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정면대결 (3)
아시테르와 칸의 전투를 보며 많은 학생들이 느끼는 것이 있었다.
두 사람의 전투는 이미 학생들의 수준을 벗어난 지 한참 되었다.
칸이야 워낙 유명했으니 그렇다 치지만, 그런 칸과 대등하게 싸우는 아시테르의 실력은 더욱 고평가 되고 있었다.
휘링!!
바람의 칼날이 불꽃을 갈랐다.
곧바로 피어오른 불꽃이 칸을 덮치려 들었다.
칸은 바람에 몸을 맡기며 불꽃을 피했다.
그 모습이 마치 바람이 그를 지켜주려는 모양새였다.
아시테르의 불꽃이 수평으로 퍼져나갔다.
일자로 뻗어나간 불꽃이 점점 크기를 키우며 날아갔다.
“소용없다. 네놈의 불꽃은 나에게 닿지 않아.”
칸이 손바닥을 들어올리자 눈앞으로 바람의 벽이 세워졌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바람이 다가오는 불꽃을 이끌었다.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솟구치는 불꽃을 보며 아시테르가 입을 다물질 못했다.
“저런 방법도 가능하구나……!”
자신의 불꽃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의 속성으로 불꽃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이렇게 방어하는 이는 또 처음이었다.
피슝!!
이어 허공에 형성되었던 바람의 화살이 아시테르에게로 날아들었다.
아시테르가 이번엔 발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팡!!
거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바람의 화살이 날아오는 궤도는 이미 읽었다.
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바람의 화살들을 피해내었다.
아시테르와 칸의 사이가 단숨에 좁혀졌다.
“……!”
칸도 이번에는 제법 놀란 눈치였다.
그가 재빠르게 바람 마법으로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아시테르가 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후웅!!
주먹끝에서 시작된 불꽃이 몸집을 키우며 칸을 덮쳤다.
“흡!?”
헛바람을 집어삼킨 칸이 재빨리 바람을 일으켰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칸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화르륵!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불꽃이 소용돌이에 튕겨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주먹에 불길을 두른 채 억지로 사이를 비집었다.
소용돌이를 뚫고 나간 아시테르의 손끝에서 화염이 뻗어나왔다.
“제정신인 거냐…?”
칸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소용돌이치는 바람 마법에 억지로 주먹을 꽂아넣다니!
자칫 잘못하면 팔이 그대로 으스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자신의 마법을 믿었다.
그는 마력으로 신체를 보호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 덕분에 불꽃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사용해도 몸이 부담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이 마력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배신하지 않았다.
후웅―!!
안으로 밀려들어간 불꽃이 소용돌이의 안쪽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칸은 어쩔 수 없이 마법을 해제하고 말았다.
“내 마법을 뚫다니…….”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자신의 몸을 방어해내는 바람 마법.
단언컨대 아카데미 학생들 중 그 누구도 이 마법만은 깨트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었다.
“그 팔은 괜찮은 거냐?”
“아아 괜찮아.”
아시테르가 일부러 팔을 돌려보며 말했다.
정말로 멀쩡한 눈치였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아주 치열했던 전투.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마법 전투였다.
그리고 이 전투를 통해 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테르는 강하다.
자신이 얕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인정하겠다. 너는 분명 강하다.”
“너도 만만치 않아. 현재 아카데미에서 최강이라고 불리던데… 그럴만 하네.”
아시테르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는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동시에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이는 막상막하의 전투에서 비롯된 설렘이자 짜릿함이었다.
그의 시선이 칸에게로 향했다.
바람은 언제나 그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까다로웠다.
불꽃이 파고들 틈을 만들기 위해 더욱 움직여야만 했다.
“다시 한 번 간다?”
“얼마든지 와라.”
칸이 손아귀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말했다.
아시테르가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을 눈동자로 쫓아가기엔 늦었다.
때문에 칸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휘리링―!!
사방으로 바람의 칼날이 뻗어 나갔다.
아시테르가 또다시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곳이 있다.
칸은 본능적으로 그곳에 아시테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팔을 십자(十)로 휘둘렀다.
그러자 십자로 날아간 바람을 막아서기 위해 불기둥이 일었다.
“잡았다.”
불기둥의 양쪽으로 칸이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아시테르도 화염구를 날리며 바람의 화살들을 무마시켜버렸다.
이어 그의 자세가 한층 더 낮아졌다.
빠르게 안쪽까지 파고든 아시테르가 불꽃을 피워냈다.
화라랑!!
후웅!!!
솟아오르려는 불꽃과 하강하는 바람이 마주했다.
그 치열한 힘 겨루기에 칸의 이마에 힘줄이 선명해졌다.
마찬가지로 아시테르도 이를 악물고 있었다.
“크아아!!”
있는 힘껏 괴성을 질러낸 아시테르가 마침내 하강하는 바람을 뚫어버렸다.
화릉!!
화살표처럼 솟구쳐 오른 불꽃이 칸을 덮쳤다.
“크으……!”
칸이 처음으로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그 또한 아시테르와 마찬가지로 신체를 보호하는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시테르의 불꽃은 강렬한 위력을 보였다.
“너도 그걸 사용할 줄 아는구나?”
“스킨 실드(Skin shield) 말인가? 너도 할 줄 알지 않나? 조금 전 내 바람 마법을 뚫을 때 본 것 같은데.”
