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새로운 임무
글로리아의 말에 왕실마법기사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이십대 중반에 초위급 마도사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아시테르는 이제 고작 이십대 중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초위급 마도사가 된다는 말입니까?”
“뭐… 전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너무 후하게 평가해준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지금도 어설프게 초위급 마법을 흉내 내고 있는 걸 겁니다.”
여기저기서 제 좋을 대로 해석하며 말들을 해대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글로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심한 놈들.”
그녀의 말에 왕실마법기사들이 입을 꾹 닫고 말았다.
막상 실컷 말을 내뱉고 나니 못나 보이는 말들 투성이었다.
“아무리 파견이라고 해도 아시테르는 너희 제 9기사단 소속이 아니냐? 근데 왜 그렇게 저 녀석을 까내리지 못해 안달인거지?”
“그건…….”
“그리고 아시테르의 실력은 내가 판단한 게 아니다. 군단장이신 테르세우스님께서 판단한 결과다. 너희들은 지금 군단장님의 판단마저 의심하고 싶은 거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글로리아의 말대로 테르세우스의 말까지 의심하고 들 수 없었다.
“못난 새끼들… 아주 한심한 놈들…! 저놈의 부탁만 아니었어도 네놈들은 내가 상대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사이 아시테르는 4층마저 완파하고 5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보며 왕실마법기사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 글로리아를 모셔온 것도 아시테르였다.
시련의 던전에서 이렇게 힘겹게 수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모두 자신들을 위한 일이었다.
글로리아는 휴식기를 갖는 동안 귀한 시간을 내어 이곳까지 와준 것.
감사해도 모자를 판에 이들은 당장의 힘든 것들에만 눈이 팔려 아시테르를 헐뜯으려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한 왕실마법기사들은 그대로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들의 반응을 살핀 글로리아가 코웃음쳤다.
그래도 아주 형편없는 놈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사이 아시테르는 5층의 고어타우로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네.”
크워어어어―!!!
고어타우로스가 눈앞의 인간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아시테르의 신형이 움직였다.
그의 주변으로 뻗어나간 불길이 순식간에 고어타우로스를 집어삼키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고어타우로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놈은 양 손을 교차시키며 앞으로 쇄도했다.
파앙!!
단단한 주먹이 지면을 때렸다.
거친 화마가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뜨거운 불길에 고어타우로스가 뒤로 물러났다.
콰랑!! 쾅!!!
빠르게 날아온 불줄기가 연속해서 고어타우로스의 몸을 때렸다.
아시테르가 만들어내 화염 줄기가 허공에 빗발쳤다.
거친 폭음과 함께 고어타우로스가 힘없이 물러나기만 했다.
놈의 눈동자가 아시테르를 쫓았다.
자신에 비해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몸.
저 연약한 몸에 단 한 번이라도 공격을 적중시키면 된다.
그러면 이 전투는 자신의 승리다.
고어타우로스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은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쿠오오!!!
한번 속도가 붙기 시자가자 고어타우로스가 곧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
마주오는 고어타우로스를 보며 아시테르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의 발끝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후읍……!”
차분히 숨을 고른다.
그와 동시에 몸속의 마력이 더욱 빠른 속도로 흐르며 전신에 폭주하기 시작했다.
강한 화마가 그의 주먹에 응집했다.
플레임 피스트(Flame fist).
테르세우스와 수련하며 완성해낸 또다른 마법.
아시테르가 주먹을 내지르자 곧 엄청난 마력이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과거 노스 왕국에서 파쿠황이 보여줬던 기술을 모방한 마법이었다.
아니, 전에는 단순한 모방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달랐다.
플레임 피스트는 이제 온전히 아시테르만의 고유 마법이 되었다.
콰앙!!!!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날 정도로 강한 충격이 고어타우로스에게 전해졌다.
엄청난 충격에 고어타우로스의 눈동자가 그대로 뒤집어졌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놈의 가슴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나왔다.
“와아…….”
“허…….”
“호오… 이것 보게…….”
아시테르의 마법을 두 눈으로 확인한 글로리아가 이채를 띠었다.
불꽃의 비도 대단했지만, 한순간에 강력한 불꽃을 쏟아내는 저 마법도 대단했다.
오랜만에 글로리아의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빙결 마도사로써 저 정도 화염 마도사라면 직접 마법을 겨루고 싶어진다.
간만에 일어난 호승심이 글로리아를 잔뜩 흥분케 했다.
“아주 제대로 성장했구만…….”
쓰러진 고어타우로스를 보며 아시테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임 피스트로 고어타우로스의 몸 전체를 날려버릴 생각이었건만 몸을 관통하는데 그쳤다.
다른 사람들이 아시테르의 지금 생각을 들었다면 기함을 토했을 터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무언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호오… 더 도전해볼 생각이냐?”
“더 위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후 그래.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는 충분히 보여줬으니 이제 이 녀석들이 그에 보답할 차례거든.”
글로리아가 뒤편의 왕실마법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괜히 아시테르에게 미안해진 왕실마법기사들이 헛기침을 해댔다.
그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들과 함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모두가 뻘쭘한 미소를 보였다.
이미 초위급 중간 단계에 다다른 그를 여기서 가르칠 수 있는 이는 글로리아밖에 없었다.
