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2차전 마지막 팀원
아시테르의 기록은 4시간 10분.
테오도라의 기록보다 1시간 20분이나 빠른 대기록이었다.
뒤이어 들어온 칸도 5시간 45분을 기록했으니, 사실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들었어? 이번에 4시간에 들어온 사람이 있대.”
“나 그날 미션 봤어. 미쳤던데?”
“사람이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진짜 대박이었지…….”
“나는 칸이 엄청 빨리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 정도면 엄청 빨랐던 거지… 근데 중간에 히든 마수를 만나서 칸도 고생 좀 했다던데?”
“아아… 어쩐지…. 안 그랬으면 칸이 더 빨랐을지도 몰랐겠네.”
학생들이 1차 미션의 결과를 두고 여기저기 수군거렸다.
정작 태풍의 주역인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눈치였다.
“뭐냐…. 제일 기대받던 칸을 이겼는데 조금 더 기쁜 표정을 지을 순 없는 거냐?”
“나는 지금 충분히 기뻐하고 있는데?”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아냐. 처음으로 우리형을 이긴 거라 즐거워 지금.”
“형?”
“응.”
아시테르가 혼자만의 미소를 보이며 걸었다.
곁에서 라빈은 아직도 투덜대는 중이었다.
“아쉽다… 늪지대가 문제였어 늪지대가…….”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나저나 2차는 팀미션이지?”
“맞아.”
“팀은 우리가 만드는 거야?”
“사전 구성 팀으로 와도 상관없다던데. 문제는… 1명이 비어.”
“1명이 빈다고?”
“응. 팀 구성은 총 6명이어야 한다는데… 나랑 너랑 아시테르, 데미리우스 형 그리고 알렌시아까지…….”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은 총 5명이었다.
에스파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럴 때 크로마제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면 딱 맞잖아? 시련의 던전에서도 합을 맞춰봤으니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팀워크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아쉬운 소리 말아. 걔는 아직 아카데미 학생도 아니잖아.”
“그러게나 말이야… 실력도 대단한 녀석이었는데…….”
“흐음… 그나저나 정말로 누구를 영입해야 할까요?”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팀원이 정해져 있어서… 이제와 다른 팀원을 한 명 더 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데미리우스의 시선이 아시테르쪽으로 향했다.
“대장. 혹시 다른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요…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걸요. 베네피트 형도 다른 팀이 있다고 말했고… 다른 친구들도…….”
아시테르가 한 명씩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 소란을 일으키며 팀원들과 싸우고 있었다.
“어라?”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아시테르가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에이브릴!! 잘 생각해 봐.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니까?”
“대체 뭐가 기회라는 건지 모르겠네.”
“아직도 모르겠어? 이건 우리가 판을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기회라고……!”
“글쎄. 내 생각은 달라. 기존 팀원을 버리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니…….”
“어차피 자토랑 다른 녀석들은 사실 2등급 수준밖에 안 되는 녀석이야. 그런 놈들 버리고 다시 인원수를 맞추자는데 왜…….”
“그래 에이브릴. 이번에는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들의 말을 따라.”
에이브릴과 함께 있는 사내들은 바로 체레드와 도거스였다.
두 사람은 에이브릴을 설득시키기 위해 연신 말을 꺼내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브릴의 태도는 완강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함께 팀을 이루는 것은 반대야. 그냥 원래 인원대로 6명을 구성하자. 거기다 그놈들이 건넨 그 정체모를 포션도…….”
“하… 답답하긴 정말. 이러니 네가 네 가문에서도 그런 취급이나 받고 있는 거지.”
“뭐?”
“그딴 고리타분한 생각들에 갇혀 있으니 네 동생한테도 뒤처지는 것 아냐?”
“야, 체레드…….”
“하기 싫으면 그만둬. 난 분명 너한테 제안했었다? 그 녀석들과 함께하면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여기서 제안을 거절한 건 너야.”
체레드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브릴은 그런 체레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 지금…….”
“그리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네가 좋아서 옆에 붙어 있었던 게 아니야. 레프레시아 가문의 딸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게… 아, 어차피 너 이번에 후계 자리에서도 밀려나게 생겼다며?”
“감정이 앞서서 말실수 하지 마, 체레드.”
불쾌해하는 에이브릴의 곁으로 체레드가 다가갔다.
그가 에이브릴의 귓가에 슬쩍 입을 가져가 속삭였다.
“너나 같잖은 자존심 내세우지 마. 이번에 그 녀석들이 건넨 포션. 마셔는 봤어?”
“당연히 버렸지. 그게 뭔지 정확히도 모르는데… 잠깐. 너 설마…….”
“그 포션은 최고야…! 한순간 마력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훨씬 좋아진다고.”
체레드가 손아귀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이 욕심에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체레드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체레드…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어?”
“너처럼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강한 힘을 지닌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처럼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여유 따윈 없어.”
“야 체레드, 그만두는 게…….”
“시끄러. 네가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거지. 그 고상한 방법을 우리에게까지 강요할 생각은 마라.”
체레드의 차가운 태도에 에이브릴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희 마음대로 해.”
“우리는 위로 올라간다. 네 옆에 계속 있다간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거다. 그게 우리의 판단이야.”
“결국 너희들은 원하는 바가 있어서 내 곁에 머물렀단 것처럼 들리네.”
“…당연한 말을.”
