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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62화 (162/424)

162화 왕실기사단으로서의 첫 임무 (1)

아시테르가 테르세우스와의 수련을 끝낸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제 9기사단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른 기사단과 다르게 제 9기사단은 임무가 거의 없었다.

덕분에 그들은 마음 놓고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판데아는 반년 동안 온 힘을 다해 기사들을 가르쳤다.

기사들의 마음과 판데아의 마음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시너지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기본기가 훨씬 더 탄탄해지고 다들 체격도 한층 커졌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훈련 한다!”

이 네 가지.

판데아는 이 네 가지를 철저하게 지켜주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시작되는 훈련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초반에는 훈련의 강도 때문에 몇몇 기사들이 포기를 외쳤으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포기하려는 이들은 게벨이 강제로라도 이끌어갔다.

거기다 아시테르도 군말 없이 모든 훈련들을 소화해내니, 몇몇 기사들은 선배로서 적어도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기 위해 정말 필사의 노력을 가했다.

워낙 힘든 훈련들이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반년이 흐른 것이다.

먼발치서 아시테르의 수련을 지켜보던 알렌시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쟤는 마도사가 되겠다는 거야 아니면 검사가 되겠다는 거야?”

처음엔 아시테르가 테르세우스와의 수련을 끝내자마자 백상 마법기사단으로 복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아직 왕실기사단에 1년 정도 더 남아 있어야 했다.

뭐,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전처럼 아예 얼굴을 못 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판데아가 제 9기사단의 검술 스승이 되고 아시테르도 그들과 함께 검술을 배운다고 했을 때는 알렌시아도 그를 응원했다.

거기다 은근슬쩍 가문에 말해 아시테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도와주고자 했다.

체르도네 가문에서는 왕실기사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르체니 공주와 제 9기사단이라는 말에 조금 머뭇거리는 듯 보였으나 알렌시아가 강경하게 밀고 나갔다.

그녀가 믿는 것은 마르체니 공주나 제 9기사단이 아닌 아시테르였으니까.

테르세우스에게 따로 수련까지 받을 정도로 아시테르는 잠재력이 높은 인물이었다.

거기다 루기아 가문에서도 아시테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었으니 분명 잘못될 일은 없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알렌시아는 순수하게 아시테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저런 남자친구 둬서 그쪽도 피곤하겠네.”

잠자코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던 알렌시아의 곁으로 마르체니가 다가왔다.

알렌사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마르체니가 새삼 놀랐다.

이십대 중반에 접어들며 알렌시아의 미모는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디 미모뿐만인가.

그녀는 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임무들을 완수해내며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고 있었다.

질풍의 칸, 부동의 자비토, 전격의 알렌시아가 근래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들이었다.

‘예쁜 것도 모자라 실력까지…….’

쟁쟁한 마법기사단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려면 대체 얼마나 뛰어나야 하는 걸까.

거기다 알렌시아는 마법기사단에 들어간지 이제 겨우 4년차였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그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인 것은.

“대체 알렌시아,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아시테르와 연애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저도 가끔 제가 왜 저 인간이랑 연애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치? 저 녀석 아니더라도 훌륭한 귀족들이 알렌시아 당신한테 관심을 보일 텐데.”

“아주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그녀의 답에 마르체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같아도 저런 알렌시아를 놓치고 싶지 않을 터였다.

그때 알렌시아가 마르체니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주 콩깍지가 제대로 쓰였나 봐요. 아시테르가 아닌 남자들은 죄다 시시해 보이더라고요.”

“하아……?”

이해할 수 없는 발언.

마르체니에게 아시테르는 실력 좀 좋은 팔푼이 같은 녀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테르는 마르체니를 상대로 장난스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였다.

그런 모습들이 쌓이다보니 이제는 아시테르만 봐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흐음… 저 팔푼이 같은 녀석이 대체 뭐가 좋다고…….”

“후후 저렇게 보여도 가끔 의지 되는 구석들이 있어요.”

“하긴… 그건 그렇네.”

마르체니도 알렌시아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확실히 아시테르는 은근히 의지가 되는 구석이 있었다.

거기다 마르체니의 많은 얘기들을 들어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진심으로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 사실은 많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하아… 그나저나… 오랜만에 얼굴 좀 보려고 왔더니 저렇게 수련 삼매경이어서야…….”

“저 녀석 원래 저러잖아.”

“그러게요… 여자친구보다 수련이 먼저인 건지…….”

“그러는 당신도 비슷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아하… 아하하…….”

하기사 알렌시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보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마르체니가 슬쩍 알렌시아의 얼굴을 살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시테르를 바라보는 알렌시아의 눈빛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왕실기사단 복장의 사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명령서였다.

“안녕하십니까 마르체니 공주님.”

“미라즈 경?”

“후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마르체니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이곳으로 왔다는 것은 제 9기사단에게도 임무가 내려졌다는 말이었다.

미라즈는 별궁의 수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근래에 제 9기사단이 너무도 조용히 지낸다 싶었더니… 이토록 고된 훈련을 받고 있었군요.”

“다들 열심히야.”

“왕실기사단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마르체니 공주에게 먼저 명령서를 건넸다.

왕실의 인장이 찍혀 있는 명령서였다.

“이건…….”