여기 제 9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왕실마법기사들 중 초위급에 다다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
그들이 오히려 아시테르에게 배워야 할 판이다.
검술이나 배운다며 은근하게 무시했건만 이제는 완전히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이를 허투루 넘길 글로리아가 아니었다.
“궁금하나?”
“예? 아니…. 그게 그러니까…….”
“너희들처럼 마탑에 처박혀서 백날천날 마력 갖고 장난이나 치는 놈들은 결코 이룰 수 없을 거다.”
“글로리아님, 저희는……!”
“네놈들이 연구 마도사들이냐? 정신차려라. 너희들은 왕실마법기사들이다. 지금은 마르체니 공주님을 지키는 임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지만, 나중에 전쟁이 벌어지면 또 다른 왕실의 주요 인물들까지 함께 지켜내야 한다. 나아가서 이 왕국까지 적들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이 너희들의 역할이란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게 쉽게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이런 평화로운 시대에 설마 갑자기 전쟁이 벌어지겠습니까?”
“멍청한 놈들!!! 이 세상에 영원한 평화는 없다! 전쟁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거다. 평화에 젖어 들어 방심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해. 적들이 노리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일 테니까.”
“예…….”
“네……!”
시원찮은 대답.
확실히 왕실검술기사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이 처음과 달라진 것에서 조금은 만족스러웠다.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가장 먼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눈빛이었다.
아시테르는 이들도 함께 변화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예?”
“무슨…….”
글로리아의 말에 왕실마법기사들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갑자기 로리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 것인지 짐작되질 않았던 것이다.
“검술기사들은 판데아가 가르치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만…….”
“네놈들이 걔네들보다 못하다는 소문이 돌기만 해봐라… 너희들은 다 죽은 목숨이다.”
글로리아가 살벌한 기세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과거 들은 기억이 있었다.
판데아와 글로리아의 사이를.
라이벌 아닌 라이벌 관계.
판데아는 글로리아와의 사이를 그렇게 정의했다.
“아하하…….”
아시테르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 * *
제 9기사단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정식으로 새로운 임무가 들어왔기 때문.
이는 마르체니 공주에게 주어진 임무이기도 했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됩니까? 마르체니 공주님에게 무슨…….”
“그래도 왕실에서 직접 전달한 건데…….”
“아무리 그래도 공주님을 그런 변방까지 보내다뇨…! 어떻게 봐도 이건…….”
마르체니 공주를 변방으로 쫓아내는 느낌이었다.
다른 인사들도 아닌 마르체니 공주더러 변방으로 가서 침입해 오는 적들을 막아내라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르체니 공주와 제 9기사단은 이것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쳇… 요즘에서야 우리 기사단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화근이 된 모양이야. 실력 있는 기사단을 보내자는 말이 나왔는데… 그게 후보에 우리가 있었다는군…….”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라. 어차피 마르체니 공주님은 왕권다툼에 관심도 없으셨으니까. 그렇다고 어느 한 왕자에 줄을 댄 것도 아니니… 본격적인 왕권다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자리를 피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무엇보다 공주님이 마음에 들어하시질 않나. 그러면 된 거야.”
그들은 한쪽에서 들판을 구경하고 있는 마르체니 공주를 바라보았다.
기사들의 무거운 마음과는 다르게 마르체니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 있었다.
숨 막히는 별궁에서 떠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녀가 향하는 곳이 변방이라도 상관없었다.
이곳에 비해 몸은 조금 고생할 수 있어도 당장 마음은 편해질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얼마나 다녀와야 한다고요?”
“반 년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짧네요.”
“공주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그곳은 전투가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오래 있을 곳이 못 됩니다.”
게벨이 마르체니를 타이르듯 말했다.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판데아가 왔다.
그는 이번 임무에 따라갈 수 없었다.
판데아에게도 나름의 일이 있고 주어진 임무들이 있었으니 반년 씩이나 따라붙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이는 글로리아도 마찬가지.
판데아는 제 9기사단이 떠나기 전 인사를 전하러 직접 찾아왔다.
“가서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다들. 다녀오면 내가 직접 확인할 테니까.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 했는지 아니면 착실히 했는지!”
“하지만 판데아님… 그곳은 전투가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거기서 수련까지 했다가는…….”
“그래서 더 좋질 않은가! 연습한 것을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곳이니까! 나 같으면 두 손 들고 환영하면서 갔을 거네.”
“아하… 아하하하……!!”
“그렇… 군요…….”
기사들이 못말리겠다는 얼굴로 판데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가르치던 기사들을 면면들이 살펴보던 판데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디 다들 몸 조심하고. 무사히 돌아와서 다시 보자.”
“예!”
“예!!”
“예!”
기사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왕실마법기사들도 글로리아의 마지막 말을 기억했다.
‘무조건 검술기사들보다 배는 뛰어난 활약을 펼쳐라. 만약 제 9기사단의 주력이 검술기사라는 소리가 들렸다간 네놈들은 돌아오면 아주 뒤질 줄 알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판데아놈의 제자들만큼은 이겨!! 알겠나!?’
잔뜩 날이 선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검술기사들과 마법기사들이 저마다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태평한 사람은 아시테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