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합격점 (1)
드래프트 미션 중 발할라가 난입해 입힌 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많은 학생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교관들의 피해도 컸다.
그나마 중앙은 아시테르 팀과 칸 팀이 활약해준 덕분에 가장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심지어 중앙의 습격을 해결하고 다른 팀을 도와주러 갔으니 사실상 이번 드래프트 미션에서 가장 활약한 곳은 이쪽이었다.
호송대와 습격조 가릴 것 없이 말이다.
“그래…! 우리가 그만큼 활약해서 다친 사람들도 많이 없었잖아!?”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솔직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 상황에서 그럼 다른 친구들의 상황을 모른 척 하고 미션을 수행했어야만 합니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데미리우스조차 이번에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였다.
그들이 한데 모여 얼굴을 굳히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2차 드래프트 미션의 결과 때문이었다.
발할라의 난입이 있었으니 당연히 이번에는 2차 미션을 중단하고 새롭게 미션을 시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카데미 측의 발표는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렸다.
그들은 호송대의 미션 실패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그 발표에 많은 학생들이 의아함을 드러내었다.
발할라가 난입해서 정신없이 전투를 한 와중에 결과는 호송대의 패배라니.
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이후 들은 말에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 혼란을 틈 타 호송대의 물건을 빼돌려 미션 장소까지 가져간 이가 있었다.
바로 칸 팀의 크로제였다.
그는 몇몇 인원들을 추려 미션 장소까지 물건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이를 두고 아카데미에선 회의를 가졌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호송대의 미션 실패였다.
많은 학생들이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했지만 아카데미 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드러운 세상……!”
“더 알아볼 필요 있어!? 칸 팀에 고위 귀족들 자제가 많잖아. 거기서 입김을 불어넣었겠지.”
“아닌 척 해도 결국 아카데미도 귀족들의 눈치를 보는 거야.”
“아카데미는 뭐 공짜로 운영되냐? 귀족들의 후원을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그럴 거면서 뭐 하러 그런 허울 좋은 말들을…….”
“근데 아주 설득력 없었던 말도 아니잖아? 미션을 실전 같이. 발할라의 습격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을 뿐 그럼에도 미션은 그대로 이어갔어야 했다는 말…….”
“하긴… 심지어 이곳에는 교관들도 있었으니까. 정말 그분들에게 맡겼어도 됐을지도”
“제일 아쉽게 된 것은 아시테르 팀이 아닐까?”
“조용히 해. 안 그래도 저기 아까부터 저기압이었어.”
다른 학생들이 아시테르 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라빈은 시종일관 불만을 품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다른 학생들의 목숨을 구해냈는데 미션은 실패란다.
심지어 결과는 결과이니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라는 아카데미 측의 말에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그때 그들의 곁을 지나치는 무리가 있었다.
미션을 성공시킨 칸 팀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본 라빈이 이죽거렸다.
“우와… 이게 누구야? 남들은 다른 학생들을 구하느라 바쁠 때 뒤통수 쳐서 미션 성공 시킨 팀 아니야?”
“그만해 라빈.”
“그만하긴 뭘 그만해? 내 말이 틀려?”
“칸 팀도 학생들을 구하러 갔잖아.”
“저쪽은 어차피 마법기사단이 일찍 도착해서 딱히 할 일도 없었다며!? 그러니 미션을 성공시킬 여유도 있었던 거겠지.”
에스파도 라빈처럼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칸의 시선이 라빈에게로 향했다.
“우리들도 다른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다만 그와 동시에 미션을 같이 수행해냈을 뿐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문제는 없지. 근데 그 정신없는 틈에 미션까지 성공시킬 생각까지 하시고 대단하셔 정말.”
적당히 빈정대는 말투.
이 때문에 칸 팀의 일원들도 발끈한 눈치였다.
“너희들이 부족한 것을 반성해라. 우리들을 비난하려 하지 말고.”
“맞는 말이야. 따지고 보면 다른 학생들까지 구해야 한다며 미션을 내팽개쳐두고 나댄 것은 너희들 아닌가?”
