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왕실기사단으로서의 첫 임무 (3)
선두로 나아가는 선배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난 반년 동안 그들이 어떻게 수련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그토록 뿌듯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넋 놓고 그들의 활약상을 지켜보기만 할 순 없는 노릇.
아시테르가 빠르게 뛰어가 인질들 옆에 붙어 있는 적들을 노렸다.
채앵! 스각! 스가각!!
아시테르의 검이 순식간에 적들의 급소를 베었다.
이어 그의 몸이 부드럽게 흘러가듯 움직였다.
검이 지그재그로 움직이자 적들의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
“놈을 죽여라!!”
안쪽까지 파고든 아시테르를 향해 발할라 군이 일제히 뛰어들었다.
아시테르가 검을 들어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려는 찰나 뒤쪽에서 전격이 날아왔다.
쩌저정!!
세 명의 적들이 뒤로 쓰러졌다.
아시테르가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전격의 주인은 알렌시아였다.
“네가 검사야? 왜 마법은 안 쓰고 검술을 쓰는 거야?”
“아… 나도 모르게 잔뜩 흥분해서 그만…….”
“어휴… 정신 차려, 아시테르. 너는 마도사라고!”
알렌시아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어 그녀의 손이 움직이자 샛노란 전격이 체인처럼 뻗어나가 적들을 옭아매 버렸다.
치짓!!
전격에 감전된 발할라 마도사들이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너 말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데이트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알렌시아의 말에 아시테르가 뜨끔했다.
우뚝 서 있는 아시테르를 보며 알렌시아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뒤이어 날아간 여러 개의 전격이 단숨에 상대쪽 마도사들을 무력화시켜버렸다.
마치 은근한 분노를 드러내는 듯한 마법이었다.
전격 마법에 당한 마도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압도적인 실력 차.
알렌시아의 마법을 본 브뤼엘과 다른 귀족들은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발할라 군에도 마도사들이 존재했지만, 놀랍게도 알렌시아 혼자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마도사들이 방어마법을 펼쳐도 소용없었다.
알렌시아의 전격은 실드까지 부숴버리며 적들을 공격했다.
짝짝짝!
아시테르가 박수까지치며 알렌시아의 마법을 칭찬했다.
“대단해!”
“시끄러워!!”
“네!”
잔뜩 짜증이 난 알렌시아의 표정을 보며 아시테르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앙!!
인질들을 죽이려고 검을 든 상대의 팔에 화염탄이 꽂혔다.
“헙!!”
놀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또다시 날아온 화염탄이 그의 가슴팍을 때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쏟아지는 화염탄이 그들의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대… 대단해…….”
아시테르의 마법을 본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수십 개의 화염탄이 동시에 날아가 근처에 있던 발할라 군을 마저 제압해버렸다.
거기다 게벨이 이끄는 왕실기사단도 뛰어난 검술 실력을 선보이며 발할라 군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전황을 살피던 모렌티지도 아연실색한 모습이었다.
이쪽에 있던 검사들은 아예 저들의 상대조차 되질 못하고 있었다.
마도사들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그들은 연신 마법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검사들은 방패로 능숙하게 방어해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왕실기사단은 마법을 방어해낼 때마다 어김없이 검을 들어 반격을 가해왔다.
이들만으로도 충분히 성가신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위력적인 전격 마법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실력은 또 어찌나 뛰어난지 겨우 저 여인 하나를 못 이겨 아군 마도사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 놈은 또 뭐야……!?”
제일 어처구니없는 것은 아시테르의 존재였다.
모렌티지는 수하들에게 붙잡아둔 귀족들을 죽이라 명령했다.
열댓 명이나 넘는 수하들이 움직였는데, 그들은 날아오는 화염탄에 제대로 검도 휘둘러보지 못하고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상대를 완전히 얕보고 있던 것은 자신이었다.
아니, 상대편의 전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게벨과 제 9기사단 검사들은 무서운 기세로 남은 발할라 군을 제압하고 있었다.
전투의 양상은 이미 뚜렷했다.
게벨과 선배들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었다.
“우와… 다들 정말 엄청 강해지셨네……!”
반년 동안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판데아가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아시테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억지로 때려박는 훈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인가……!”
홀로 무언가를 깨닫고 있는 아시테르.
그 곁에서 알렌시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9기사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저렇게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거야?”
“대단하지? 다들 매일같이 죽기 직전까지 수련했거든. 실제로 잠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선배들도 있었어.”
“에이…….”
알렌시아는 아시테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는 정말이었다.
판데아의 훈련은 그만큼 엄청나게 혹독했으니까.
게벨 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무튼 그런 지옥 훈련을 반년 동안이나 견뎌낸 제 9기사단이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뿌듯한 사람은 아무래도 판데아일 것이다.
“흐음… 확실히 실전이라 그런지 다들 긴장했나… 몇몇 실수들이 크게 눈에 띄는군.”
뒤에서 전체적인 전황을 살펴보고 있던 판데아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제 9기사단이 발할라 군을 압도하고 있지만 판데아의 눈에는 여전히 전투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심지어 제 9기사단의 일원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가며 그들의 실수를 함께 노트하고 있었다.
