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발할라의 난입 (2)
“아……!”
당황한 에이브릴이 쇠사슬로 길게 뻗은 수은을 끊어내었다.
데미리우스가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독 마법은 멈추지 않았다.
데미리우스는 독 마법이 끊이지 않도록 끝까지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이브릴이 가까이로 붙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쯤은… 괜찮습니다.”
핏물이 옷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몸을 관통당했으니 상처도 클 것이다.
“어디 한 번 봐봐요.”
에이브릴이 빠르게 상처를 살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옆구리쪽에 빗겨갔다.
“어서 치유 마도사를……!”
“후후 이곳에 치유 마도사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럼 이렇게라도 해요.”
에이브릴이 품에서 상처약을 꺼냈다.
그녀가 긴급 처치를 하는 동안 데미리우스는 독무를 없앴다.
이어 그가 보랏빛 갈고리를 만들어내었다.
포이즌 훅(Poison hook).
날아간 갈고리에 닿으면 즉시 녹아버리기 시작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고통 때문에 온몸이 뜨겁고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있었지만 데미리우스는 고개를 흔들어 집중했다.
“호오… 배가 뚫리고도 그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놀랍네.”
“체레드!?”
데미리우스의 앞으로 체레드가 걸어왔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했다.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얼굴에는 그늘이 졌고, 피부는 푸석해져 있었다.
헌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에이브릴이 쇠사슬을 움직였다.
네 갈래로 갈라진 쇠사슬이 체레드를 노리고 들었다.
“네 마법이 이 정도밖에 안 됐다니.”
체레드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수은으로 이루어진 검이 쇠사슬을 베어내었다.
데미리우스가 체레드를 향해 포이즌 핸드 마법을 사용했다.
보랏빛 갈고리가 이번엔 그를 향해 뻗어나갔다.
“흐흐흐…….”
체레드가 괴상한 미소를 보이며 수은으로 이루어진 장벽을 만들어내었다.
가가각!!
기괴한 소리와 함께 갈고리가 막혔다.
곧바로 모습을 변형한 수은이 날카로운 형태로 에이브릴과 데미리우스를 노렸다.
에이브릴이 쇠사슬을 교차시키며 공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쇠사슬이 형편없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피해야 해요!”
에이브릴이 남은 쇠사슬을 이용해 데미리우스를 이동시켰다.
퍼벅!!
수은이 에이브릴의 몸을 강타했다.
그녀의 몸이 한순간 허공에 떠올랐다.
“크학……!”
핏물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강한 충격 때문에 에이브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에이브릴!!”
데미리우스가 그녀를 돕고자 했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어지러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하하하!! 이거 완전 끝내주잖아!? 어떠냐 에이브릴? 늘 나를 무시했었잖아? 무시하던 놈 앞에서 바닥을 기는 기분이 어때!?”
어느새 에이브릴의 앞까지 다가간 체레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에이브릴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앞에 있는 체레드는 그녀가 알고 있던 체레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광기에 물들어 있는 미치광이의 모습일 뿐이었다.
“체레드…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이렇게 성장하면 안 되냐? 지금 나를 봐. 최강이나 다름 없어. 그 어떤 놈도 나를 막지 못한다고.”
체레드가 손을 뻗어 에이브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몸에서는 수은이 흘러나왔다.
수은은 곧 날카로운 가시 형태를 이루었다.
가시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모두 에이브릴이었다.
“정신차려… 이건 원래 네 힘이 아니야…….”
“너야말로 정신 차려라 에이브릴. 언제까지 그렇게 고상한 척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만 받아들여. 너보다 강해진 내가 부럽다고. 그때 놈들이 제안한 피메트를 마시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역시… 그 포션을 마셨구나 너…….”
체레드가 붙잡혀 있는 에이브릴의 눈빛을 살폈다.
차가워 보이는 눈동자.
저 눈동자는 언제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함께 하는 동료라고 생각했지만 늘 자신이 수하같았다.
동등한 위치가 아닌 아래의 위치.
에이브릴의 곁에 있으면 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다른 이들도 체레드와 다른 친구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불쾌한 기억들이 떠오르자 체레드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래… 나는 네 이 눈. 이 눈이 마음에 들질 않았어.”
“뭐……?”
“항상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같은 그 눈 말이야. 나는 그 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슨 소리야… 난…….”
“크흐흐 그거 알아? 너는 단 한 번도 우리들을 친구나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어. 그저 부리기 쉬운 부하들 쯤으로 여겼겠지.”
“아니야. 나는 너희들을 제일 믿고 의지했어. 그래서 이번에도…….”
“거짓말 치지마. 우리들이 피메트를 마시고 강해지고자 할 때도 넌 반대부터 했잖아? 사실은 우리들이 너보다 강해질까봐 두려웠던 거겠지. 우리가 너보다 강해지면 그동안의 위치가 뒤바뀌게 될 테니까.”
체레드의 말에 에이브릴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건 잘못된 방법이기 때문에…….”
“닥쳐!”
짜악!
체레드가 손바닥으로 에이브릴의 뺨을 때렸다.
입술이 터져 핏방울이 새어나왔다.
그럼에도 에이브릴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핑계 대지마. 그리고 그걸 왜 네가 판단하지? 네가 뭔데? 우리들의 상관이라도 돼?”
“포션을 마시고 단번에 강해진다는 게…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방법이겠어? 그리고 그렇게 좋은 거라면 어째서 쟤네들은 마시지 않고 너희들에게만 권했지?”
“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체레드. 단번에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 있다면, 너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그걸 쉽게 가르쳐주겠어?”