“우리는 거기에 더해 미션까지 성공시켰을 뿐이야. 아카데미도 그런 점을 십분 이해한거고.”
그들의 말에 라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브릴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잔뜩 상한 표정이었다.
짝!
“자아-! 여기까지!”
잠자코 있던 아시테르가 손뼉을 치며 말싸움을 끝냈다.
그가 나서자 아시테르의 팀원들은 물론 칸 팀의 일원들도 말을 멈추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아시테르는 한 팀을 이끄는 리더였다.
심지어 칸 팀의 일원들도 아시테르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직접 확인한 바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분명 중앙의 학생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테니, 그들도 자연스럽게 아시테르의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테르가 몸을 일으켜 칸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칸이 아시테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냐? 우리들을 비난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딱히. 아카데미 측의 말도 맞아. 우리는 결과적으로 미션에 실패했어. 동료들을 지키는 데엔 성공했다고 해도 물건까지 지켜내진 못한 건 사실이니까. 미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물건을 목표지점까지 옮기라는 내용이었지 동료들을 지키라는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
“그러니 이번 미션에 관련해서 패한 것은 나야.”
아시테르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정작 진 느낌은 칸이 가져가고 있었다.
그 묘한 기분에 칸의 표정도 관리가 안 됐다.
부끄러운 승리.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겨도 졌군.’
칸이 아시테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시테르가 그 손을 붙잡았다.
“다음 번에는 지지 않겠다.”
“뭐……?”
아시테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칸이 자리를 떠났다.
다른 인원들도 그를 따랐다.
다만 떠나기 전 자비토가 라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곧 다시 만나자.”
“그 날이 바로 네가 죽는 날이야.”
“후후 네 손에 죽지 않도록 더 강해져서 와야겠네.”
대꾸는 없었다.
라빈은 자비토의 시선을 피해 에스파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대답도 없이 자신을 무시했을 텐데, 이제는 대꾸라도 해주는 걸 보니 전보다는 어쩌면 더 나아진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대화의 물꼬를 튼 셈이니까.
그가 나름대로 만족스러워하며 걸어 나온 때 잘 걷던 칸이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자비토에게로 향했다.
“너는 알고 있었나?”
“뭘?”
“시치미 떼지 마라. 너는 몰랐을 리 없을 것 같은데.”
“크로제에 관한 일 말이야?”
“그래.”
“알고는 있었지?”
“근데 어째서 내게 알리지 않았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째서?”
“네가 알면 말릴 거였잖아?”
“잘 아는 군.”
“응. 그래서 알려주지 않았어.”
“자비토……!”
“너는 늘 네 생각만 한다니까. 지금도 그렇지. 이 친구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 봐. 그 미션이 어떻게 되든 너는 결국 마법기사가 될 수 있겠지. 원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너는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와 실력이 되니까.”
“…너는 아닌가?”
“나도 마찬가지일 수도.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다르잖아? 누군가에게는 이번 미션이 정말 소중한 기회일 수도 있어. 거기다 크로제도 다른 나쁜 마음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잖아?”
알고 있다.
크로제와 베드커만은 가장 오랫동안 칸과 함께 한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늘 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겠지.
때로는 칸을 위해 자신들의 희생도 얼마든지 감수하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칸도 그들에게 기분껏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너무 걔네들을 나무라지마. 다른 동료들과 너를 위해서 한 행동이잖아.”
“알아 나도.”
칸이 뒤쪽을 돌아보았다.
크로제가 마치 죄를 지은 죄인처럼 서 있었다.
그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결과적으로 칸에게 부끄러움을 안겨버렸다.
처음으로 학생들의 입에 칸의 이름이 부정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칸…. 나는…….”
“후우… 너는 잘했다 크로제. 난 너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한다. 내 명령에만 따르는 팀원들보다 직접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난 더 좋아한다고 늘 말했잖아. 넌 그걸 해낸거다. 다만 나는 오늘 부끄러운 승리를 경험하고 말았다. 이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니야…….”
