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진정한 승리
“쿠워어!!!”
타이밍 좋게 다른 사이클롭스가 동굴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를 확인한 호가드니가 마르체니와 로트말론쪽을 쳐다보았다.
“이제 그쪽 차례로군요. 저의 밸크로 기사단은 4시간 만에 사이클롭스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제9기사단이 보여줄 차례입니다.”
마르체니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가 제9기사단을 향해 외쳤다.
“선배님들!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아오…….”
“휴우…….”
“결국 우리 차례가 왔구만…….”
“어쩔 수 없지. 다들 가자고…….”
말은 그렇게 해도 제9기사단 모두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방심은 곧 죽음을 불러온다.
게다가 이것은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아시테르는 이것이 수련의 일환이라 말했지만, 제9기사단에게 이것은 자존심 싸움이었다.
그들이 열을 맞추어 앞으로 나아갔다.
검사들은 전열에 마도사들은 후열로 배치되었다.
거기서도 방패를 든 인원들은 중앙부, 기다란 검을 든 검사들이 맨 선두에 섰다.
“돌진이다!!”
선임기사의 외침에 모두가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왕실마법기사들이 뒤에서 마법을 준비했다.
아시테르는 맨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가만히 있자 이를 이상하게 느낀 호가드니가 입을 열었다.
“아니… 저 녀석은 나서지 않는 겁니까?”
“본인 말로는 자기가 나서면 대결이 너무 쉬워질 거라고 하더군요.”
“예에…? 아니 이런 미친……!”
제9기사단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저 건방진 거짓말쟁이에게 창피를 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또 빠져나갈 생각을 하다니…….
보통 놈이 아니었다.
호가드니가 혀를 찼다.
드웨인을 비롯한 밸크로 기사단 인원들은 제9기사단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에도피아 영지에서 접한 그들의 실력은 분명 자신들보다 아래였다.
왕실기사단이라고 해서 조금 기대한 것도 있었는데, 그때 당시 그들의 실력에 실망을 금치 못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일부만 본 것이니 이제야 제대로 그들의 실력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어디 한 번 실력 좀 볼까.”
드웨인이 팔짱을 끼며 앞을 지켜보았다.
그동안 제9기사단은 착실히 사이클롭스의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의 전진에 사이클롭스가 분노했다.
“쿠워어!!!”
놈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마수의 뼈를 휘두르는 놈의 공격을 마법이 막아내었다.
그러나 사이클롭스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토벽을 부숴낸 사이클롭스가 선두의 기사들을 노렸다.
푸숙! 푸슈슉!!
기사들의 검이 사이클롭스의 다리를 베고 지나갔다.
발목에 계속해서 남는 자상들.
드웨인처럼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데미지라도 착실하게 넣어주고 있었다.
이어진 사이클롭스의 공격을 방패병들이 막아냈다.
쿠웅!!!
스가각!! 채챙!
그들은 방패 안에 숨겨둔 검으로 사이클롭스의 손을 베었다.
얕아도 상관없다.
놈에게 상처만 입히면 된다.
그러면 사이클롭스도 자연스레 그들의 공격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아시테르가 이곳으로 오기 전 말해주었던 부분이었다.
그들은 아시테르가 일러둔 대로 착실히 움직였다.
콰가각!!! 가가광!!!
마법 공격이 연달아 사이클롭스의 상체를 때렸다.
놈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그러면 자연스레 하단부가 비게 된다.
검사들이 최선의 일격을 날렸다.
검이 빛에 번뜩 일 때마다 사이클롭스의 피부에도 상처가 생겨났다.
“빌어먹게도 단단하잖아 이 자식!!!”
다른 마수들이었다면 검이 깊숙이 들어갔을 텐데 지금은 상처를 벌리는 게 고작이었다.
상처라도 내면 다행이었다.
마나 소드를 완벽하게 다뤄내지 못하면 피부에 상처조차 낼 수 없다.
검이 힘없이 튕겨져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드웨인이 사실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녔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헬버드는 움직일 때마다 사이클롭스의 피부에 깊은 상처를 냈었으니까.
쿠웅!!! 콰랑!!
그동안 사이클롭스의 무식한 공격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비해내는 것만으로도 죽겠다.
공격 한 번 한 번을 힘겹게 막아낼 때마다 온몸의 뼈가 시큰거리는 느낌이었다.
“크아아!! 빌어먹을!!”
“좀 아픈 척이라도 해라 이 새끼야!!”
“죽여!!! 죽이라고!!”
기사들의 분노가 갑자기 시작되었다.
이것은 판데아를 향한 분노인지 아니면 아시테르를 향한 분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힘들게 훈련한 나날들에 대한 분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들의 분노를 담은 검이 계속해서 사이클롭스에게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크워어!!”
사이클롭스가 양팔을 휘둘렀다.
당장 근처에서 귀찮게 하는 기사들부터 치워내려 했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마도사들이 아니었다.
잠시간의 휴식을 거치고 다시 그들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마법 공격 세례에 사이클롭스가 하는 수 없이 두 팔을 교차했다.
그 사이 다시 검사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그들의 패턴을 파악한 사이클롭스가 하는 수 없이 팔을 내렸다.
그리곤 근처의 바위덩어리를 들어 마도사들을 향해 날렸다.
후우웅―!
콰직!!
바위덩어리는 쉴드벽을 뚫고 마도사들에게로 향했다.
몇몇 마도사들이 마법 공격의 방향을 틀어 바위를 공격했다.
콰앙!!!
깨진 바위조각의 파편들은 방패병들이 막아주었다.
“여긴 우리들에게 맡기고 공격을 이어가라!”
