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정면대결 (1)
양쪽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진짜 물건을 실은 마차인 것으로 생각되는 날개쪽을 담당한 이들이었다.
그곳에 배치된 학생들은 대략 120여 명.
대규모 전투가 예견된 만큼 뛰어난 활약상을 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칸이라는 남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군.”
“그러게 말이야. 우리들에게 날개를 양보하고 정작 본인은 중앙으로 향하다니.”
“다행이지 뭐. 칸이 함께 갔으면 우리들은 그 친구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들에 불과했을 테니까.”
“자신은 1차전에서 활약했으니 우리들에게 양보하려는 거겠지.”
“공생이란 게 뭔지 아는 친구라니까.”
그들이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한 여학생만 계속해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다른 팀장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칸도 중앙으로 갔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지어?”
“그게… 상대쪽에도 그 팀이 있잖아.”
“누구?”
“이번 1차 미션에서 1등한 사람이 대장으로 있는 팀.”
“아시테르 팀 말이야?”
“응.”
“걔네들이야 뭐 별 것 있겠어?”
“맞아. 1차전 때는 솔직히 코스의 운도 있어.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아시테르 그 자식은 솔직히 그저 운이 좋았던 거지. 우리들이 가면 이참에 충분히 눌러줄 수 있겠어.”
“크하하하!! 맞아맞아. 어차피 기생충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로 별 것 아니었던 놈이라며? 심지어 천민이라는 소문까지 있던데.”
“이번에 알려줘야지. 귀족과 천민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베네피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자신만큼 아시테르 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그 팀을 안 만나길 기도하는 게 마음 편할 거야.”
“맞아…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그 팀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나는 라빈만 안만났으면 좋겠어…….”
“라빈이면… 자신의 뼈로 싸우는 그 여자 말이야?”
“그래… 과격한데다 전투를 즐긴다고 들었어. 뼈를 사용하는 마법은 원거리 근거리 전투 모두 가능해서 상당히 까다롭고…….”
“제일 성가신 건 활잡이 에스파지.”
“걔는 기초 마법밖에 못 한다며?”
“기초 마법인 매직 에로우를 사용하지만… 이미 그 녀석이 사용하는 마법은 기초, 기본 수준이 아니야. 한 가지의 마법만으로 1등급까지 올라온 녀석이야.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학생들의 대화에 처음 아시테르 팀을 만만하게 봤던 팀장들도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칸만 피하가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듯 그들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제일 무서운 놈은 곁에 조용히 있는 데미리우스야.”
“데미리우스? 처음 듣는 이름인데…….”
“조용히 활약하는 인물이야. 주로 사용하는 마법은 독 마법…….”
“독이라고?”
“이런 대규모 전투에 독 마법이 날뛰어 봐… 어떻게 되겠어?”
“망할…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네.”
“대놓고 위협적인 인물도 함께하고 있잖아.”
“누구?”
“이번에 팀에서 쫓겨난 에이브릴 말이야.”
“에이브릴은 그래도 유명하지…….”
쇠사슬 마법을 사용하는 에이브릴은 이전부터 아카데미에서 유명한 존재였다.
그녀의 마법은 활용도가 높아 다른 학생들도 탐내는 존재였다.
솔직히 체레드 일행과 싸우면서 팀을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모두가 그녀를 탐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회가 닿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그녀를 채가는 바람에 몇몇 팀대장들은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쇠사슬 마법은 강력했으니까…….”
“심지어 알렌시아도 아시테르 팀에 있지 않나?”
“전격의 알렌시아는 뭐 말할 것도 없지…….”
“근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칸 팀과 다를 바가 없잖아? 아니 오히려 놈들을 상대하려면 칸 팀이 갔어야 하는 것 아냐?”
“쫄지마 병X아. 어차피 걔들도 쪽수에는 장사 없어.”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베네피트가 코웃음을 흘렸다.
다른 이들에 대해서 실컷 떠들고 있지만 저들은 정작 제일 중요한 사람을 빼먹었다.
그 모든 인물들을 한 팀에 끌어들여, 앞장서 이끌고 있는 사람.
