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발할라의 난입 (3)
휘카앙!!!
에이브릴의 사슬이 마르틴을 공격했다.
새하얀 얼음이 에이브릴의 사슬을 막았다.
“가만두지 않겠어.”
“뭐야 지금? 너 설마 이놈을 위해 화를 내기라도 하는 거냐? 널 배신했는데?”
“너희들은 체레드의 마음을 이용했어. 그 마음을 이용한 너희가 나쁜 거지.”
세 개의 사슬이 뻗어 나갔다.
이를 본 마르틴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마르틴이 만들어낸 얼음벽이 에이브릴의 쇠사슬을 막았다.
에이브릴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쇠사슬을 컨트롤 했다.
그러나 마르틴에게 그녀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이를 본 에이브릴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왜? 생각보다 마법이 안 통해서 놀랐나?”
“…….”
“너희들은 그게 문제야. 그저 남들이 메겨준 순위가 전부인줄로만 알고 있지. 세상에는 말이야. 필요에 따라 자신의 실력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놈들도 있어. 그러니 착각 좀 하지 마라.”
마르틴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허공에 형성된 얼음 망치가 쇠사슬과 함께 에이브릴을 내리쳤다.
파앙!!
쇠사슬이 아슬하게 얼음 망치를 막았다.
조금만 더 내려갔다면 에이브릴도 위험할 뻔했다.
생각보다 에이브릴이 버텨내자 마르틴이 얼굴을 구겼다.
그가 다시 마법을 쓰려는 찰나.
팡!
마르틴의 몸을 마법 화살이 때렸다.
“크윽……!”
미리 몸에 감싸둔 얼음이 아니었다면 당할 뻔했다.
마르틴의 눈동자가 주변을 살폈다.
마력 화살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파바방!!
파방!
얼음들이 허공에 떠올라 마력 화살을 막아내었다.
“그러고보니 귀찮은 새끼가 있었지 참.”
차앙!!
슈와앙―!
깨트린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크악―!”
“끄으윽…….”
얼음 파편에 당한 학생들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마르틴은 에이브릴을 포함해 다른 학생들까지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었다.
“그만해!”
“내가 왜?”
마르틴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쓰러진 학생 한 명을 붙잡아 올렸다.
그리곤 그 학생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어디 이래도 화살을 쏘려나?”
그러자 에스파의 화살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 마음 약한 새끼. 야!! 모습을 드러내라. 안 그러면 여기 이 자식부터 죽여줄 테니까.”
빈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마르틴이 날카로운 얼음을 붙잡은 학생의 목에 가져갔다.
마르틴의 행동을 보며 에이브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눈앞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은 얼음 파편을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동안의 싸움 때문에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이브릴의 시선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체레드에게 닿았다.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체레드…….”
주변을 살피던 마르틴이 입가를 실룩였다.
“한바탕 소리 질렀으니 못 들었을 리는 없고… 내 말이 진심이 아닌 줄 아는 모양이네.”
마르틴이 날카로운 얼음으로 붙잡고 있던 학생의 목을 그어버렸다.
스각―.
붉은 핏물이 튀고 학생이 자신의 목을 움켜잡았다.
마르틴은 망설임 없이 학생의 목 여러 곳을 베었다.
“흡―!”
바로 앞에서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봤던 에이브릴이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버리고 말았다.
그 틈을 마르틴은 놓치지 않았다.
미리부터 깔아놓았던 얼음.
그것들이 에이브릴의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아……!”
평소라면 당하지 않았을 마법이었다.
마르틴이 인질을 붙잡기 시작하면서 침착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얕은 수에 걸리고만 것이다.
“실전 경험이 없으니까 이런 작은 속임수에도 당하는 거야. 알겠냐? 새장 속의 귀족 나리야.”
쇠사슬이 사라졌다.
에이브릴이 마법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감정도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마르틴이 흉소를 지었다.
“야! 여기 이 여자가 이대로 죽어도 모습을 안 보일 거냐!?”
그가 에이브릴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을 겨누며 외쳤다.
에이브릴이 분노에 물든 눈으로 마르틴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함께 수학한 동료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지?”
“누가 동료래? 내 동료들은 처음부터 너희들이 아니야.”
“뭐……?”
“기름진 배만 채우고 산 너희들은 모르겠지. 어두운 지하에서 썩어 문드러져 갔던 우리들을 말이야.”
마르틴의 목소리엔 은근한 분노가 차 있었다.
얼음을 움켜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슥.
날카로운 부분이 에이브릴의 목에 닿았다.
마르틴은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래도 네 동료라는 놈은 나타날 생각이 없나 보다?”
“소용없어. 아닌 척 해도 에스파는 속으로 날 증오하고 있었을 거야. 어쩌면 이 상황이 에스파에게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지.”
“크하하하!! 그러냐? 근데 네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몸을 철저히 숨기고 있던 에스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마르틴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이에 마르틴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협박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야.”
“어째서…….”
“글쎄. 네 말대로 정말 너를 증오하고 있다면… 최소한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나보지.”
마르틴이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에이브릴은 다가오는 에스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친 것 같은 모습.
그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마력 화살을 쐈으니 지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에스파는 말없이 조용히 마르틴의 가까이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봐이봐. 설마 가까이 와서 화살이라도 쏠 생각이냐? 그러면 이 여자가 죽는다고.”
