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제 9기사단 vs 밸크로 기사단
쿠우웅―!!!
커다란 뼈가 땅에 내리쳐졌다.
성인 몸통 만한 뼈를 든 사이클롭스가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겁도 없이 쳐들어온 인간들.
평화로운 수면 시간을 방해하고 있는 이 인간들 때문에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져 있었다.
그래서 놈들을 모조리 잡아 식량으로 쓸 생각이었다.
“모두 긴장해라!!”
“마법 공격 실시!”
불과 얼음이 날아와 사이클롭스의 몸을 때렸다.
제법 통증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사이클롭스가 들고 있던 뼈를 다시 휘둘렀다.
파앙!!
방패를 든 사내가 그것을 호기롭게 막아섰다가 피를 토했다.
이를 보며 사이클롭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사내가 입고 있던 갑옷도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이럴 수가…….”
망가진 갑옷을 보며 호가드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싼 값을 주고 사온 튼튼한 갑옷이었다.
다른 곳에는 돈을 아껴도 밸크로 기사단의 장비에는 결코 돈을 아까지 않았던 호가드니였다.
그런 비싼 갑옷이 저렇게 쉽게 망가져 버리고 말다니…….
평소 같았다면 사기를 당했다며 노발대발 했겠지만 상대가 사이클롭스이다보니 전혀 다른 생각이 들고 있었다.
과연 사이클롭스는 사이클롭스였다.
카르지엘라 산맥의 왕이라 불리는 마수다웠다.
그리고 그런 사이클롭스를 밸크로 기사단이 쓰러트린다면!
이들의 명성은 더욱더 드높아질 것이다.
“정신차려라!!”
드웨인이 용맹하게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커다란 헬버드였다.
쿠웅!!
헬버드의 도끼날이 사이클롭스의 발등을 찍었다.
“크워어!!”
느껴지는 고통에 사이클롭스가 신음을 토해냈다.
분노한 사이클롭스가 다시 뼈를 휘둘렀다.
쾅!!!
이번에는 솟아난 암벽이 뼈를 막아냈다.
“좋았다!!”
마법으로 사이클롭스의 공격을 막아낸 마법사를 보며 여러 인원들이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러나 사이클롭스의 공격은 그것 한 번이 아니었다.
놈은 다른 손을 이용해 기사들을 낚아챘다.
“헙!?”
헛바람을 집어삼킨 기사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사내가 사이클롭스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쳤다.
“사… 살려줘……!”
공포에 찬 사내가 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내를 쉽게 도와줄 수 없었다.
사이클롭스는 손아귀에 든 인간을 그대로 입에 넣어버렸다.
그 끔찍한 광경에 몇몇 인사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뭣들하고 있어!! 놈을 공격해라!!”
분노한 드웨인이 크게 소리치며 앞으로 향했다.
그가 들고 있던 헬버드에 마나가 맺히기 시작했다.
콰직! 스가각!!
사이클롭스의 피부가 갈라지고 핏물이 흘러나왔다.
드웨인은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헬버드를 휘두르고 찔렀다.
그동안 마법 공격이 사이클롭스를 향해 쏟아졌다.
파쾅!!
촤라락―!!
“크아악!!”
“아니 여기로 공격하면!!”
몇몇 마법들이 검사들의 곁으로 떨어졌다.
마법에 공격당하는 검사들도 있었다.
마법사들이 그들을 노리거나 실수해서가 아니었다.
사이클롭스가 마법을 쳐내니 그 파편에 당한 것이다.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조용히 턱을 매만졌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밸크로 기사단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너란 녀석은 정말…….”
“아무리 게벨 단장님께서 너에게 훈련권을 일임하셨다곤 하지만… 우리들끼리 사이클롭스를 사냥한다는 게 말이 되냐!?”
“그래… 이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아시테르…! 하다 못해 너라도 함께 참여해야지……!”
뒤에 있던 기사들이 앓는 소리를 해댔다.