“그걸 스킨 실드라고 부르는 거야?”
“이런 고급 마법을 익히고도 지금껏 마법의 이름도 몰랐던 거냐?”
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해?”
“하긴. 그 말도 맞는 것 같군.”
하기사 이름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였다.
칸은 그때서야 아시테르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선홍빛 아지랑이를 살폈다.
저 마력이 아마도 아시테르를 보호해주고 있을 터였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아시테르 스스로 자신이 스킨 실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시테르에게 저것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였다.
‘스킨 실드를 저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다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괜히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아시테르와 칸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아시테르와 칸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그 마법을 어디서 배운 거냐?”
“스킨 실드?”
“그래.”
“그냥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릴… 스킨 실드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고? 그럴려면 마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가능할 텐데…….”
“내가 자라온 곳이 워낙 마나가 희박한 지역이었어서.”
“그랬나…….”
칸이 주변을 살폈다.
베릴니아의 아이스 골렘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린 상태였다.
덱스의 인형들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라고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아시테르 일행을 상대로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도 모두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칸의 오른팔을 자처한 크로제도 제법 선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로제와 함께 실력을 쌓아온 베드커만도 선전하고 있었다.
칸의 시선이 자비토쪽으로 향했다.
“저 녀석…….”
자비토는 현재 알렌시아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광석 마법에 알렌시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알렌시아!”
그녀를 돕기 위해 에스파가 나섰다.
이어 라빈도 이쪽으로 합류 했다.
“오빠는 다른 곳부터 도와줘. 저 녀석이랑은 내가 볼일이 있거든.”
라빈이 기다란 뼈를 들고 나섰다.
그녀를 바라보는 자비토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됐어. 내가 저자를 상대할 테니…….”
“고집부리지마. 당신 혼자서는 저 자식 못 이겨.”
“하지만…….”
“걱정마. 상황이 여유가 되니까 나도 도우러 온 거니까. 거기다 이제 곧 데미리우스 오빠의 마법도 시작될 거야.”
그녀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데미리우스는 한 자리에서 꾸준히 마법 영창을 외우고 있었다.
에이브릴도 여전히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를 뚫어내기 위해 상대편의 베드커만도 그쪽으로 붙어버렸다.
라빈을 바라보던 자비토가 입술을 들썩였다.
“라빈.”
“이렇게 제대로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네? 근데 그 역겨운 표정은 대체 언제까지 짓고 있을 거야?”
“그보다 네게 할 말이 있다.”
“닥쳐. 너한테 듣고 싶은 말 따위 없으니까.”
“언제까지 내게 화만 낼 거지? 나 또한 너 때문에 죽을 뻔 했다.”
“시끄러. 그날 네가 나한테 한 말과 행동들을 잊었어? 나는 아직도 네가 용서가 안 돼.”
라빈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
동시에 자비토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그날의 일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라빈이 처음으로 폭주하던 때를.
오르페 가문과 레프레시아 가문은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자비토와 라빈도 자연스레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냈다.
두 사람이 잘 지내는 것을 확인한 오르페 가문은 먼저 레프레시아 가문에 정혼을 제안했고, 레프레시아 가문에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 정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정혼이 성사되었을 때, 자비토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이 정혼은 자비토가 아버지인 히스링 단장에게 조르고 졸라 성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히스링 단장은 라빈보다 에이브릴이 어떻냐고 물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차갑기만한 에이브릴보다 발랄하고 귀여운 라빈이 자신의 마음을 훔쳤던 것이다.
다행히 히스링 단장은 자비토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주는 인물이었다.
헌데 그 사건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히스링은 이제 정혼자까지 되었으니 라빈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지켜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그때 라빈의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한동안 자비토에게도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뼈가 사방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라빈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라빈은 괴로워하면서도 자비토에게 새하얀 손을 뻗었다.
살려달라고…….
자신을 구해 달라고…….
너무나 아프다고…….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했다.
하지만 자비토는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웠다.
라빈의 몸에서 새하얀 뼈가 튀어나오는 모습들.
붉은 핏물이 사방으로 뿌려지는 광경들까지.
어느 것 하나 공포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저리가… 저리가 이 괴물아!!”
결국 자비토는 해서는 안 될 말과 함께 라빈을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두려움에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리곤 두 눈을 질끈 감고 뛰고 또 뛰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두 눈을 감았음에도 기괴하게 변했던 라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두렵고 또 두려웠다.
그 순간.
“무슨 일이냐?”
아버지인 히스링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에 비로소 자비토는 멈춰설 수 있었다.
진정되지 않는 몸은 계속해서 부들거리며 떨렸다.
“아가씨께서!! 아가씨께서!!”
“치유 마도사를 불러!”
“아가씨께서 폭주하셨습니다!!”
자비토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뒤로 고개를 돌렸을 땐 라빈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봐야 할 것 같구나.”
히스링은 놀란 자비토를 데리고 곧바로 오르페 가문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이후로 라빈은 자비토를 만나주지 않았다.
히스링도 정혼 얘기를 물리려 했지만 자비토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레프레시아 가문에서 먼저 정혼을 깨지 않는 한 이 정혼은 유효한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자비토. 그 아이는…….”
“아버지… 저는 그날 라빈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말았어요… 정혼자라며 지켜주겠다 했는데… 그렇게 말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