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155화 (155/424)

155화 합격점 (2)

아칼의 시선이 가장 먼저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너겠지.”

“예?”

“학생들을 이끌고 다른 지역으로 향한 놈이.”

“네… 맞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놈!!”

아칼이 크게 소리쳤다.

쌍심지를 켠 그의 모습에 아시테르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지?”

다짜고짜 하는 말에 아시테르도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아칼이 하고자 하는 말이 과연 무엇일까.

자신도 모르게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일까.

쉽게 짐작하지 못하는 듯 하자 아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른 학생들까지 이끌고 오른쪽 지역까지 간 거냐?”

“그야… 다른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네가 뭔데?”

“예?”

“네가 뭐 마법기사라도 되나?”

“그건… 아닙니다….”

“아니면 단장급의 실력이라도 되냐? 초위급 마도사 중간 수준이라도 돼?”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테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제야 아칼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근데 네깟놈이 뭐라고 다른 학생들까지 데리고 그곳으로 갔냐는 말이야. 동료들을 구하고 싶어? 약한 놈들 몇몇 쓰러트리니 기분이라도 좋아졌나? 네가 기분에 취해 선택한 행동이 살아남은 네 동료들까지 사지로 몰아넣을 뻔한 길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은 거냐? 그곳에 너희들도 감당하지 못할 적들이 있다면? 당장 글로리아님께서 빨리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피해는 얼마나 컸을 것 같으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그 근거를 묻는 거다.”

“중앙의 적들을 제압하고 아칼 단장님의 말씀대로 승기에 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쪽을 도우러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강한 상대가 있더라도 다른 교관님들이 도착할 때까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시테르는 그때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그의 말을 조용히 듣던 아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만하지 마라. 너는 좀 더 침착하게 행동했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너뿐만 아니라 네 동료들까지 모두 적들의 손에 죽을 수 있었단 말이다.”

“…….”

“그럼 우리는 훌륭한 인재들을 대거 잃는 사태를 겪었어야 했겠지. 동료들을 구하겠다는 네 마음을 나무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 이성을 유지하고 침착했어야 할 네가! 팀의 리더라는 놈이! 감정에 휩쓸려 그런 선택을 했으니 그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거다. 알겠나?”

“예!”

아시테르가 힘차게 답했다.

그때 다른 친구들이 아시테르의 뒤로 섰다.

“저희들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시테르 오빠가 그런 판단을 할 때 저희들이라도 이성을 유지하고 말렸어야 했어요.”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들의 말에 아칼이 속으로 미소를 보였다.

좋은 팀이다.

이런 팀은 금방 강해진다.

모든 책임을 리더에게 넘기는 것이 아닌 나눠 가지려 하는 모습.

그 모습들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아시테르도 진심으로 아칼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얼굴에 작은 불만이라도 가질 법 하건만 그는 아칼의 말을 곱씹고 있는 중이었다.

“아칼 단장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나 또한 전 단장님을 통해 배운 것들이니 잘 새겨들어라. 그보다…….”

아칼의 시선이 이번엔 알렌시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5위 안에 들어가겠다 자신 했는데…….

이번 결과로 인해 그것은 힘들어지고 말았다.

“잘 했다.”

“네……?”

“나와의 약속 때문에 그 쫌생이 같은 놈과 비슷한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널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아…. 그 말씀은…….”

“드래프트 미션보다 동료들의 목숨을 우선시 했던 것. 그 점이 바로 내가 주는 합격점이다. 내 제자로 받아 들여 주마.”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아직 이르다. 내 제자가 된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알렌시아가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였다.

아시테르도 진심으로 그녀를 축하해줬다.

“정말 축하해 알렌시아!”

“맞아요!! 아칼 단장님의 제자라니…! 진짜 축하할 일이로군요.”

“쳇… 축하한다. 네가 우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것 같네…….”

“마법기사단 단장의 제자가 된다는 얘기는 결국…….”

“알렌시아는 백상 마법기사단의 일원이 된다는 얘기죠.”

“히야… 결국 그렇게 되는 구만… 엄청나게 부럽네…….”

에스파도 알렌시아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이브릴과 라빈도 진심으로 알렌시아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다른쪽에서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확인한 아칼이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보다 훨씬 더 선배인 인물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라빈이 그녀를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전에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당신은…….”

“내 이름은 크실리아 아그리나다.”

“아그리나님……!”

오랫동안 들장미 마법기사단을 이끌어온 위대한 마도사의 등장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아칼조차 아그리나에겐 예를 차리고 있었다.

아그리나는 라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내가 거두어 가주마.”

“네? 저를요?”

“그래.”

“저를 왜…….”

“불만인가?”

“아니 저는…. 그러니까…….”

라빈이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사실 아시테르가 들어가는 마법기사단으로 어떻게든 같이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그리나 단장의 위압감에 눌려 처음으로 당돌한 말들을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나름 막무가내로 나가는 라빈조차 눈앞의 아그리나는 왠지 어렵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라면 널 훌륭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들장미 마법기사단에 들어간다는 것.

분명 엄청난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아시테르가 없는 팀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시테르를 들장미 마법기사단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저곳은 여인들만 가입할 수 있는 마법기사단이니까.

결국 라빈은 고민에 빠졌다.

텁.