그도 그럴 것이 대결은 아시테르가 받아들여 놓고, 정작 그는 이번 대결에 참전하지 않겠다 말하고 있었다.
‘좋은 공부가 되고 좋은 실전 연습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함께하지 않더라도 선배님들께선 충분히 사이클롭스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모두가 멍한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사이클롭스가 어떤 마수인가!
거인종으로써 인간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흉포한 녀석이었다.
거기다 타고난 근력과 단단한 피부는 마법이든 검이든 쉽게 튕겨낸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눈앞의 사이클롭스는 밸크로 기사단의 공격을 손쉽게 튕겨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테르는 저런 괴물을 본인도 없이 제9기사단 인원들로만 사냥하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은 게벨을 포함한 실력 있는 선임기사들도 몇몇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대체 어떻게 사이클롭스를 사냥하라는 말인가!
모두가 숨죽여 불만을 표하고 또 표했지만 아시테르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선배님들 자신을 믿으세요.”
“아니… 아시테르!! 아하하… 우리들의 말도 좀 들어주지 않으련?”
“그래 막내야… 세상에 어느 누가 사이클롭스를 수련 상대로 여긴단 말이냐?”
“미친 짓도 정도껏이야… 대체 왜 너도 판데아님을 닮아가려 하는 거냐!?”
이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판데아에게 그런 수련법을 가르쳐준 것도 아시테르였다는 사실을…….
어쨌든 아시테르는 역시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유심히 밸크로 기사단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개개인의 능력들이 뛰어났다.
돈을 받고 임무를 대신 수행해주는 용병.
기사들과는 사뭇 다른 개념이었다.
어쨌든 용병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는 높은 등급의 용병들이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개개인들의 능력은 제9기사단과 견주어 봤을 때 오히려 위쪽이었다.
하지만 제9기사단과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이 차이 때문에 이번 대결의 결과도 판가름 날 것이다.
어쨌든 아시테르는 철저히 방관자로써 이번 사냥을 지켜보고 있었다.
밸크로 기사단의 기사들이 사이클롭스에게 당할 때는 가끔씩 몸을 움찔움찔거리며 탄식을 흘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사이클롭스를 사냥하는 밸크로 기사단을 보며 호가드니도 열심히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는 터라 들릴 리가 없는 데도 말이다.
호가드니뿐만 아니라 로트말론과 마르체니 공주도 손에 땀을 쥐고 사이클롭스 사냥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나 마르체니는 사이클롭스를 실제로 보고 걱정하는 얼굴을 보였다.
“아시테르… 정말 괜찮은 거야?”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건 너무나 괴물 아니야?”
“괴물이 괴물이지… 너무나 괴물은 또 뭡니까?”
“괴물 중에서도 상괴물… 아니 그니까…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특히 위험한 마수……!”
“맞습니다. 사이클롭스는 상당히 위험한 마수에 속합니다. 개체 수는 많지 않지만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아니 그니까…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그렇기 때문에 다같이 사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다른 마수였다면 선배님들 모두 혼자 사냥하셨어야 했을 겁니다.”
뒤에서 욕지거리가 은근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아시테르는 환청 정도로 생각하며 귀를 긁적였다.
그래도 마르체니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 위험한 것 같은데… 밸크로 기사단 사람들도 벌써 여러 명이나 당했잖아…….”
“후후 괜찮습니다. 염려마세요. 혹시나 선배들 중 위험한 사람이 생기면 제가 나설 생각이니까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아시텥르의 실력만큼은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마르체니 공주였다.
그동안 직접 봐온 것도 있지만 게벨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게 아시테르였다.
그런 아시테르의 말이니 믿음은 간다.
* * *
한편 아시테르의 시선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드웨인과 몇몇 눈에 띄는 용병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시테르는 달랐다.
그는 밸크로 기사단의 뒤편에 자리한 어느 한 여인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드웨인과 다른 용병들의 기술은 분명 화려하고 멋졌다.
