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에도피아 (3)
불려온 아시테르를 본 호가드니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래도 제법 오랫동안 기사 생활을 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새파란 애송이였다.
아시테르의 앳돼 보이는 외모에 호가드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려보이는 저 기사가 사이클롭스를 혼자 사냥해대다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자네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제게요?”
“그래. 솔직히 대답해주었으면 좋겠군.”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마르체니 공주님께서 자네가 혼자 사이클롭스를 사냥했다고 하더군.”
호가드니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일부러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질문에 힘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시테르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하! 거짓말하지말게. 혹시 사이클롭스가 뭔지 모르는 것 아닌가?”
“흐음… 거인형 마수 아닙니까? 눈이 하나 있는…….”
호가드니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드웨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피부색은?”
“제가 본 놈은 파랑빛이었습니다.”
호가드니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드웨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호가드니가 혀를 찼다.
“어디서 들은 것은 있나 보구만…….”
“들은게 아니고 직접 봤습니다.”
“지금 나더러 자네의 말을 믿으라는 얘기인가?”
오히려 아시테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꺾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불러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아시테르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호가드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사실을 확인코자 하는 것이네. 혹시나 자네가 거짓말을 했다면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히게.”
“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허허… 이 사람이 그래도! 어떻게 사이클롭스를 혼자 사냥한다는 말인가!? 거짓말도 정도껏…….”
“정말입니다.”
“그렇게나 자신을 띄우고 싶은 것인가? 거짓으로 띄워봤자 돌아오는 것은 가혹한 현실일 뿐이네.”
“흐음…….”
아시테르가 턱을 긁적였다.
이대로는 같은 말의 반복일 뿐이다.
그렇다고 따로 증명해낼 방법도 없었다.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드웨인이 곁으로 다가왔다.
“크하하!! 젊은 친구가 성주님 앞에서도 굽힐 줄을 모르는 구만! 사이클롭스를 사냥했다는 자네의 말을 정말로 믿으라는 얘기인가!?”
“아니 그게 그러니까…….”
“좋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나!?”
드웨인이 아시테르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가끔 이런 젊은이들이 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아직 해내지도 못한 일들을 마치 해낸 것처럼 허풍을 떨고 다니는 이들이.
아마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은 사이클롭스를 마주해도 혼자서 사냥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것.
그렇다면 현실을 알려주면 될 뿐이다.
“자네도 기사라면 자신이 한 말은 책임을 질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좋네. 그럼 어디 한번 자네의 말을 믿어보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무슨 큰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와 대결을 펼치지 않겠나?”
“대결이요……?”
“그래. 자네와 내가 개인적인 대결을 펼칠 순 없으니 이렇게 하도록 하지. 자네가 소속되어 있는 제 9기사단과 우리 밸크로 기사단이 대결을 펼치는 걸세.”
대결이라는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않아도 색다른 수련법을 찾던 참인데 대결이라면 좋은 핑계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좋습니다! 무슨 대결을 하시겠습니까?”
쿨하게 답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드웨인이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이렇게 쉽게 걸려들 줄은 몰랐다.
그래, 젊은 친구의 패기가 결국 이런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쨌든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세간에 밸크로 기사단과 제 9기사단을 비교하는 말들이 꽤 오가고 있었다.
이를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없었다.
드웨인은 자신의 밸크로 기사단이 지방에 있을 뿐이지 사실은 왕실기사단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정도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제법 뛰어난 인재들이 왕실기사단에 들어가는 것이라 다들 떠들고 있었지만 드웨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쨌거나 그곳은 귀족들의 놀이터일 뿐이다.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들.
실제로 많은 임무들을 수행해내는 8대 마법기사단이라면 모를까, 왕실기사단은 근위대인 1,2 기사단 빼고 모두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그런 애송이 기사단이랑 자신이 평생을 바쳐 키워온 밸크로 기사단과 비교하다니!
사실 그는 은근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불쾌함을 싹 가실 수 있게 할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것도 눈앞에 있는 새파란 젊은이를 통해서 말이다.
“좋다. 자네의 뜻은 알겠네. 하지만 자네가 제 9기사단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대표할 수 있어요.”
마르체니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드웨인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공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척 봐도 아직 어려보이는 이 기사가 무슨…….”
“정말이에요. 아시테르라면 가능합니다.”
“예에…? 허…허허…….”
드웨인이 순간 헛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척 봐도 막내뻘인 친구인데 기사단을 대표할 수 있다니…….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제 9기사단의 수준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번 대결은 벌써부터 승부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드웨인의 시선이 슬쩍 호가드니에게로 향했다.
호가드니도 드웨인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슬쩍 입꼬리를 말아올려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결을 펼쳐보도록 하죠.”
살짝만 건드렸는데도 이렇게 넘어오다니.
쉬워도 너무 쉬웠다.
호가드니와 드웨인이 시선을 마주했다.