“이… 이익……!”
흉악하게 일그러졌던 체레드의 표정이 차츰 평소대로 돌아왔다.
이어 체레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뭐, 이젠 아무렴 상관없어. 근데 그거 아냐?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내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
에이브릴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를 확인한 체레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두 눈은…….”
수은 가시들이 에이브릴의 눈을 노렸다.
슈슉-!
철그럭!!
에이브릴이 쇠사슬로 막아보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새롭게 뻗어나온 수은 줄기들이 쇠사슬의 움직임을 간단히 막아버렸다.
“내가 가져가주마.”
“체레드… 너……!”
그때 멀리서 화살 하나가 빠르게 날아왔다.
슈우웅!!
팡!
화살이 정확히 수은 가시를 맞췄다.
이어 회전하며 날아온 화살이 체레드의 손을 노렸다.
“흡!?”
놀란 체레드가 반사적으로 손을 회수했다.
덕분에 에이브릴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쇠사슬이 채찍처럼 움직였다.
“이게!”
체레드의 수은이 줄기처럼 뻗어나가며 쇠사슬들을 상대하려 들었다.
하지만 또다시 날아오는 화살들이 그를 방해했다.
이 화살의 주인이 누군진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나와라 에스파!!!”
체레드가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에스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파 속에서 마력 화살이 날아왔다.
카앙!!
하나를 방어해내면 두세 개의 화살이 날아온다.
그것을 막아내면 다음은 다섯 개의 화살이었다.
체레드가 에스파를 찾아내기 위해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하지만 에스파는 쉽게 자신의 모습을 내비추지 않았다.
그는 전장의 인파 속에서, 수풀 속에서 철저히 모습을 감추며 화살을 쐈다.
“크윽… 이 벌레 같은 새끼가……!”
마력 화살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수은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마력 화살이 연속으로, 그것도 다방면에서 날아오니 문제가 되었다.
체레드가 수은으로 장벽을 만들어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어디 있는지 보이기만 하면……!”
“네 상대는 여기도 있어.”
에이브릴의 쇠사슬이 수은 방벽을 뚫고 들어왔다.
쇠사슬은 뱀처럼 휘며 체레드의 몸을 휘감았다.
“기고만장해지긴. 겨우 얼간이 에스파 하나 늘었을 뿐이인데.”
“과연 그럴까?”
에이브릴의 쇠사슬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수은 장벽들을 때렸다.
강한 충격에 수은 장벽이 일렁였다.
그 잠깐의 틈.
그 정도면 에스파에겐 충분했다.
에스파는 그 사이로 화살들을 꽂아넣었다.
파바박!!
파방-!!
작게 만들어진 수은 방패가 급하게 마법 화살들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중간에 방향을 바꾼 화살이 체레드를 격했다.
“크윽…! 이 새끼가……!”
분노한 체레드가 에스파의 화살이 날아온 쪽을 향해 수은 방울들을 날렸다.
그러나 에스파는 이미 그곳을 벗어난 뒤였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 이 전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서우리만치 끌어올린 집중력은 공기의 흐름마저도 인지하게 만들었다.
에스파가 손끝으로 마력을 집중했다.
평소와는 이질적인 느낌이면서도 편안한 기분.
마치 활과 자신의 몸이 이어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슈슝!
슈우웅!!
에스파가 원하는 곳으로 화살들이 날아갔다.
정신없이 쏘아지는 화살 세례에 체레드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 에이브릴이 공격을 이었다.
수은에 쳐내지는 쇠사슬을 보며 에스파가 활시위를 당겼다.
파앙-!
날아간 화살이 쇠사슬을 때렸다.
그러자 쇠사슬이 직각으로 꺾이며 방향을 틀었다.
“뭣!?”
갑자기 방향을 바꾼 쇠사슬을 보며 체레드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콰라랑!!
쇠사슬이 체레드를 덮쳤다.
“크아아아!!!!”
체레드가 괴성을 터트렸다.
그가 더욱 마력을 끌어올리며 에이브릴을 공격하려는 때였다.
푸슉-.
갑자기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마력이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봇물 터지듯 새어나오기 시작한 마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란 체레드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손의 피부가 쩍쩍 말라붙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체레드……?”
에이브릴도 체레드의 상태가 이상함을 느꼈다.
에스파가 체레드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구나 에스파!! 이 빌어먹을 새…….”
체레드가 마법으로 에스파를 공격하려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것이 말끔하게 비워진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마력이 없다.
몸에서 단 한 줌의 마력도 느껴지질 않았다.
심지어 몸의 관절이 굳은 것처럼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런이런…. 벌써 포션의 부작용이 시작됐나.”
체레드의 시선이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서있던 것은 마르틴이었다.
그가 아쉽다는 시선으로 체레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어떻게 된 일이긴. 네 몸에 남아있던 마력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쓴 거지. 생명력까지 동원해서 말야.”
“그럼 나는…….”
“죽어야지 뭐. 그러게 천천히 좀 즐기지. 뭣하러 그렇게 불태워?”
“아… 아아… 야이…….”
체레드의 분노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마르틴이 흉물스럽게 웃었다.
“가관이네. 하여간 멍청한 새끼다 너도. 어쨌든 네가 날뛰어준 덕분에 우리들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놈보다 늦게 부작용이 시작됐네.”
마르틴이 친절하게 도거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대하던 도거스의 몸이 바짝 말라 있었다.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던 점액질도 이제는 그냥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털썩.
도거스가 먼저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도거스의 눈은 흰자위만 가득했다.
그를 보며 체레드도 절망에 젖고 말았다.
“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