베네피트는 그 친구가 그 팀에서 가장 위험하고 요주의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시테르…. 너희들은 그 녀석의 진짜 힘을 몰라… 칸이 아카데미 최강이라고? 글쎄, 내가 생각했을 때 아카데미 최강은 바로 그 녀석이야.”
일전에 베네피트는 본 적이 있었다.
아시테르가 홀로 수련하는 모습을.
하늘로 솟아오르고 사방을 메우던 거센 불길.
그때의 충격과 전율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질 않았다.
같은 화염 마도사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아니, 이제는 같은 화염 마도사인지도 모르겠다.
아시테르의 화염 마법은 테오도라와는 다른 의미로 예술의 경지를 넘었으니까.
“그 녀석의 불꽃은 감히 우리 학생들의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베네피트도 한 편으로 빌고 있었다.
자신이 가는 쪽에 부디 아시테르 팀만은 없기를…….
* * *
공격조 인원들이 흩어지고 있을 때 아시테르 일행 앞에는 이미 몇몇 학생들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공격조에서 회의가 끝나기 전에 미리부터 움직인 이들이었다.
“아니 고민할 게 뭐가 있어?”
“내 말이. 당연히 숫자가 적은 쪽부터 공략하는게 맞는 거지.”
“내가 봤을 때 누가 독식할지 고민하느라 늦어지고 있는 거였다니까.”
“크흐흐… 뻔하지 뭐. 근데 그럼 뭐하나? 원래 먹이는 일찍부터 움직여서 가로채는 사람이 임자인 건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공격조 인원들을 보며 에이브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혹시 몰라 다른쪽도 살펴보았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대략 10여 명 정도.
다른 추가 인원들은 없는 모양이었다.
“뭐야? 더 없어?”
“내가 봤을 때 쟤들은 공격조에서 결정이 나기도 전에 움직인 친구들이야. 한 마디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방랑자 같은 이들이지.”
“그걸 어떻게 확신해?”
“지나치게 빠르니까. 거기다 전략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허술해.”
아시테르의 말에 에이브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아시테르는 이미 그들의 접근을 라빈과 에스파에게서 전달받아 알고 있었다.
다른 팀의 대장들이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누가 먼저 나설까?”
“원한다면 우리팀이 먼저 나서도 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아시테르 너희 팀에서 먼저 나서는 게 낫지 않나……?”
“그래. 우리들보다는 너희가 좀 더 실력들이 좋으니까.”
“됐어. 어차피 쟤들 정도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에이브릴이 홀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시테르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에이브릴이 먼저 선수치듯 말했다.
“딱히 큰 의미는 없어. 그냥 몸 좀 풀려는 거니까.”
에이브릴이 손아귀를 펼치자 세 개의 사슬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그녀의 공격이 시작되자, 공격조 인원들도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데미리우스가 독 마법을 펼치려 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이를 말렸다.
“잠시만요 형.”
“빠르게 처리하고 나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일단은 지켜봐주세요.”
“알겠어요.”
데미리우스가 마력을 흩으러 트렸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알렌시아쪽으로 향했다.
“알렌시아.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잠자코 지켜봐줘.”
“그럴 생각이었어.”
알렌시아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전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향했다.
쇠사슬의 움직임은 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해졌다.
채찍처럼 움직인 쇠사슬이 화염과 얼음을 뚫고 적들을 공격했다.
“피해!!”
“제기랄!! 여기에 에이브릴이 있었을 줄이야!”
잠시 당황했던 공격조 인원들이 곧 침착함을 되찾고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에이브릴은 적들의 공격도 어렵지 않게 방어해냈다.
그녀의 주변을 감싼 쇠사슬이 다가오는 얼음 파편들을 모두 막아버린 것.
꿈틀거리며 뻗어간 다른 사슬이 상대의 몸을 옥죄었다.
“공수의 전환이 아주 좋네.”
“밸런스가 굉장히 좋은 마법입니다.”
“라빈의 마법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네요.”
“지켜보고 있으면 괜히 자매가 맞나 싶기도 하고…….”