“긴급명령서입니다. 제 9기사단은 지금 즉시 준비를 갖추고 근처 영지인 달모르로 향하게 될 겁니다.”

“이유는?”

“그곳의 영주성을 점령하고 있는 발할라 군이 있습니다. 그곳에 붙잡혀 있는 인질들을 구해내고 발할라 놈들까지 소탕해야 합니다. ”

“인질들?”

“네. 달모르 영지의 영지민들이 붙잡혀 있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이런 임무들은 제 9기사단에게 맡겨지지 않았잖아? 갑자기 이런 임무는 왜…….”

“아무래도 상황이 급박한 모양입니다. 마침 근처에 주둔해 있는 왕실기사단이 이곳 제 9기사단밖에 없어 급하게 긴급명령서가 전달된 것 같습니다.”

“알겠어.”

“그리고 하나 더. 달모르에는 발할라 군의 간부가 있을지 모르니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는 첨언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소탕이면 소탕이고 인질 구출이면 구출인거지. 무리하지 말라니?”

마르체니와 알렌시아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미라즈가 곤란하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그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명령을 전달한 쪽에선 제 9기사단만으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우릴 완전히 얕보고 있군.”

우람한 신체에 각진 근육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벨이 다가와 말했다.

이미 미라즈가 이곳에 도착한 시점부터 훈련은 중단되었다.

게벨이 긴급명령서를 받아들었다.

그것의 내용을 읽어본 게벨이 미소를 보였다.

“베드롱! 어떻게 하겠나!?”

“당연히 모두 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좋습니다. 그동안의 수련 성과를 시험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후후 같은 뜻이로군.”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미라즈가 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벨이 미라즈에게 긴급명령서를 돌려주었다.

“그렇다는구만.”

미라즈가 게벨을 넘어 뒤편의 제 9기사단을 살폈다.

그러고보니 이곳의 분위기가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그래도 염려가 되었던지라 미라즈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저어… 게벨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제 9기사단의 마법기사들은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질 않습니까. 검술기사들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달모르에 발할라 군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크하하-! 걱정하지 말게.”

게벨의 뒤로 판데아가 걸어왔다.

그를 본 미라즈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당신은… 판데아님?”

“오오! 미라즈! 오랜만이로구만.”

“판데아님이 어째서 이곳에 계신 겁니까?”

“아하하! 그럴 일이 있네. 그보다… 제 9기사단에 임무가 들어왔다고?”

“예? 예에… 그렇습니다만…….”

“이것 참 기쁜일이로구만!”

판데아가 잔뜩 흥분해 외쳤다.

반년동안 열심히 가르쳤으니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 루기아 검술의 이름을 떨치기만 하면 된다.

판데아가 게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응? 판데아님께서도 함께 가시려구요?”

“제자들의 실전입니다. 가서 잘 살펴봐야죠.”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이들의 태도에선 여유가 흘러넘쳤다.

발할라가 어떤 이들인지 모르는 것도 아닐진데…….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미라즈만 고개를 갸우뚱 거릴 뿐이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응? 하지만 알렌시아 양. 당신은 현재 휴가중이 아닌가?”

“심심하던 차에 잘 됐죠.”

알렌시아가 아시테르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침 그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알렌시아! 언제 온 거야?”

“온지 한참 됐어. 그리고 임무래.”

“임무!? 임무우우우!? 오오오!! 드디어 임무가!!!”

아시테르의 반응에 알렌시아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자 그때서야 뭔가 생각난 듯 게벨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정식 임무는 처음이구나 아시테르.”

“네! 그렇습니다!!”

“아아…. 그러고보니… 아시테르는 우리 기사단에 파견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임무를 나갔던 적이 없었죠…….”

마르체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반면 아시테르는 잔뜩 흥분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내 첫 임무.

그리고 그 첫 임무를 알렌시아와 함께 갈 수 있다.

“갈 거지?”

“네 첫 임무잖아. 당연히 함께 가줘야지. 거기다 발할라 놈들까지 관련되어 있으니…….”

“좋았어!”

아이처럼 기뻐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알렌시아도 못말리겠다는 듯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헌데 이상한 건 아시테르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단원들도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왕국의 전복을 바라는 위험한 집단인 발할라와 전투를 하러 가는데 신기하게도 다들 들뜬 모습이라니…….

그곳을 빠져나온 미라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디어 다들 미친건가…? 아니 그보다… 조금 전 옆에 있던 여자는 전격의 알렌시아 양 아니야? 알렌시아 양이 왜 제 9기사단이랑 함께 간다는 거지? 거기다 판데아님은 어째서 이곳에 계신거고? 이것 참…….”

그래도 한 가지.

제 9기사단의 분위기가 확실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한 위화감마저 느껴질 정도.

거기다 겨우 몇 달만에 그들의 몸도 훨씬 단련된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 신체만 단련한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게벨님도 있고… 판데아님과 알렌시아 양도 함께 간다고 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지……?”

어차피 제 9기사단은 게벨의 능력이 대부분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위쪽도 크게 기대하진 않는 모양.

긴급명령서를 9기사단뿐만 아니라, 좀 더 먼 곳에 있는 6,7기사단에게 같은 명령서를 보낸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미라즈와 이스트 왕국 왕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 9기사단이 달모르 영지를 깔끔하게 되찾아 올 줄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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