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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57화 (157/424)

157화 3년 간의 비밀 수련

얼음이 녹고, 돌틈 사이로 들꽃이 피어났다.

주로 왕성 내 별궁에서만 지내는 마르체니는 이 들꽃이 피고 지는 걸로 계절을 가늠하곤 했다.

근래 그녀는 소일거리로 정원을 가꾸고 시간이 날 때는 빈민가로 나가 그들을 도왔다.

처음엔 아시테르의 부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생각보다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나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왕가의 사람들만 보다가 해맑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표정을 볼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들꽃이 피고 지길 여러 번.

별궁의 돌담에 눈꽃이 쌓였다가 따스한 햇살에 녹아내렸다.

“벌써 일주일은 지났는데…….”

“마치 누굴 기다리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옆에 있던 게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르체니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냥… 그래서 보여서 말씀드린 겁니다.”

“기다리긴 무슨…….”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자꾸 한곳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길어지고 있었다.

워낙 철저하게 고립된 지역이라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없다.

“설마 안에서 죽은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 근데 왜 안나와요?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예전 투사들은 이주일씩 굶으며 수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겨우 일주일인 걸요.”

“아시테르는 마도사지 투사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아시테르 그 녀석은 단순한 마도사라 부르기도 뭣 합니다…….”

“하긴… 근데 절 그렇게 이용하시다니…….”

아시테르는 예정대로 아칸이 단장으로 있는 백상 마법기사단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그는 곧바로 왕실기사단으로 파견나가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왕실기사단의 사람들은 구경하지 못했다.

이유는 마르체니 공주의 개인 호위 위치로 한번 더 빠졌기 때문.

그렇게 한 번에 아시테르의 위치를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마르체니가 공주라는 신분이었던 점과 테르세우스의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시테르는 얼떨떨한 얼굴로 이곳에 찾아왔었다.

“저… 명령을 받고 마르체니님의 개인 호위를 담당하게 된 아시테르 입니다!”

그때의 그 바보 같은 표정은 마르체니의 기억에 아직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다.

어쨌든 그가 오는 것은 나름대로 반가웠던지라 마르체니도 아닌 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헌데 즐거움은 아주 잠깐이었다.

“자아… 어서오너라.”

그를 함께 맞이한 사람은 바로 테르세우스였다.

게벨과 함께 별궁 안으로 들어선 테르세우스는 곧바로 아시테르부터 찾았다.

그리곤 훈련용으로 준비된 갑옷부터 아시테르에게 건넸다.

“너는 오늘부터 수련에 또 수련이다.”

“예……?”

“강해지고 싶다며?”

“예. 물론이에요.”

“그럼 강해져야지.”

“근데 이건 무슨…….”

“오늘부터 너는 나랑 시간이 나는대로 수련에 들어갈 거다.”

“테르세우스님과요?”

“그래. 근데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죽고 싶을만큼 힘들 테니까.”

“그런 것쯤은 상관없습니다.”

아시테르가 의지를 다졌다.

그동안 나름대로 꽤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특히나 글로리아와 아필라의 싸움을 보면서 더더욱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아시테르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테르세우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수련만 잘 견뎌내면 너도 진정한 초위급 마도사 수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다.”

“네!”

아시테르는 힘찬 대답과 함께 테르세우스와의 수련에 들어갔다.

그렇게 매일같이 수련에 들어가길 3년.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반나절은 우습게 수련으로 시간을 보내던 아시테르가 처음으로 일주일동안 수련실에 갇혀 있었다.

마르체니는 자신을 이용한 테르세우스가 밉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매일같이 아시테르랑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일주일씩이나 수련실에서 나오질 않으니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더 높은 마도사로 거듭날 깨달음의 시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깨달음의 시기요?”

“네. 이것은 사실 투사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긴 합니다만… 투사들은 한번씩 깨달음의 시기를 겪곤 합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로…….”

“아, 됐어요 됐어요.”

한번 들으면 또 얼마나 계속 이어질지 몰랐다.

그러니 빠르게 말을 끊는 것이 상책.

그녀가 재빨리 자리를 떠나려는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이익―!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수련실의 문이 열렸다.

“어!?”

눈을 동그랗게 뜬 마르체니가 황급히 수련실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곳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오는 이가 있었다.

“우와…. 드디어 상쾌한 바깥 공기!!”

힘껏 외친 아시테르가 숨을 크게 마셨다.

코끝에 짜르르하게 담기는 맑은 공기에 폐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갑자기 맑은 공기를 마셔서 놀라기라도 한 건지 심장쪽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느낌이었다.

“축하한다.”

아시테르의 뒤에서 테르세우스가 걸어나왔다.

그를 돌아본 아시테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게 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다 내 덕분이긴 하지.”

그의 순순한 인정에 아시테르가 순간 눈을 깜빡거렸다.

“끄아아… 늙은 몸을 이끌고 무리했더니 온몸이 쑤시는구만… 자, 이제 더 이상 내가 해줄 것은 없으니 하산하게.”

“하지만 테르세우스님…….”

“자네는 이미 초위급 마도사야. 더는 내가 가르칠 것은 없네. 앞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해.”

“알겠습니다.”

테르세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초위급 마도사는 쉽게 나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마법기사단에 10년 이상 있게 되면 자연스레 선임 마법기사가 되는데, 그들 중에서도 초위급 초입에 들어선 이들은 몇 없을 정도다.

그나마 부단장들이 초위급 마도사의 초입 혹은 중간 수준에 이르러 있다.

게벨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아시테르는 벌써 저 나이에 부단장급에 이르렀단 얘기입니까?”

“후후 글쎄.”

테르세우스가 미소를 보이며 몸을 돌렸다.