쇠사슬에 엉킨 학생들이 우후죽순 쓰러지기 시작했다.
에이브릴의 사슬이 가차 없이 그들의 몸을 때렸다.
“우와…….”
“혼자서 다 해치워버리다니…….”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대단한 실력이네…….”
다른 학생들도 감탄을 토해냈다.
상대였다면 잔뜩 경계했겠지만 같은 팀으로 있으니 이토록 든든할 수가 없었다.
에이브릴이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아시테르가 그녀를 향해 아낌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주었다.
“이 정도면 내 쓸모를 조금은 증명해 보인 셈이지?”
“처음부터 네가 훌륭한 인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
“그럼 됐고. 아무튼 날 팀에 들인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줄게.”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
“만약 이번 미션에서 체레드 일행을 만난다면…….”
“우리가 함께 나서줄까? 아니면 역시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후후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것처럼 말하네. 맞아.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그 녀석과의 매듭은 내가 짓겠어.”
“그럼 그렇게 해.”
아시테르가 웃으며 답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브릴의 입가엔 씁쓸한 웃음이 맴돌고 있었다.
쓰러진 공격조 인원들을 보며 수비조 팀장들이 얘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이게 다는 아니겠지?”
“이 친구들은 그냥 본인들 욕심에 먼저 와본 것 뿐일 거야.”
“꼭 이런 놈들이 있지. 아무튼 방심은 금물이야.”
“그래. 진짜는 이제부터니까.”
그들은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 받으며 더더욱 경계를 강화했다.
때마침 정찰을 갔던 학생들도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잘했어 라빈.”
“우리가 미리 알려준 놈들은 어떻게 되었어? 아시테르 오빠가 그냥 놔두라고 해서 그렇게 하긴 했는데.”
“에이브릴이 모두 쓰러트렸어.”
“헤에… 그 언니가? 웬일이래? 어지간해선 먼저 나서는 타입이 아닌데.”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속으로는 조급한 마음이었을 거야.”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가문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친구였다며? 근데 이번엔 팀에서 버려지듯 쫓겨났잖아. 그러니 우리 팀에서도 조급한 마음이었겠지. 어떻게 해서든 인정을 받아야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있으니까.”
“아하… 그래서 일부러 그 기회를 준 거다?”
아시테르는 대답 대신 웃음을 보였다.
그 모습에 라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어떤 때는 마냥 해맑고 순수해 보이는데 또 어떤 때는 비상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단 말이지…….”
“칭찬으로 듣겠어!!”
“네네. 좋을 대로 하세요. 아! 근데 참 이 말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야.”
“드디어 공격조가 움직였나 보네?”
“응. 근데 아주 재밌게 됐어.”
“왜?”
라빈의 말에 아시테르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마침 다른 일행들도 이쪽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대도 우리들의 작전을 눈치 챈 모양이야.”
“어째서?”
“최강 전력인 칸 팀이 이곳으로 오고 있대.”
“호오… 칸의 팀이!”
“진짜 재밌게 되었네.”
데미리우스와 알렌시아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반응을 살피던 에스파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재밌는 상황이 되었다고!? 아니… 어떻게 해서든 걔네들만 피하면 되는 것 아니었어? 상대 최강 전력이 이곳으로 온다잖아…! 근데 어떻게 너희들은 이게 재밌는 상황이야?”
“그럼 부숴버리면 되지 뭐가 문제야. 벌써부터 겁먹지 마 얼간ㅇ….”
에이브릴이 순간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에 에스파가 움찔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얼간이라는 말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에이브릴도 아차 싶었다.
“미안… 일부러 한 말은…….”
“아냐. 괜찮아.”
다소 차가워진 말투.
아마 에스파도 과거의 상처들이 다시 떠올라 그런 듯 했다.
아시테르가 에스파와 에이브릴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의 일은 두 사람이 차차 풀어가길… 자, 그래서 라빈! 상대측의 인원수는 파악 되었어?”
“그쪽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지 않아.”
“그럼 소수정예일 가능성이 높겠네.”
“칸 팀이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소수 정예지 뭐. 무엇보다 자비토 그 녀석도 함께 있다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