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발할라의 난입 (1)
“응? 뭐야? 왜 네가 이 여자를 보호하는 거야?”
“너희는…….”
자비토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체레드가 포함된 일단의 무리였다.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사내가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혹시 이 여자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냐?”
“에이… 설마! 자기 뼈나 뽑아대는 끔찍한 여자인데……?”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다.”
세 명의 사내가 전장을 둘러보았다.
안대로 눈을 가린 사내, 마르틴이 머리를 긁적였다.
“다들 치열하게 잘도 싸우고 있네.”
“어차피 이기는 건 우리인데.”
“빨리 물건부터 찾는다.”
마르틴과 함께 있는 것은 레펠로드와 쿠마스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체레드에게로 향했다.
체레드는 이미 자신의 힘에 심취해 있었다.
자비토의 광석 방패마저 뚫어버리는 위력.
“이게 정말 내 마법이라니…….”
“어때? 우리들이 말했지? 이 ‘피메트’와 함께라면 너는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최고야…. 마력이 넘쳐나는 이 느낌!!”
체레드는 들고 있던 푸른 포션, 피메트를 마저 마셨다.
그러자 그의 혈관을 타고 푸른빛이 전신에 퍼졌다.
포션에 반응한 마력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체레드가 두 팔을 뻗었다.
슈라악!!
기다랗게 뻗은 수은 덩어리가 커다란 채찍처럼 움직였다.
자비토가 이를 악물고 이를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수은 채찍은 가볍게 자비토를 날려버렸다.
“피해!!”
“모두 달아나!”
체레드의 마법에 학생들이 혼비백산 흩어지기 시작했다
퍽!
퍼버벅!!
마법으로 방어를 해도 소용없었다.
수은 채찍은 다른 학생들이 만들어낸 방패마저도 간단히 부숴버릴 정도였다.
“저 자식… 힘에 너무 취해 있는 것 아냐?”
“다른 쪽도 마찬가지인걸 뭐. 일단 놔둬. 마음껏 즐겨봐야지 쟤들도.”
“쯧… 그래도 좋다고 날뛰는 꼴들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심보가 못됐어 아주 그냥.”
콰아앙!!
체레드의 수은이 날뛰는 것을 자비토가 다시 광석 마법으로 막아내었다.
“응? 자비토.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거냐?”
“너… 언제 이런 마법을 익혔지?”
“아아… 이 정도로 뭘 놀라고 그래?”
체레드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수은 방울들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나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이런 미친……!”
그것을 확인한 자비토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광석으로 커다란 벽면을 만들었다.
라빈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그녀 또한 뼈의 크기를 키우며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내었다.
“아까 도와준 건 고마워.”
라빈이 자비토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금 전 체레드에게 공격까지 당하면서 생각보다 몸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마.”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해볼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체레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어디 한 번 시작해 보자고.”
체레드의 수은 방울들이 사방으로 쏘아져나갔다.
수은 방울들의 공격이 공격대, 호송대 가릴 것 없이 모두를 꿰뚫었다.
“체레드……?”
갑자기 강해진 체레드를 보며 에이브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해진 것은 체레드뿐만이 아니었다.
늘 함께 다니던 도거스의 점액 마법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슬라임처럼 퍼진 점액들이 학생들을 집어삼켰다.
“꺄악-! 이게 뭐야!!”
“도… 도와줘……!”
퍼지는 점액들을 피해 학생들이 달아났다.
체레드와 도거스가 난리를 피우는 와중에도 호송대와 공격대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아시테르와 칸도 전장의 상황이 바뀐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저 자식들……!”
“저놈들이 어째서 이곳에…….”
그들을 알아본 칸이 인상을 찌푸렸다.
체레드 팀은 분명 오른쪽 날개로 보냈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마치 그것에 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마르틴이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만 좋은 일을 시킬 수 없지. 우리도 물건을 가지러 왔다.”
그들은 어느새 호송마차를 지키고 있던 학생들을 제압한 상태였다.
이어 호송 마차에 있던 작은 상자들을 꺼냈다.
“이게 바로 그 물건들인가보군. 이제 이걸 갖고 목표 지점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냐?”
마르틴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주는 칸과 다른 녀석들이 부리고 자기들은 실리를 취해가면 그만이었다.
주변의 학생들을 쓰러트린 레펠로드와 쿠마스도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쟤네 둘은 어떻게 해?”
“버리자. 어차피 우리들만 빠져나가도 되니까.”
“크흐흐 저 자식들. 힘에 취해서 완전히 날뛰고 있네.”
그들 모두 날뛰고 있는 체레드와 도거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크로제!! 베드커만!!”
칸의 외침에 크로제와 베드커만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칸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으하하!!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상대는 우리들이 아니야.”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크로제와 베드커만을 보며 마르틴이 웃었다.
그 웃음 뒤에는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복면인들 때문에 전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적들이다!”
“새로운 적들이야!!!”
“뭐… 뭐야!? 아카데미 학생들이 아니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근처에 있던 공격대와 호송대 학생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순식간에 전장에 난입한 정체 모를 인물들.
심지어 그들은 공격대와 호송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공격했다.
불꽃이 날아다니고 얼음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아시테르와 칸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래도 지금은 우리끼리 전투를 벌일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동감이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법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서로를 향해 서 있던 아시테르와 칸이 이번에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에스파!!”
“말해!”
아시테르의 부름에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던 에스파가 손을 들었다.