체레드의 말에 에이브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치밀어오르는 감정들을 애써 삭혔다.
“후후, 함께 하지 않을 거라면 빨리 꺼져주시겠어요? 에이브릴 양.”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길쭉한 얼굴의 사내가 체레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를 본 에이브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사내의 일행이 나타나서부터 체레드의 태도가 변했다.
아마도 저들이 체레드와 도거스를 꼬드겼을 터다.
어떤 말을 건넸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정체 모를 포션과 함께 체레드와 도거스를 유혹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에이브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들에게도 분노했지만 고작 저런 꼬드김에 넘어간 체레드와 도거스에게도 화가 치밀었다.
“그래… 결국 그 정도였던 거야.”
한때나마 평생 함께 할 친구들이라 생각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상대에게, 자신은 진심으로 대했던 것이다.
에이브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
“당황하셨나보네… 고귀한 귀족가의 여식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좀 흥분될라 그러네.”
“크크큭. 얼굴 일그러지는 것 보여? 오늘 본 최고의 안주거리야.”
에이브릴을 조롱하는 다른 일행들을 보고도 체레드와 도거스는 가만히 있었다.
결국 에이브릴도 낮은 한숨과 함께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에이브릴의 앞에는 아시테르와 에스파가 서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뒤에는 라빈도 서 있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을 제일 보이고 싶지 않은 두 명이 함께 있었다.
이 상황들에 감정이 앞서는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눈물의 의미가 분노인지 창피함인지 아니면 수치스러움인지…….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었다.
라빈과 에스파가 먼발치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거.”
에스파가 자신의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이어 라빈이 말없이 에이브릴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 했다.
“훗. 우리들에게 버려졌다고 곧바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거냐?”
“귀족이란 이름이 아깝군.”
“아니지… 애초에 배신하려고 했던 건 에이브릴, 너 아냐?”
그들의 말을 듣던 에스파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분노하는 이가 있었다.
드드득!!
라빈의 뼈가 한 사내의 목을 겨누었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입 닥쳐.”
“이게……!”
사내가 발끈하려는 찰나 체레드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라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누구야… 고상한 에이브릴 양의 반쪽짜리 동생 아니야?”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냐?”
“너…? 지금 나에게 ‘너’라고 했나?”
“그래. 그럼 지금 내 앞에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이게 에이브릴의 동생이라고 봐줬더니……!”
“아하하하!! 봐주긴 누가 봐줘?”
한껏 비웃음을 날려준 라빈이 체레드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뼈가 이번에는 체레드에게로 향했다.
“똑바로 들어. 니가 무슨 짓을 하건 지금까진 상관 안 했어. 왜? 언니가 그나마 의지하는 사람이 너인 듯 보였으니까. 근데 이제는 아닌 것 같지?”
“이게 지금 뭐라고 하는…….”
“이제부터 행동 똑바로 하라는 얘기야. 거슬리면 너부터 죽여줄 테니까.”
“잊은 거냐? 나는 레기아스 가문의 ㅈ…….”
“어쩌라고. 나는 레프레시아 가문의 사람인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종 같은 가문이 기어오르려 들어?”
라빈의 말에 체레드가 움찔했다.
아무리 라빈이 반쪽짜리라고 해도 레프레시아 가문의 혈통.
그녀를 건드린다면 레프레시아 가문에서도 결코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가문의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레프레시아 가문이었으니까.
결국 체레드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까드득 소리가 들릴 정도로 체레드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이번 한 번은 물러나주마. 2차전에서 두고보자고…….”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체레드가 이만 몸을 돌렸다.
곁에 있던 다른 동료들은 좋은 구경을 놓쳤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멍한 얼굴로 있던 에스파가 입을 열었다.
“뭐야 너…? 에이브릴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어?”
“형제 없어? 원래 그런 거야. 내 언니를 까도 내가 까. 어디 쭉정이 같은 새끼가 내 언니를 까려 들어?”
라빈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듣던 에스파가 피식 웃었다.
“에이 아깝다 내가 나섰어도 됐는데.”
“나섰다가 또 깨질라고?”
“어? 무슨 소리야. 이제는 내가 이겨.”
“그래그래. 그럼 다음에 직접 증명해 보이세요오.”
“이게 이씨……!”
에스파와 라빈이 투닥거리는 동안 에이브릴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너희들의 도움은 필요 없었어.”
“또또 저런다 또.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도와줘도 고맙다는 말은 절대 안 해요.”
라빈이 에이브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브릴은 이만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 그녀의 앞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아시테르였다.
“뭐야?”
“할 말이 있어서.”
“이번 일로 얘기를 꺼내려는 거라면 나는…….”
“우리를 좀 도와줄래?”
“뭐?”
예상외의 말에 에이브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구해오다니.
순간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소리도 좋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우리를 좀 도와줘.”
“내가 왜 너희들을…….”
“우리가 아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거기다 이번에 우리를 도와주면 너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즉, 서로 돕는 형태인거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우리 팀으로 들어와.”
“뭐……?”
“에!?”
“아니 잠깐!”
놀란 것은 에이브릴만이 아니었다.
에스파와 라빈도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렌시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아하하하!! 역시 우리 아시테르 대장! 그 사이에 이렇게 틈새시장을 공략하려 하다니……!”
“아니 아시테르! 너어는……!!”
“미치겠다 저 인간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