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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59화 (159/424)

159화 파란의 신병 (2)

제르무트는 체력훈련을 받고 있는 기사들을 살폈다.

평소 해오던 체력훈련보다 조금 더 강도를 높여서 그런지 연차가 높지 않은 기사들은 서서히 체력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반면 아시테르는 어렵지 않게 체력 훈련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무슨 마도사놈의 체력이……!’

처음 게벨에게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는데, 이쯤 되면 믿을 수밖에 없다.

마력을 따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시테르는 분명 순수한 체력으로만 기사들의 체력훈련을 따라오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는 인정해주겠다.

마법을 연구하면서 아울러 체력까지 기른 모양.

제르무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어쨌든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그는 체력훈련을 멈추고 기사들을 양쪽으로 나뉘게 했다.

그리곤 자유 대련을 실시했다.

“각자 앞에 있는 사람과 검을 맞대고 자유 대련을 실시한다!”

제르무트의 말에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미리 배치되어 있던 훈련용 목검을 갖고 나왔다.

반면 몇몇 기사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제르무트님! 새로 합류한 이 친구는 어떻게 합니까?”

“본래 검은 마법과 다르게 몸으로 직접 배우는 것 아니겠나!?”

제르무트가 말하는 바를 눈치챈 기사들이 미소를 보였다.

그중 아시테르의 합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기사 한 명이 슬쩍 나섰다.

“그럼 신참은 내가 상대하도록 하지.”

어깨에 목검을 걸친 사내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곳에 있는 선임기사 중 한 명인 슈밥이었다.

잔뼈 굵은 검사의 등장에 여러 기사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반면 제 9기사단 일원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슈밥은 실력은 뛰어났으나 그 성정이 그닥 좋지 못했다.

가끔 욱하는 제 성질을 못이겨 동료들을 다치게 하거나,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되는 동료들은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그런 슈밥이 이번에 먼저 나서려고 하는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아시테르는 조용히 목검을 쥐고 슈밥의 앞에 섰다.

그런 아시테르를 바라보던 슈밥이 입가에 조소를 흘린다.

“검을 그렇게 쥐는 건 어디서 배운 거냐?”

“예전에 스승님께 배운 겁니다.”

“스승? 마도사가 검술이라도 가르쳐줬다는 얘기냐?”

“검술 스승님이 있었습니다.”

“크하하하!!!”

슈밥이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들었나!? 스승님께 배운 검술이라는구만! 요즘 마법기사 아카데미에선 검술까지도 가르치나보지?”

그 말을 들은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현재 대놓고 아시테르를 비웃는 중이었다.

하기야 그들 입장에서 아시테르는 단순히 마법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한 마도사에 불과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마법기사단에 들어간 인물인데 그에 대한 존중까지도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었다.

아시테르가 목검을 들어올렸다.

“제 스승님은 마법기사 아카데미 출신이 아닙니다.”

“그럼?”

“직접 겪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아시테르가 슬쩍 목검을 잡는 방법을 바꾸었다.

이를 본 슈밥이 눈을 빛냈다.

“좋다. 그럼 어디 한 번 너의 검술을 보여 봐라 애송이.”

“네!”

아시테르가 슬쩍 호흡을 골랐다.

그의 곁으로 다가선 베드롱이 슬쩍 언질을 주었다.

“훈련 때 하는 자유 대련은 순수한 검술로만 대결을 펼치는 거다. 마력의 사용은 금지야.”

“네. 알겠습니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아시테르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반면 슈밥은 여유로운 태도로 아시테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선공은 양보해주마.”

“감사합니다!”

아시테르의 목검이 빠르게 수직을 그렸다.

이를 피해낸 슈밥이 미소까지 보이며 목검을 휘둘렀다.

파앙!! 파바박!!!

슈밥의 공격을 아시테르도 능숙하게 방어해냈다.

이어 몸을 비튼 아시테르가 검끝을 찔러넣었다.

“호오……!”

상대가 반격까지 가해올 줄은 몰랐던 터라 슈밥이 처음으로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래도 슈밥이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검속의 빠르기를 높였다.

점점 빨라지는 슈밥의 공격에 아시테르의 목검도 덩달아 빨라졌다.

“제법이구나!”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았건만 아시테르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슈밥과 함께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슈밥의 두 눈이 계속해서 아시테르의 목검과 움직임을 살폈다.

확실히 어디선가 검술을 배운 솜씨다.

검격의 기본기가 잘 잡혀있고 움직임도 좋았다.

“정말로 검술을 익히긴 했나보구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런 수준의 검술을 익힌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겨우 그 정도 검술을 익히고 우리 왕실검술기사단의 문턱을 넘어보려 했다면…! 잘못 생각한 거다.”

슈파앙!!

강하게 내리친 슈밥의 목검이 묵직한 소리를 내었다.

아시테르의 목검과 슈밥의 목검이 부서진 것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확인한 슈밥이 재빠르게 외쳤다.

“검!!”

그 소리를 들은 동료 검사가 철검을 던져주었다.

이를 집어든 슈밥이 아시테르를 바라봤다.

마침 저쪽도 누군가 철검을 던져줘 검을 잡은 상태였다.

“설마 철검을 처음 잡아본 것은 아니겠지?”

“네. 많이 잡아봤습니다.”

건방진 소리.

슈밥은 아시테르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검술기사도 아닌 마법기사 지망생을 데리고 과연 몇 번이나 철검을 휘두르게 했을까.

설사 철검을 휘둘러봤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검술 수련 때일 터다.