부단장급이라… 어쩌면 더욱 성장했을지도.

아시테르는 그가 가르치기 이전부터 이미 선임 마법기사급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던전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그의 노력은 지금껏 가르쳐왔던 제자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테르세우스가 가르치는 것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모두 몸에 익히려 했다.

때로는 훈련의 강도를 높여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까지 심어주려 했건만, 그것쯤은 가볍게 받아넘기는 아시테르였다.

이미 던전에서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겨온 덕분에 아시테르에게 그것은 별달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수련의 강도를 높이면 높이는 대로,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모든 것들을 흡수해버리는 아시테르 탓에 테르세우스도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테르세우스가 슬쩍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전신에 갈무리 되어 있는 짙은 농도의 마력.

평소 생활에서도 그는 자연스럽게 스킨 쉴드를 펼치고 있었다.

어지간한 초위급 마도사 초입 수준도 저렇게는 못한다.

‘그 말은 초위급 마도사 중간 단계에는 이르렀다는 거겠지…….’

아시테르는 모르고 있겠지만 초위급 중간 단계라는 말은 곧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단 내에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이제 몇 명 없다는 얘기였다.

부단장급에서도 아시테르는 최상위.

곧 단장급까지도 넘볼만 하다.

“후후 그 녀석들의 자식이라 그런지… 재능 하나는 쎄게 물려받았구만.”

테르세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아시테르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은 드래프트 미션의 결과를 보고받고 나서다.

아시테르는 미션을 포기하고 다른 학생들을 구하는 것을 택했다.

아칸은 그의 선택이 무모했다고 나무랐지만 테르세우스는 그 얘기를 듣고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으니까.

유미르도 곧잘 그런 선택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유미르는 그만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럼 그 능력을 내가 끌어 올려주면 되겠구만.’

아주 단순하게 떠올린 생각.

그것으로 시작된 아시테르의 수련이었다.

이것 덕분에 테르세우스 홀로 유미르와 아레나에게 졌던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5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빨리 끝내 버렸어.”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초위급 마도사라…….

유미르와 아레나도 20대 후반에 초위급에 접어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20대 초중반에 초위급에 오른 인물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초위급에 빠르게 접어들었다고 해서 무작정 좋은 것도 아니었다.

기초를 다지며 천천히 성장해 더 높이 날아오른 인물들도 존재하니까.

오히려 빠르게 성장하여 더 높은 성장의 벽에 가로막혀 주저앉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초위급 중간이라… 그 정도면 곧 마법기사단장도 노려볼만 하겠는걸…….”

어쨌거나 아시테르는 무서운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그가 초위급 마스터 단계에 들어가면 장담컨대 마법기사단의 단장들 중에서도 그를 막아서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럼 그때 신나게 외치는 거지. 사실은 저 녀석이 내 제자다!! 하고 껄껄.”

테르세우스가 기분좋은 상상을 하며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벌써 일주일이나 일이 밀렸으니 아마 자신의 부관과 비서가 엄청나게 욕을 해대고 있을 것이다.

잔뜩 쌓여있을 서류더미를 떠올리던 테르세우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도 그냥 다 때려치우고 아시테르놈에게 물어봐서 그 던전으로 가 늘그막한 생활을 보낼 걸 그랬나…….”

아레나와 유미르라면 자신을 깍듯이 대해줄 테니 그래도 찬밥 신세는 면할 테고…….

아시테르가 매번 말하는 그 괴물 같은 비체라는 노인네도 함께 있으니 심심할 새도 없을 터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다는 비체와 계속해서 겨루면 분명 테르세우스도 더욱 성장할 수 있을 테니 일석이조.

벌써부터 설레는 생활이지만 마주하는 현실은 아주 썼다.

“테에에에르으으셋스님!!!!!!”

분노에 찬 비서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끙…….”

낮게 신음을 흘린 테르세우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걸어갔다.

한편, 테르세우스를 떠나보낸 아시테르는 준비된 식사를 양껏 즐기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아시테르를 지켜보던 마르체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바뀐 거라곤… 수염이 좀 더 자랐다. 머리가 좀 더 자랐다. 그리고 몸집이 조금 더 커졌다? 정도인 것 같은데… 어디가 그렇게 대단하게 성장했다는 건지… 아, 못 씻어서 얼굴이 더 못 생겨졌다도 추가.”

하지만 마르체니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인지 아시테르는 끊임없이 음식을 들이켰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게벨이 말했다.

“아니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게벨 아저씨도 느껴져요?”

“네. 식성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게벨이 옆에 비워져 있는 그릇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정도면 성인 다섯 명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아직도 부족한지 식사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야!!”

보다 못한 마르체니가 크게 소리쳤다.

그때서야 아시테르가 먹는 것을 멈췄다.

“아, 제가 이성을 잃었었나 보군요.”

“그래. 대체 언제까지 먹기만 할 거야!?”

“그게… 너무 배가 고파서요.”

“아니……!”

마르체니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고기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의 손에서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오오!!”

핏물을 뚝뚝 흘리던 고기가 알맞게 익었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아주 완벽해. 완벽한 굽기 정도다!”

고기를 한 입에 집어넣은 아시테르가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테르세우스가 이 장면을 봤다면 헛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이러라고 3년 동안 힘들게 가르친 게 아닐 텐데…….

어쨌거나 복스럽게 먹고 있는 아시테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게벨이 입을 열었다.

“이제 테르세우스님과의 비밀 수련도 끝났으니 자네도 복귀해야겠군.”

“눼? 어이오(어디로)…….”

“어디긴 우리 왕실기사단이지. 아직 파견 기간도 1년 남짓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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