그들의 공격은 사이클롭스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고, 사이클롭스도 괴로워하면서도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쾅!! 콰라랑!!
펑!!! 퍼버버벅―!!
사이클롭스의 공격에 맞을 때마다 기사들이 휙휙 나가 떨어졌다.
그들이 피를 쏟고 바닥을 뒹굴 때마다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인이 다가갔다.
“뭐하고 있냐 엔류아! 빨리 치료해라!!”
“나부터! 저놈 말고 나부터 치료해!!”
“빨리해!! 멍청한 년아!!!!”
“네… 네에…….”
엔류아라 불린 여인이 레이스부채를 펼쳐 들었다.
그녀가 부채를 부치자 형상화된 아지랑이가 부상자들을 향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마력?’
아시테르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부채에서 시작된 마력이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가 부상병들을 감싸면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다.
“치료 마도사…….”
그녀의 존재는 다른 이들의 화려함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사냥에서 아주 확실하고도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엔류아의 마법은 부상병들을 빠르게 치료했다.
회복한 부상병들은 다시 신속하게 전장으로 복귀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시테르도 눈에 이채를 띠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과거 자신도 치료 마도사의 덕을 톡톡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워낙 감정에 휘둘리느라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치료 마도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치료 마도사가 있으면 훈련 중에 아무리 다쳐도 다시 치료하기만 하면 되잖아?”
어디 그뿐인가.
실제 임무에 나서서도 훨씬 더 위험부담이 적어질 것이다.
물론 치료 마도사를 지키기 위해 병력을 따로 빼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겠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을 터였다.
아시테르가 그런 생각들에 잠겨 있는 동안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웅!!
마침내 밸크로 기사단이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이클롭스의 시체 위에서 드웨인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헬버드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걸렸나?”
“4시간 걸렸습니다.”
“후우… 4시간이면 양호한 편이군.”
난자된 사이클롭스의 피부를 보며 드웨인이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놈은 발악하고 또 발악했다.
마지막에 긴장의 끈을 놓은 세 명의 수하들이 놈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래도 결국 잡아냈어.”
“대단했습니다 대장님.”
“후후 뭘 이정도 가지고.”
헬버드를 자신의 어깨에 걸친 드웨인이 마침내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몇 번 사냥해봤다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기사단원들을 몇몇 잃은 것은 손해였지만 그래도 이번 경험으로 다들 조금은 더 성장했으리라.
“모두 수고했다.”
“네!”
“네!”
“예!!”
단원들이 일제히 답했다.
그들의 행색도 말이 아니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들이 그들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어두운 얼굴을 한 인물은 없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너는 기쁘지 않은 거냐!?”
“아… 아뇨… 사이클롭스를 무찌른 것은 저도 무척이나 기쁘지만…….”
하얗게 질린 엔류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내 한 명이 엔류아를 뒤에서 밀쳤다.
“뭘 그렇게 서 있어!? 빨리 대장님부터 치료해라!!”
“그치만 저기 더 부상이 심한 기사들이 있어요…….”
“그니까 빨리 대장부터 치료하고 쟤들까지 치료하면 될 것 아냐?”
“네? 하지만…….”
짝!!
사내가 엔류아의 뺨을 때렸다.
그는 무섭게 부릅 뜬 눈으로 엔류아를 노려보았다.
“정신 안 차려? 지금 누가 더 중요한지 모르겠어?”
“아… 네… 알겠어요…….”
엔류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드웨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늦었구나 치료도구.”
“죄송해요… 다른 부상자들을 살피느라…….”
“너는 무조건 나부터 챙기면 된다. 다른 전투를 치를 때도 마찬가지야. 무조건 나부터 치료해라. 너는 그것만 생각해. 그게 네 쓸모다. 알겠나?”
“네…….”
엔류아가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드웨인은 그런 엔류아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