검을 들고 실전에 나선적이 없다면, 이미 철검을 다루는 그 마음가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슈밥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번에 아시테르에게 따끔한 교훈을 새겨주기로 했다.

“그것 참 다행이구나. 그럼 조금 더 마음 편히 할 수 있겠어.”

슈밥이 이제 본격적으로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검이 단칼에 수평을 그렸다.

카아앙!!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슈밥의 검을 방어해낸 아시테르가 시선을 움직였다.

다음은 수직으로 내리치는 검.

아시테르의 몸이 한 발 더 빠르게 반응하며 슈밥의 검을 받아냈다.

아시테르는 일부러 슈밥의 검을 피하지 않고 모두다 받아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슈밥의 검술은 훌륭했다.

하지만 뭔가 속이 비어 있는 껍데기같은 검술이었다.

묵직하게 실려와야하는 공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검의 빠르기가 막아내거나 피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것도 아니었다.

허면 슈밥의 일격 일격이 날카로운가?

그것도 아니었다.

기본기도 훌륭하고 오랫동안 수련해온 흔적도 남아 있는 검술이었지만, 아시테르가 느끼기에 결국 껍데기만 흉내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한 듯 보였다.

“크하하하!! 어떠냐!? 이게 바로 왕실기사단의 검술이다!”

잔뜩 신난 슈밥이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하기사 겉으로 보기에 이 상황은 누가 보아도 슈밥의 우세처럼 보였다.

변변찮은 반격도 못해보고 아시테르가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게벨이나 다른 실력 있는 검사들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이고 있었다.

“하… 이거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러다 저 녀석이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애초에 마법기사인 녀석과 철검으로 저렇게 대련을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지금이라도 끝냅시다. 저 녀석까지 여기서 창피를 당하게 할 순 없어요.”

제 9기사단 일원들이 베드롱에게 다가와 말했다.

하지만 베드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예? 왜요!? 선배 눈에도 보이시질 않습니까? 아시테르가 지금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데…….”

“저게 어딜 봐서 밀리는 거냐?”

“그럼 아닙니까?”

“슈밥은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검격을 날렸다.”

“네. 그러니…….”

“근데 봐라. 그 검격 중 아시테르에게 작은 상처라도 남긴 일격이 있었나?”

“예!?? 그야… 어… 어라…….”

“그러고보니…….”

베드롱의 말에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슈밥의 공격은 거칠게 들어가기만 할뿐 아시테르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다만 워낙 슈밥 혼자서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가기만 할 뿐이니 모두가 아시테르가 밀리고 있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시테르는 슈밥의 저돌적인 공세 속에서 단 한 번도 유효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게 절대 우연일 리가 없지. 한 마디로 아시테르 저 녀석은 지금 슈밥의 모든 공격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야.”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눈으로 보고도 못 믿는 거냐?”

베드롱의 말이 맞았다.

아시테르는 분명 슈밥의 공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이는 지켜보던 제르무트도 눈치 채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 아이가 지금 슈밥의 공격을…….”

슈밥의 공격을 한참동안이나 파악하던 아시테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는 볼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슈밥은 비체는 물론 판데아의 실력에도 훨씬 못 미쳤다.

설마 이 정도가 왕실기사단의 수준은 아니겠지.

아시테르가 검 끝에 힘을 실어 슈밥의 검을 튕겨냈다.

“호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슈밥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시테르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카앙!!

간결한 움직임으로 아시테르는 또다시 슈밥의 검을 쳐냈다.

놀란 슈밥이 재빨리 몸을 틀어 다시 공격을 가져갔다.

카강!!! 카가강-!

아시테르는 그때마다 슈밥의 공격을 쳐냈다.

이를 본 제르무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저건 루기아 가문의 검술!!”

간결한 움직임만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해낸다.

그후로 들어나는 빈틈을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파고든다.

이것이 루기아 가문이 갖고 있는 검술의 장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번씩 슈밥의 공격을 쳐내던 아시테르가 빠르게 반보 파고들었다.

카앙!!

검끝이 슈밥의 허리를 때렸다.

이어 아시테르가 다시 팔을 움직였다.

캉!!!

더욱 경쾌한 소리가 터지며 슈밥의 검이 흔들렸다.

강한 힘에 검이 튕겨져 나갔으니 마치 들어오라는 것처럼 슈밥의 품이 열렸다.

아시테르가 다시 검으로 슈밥의 상단과 하단을 때렸다.

파박!!

짜릿한 통증에 슈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욱하는 성질에 슈밥이 검을 고쳐잡았다.

그의 검 끝에 마력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나 소드를 확인한 다른 기사들이 놀라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자유 대련에 마나 소드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는 마도사.

서로 근접한 상태니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마나 소드가 아시테르에게 치명상을 입힐지 몰랐다.

“건방지게 기어오른 것을 후회해라!!”

슈밥이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띄우며 검을 내리쳤다.

한발 늦은 건가 싶을 때 아시테르도 수직으로 검을 쳐올렸다.

콰앙!!

순간 검끝에 일렁였던 것은 분명 마나 소드.

아니, 조금은 다르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확실했던 것은 슈밥의 검을 받아낼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 어떻게…….”

슈밥이 진심으로 놀라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 사이 아시테르의 발끝에 마력이 집중되었다.

팡!

대지를 박찬 아시테르가 검끝을 찔러넣었다.

촤라락!!

피를 쏟은 슈밥이 뒤로 쓰러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슈밥이 아시테르를 올려다보았다.

“후아…! 좋은 승부였습니다.”

쓰러진 슈밥을 내려다보며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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