그는 에이브릴의 쇠사슬 안쪽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련의 던전에 있을 때도 에스파는 늘 적들을 먼저 파악하는 역할이었다.
“적들의 수는 파악 되었어!?”
“대략 50여명 정도!”
“좋아. 활로 날 엄호해줘!”
“맡겨둬.”
에스파가 마력으로 만든 활을 들어올렸다.
침착한 그의 모습에 에이브릴이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예전 같았다면 에스파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터다.
과거에도 에스파가 굳어버린 채로 가만히 있는 바람에 미션에서 실패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시테르를 따라 시련의 던전까지 다녀왔던 에스파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에스파는 적극적으로 활을 쏘며 아시테르를 엄호해주고 있었다.
그는 아시테르를 향해 날아오는 마법들까지 맞추는 기가 막힌 실력을 뽐냈다.
“그 사이에 많이 달라졌네…….”
대회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이전에 알고 있던 에스파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에이브릴이 에스파의 성장에 놀라고 있는 사이, 아시테르는 복면인들 몇몇을 쓰러트렸다.
이어 그는 단숨에 전장 깊숙이 뛰어들어 불꽃으로 호송대와 공격대 사이를 갈라놓았다.
화르륵.
후우웅!!
이어 날아온 바람의 칼날도 공격대와 호송대 사이를 갈라놓았다.
“지금은 우리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적들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아시테르와 칸이 각자 팀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의 말에 그때서야 다른 인원들도 복면인들을 발견했다.
그동안은 전투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었다.
콰아앙!!
파바바방!
여기저기 폭발음이 일고 비명이 튀어나왔다.
복면인들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면 모두가 손발을 맞춰 싸울 줄 알았건만, 상황은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모두 진형을 갖춰!”
“일단은 손을 잡고 저놈들부터 상대한다!”
“개소리. 우리들이 저놈들과 싸우고 있을 때 물건을 가져갈 속셈이지?”
“너희들이야말로 우리들이 저자들을 막을 때, 물건을 목표 지점까지 따로 옮겨놓을 심산 아니냐?”
단합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제 3자가 나타났음에도 그들의 머릿속엔 여전히 미션 생각뿐이었다.
칸이 한심한 그들을 보며 뭐라 말하려는 때 아시테르가 한 발 먼저 소리쳤다.
“멍청한 인간들아!!!”
그의 외침에 말다툼을 하던 공격대와 호송대 인원들이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아시테르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이건 미션 따위가 아니라 실전이라고! 너희들이 죽으면 미션이 무슨 소용이야!?”
“쳇… 그래놓고 지들이 물건을 가져가면 우리는…….”
퍼억!!
끝까지 투덜거리는 녀석을 향해 칸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에게 한 대 맞은 사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칸을 올려다보았다.
“어리석은 소리 집어치워라. 지금은 적들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 미션을 하기 이전에 우리들은 모두 동료들이 아닌가?”
“하지만 칸…! 저 사람들은 아카데미 교관들이 보낸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뭐 그렇게까지…….”
“네 눈에는 저게 우리 아카데미 사람들이 할 행동들로 보이나?”
칸은 똑바로 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복면인들의 마법에 여러 학생들이 당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사내도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도 지금이 실전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야!”
“내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적들을 두고 계속해서 속 좁게 굴지마라 멍청이들. 미션은 그 다음이다.”
아시테르와 칸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마침내 복면인들이 이곳까지 뚫고 들어왔다.
“단 한 명도 죽게 놔두지 않아.”
아시테르는 단번에 복면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옷에 익숙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발할라…! 결국 여기까지……!”
라빈과 다른 동료들이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아시테르도 마침 데미리우스를 찾으려 했다.
“데미리우스 형! 아직 멀었어요!?”
“이제 다 되었어요. 명령만 내려요 대장.”
“그거 잘 됐네요. 그럼 겁도 없이 이곳으로 쳐들어온 발할라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까요?”
아시테르의 말에 데미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아귀를 펼치자 가운데서 보랏빛 운무가 퍼져 나왔다.
손끝에서 퍼져나온 독무가 주변의 적들을 노렸다.
데미리우스가 이끄는 대로 보랏빛 구름들이 움직였다.
슈파앙!!
파아앙-!!
보랏빛 구름에 맞은 복면인들이 중독되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마법은……!”
“독 마법이다!! 마도사를 찾아라!”
“모두 뒤로 물러나!!!”
확실히 데미리우스의 독 마법은 엄청난 효과를 보였다.
그가 조종하는 독무는 복면인들을 계속해서 쫓았다.
독무에 중독되면 경련이 일어나고 몸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벌써 몇몇 복면인들이 독에 중독돼 바닥을 기고 있었다.
칸이 바람을 일으켰다.
후우웅!!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도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라빈은 쓰러진 자비토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이를 확인한 자비토가 입술을 들썩이며 말했다.
“싸우러 가야 하는 것 아냐?”
“시끄러.”
그녀는 까칠한 말과 다르게 자비토를 노리는 복면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슈롸아악!!
그때 독무를 뚫고 나온 수은이 기다랗게 뻗은 가시 형태로 데미리우스를 노렸다.
이를 발견한 에이브릴이 쇠사슬로 수은을 막으려 했다.
철컹!!
그러나 수은은 가볍게 쇠사슬을 뚫고 데미리우스의 복부를 꿰뚫는데 성공했다.
“크흡……!”
데미리우스가 짤막한 신음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