“미안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 했는데…….”
“미안할 것 없다. 너는 너대로 최선을 다했어. 혹시나 이로인한 책임이 있다면 리더인 내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야.”
다른 팀원들도 칸의 심정이 어떨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고지식한 성격의 칸에게 오늘 일은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말이다.
“어쨌거나 승리는 승리… 다만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다음 번에는 좀 더 확실한 승리를 원한다는 거다. 이런 찜찜한 기분으로 이기는 것이 아닌…! 우리들을 제대로 증명해내는 승리 말이야”
“응.”
“알겠다.”
“그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자비토가 슬쩍 미소를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칸의 팀은 성장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칸이 원하는 대로 여기 있는 맴버들로 자신만의 기사단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분명 칸의 마법기사단은 이스트 왕국 내에서도 우뚝 서는데 성공할 것이다.
이들의 유대감은 지금도 더 끈끈해지고 있으니까.
* * *
“나는 이번 결정을 후회하지 않아. 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야.”
아시테르가 다른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며 미션에 관한 것도 생각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시테르는 어떻게 해서든 발할라로부터 동료들과 친구들을 지켜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미션 리더로서는 실격점일지 모른다.
이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를 힐책한다고 해도 달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같은 상황이 오면 얼마든지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헌데 눈앞에 있는 친구들의 표정은 아시테르의 예상과 다른 반응들을 하고 있었다.
“알아.”
“누가 뭐래?”
“뜬금 없이 그렇게 무게 잡지 말아줄래?”
“후후 그래서 우리들이 당신을 리더로서 따르는 겁니다 아시테르.”
이게 아닌데.
좀 더 원망하고 불만을 표출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반응을 살핀 알렌시아가 웃었다.
“왜? 우리가 너를 원망하기라도 할 줄 알았어?”
“결과적으로는 미션에 실패하고 말았으니 드래프트 순위도 낮아질 거고… 그러니 당연히…….”
“그런 걱정은 말아. 우리 모두 너의 판단에 동의하고 따랐던 거니까.”
“맞아. 솔직히 그 상황에서 네가 다른 친구들을 구하러 가지 않고 미션에 눈이 멀었다면 내가 먼저 널 한 대 패주었을 거다. 초심 찾으라고.”
에스파가 자신의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라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솜주먹에 잘도 맞아주겠다 아시테르 오빠가.”
“뭐……!?”
“그래도 이번엔 에스파 오빠도 좀 멋있었어. 물론 나보다는 아니었지만.”
“뭐라는 거야!? 이번에는 내가 너보다 훨씬 더 많은 활약을 했거든?”
“후후 두 분다 뭘 모르시는군요. 이번 전투의 핵심은 바로 저였습니다. 제 독마법으로 얼마나 많은 적들을 쓰러트렸는지 아십니까?”
“에이… 형은 에이브릴이 지켜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잖아요?”
“뭐… 뭐라구요…!? 근데 그건 또 맞는 말이긴 해요. 고마워요 에이브릴 양.”
데미리우스가 에이브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브릴은 괜히 시선을 피했다.
참 신기한 인간들이었다.
미션에 실패했다는 결과를 들었음에도 밝은 분위기였다.
마치 그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미션에 실패해서 드래프트 순위도 떨어지게 생겼는데… 다들 왜 이렇게 밝은 건지…….”
“적응하려 들지마. 그냥 그러려니 해.”
“그러는 그쪽도 웃고 있는데? 내가 아는 알렌시아가 맞나 싶네.”
“나도 그 사이에 물들었나보지. 그나저나 아쉽네…….”
결국 아칼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드래프트 5위 안에 들어가겠다는 말.
미션마저 실패한 시점에 과연 드래프트 순위가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까.
낙담하는 그녀 앞에 거짓말처럼 아칼이 나타났다.
“너희들은 바보냐?”
“예……?”
“아칼 단장님!”
“아칼님!?”
난데없이 나타난 아칼을 보며 모두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