타우로스가 나타나다니…….”
“이것 참… 안타깝게 되었군요.”
“이번 미션의 히든 몬스터 아닌가요?”
“맞습니다. 미노타우로스를 피해 목표 지점에 가는 것 또한 실력이니까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무모한 방법을 택하지 않고 피하는 방법도…….”
“하지만 저 학생은 다른 방법을 택하는 것 같군요.”
아시테르를 살피던 조율 마법기사단의 단장 엔달라프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미노타우로스를 마주했음에도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가 파괴력 있는 위험한 마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속도만큼은 느렸다.
그러니 충분히 피해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아시테르는 당장 얼마 전에도 미노타우로스보다 상위종인 고어타우로스를 사냥한 전력(前歷)이 있었다.
“후우, 후욱… 미안하지만 내가 비켜갈 여유가 없어서 말이다.”
숨을 몰아쉬며 땀을 한 바가지 흘리던 아시테르가 낮게 자세를 고쳐잡았다.
미노타우로스가 고성을 내지르며 아시테르에게로 돌진해왔다.
아시테르도 녀석의 돌진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주 나가며 손끝에 불꽃을 끌어모았다.
주먹을 힘껏 내지르자 거센 불꽃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파쿠황에게서 배운 것을 응용한 마법이었다.
화르릉!!
연기가 내뿜어지듯 뻗어나간 불길이 순식간에 미노타우로스를 집어삼켰다.
이어 아시테르는 가볍게 녀석을 뛰어넘으며 발길을 이었다.
“호오…….”
아시테르의 수법을 확인한 아그리나가 눈에 이채를 보였다.
과거 유미르를 따라 그녀도 노스 왕국에 갔었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녀석… 저런 재주까지 익혔다니…….”
조금 전 아시테르가 보여준 마법은 마법이라기보다 투사들의 공격 방식을 닮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을 마력으로 재현해낸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유미르를 닮은 얼굴에 화려한 불꽃 마법까지.
“은근하게 눈에 밟히는 녀석이로군.”
미노타우로스까지 처리한 아시테르가 마침내 목표 지점을 밟았다.
그를 확인한 교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놀라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기록이었다.
“아시테르 학생… 4시간 10분.”
교관의 말에 이미 도착해 있던 학생들마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중 최고 기록을 세웠던 테오도라마저 이겨버렸다.
반면 아시테르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시종일관 마력을 사용하며 달려왔으니 아시테르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으하아…!! 진짜 죽겠다! 숨이… 우아……!”
아시테르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몸을 뉘었다.
목표 지점까지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몸은 이미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렇게 마력을 사용해댔으니 당연한 결과라면 당연한 결과였다.
경련이 일어나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아시테르가 몸부림쳤다.
“아이고 나죽네……!”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이토록 필사적이었던 이유.
사실 아시테르는 처음부터 칸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가 정말로 따라잡고 싶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아 만족한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처음 이겨봤네. 우리 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