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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65화 (165/424)

165화 초위급 마도사

제 9기사단의 활약은 왕실 내부에 빠르게 퍼졌다.

다른 왕실기사단도 아니고 제 9기사단이 활약을 펼쳤다는 말에 몇몇 왕실 인사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뿐만아니라 동료 왕실기사단마저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저희가 갔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버린 뒤였습니다.”

“제 9기사단 놈들은 다치기만 했을 뿐 사망자도 없었습니다.”

“정말 놈들이 모두 해낸 일일까요?”

“그곳에는 발할라 놈들이 50명이 넘게 있었습니다.”

“쉽게 믿을 수가 없는 건 사실입니다. 고작 반년만에 저들이 그렇게나 성장한다고요?”

“알고 보니 판데아님의 지도 아래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아왔다고 하더군.”

“판데아님이라면… 루기아 가문의?”

“국경지역에서 적들을 막아낸 훌륭한 지휘관이시잖나. 그분에게 훈련 받은 거라면…….”

“어쩌면 판데아님과 게벨 단장님 둘이서 다 해먹은 걸지도 모르지.”

“소문은 본래 부풀려지게 마련인 것!”

기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 9기사단의 이름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긍정적인 말들도 상당히 많았다.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긴 해도 제 9기사단의 성장은 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반길 일이었기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제 9기사단은 이 소문의 중심에서 별다른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곧바로 판데아의 지옥 같은 훈련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시테르도 판데아의 지옥 훈련에 동참하려 했으나 그는 곧 시련의 던전으로 불려갔다.

레큐니아에게 선물 받은 이카루스를 타고 아시테르는 금방 시련의 던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이카루스와 붙어 지낸 덕분에 이제는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가끔은 알렌시아도 이카루스를 타고 기분 전환을 하기도 했다.

“아시테르 너 이자식!!”

“으으…….”

“아시테르… 너를 원망한다… 진짜…….”

시련의 던전에 도착하자마자 초췌한 몰골의 왕실마법기사들이 그를 맞이했다.

그들의 행색을 보며 아시테르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역시나 편한 곳은 없다.

그동안 이들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수련들을 해왔을지 행색들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편하게 마탑에서 연구하던 그때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왕실마법기사가 돼서 이렇게까지…….”

“살면서… 이렇게나 많은 마법을 쓴 적은 처음이야…….”

“죽을 것 같아… 나 좀 살려주게…….”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저기에 있다.

왕실마법기사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모였다.

아시테르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왔느냐 아시테르.”

뒤편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왼쪽 팔이 있어야 할 부분이 횡하니 날렸다.

지난 번 전투에서 한쪽 팔을 잃은 글로리아였다.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여전하시네요.”

“뭐가 말이냐?”

“파이프요.”

“팔은 잃어버려도 이건 잃어버릴 수 없지.”

“아하하…….”

대체 그녀의 파이프 사랑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그래도 새로 구해준 파이프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하기사 프라울리가 나름대로 신경 써서 구해준 물건일 테니 분명 엄청나게 좋은 물건일게 틀림 없었다.

“이런 파이프를 구해주다니… 솔직히 네가 우리 아카데미 학생이었다면 안 받았을거다. 졸업하고 마법기사가 되었으니 받은 거야.”

“그때는 정말 감사해서요.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시질 않습니까.”

“크흐흐 아카데미 총괄교관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나저나 절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아… 이 나약한 놈들이 하도 불평불만을 지껄여서 말이다.”

파이프를 입에 문 글로리아가 랜스를 꺼내 들었다.

랜스에서 차가운 냉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왕실마법기사들의 얼굴이 곧 하얗게 질렸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글로리아에게도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얼굴들이 나올 순 없다.

글로리아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시련의 던전을 어떻게 클리어하는지 직접 보여줬으면 한다.”

“예에……?”

“5층까지는 혼자서도 무리 없겠지?”

“예. 그건 가능합니다만…….”

아시테르는 생각조차 않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의 대답에 왕실마법기사들이 순간 비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건 시련의 던전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수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시련의 던전을 어떻게 아시테르 혼자 클리어 해낼 수 있겠는가!

적어도 단장급 인사는 와야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은 애초에 글로리아가 자신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에이… 객기 부리지마라 아시테르.”

“그러다 진짜 후회한다… 너 시련의 던전이 어떤 곳인지는 알기나 하는 거냐?”

“그래… 저기는 지옥 같은 곳이야… 너 혼자는 무리라고……!”

“내 말이… 마수들이 그렇게 끝도 없이 나오는데…….”

왕실마법기사들의 반응은 당연히 회의적이었다.

그들의 분위기를 보니 글로리아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너는 저곳에서 마법만 사용한다. 검술은 금지.”

글로리아가 랜스로 아시테르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쳐냈다.

아시테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번 지켜 볼까?”

“그럼……!”

아시테르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시련의 던전에 들어갔다.

동시에 글로리아가 마법을 펼쳤다.

“거기 얼간이들. 모두 이 안으로 들어와라.”

글로리아가 펼친 것은 거대한 막 같은 마법이었다.

이 안에 있으면 놀랍게도 마수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마수들이 막을 건드리게 되면 발각되지만, 막이 건드려지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마수들 사이를 지나갈 수도 있었다.

글로리아는 그동안 이 마법으로 다른 왕실마법기사들의 수련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시테르의 뒤에서 그의 마법을 지켜볼 차례였다.