“…….”
에스파는 말없이 활시위를 뒤로 당겼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를 확인한 에이브릴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어쩌면 에스파는 자신과 함께 마르틴을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녀 역시도 과거 에스파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으니까.
체레드가 그를 계속해서 괴롭힐 때도 에이브릴은 방관했다.
그로 인해 분노를 품어왔다고 해도 자신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마음을 굳힌 에이브릴이 말했다.
“쏴. 나와 함께 이 자를 죽여.”
“아니. 저 새끼는 못 쏴. 나름 오랫동안 지켜봐 왔는데 마음 약한 새끼거든 저거.”
마르틴은 확신하고 있었다.
에스파는 마음이 약하다.
체레드를 상대할 때도 그는 약점이나 급소를 노리지 않았다.
죽이려는 것보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목적이 다분히 보였다.
본인을 가장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체레드조차 함부로 죽이지 못했는데, 자신이라고 다를 리 없다.
결국 이 싸움은 어떻게 흘러가든 마르틴의 승리였다.
에스파는 끝내 활시위를 놓지 못할 테니까.
“포기해라. 이 여자가 죽는 꼴 보기 싫으면.”
마르틴의 말에도 불구 에스파는 계속해서 활시위를 들고 있었다.
이에 마르틴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당장 마력활을 없애지 않으면 이 여자를 죽인다.”
겉으로는 협박하는 척하면서 마르틴은 몰래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발밑으로 번져간 마력이 에스파에게로 당도할 때쯤이었다.
우우웅!!
에스파의 화살에서 빛이 일기 시작했다.
이어 화살이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크하하!! 정말 쏠 기세잖아!?”
“못할 것도 없어.”
에스파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침착했다.
은근하던 떨림도 완전히 멈췄다.
자신을 바라보는 에이브릴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죽이는 것?
괴롭힘을 당할 때도 생각해본 적 없다.
이는 체레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원망하긴 했지만 복수를 가하며 죽이겠다는 생각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더욱 뛰어난 사람으로 성장해 그들 앞에 당당히 서는 게 어쩌면 최고의 복수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체레드는 완전히 망가졌고, 에이브릴은 적의 손에 붙잡혀 있다.
두 사람 모두 성공하고 멋진 모습일 때, 자신 또한 그에 못지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에스파는 늘 그런 상상을 해왔었다.
“내가 원하는 복수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당연히 지금도 에이브릴을 죽일 생각 따윈 없다.
죽게 놔둘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의 시선은 에이브릴의 옆으로 비껴 나온 마르틴의 심장부를 향해 있었다.
에스파가 망설임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그의 손끝을 벗어난 화살이 강한 마력을 머금고 쏘아져나갔다.
두 눈을 부릅뜬 마르틴이 마법을 사용했다.
급하게 떠오른 얼음 벽이 마력 화살을 막으려 들었다.
“진짜 쏠 줄이야……!”
에이브릴을 이용해 에스파를 손쉽게 제거하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붙잡고 있는 에이브릴부터 죽여야 했다.
마르틴이 들고 있던 날카로운 얼음으로 에이브릴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다.
푸슉!!
촤라랍―!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다보던 에이브릴과 눈높이가 같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녀를 올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꺼어…….”
바닥에 무릎을 꿇은 마르틴이 자신의 심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선명한 빛을 머금은 마력화살이 가슴에 박혀 있었다.
“커흑……!”
핏물을 뱉어낸 마르틴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에스파쪽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에스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벽도 멀쩡한 상태였다.
“어떻게…….”
“화살이 휘었거든.”
마르틴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에이브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사슬이 마르틴의 심장부를 다시 한 번 꿰뚫었다.
“말도… 안 돼…….”
“정말로 휘었어. 그것도 아래에서 위로…….”
화살은 정확히 얼음 벽 밑으로 추락하는 듯 보이다가 갑자기 궤도를 바꿔 상승했다.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에스파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가 기본 마법인 매직 에로우만 사용한다며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숨이 완전히 끊긴 마르틴을 보며 에이브릴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뒤에서 에스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돌아본 에이브릴이 갑자기 쭈뼛거렸다.
“그… 어째서 나랑 이 사람이랑 같이 죽이지 않은 거야? 그게 훨씬 더 쉬운 방법이었을 텐데.”
“맞아. 사실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긴 하지.”
에스파의 말에 에이브릴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를 확인한 에스파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왜 널 죽여야 하는데?”
“뭐……?”
“아시테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동료를 버리지 않아. 나도 그런 아시테르에게 반해서 이 팀에 들어왔는데 내가 그걸 깰 수는 없지.”
“멋있는 척은…….”
“어쨌든 이제 우리는 같은 팀 동료잖아. 그러니까 난 널 버리지 않아.”
“하지만 내가 원망스럽진 않아?”
“원망스러웠지. 근데 그뿐이야. 그것 때문에 널 죽이고 싶다거나 그러진 않아.”
에스파가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체레드가 앉아 있었다.
“아…아아…….”
이제 마력도 없다.
그 생각이 미치자 체레드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체레드가 그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에스파에게 두 손 싹싹 빌면서 용서를 빌고 있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에스파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힘껏 때렸다.
퍽!!
나자빠진 체레드가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이걸로 됐어. 진짜 사과는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해.”
에스파가 가리킨 곳엔 에이브릴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