“알겠다!”
마도사들이 다시 마법 공격을 펼쳤다.
그동안 사이클롭스를 맡고 있던 검사들이 흩어졌다.
“크으윽……!”
“하아… 하아…….”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기사도 있었고 격한 숨을 몰아쉬는 기사도 있었다.
사이클롭스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그러니 이들도 쉴 수 없었다.
주저앉으면 다른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이것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선배들의 개인 능력은 솔직히 말해 엄청 뛰어나진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클롭스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동료들과 힘을 합하면 되잖아요? 우리는 기사단이니까요!’
처음에는 아시테르의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말이 와닿기 시작했다.
부족한 부분들은 다른 동료들이 메꿔준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동료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그렇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니 마치 하나로 완성된 느낌이었다.
이것은 지금 여기 서 있는 개개인 모두가 느끼고 있을 터다.
“쿠워어어!!!”
그래도 꽤 오랜시간 싸운 덕분에 사이클롭스의 몸에도 상처들이 즐비했다.
놈은 자신의 공격이 통하질 않자 상당히 분노한 모양이었다.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었다.
하지만 제9기사단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놈의 공격에 대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잖아.”
혹시 몰라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누군가 위험해지기만 해도 당장 달려나갈 생각이었다.
여기서 선배들을 한 명이라도 잃을 순 없었다.
그러니 수련은 수련으로만.
물론 유사시에는 자신이 달려나가 구해주겠다는 말은 입에도 담지 않았다.
실수하면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제9기사단은 이 긴장감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 대신 채워주겠지 하는 어설픈 생각은 안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갖게 해야 했다.
그래야 기사단은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이것들은 모두 테르세우스와 판데아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아시테르는 확실히 이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시테르가 수련을 이끄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초월급에 이른 마도사였다.
다른 것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업적과 실력들이 있으니 선배들도 하는 수 없이 아시테르를 따라주었다.
거기다 게벨이 수련에 있어서는 아시테르가 단장 대리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배려해줘서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아시테르가 이들을 수련시킨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으라아아!!”
“힘내자!! 할 수 있다!!”
“놈을 쓰러트리는 거다!!”
검사들과 마도사들이 한 마음이 되어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리려 하고 있었다.
작은 데미지가 쌓여 점점 커다란 데미지를 만들어낸다.
아시테르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9기사단이 사이클롭스를 충분히 상대해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마침내 결과로 드러났다.
검사들이 남긴 자상이 쌓이고 쌓여 사이클롭스의 피부가 점차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속살에 검이 다시 파고드니 핏물이 흘러나오고 살점이 튀었다.
마도사들의 마법 공격도 차츰 쌓이다보니 사이클롭스의 양팔과 가슴 부위가 점점 다른 색으로 변색되고 있었다.
놈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욱더 발악했다.
몇 차례나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지만 결국 제9기사단은 사이클롭스의 공격을 모두 막아낼 수 있었다.
“하… 단장님…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분명… 저 왕실기사단은 우리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놈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사이클롭스를 저렇게 능숙하게 상대할 수 있는 겁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잖습니까…! 우리들은 여러 동료들을 잃었는데…….”
“우리가 속은 겁니다 단장! 저놈들은 이미 사이클롭스를 몇 번이나 사냥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수하들의 말에 드웨인도 이를 갈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제9기사단이 사이클롭스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으면 하는 수 없이 다시 전투에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은혜를 입힐 예정이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일이었다.
쿠우웅―!!!
마침내 사이클롭스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육중한 몸이 쓰러지자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어서 제9기사단의 함성 소리도 울려퍼졌다.
“쓰러트렸다!!”
“우리가 해냈어!!”
“크하하하!! 이겨냈다!!”
그들이 기쁨의 탄성을 흘렸다.
어느새 아시테르도 달려나가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역시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으하하하!! 아시테르!! 봤냐!? 우리가 이 정도야!!”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렸다!!”
“이겨냈다!!”
그들을 지켜보던 호가드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8시간쯤 지났습니다.”
“뭐…!? 우리보다 오래 걸린 줄은 알았지만 8시간이라고!?”
“네.”
“크하하하!! 대결은 우리가 이겼구만.”
호가드니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르체니 공주도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로트말론이 입을 열었다.
“왠지 모르게 공주님께서는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결에서 졌는데 속상하진 않으신 겁니까?”
“속상할 게 뭐가 있어요? 저 무시무시한 마수를 성공적으로 쓰러트렸는데. 거기다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어요. 이것만으로도 기뻐할만한 일 아닐까요?”
마르체니의 말에 로트말론도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도 대결만 생각했지 손실 병력은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녀 말대로 부상병들은 밸크로 기사단에 비해 훨씬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제9기사단은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다.
사이클롭스를 상대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부상병들이야 어쩔 수 없다.
밸크로 기사단은 치유 마도사를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밸크로 기사단은 더욱더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아니지… 치유 마도사가 없었다면 저들도 다른 전략을 썼으려나…….’
아무튼 대결의 결과는 뚜렸했다.
대결은 누가 사망자를 적게 내느냐가 아니라 사이클롭스를 빠르게 죽이느냐였으니……
4시간만에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린 밸크로 기사단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하지만 정말로 밸크로 기사단이 이 대결에서 이겼는지는 의문이로군…….’
전력을 다한 밸크로 기사단에 비해 제9기사단은 최상의 전력이 아니었다.
당장 옆에 있는 아시테르만해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게벨과 다른 선임기사들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으니까.
그런 와중에 조금 오래 걸리긴 했어도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사이클롭스를 잡아냈으니, 어떻게 보면 이 대결의 진정한 승자는 제9기사단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