아시테르를 훑어보던 글로리아가 미소를 보였다.

“잘 봐둬라. 너희들에게는 많은 공부가 될 테니까.”

“아시테르는 검술을 익히고 있질 않습니까?”

“그런 아시테르가 시련의 던전을 혼자 통과하다뇨…….”

“아무래도 이건 억지입니다.”

“맞습니다. 계속해서 마법만 탐구해도 모자를 판에… 검술까지 익히고 있는 아시테르를…. 저 녀석은 반쪽짜리 마도사입니다.”

“그런 아시테르와 저희를 비교하려는 것은… 저희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 듯 싶습니다만…….”

왕실마법기사들이 뒤에서 궁시렁거리자 글로리아가 불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파이프를 문 그녀의 표정에 짜증이 잔뜩 베여 있었다.

“시끄럽다! 잠자코 지켜보기나 해.”

글로리아가 파이프의 연기를 내뿜으며 앞을 주시했다.

아시테르는 주저없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몇 년만에 다시 돌아온 시련의 던전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과거에 한번 공략해본 적이 있다고, 길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때는 다같이 함께 왔었는데.’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흘렀다.

아카데미 학생일 때는 친구들과 함께 시련의 던전에 왔었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시테르도 슬쩍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몇 년 사이에 자신은 과연 얼마나 강해졌을까.

주먹을 꽉 쥔 아시테르가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 흐르던 웅혼한 마력이 몸속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피어난 불꽃이 전방으로 날아갔다.

거센 폭발 소리와 함께 마수들이 일격에 쓰러졌다.

한번에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쓰러트린 아시테르가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가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몸집만한 화염구가 쏘아져 나갔다.

콰라라랑!!!

던전을 울리는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대기를 가득 채운 불꽃의 포효가 마수들의 비명소리마저 집어삼켰다.

아시테르는 그 속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1층을 통과한 아시테르를 보며 몇몇 왕실마법기사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멍청하기는… 여기는 비교적 약한 마수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력을 저렇게 낭비하다니…….”

“마법의 위력은 분명 대단한데… 벌써부터 저렇게 마법을 마구잡이로 쓰면 어쩌자는 건지.”

“쳇… 검술도 익히는 놈이… 마법 실력도 제법 늘었잖아?”

“그래도 초반부터 너무 힘이 들어갔어. 저래선 3층쯤에서 지쳐버리고 말거다.”

아시테르를 지켜보던 선배 기사들이 한 마디씩 해댔다.

반면 글로리아는 말없이 아시테르를 지켜볼 뿐이었다.

“가자.”

그녀는 마법을 유지하며 아시테르의 뒤를 따랐다.

2층도 사실상 초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잠깐 사이에 무슨 짓을 했는지 사방이 불구덩이였다.

“이… 이게 뭐야……?”

“이 정도면 생태계 파괴야……!”

“정신 나간 놈…. 우리까지 구워버릴 생각인가…….”

“허… 그나저나 벌써 저기까지 간 거야?”

먼발치서 보이는 폭발들.

그곳을 확인한 왕실마법기사들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글로리아가 그때서야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속도를 높인다.”

그녀가 아시테르를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덕분에 다른 왕실마법기사들도 덩달아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앞에서 아시테르는 마음껏 던전을 불사지르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불길이 오크들을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아시테르는 주변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3층까지 주파해버렸다.

너무도 빠른 그의 속도에 다른 왕실마법기사들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그의 마법들을 살핀 글로리아도 내심 흐뭇한 마음이었다.

‘저 녀석…. 그 사이에 이 정도로 성장한 건가… 대체 테르세우스 군단장님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테르세우스와 특훈의 기간을 가졌다는 것쯤은 들어 알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드래프트 미션에서부터 눈에 띌 정도로 실력이 좋은 학생이었다.

그런 아시테르가 테르세우스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니 글로리아로서도 그의 성장이 기대된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아시테르를 이곳에 부른 이유는 다른 왕실마법기사들을 자극케 할 목적도 있었지만, 아시테르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지켜보니 정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나 4층에서는 더더욱 기가 막혔다.

수없이 몰려드는 마수들.

곤충형 마수들이라 그 수가 엄청났다.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3층에서 나오는 마수들에 비해 뒤떨어졌지만 그것쯤은 개체 수로 가볍게 극복할 수 있는 놈들.

아시테르가 놈들을 보며 처음으로 프레임 오브를 만들어냈다.

화륵!

타오르던 프레임 오브가 하늘 위로 불꽃을 쏘아냈다.

날아오른 불꽃은 곧 소나기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화르륵!! 화라랑-!!!

불꽃에 당한 마수들이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아시테르의 초위 마법 중 하나 불꽃비(Rain of flame)였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마법에 왕실마법기사들 모두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들 중 저런 위력의 광역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저… 저게 가능한 일입니까……!?”

“말도 안 돼… 아니… 이럴 순 없는 것 아닌가?”

“미… 믿을 수가 없어… 아시테르가 어떻게 저런 마법을…….”

“검술 따위나 익히던 놈이 언제 저런 걸…….”

왕실마법기사들이 한 마디씩 하는 동안 희열에 찬 얼굴로 글로리아가 입을 열었다.

“멍청한 놈들. 네놈들이 마탑에서 연구나 한다는 핑계로 희희덕거리며 놀고 있을 때 저 녀석은 죽을힘을 다해 강해진 거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저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왜 말이 안돼? 저 녀석은 이미 초위급 마도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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