아시테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뭘 망설여? 좋은 기회잖아.”

“아시테르 오빠…….”

그를 잠시 올려다보던 라빈이 이내 마음을 굳혔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들장미 마법기사단으로 들어갈게요.”

“잘 생각했다. 어차피 네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지만.”

“네…? 아니 그럼 왜 물어본 거에요!?”

아그리나는 라빈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아칼이 아그리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지간히도 저 아이가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이렇게 먼저 찾아와 선점해두시는 것을 보니.”

“그러는 너도 저 아이가 꽤나 탐났나 보구나.”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보이는 아이입니다.”

“훗. 우리 마법기사단으로 들어온 아이가 훨씬 더 강해질테니 따라잡으려 애쓰지 마라.”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제 백상 마법기사단의 선임 마법기사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때려 박아서 강해진 놈들…….”

“그리고 저는 몇 놈들 더 거두어갈 생각입니다.”

아칼의 시선이 아시테르 팀에 머물러 있었다.

아그리나는 아칼의 말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이미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으니.

미션에서 패배하긴 했어도 확실히 아시테르 팀의 활약은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결과에 따라 드래프트 순위는 밀려났지만 순위는 순위일 뿐이었다.

몇몇 마법기사단이 그들을 찾아와 데려가려 했다.

그중 여러 마법기사단의 콜을 받은 것이 바로 에이브릴이었다.

그녀의 가문도 가문이었지만 실력도 이미 검증되었다.

만약 알렌시아나 라빈이 먼저 정해지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았을 것이다.

선택권이 없어보이던 에스파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아칼이었다.

그는 에스파의 마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칼은 게다가 한 가지의 마법을 깊게 파고들어 결국 1등급까지 올라선 에스파의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었다.

“죽도록 노력해서 하나를 이룬 놈은 다른 걸 시켜도 곧잘 해내곤 하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칼의 말에 에스파가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미션이 끝나고 학생들은 하나둘 마법기사단에 적을 두기 시작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온 산을 새하얀 눈이 뒤덮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방학을 즐겼다.

다시 시간이 흘러 온 세상을 덮고 있던 하얀 눈이 스르륵 녹아내릴 때 드래프트 기간이 끝나고 모든 것들이 결정되었다.

“아, 이제 아카데미도 졸업인가.”

“길고 긴 시간들이었다.”

“별의별 이상한 것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나저나 그거 들었어?”

“뭘?”

“우리들이 마법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말이야. 단순히 드래프트 미션 때문만은 아니더라고.”

“그럼?”

“시련의 던전!”

에스파의 입에서 시련의 던전이란 말이 나오자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곳만큼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수많은 마수들과 몇 날 며칠을 정신없이 싸웠던 곳이었으니…….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곳을 통해 그들 모두 많은 성장을 이루었단 것이다.

“시련의 던전이 왜?”

“아카데미가 없었을 때는 시련의 던전을 통과하는 것이 마법기사단 입단 조건 중 하나로 있었던 모양이야.”

“진짜……?”

“뭐야 그럼. 우리는 처음부터 드래프트 미션이 아니더라도 마법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얘기야?”

“아니 그건 아니고. 흐음… 쉽게 생각하면 부족한 점수를 시련의 던전을 클리어한 것으로 가산점을 받아 합격점에 올랐다는 얘기지.”

“아아… 그러고보면 참 신기해. 아시테르 오빠는 어디서 그런 정보들을 가져온 걸까. 어떨 때는 혼자 훌쩍 노스 왕국으로 떠나버리기도 하고…….”

“종 잡을 수 없는 녀석이잖아…….”

에스파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자코 걷던 데미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아시테르 대장에 관한 소식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듣지 못했는데…….”

“그 자식… 또 어디에 박혀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겠지.”

“그러는 에스파 오빠도 여기 아카데미에 남아서 열심히 수련했다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에스파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러자 라빈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오빠랑 같은 기사단에 들어가는 사람이 알려줬지.”

“아…….”

“아주 의외였어. 둘이서 서로의 수련을 도와줄 줄이야.”

“에이브릴도 마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다고 말하길래…….”

에스파가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됐고. 애쓰지마. 어차피 나는 못 따라잡아.”

“그렇게 자신하지마라.”

“맞아. 그렇게 자신하지마 라빈.”

다른 쪽에서 합류한 에이브릴이 말을 이어받았다.

이제보니 두 사람 모두 같은 목표로 강해지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라빈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아, 이래서 인기인의 삶이란…….”

“시끄럽고. 그나저나 아시테르에 대해 들은 것은 정말 없나? 우리들이야 대충 어디 마법기사단으로 갈지 알고 있지만 그 녀석은 그것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그러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근데 근래에 알렌시아 언니도 잘 안보이지 않았어? 가문에 돌아간 것 같진 않던데…….”

어느새 그들은 다같이 모이기로 한 르네마리아의 근처에 도착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무언가를 발견한 에스파가 들고 있던 선물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저… 저기…….”

“허어…….”

데미리우스도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에이브릴과 라빈도 충격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그때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한 명의 인물.

크로마제가 실룩실룩 웃으며 말했다.

“키야…! 드디어 우리 스승님에게도 봄날이 오는가보구만!”

르네마리아의 앞에서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손을 잡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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