“돌아가면 이 실수들부터 고쳐놔야겠어. 후우…. 아직도 몸에 익지 않은 건가? 좀 더 수련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나. 아니면 좀 더 몸에 익을 때까지 괴롭… 아니 훈련시킬 필요가 있나?”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판데아 때문에 아시테르의 표정마저 덩달아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은 마도사라는 이유로 수련을 피하고 싶었지만…….
글쎄, 선배들이 과연 아시테르를 그냥 둘까 싶었다.
하필이면 막내이자 신참의 위치인데다가, 판데아를 검술 스승으로 모셔온 장본인이 본인이었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 하자는 것이 모든 선배들의 생각이었다.
심지어 게벨조차도 아시테르가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에 벌어질 상황들을 떠올린 아시테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했네.”
“뭐?”
“아냐… 그냥 갑자기 서러워져서…….”
아시테르는 묶여 있던 인질들을 하나씩 풀어주었다.
손과 발을 묶고 있던 밧줄이 잘리자 브뤼엘이 아시테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맙네… 어디 기사단에서 나온 건가? 3? 아니면 4? 이렇게나 뛰어난 실력을 보니… 혹시나 2기사단이 여기까지 온 건가?”
제 1기사단은 왕의 근위기사단이니 절대 왕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 1기사단 다음으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2기사단이었다.
제 2기사단의 실력은 제 1기사단과 비슷하다고들 하니까.
압도적인 실력차로 발할라 군을 제압하는 제 9기사단을 보며 브뤼엘은 그들이 당연히 네임드 넘버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음?! 그러면 제 1기사단이 이곳에 왔다는 건가? 그럴 리가…….”
“저희는 제 9기사단입니다.”
“9기사단!? 잠깐… 9기사단이라면 마르체니 공주님의…….”
“맞습니다.”
“허어… 말도 안 돼… 마르체니 공주님을 모시는 제 9기사단은 실력이 모자ㄹ…….”
아차 싶었던 브뤼엘이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실력이 모자란 기사단이라는 말을 대놓고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귀족들 사이에서도 제 9기사단은 유명했다.
실력이 부족한 왕실기사들을 보내는 곳이 바로 제 9기사단이었으니…….
귀족들 사이에선 가문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제 9기사단으로만큼은 발령 나지 않도록 손을 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아무튼 그렇게나 평판이 안 좋은 제 9기사단이었기에, 브뤼엘은 쉽게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제 9기사단이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아시테르가 심장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IX’표시가 있었다.
숫자 9를 나타내는 글자.
이를 확인한 브뤼엘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말 제 9기사단이었다니…….”
그렇다면 소문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누가 이들의 전투를 보고 실력이 모자란 기사단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제 9기사단은 그 사이 발할라 군을 모두 제압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적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부상자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판데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겨우 저런 놈들을 상대하면서 부상을 입다니!! 나는 그렇게 나약하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이게 다 수련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이야!”
참아줬으면 좋겠다.
판데아를 바라보는 제 9기사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판데아는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전히 인상을 쓴 얼굴이었다.
그래도 제 9기사단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데아의 잔소리가 계속해서 들렸지만 그다지 싫지 않았다.
어쨌든 판데아 덕분에 자신들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전투를 통해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강해진다는게… 이런거구만…….”
“상대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어…….”
“너도 그랬나? 나는 심지어 마주하는 상대를 보고 딱 알 수 있었다. 아, 이놈은 내 상대가 안되겠구나 하고.”
“크하하하!! 미친! 그럼 나도 미친 소리 하나 하지. 상대 마도사놈들이 마법 공격을 쏟아붓는데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아나? 야, 이 정도면 살았다. 했다니까.”
“와하하핳!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같은 생각을 했다고!”
“당연한 것 아냐? 아시테르의 마법에 비하면 저 녀석들 정도는…….”
“확실히 아시테르의 마법을 상대하며 훈련한 보람이 있구만… 예전에는 마법만 봐도 긴장했던 우리가 이렇게나 자신감을 갖게 되다니.”
저마다 떠들던 기사들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판데아의 훈련 중에는 마법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에 나서는 훈련도 있었다.
다행히 제 9기사단에는 아시테르가 있었다.
그들은 아시테르의 마법을 방어하고 반격에 나서는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
“하아… 첫날에는 진짜 죽는 줄 알았지.”
“아아…. 저 정신나간 신참놈이 마법에 사정을 안 두는 바람에…….”
“모두 다 통구이가 될 뻔했어.”
“말도 마라… 그때 입은 화상이 아직도 쓰라리다.”
그들은 그때서야 처음으로 아시테르의 마법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무서운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하기사 아시테르는 마법기사들 중에서도 수준급에 이른다는 초위급 마도사였으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솔직히 아시테르의 마법을 몸소 겪어봤을 땐 검술을 익히는데 회의감마저 들곤 했다.
과연 검술로 마도사들을 이길 수 있을까.
자연스레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판데아가 그들을 깨우쳐주었다.
“마도사에게 초위급이 있다면 우리 검사들에게는 오러급 검사가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오러급 검사는 분명 초위급 마도사에 필적하는, 아니 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니 검을 포기하려 들지 마라. 검사들이 마도사들을 두려워하는 만큼, 마도사 또한 검사들을 두려워한다.”
불완전하지만 오러를 만들어내는 판데아의 말이었기에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아시테르도 이를 순순히 인정했다.
판데아가 말하는 오러급 검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시테르는 실제로 검술만으로 천외천의 경지를 보여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