이것으로 그들이 원하는 목적에 한 발 들이밀 수 있게 될 터다.
두 사람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로트말론은 걱정되는 낯빛을 하고 있었다.
그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해 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호가드니가 오랫동안 돈을 들이부어 키워온 밸크로 기사단은 강했다.
눈앞에서 직접 그들의 실력을 보았던 로트말론이었기에 더더욱 걱정되었다.
세상은 넓다.
마르체니 공주는 오랫동안 왕실에서만 지내왔기 때문에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로트말론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슬쩍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마르체니 공주님.”
“네. 말씀하세요 로트말론 성주님.”
“저어… 제가 이제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호가드니의 곁을 지키는 밸크로 기사단은 강합니다. 물론 공주님의 제 9기사단이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압니다만… 저들은 아무래도 잔뼈 굵은 용병들이 속해 있다보니…….”
마르체니가 고개를 돌려 로트말론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순간 놀란 로트말론이 얼굴을 뒤로 뺐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에요?”
“예… 그게… 이쯤하시고 대결은 없었던 일로 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굳이 대결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또…….”
잔뜩 사기가 오른 제 9기사단이 대결에 패해 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제 9기사단이 밸크로 기사단의 명성이 올라가는데 그 밑거름으로 쓰여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지라, 로트말론은 조심스럽게 이 말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어쩐지 말을 꺼내기가 너무도 조심스러웠다.
그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 때 마르체니가 손사레를 쳤다.
“저한테 이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어요.”
“예……?”
“어차피 이건 아시테르가 결정한 일이에요. 저 녀석 고집은 나도 못 꺾어요.”
“예에……?”
마르체니의 말에 오히려 로트말론이 당황한 표정을 보이고 말았다.
아시테르가 제 9기사단의 막내인 것은 로트말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르체니가 그런 아시테르의 결정을 번복하지 못할리 없었다.
결국 로트말론의 입장에서는 마르체니가 아시테르를 각별히 아껴 그를 많이 봐주고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역시 잘생긴 얼굴 때문인가…….’
로트말론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키도 훤칠한데다 얼굴도 잘생기기까지 해 처음부터 눈에 띈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이런 사적인 감정을 끼워 넣을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공주님…….”
“이제 그만 말해요 로트말론 성주님. 저 녀석이 이미 결정해버렸어요. 그건 나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어떻게 그럴 수가…….”
“기사들의 수련은 전적으로 아시테르에게 맡겼어요. 그것도 이건 게벨 단장이 직접 말한 거에요. 그러니 이 부분은 아무리 저라고 해도 터치할 수 없어요.”
“예에……!?”
헛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휘둥그레진 두 눈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수련?
수련이라니!
지금 대결을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수련이란 단어가 나온단 말인가!?
그래서 다시 말을 꺼내보려 했지만 이내 그만 두기로 했다.
마르체니 공주의 표정도 귀찮음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서서 말릴 일인가 싶기도 했다.
거기다 아시테르의 표정도 상당히 평온해보였다.
‘게벨 단장까지 자리를 비웠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들…….’
제 9기사단의 책임자인 게벨은 현재 에도피아에 없었다.
그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제 9기사단의 임무 수행을 지금까지 직접 보지 못했던 로트말론은 제 9기사단이 해낸 대부분의 것들을 사실 게벨 개인의 능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그저 게벨의 명령을 따르는 수하들 중 하나쯤으로 여겼다.
게벨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가 자리를 비운 지금 밸크로 기사단과 대결이라니…….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려면 날짜를 미루는 편이 좋았다.
“좋아. 그렇다면 대결은 언제 시작하겠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면…….”
“괜찮습니다. 준비 기간은 따로 필요 없습니다.”
“호오… 정말 그렇나?”
“네. 내일 당장 바로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이것 참… 무리하는 것 아닌가? 괜한 자존심에 그러는 거라면…….”
“예? 이런 일에 자존심이랄 것 까지 있습니까.”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헌데 그 모습이 오히려 도발로 이어진 모양이다.
드웨인을 포함한 몇몇 밸크로 기사단 인원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던 드웨인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호가드니 성주님. 내일 당장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뭐… 그대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결 종목은요?”
사실은 이게 제일 중요하다.
어떤 대결을 원하는 것일까.
로트말론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에 드웨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그야 당연히 마수 사냥이지.”
“오오 그거 좋네요!”
“어떤 마수를 사냥할 건가?”
로트말론의 물음에 드웨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로 다른 마수를 사냥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니 같은 종의 마수를 사냥해야겠죠.”
“그럼?”
“마침 카르지엘라 산맥에 사이클롭스 동굴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각자 사이클롭스를 누가 더 빨리 사냥해내냐는 것으로 하죠.”
“사… 사이클롭스를……!?”
“네. 어려울 것 없지 않습니까? 두 기사단 모두 사이클롭스를 사냥했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아시테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드웨인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기대해라 애송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려주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