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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73화 (173/424)

173화 게벨과 드웨인

“금화 오백닢. 그 정도면 이 여자를 넘겨주도록 하마.”

드웨인의 말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금화 오백닢이면 말 그대로 엄청난 액수였다.

“말도 안 돼…….”

“오백 닢이라니… 너무 많은 액수잖아?”

“요즘 노예도 그 정도는 아니야. 금화 열닢이면 살 수 있는데.”

“하지만 저 사람은 그냥 노예가 아니잖아? 무려 치유 마도사인데…….”

“하긴… 치유 마도사는 보통 금화 백닢 이상은 하니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아시테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시테르의 눈치를 살핀 기사들이 말을 아꼈다.

그때 드웨인이 아시테르를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흐흐 어떠냐? 돈으로 이 년을 살 수 있겠나?”

“…….”

“못 사겠지? 왕실기사단의 봉급으로는 한참이나 걸릴 거다.”

쾅!! 퍽! 퍼버벅!!

그때 한쪽에서 거친 타격음이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이제보니 두 명의 사내가 한데 뒤엉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주먹다짐이 오가는 둘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봐 그만해!”

“참아라 도아르체!”

기사들이 두 사람을 떨어트렸다.

핏물을 닦아낸 도아르체가 두 눈을 부라렸다.

그와 주먹다짐을 한 사내는 밸크로 기사단 소속이었다.

“하! 왜. 내 말이 틀렸나? 제9기사단의 실력이 뒤떨어지니까 여기까지 쫓겨난 것 아냐. 그리고 이곳 동부 지역을 만만히 보지 마라.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곳은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어. 감히 우리 단장을 욕하다니!!”

도아르체의 외침에 왕실기사들의 두 눈이 커졌다.

게벨 단장은 그들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자신들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마르체니 공주와 게벨 단장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제9기사단이었다.

그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

평소 티격태격하며 사이가 안좋은 왕실검술기사들과 왕실마법기사들도 이 순간만큼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하나가 되고 있었다.

“내 말이 틀린가? 너희 같은 놈들을 이끄는 게벨이란 사내도 별볼일 없을 것 같은데. 게벨이라는 사내보다 우리 단장이 훨씬 더 강하다. 거기다 기사단 일원들의 능력도 우리쪽이 훨씬 더 대단하지. 결국 너희들은 이름뿐이라는 거다.”

“페아르틴. 무슨 일이냐?”

“별일 아닙니다. 저는 화장실이나 다녀오려고 하는데 저놈이 먼저 제게 시비를 걸어서 응수해준 것 뿐입니다.”

“시비를 걸었다고?”

“예. 우리더러 용병출신인 무뢰한들이라고…….”

“용병 출신이라고 해서 궁금한 것을 물었는데 다짜고짜 화를 낸 것은 그쪽 아닌가?”

“하!! 호기심을 핑계로 우리들을 낮잡아보려 했잖아?”

“어이가 없을 지경이구만…….”

“페아르틴! 그만하고 돌아와라.”

드웨인의 외침에 페아르틴이라는 사내가 혀를 찼다.

그리곤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삭막해졌다.

제9기사단 일원들은 계단쪽으로 향하는 페아르틴을 무섭도록 노려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거슬렸는지 페아르틴이 눈살을 찌푸렸다.

“멍하니 있지 말고 비켜. 왜 길을 막고 있어? 어차피 병X같이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그 말을 들은 도아르체가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그것을 보고도 일부러 한 대 얻어맞은 페아르틴이 얼굴을 잔뜩 구겼다.

“지금 뭐야?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어이 단장님! 나는 조용히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쪽에서 날 막는데요?”

“지금 우리 단원을 때린 거냐?”

위쪽에서 드웨인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도아르체는 비켜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왜, 우리랑 한바탕 해보시게?”

페아르틴이 입꼬리를 슬쩍 말아올리며 말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드웨인쪽으로 향했다.

이제보니 드웨인도 적극적으로 사태를 말릴 생각이 없어보인다.

어쩌면 드웨인도 지금 같은 상황을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페아르틴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안 들었어. 왕실기사단은 1,2기사단이 아니면 기껏해야 귀족들의 친목질 단체 아닌가?”

“…….”

“근데 거기서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난 인간들이 여기 동부 지역까지 와서 설쳐대는 꼴이라니… 부끄러운 줄 아쇼. 뭐 내 말에 열 받으면 화끈하게 다시 대결해보든지. 그쪽이랑 우리들이랑 결투를 벌이는 식으로.”

이제야 그들이 원하는 바가 드러났다.

밸크로 기사단은 제9기사단과 결투를 벌임으로써 제대로 된 대결을 펼치고 싶어했다.

마수 사냥은 결과적으로 밸크로 기사단의 승리였으나 이는 반쪽짜리 승리였다.

한창 풀이 죽어 있어야 할 제9기사단은 축제 분위기로 신나있었던데다, 제9기사단과 달리 사망자를 낸 밸크로 기사단이 사실은 제9기사단보다 한 수 아래라는 소문까지 퍼진 것이다.

그러한 소문에 민감한 밸크로 기사단이었다.

용병 출신이 상당히 많았기에 이들은 사회의 평판이 곧 자신들의 위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은근하게 제9기사단을 자극해 그들로 하여금 다른 대결을 이끌어내는 것.

그렇게 해서 두 기사단이 전투를 벌이거나 1:1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소문은 다르게 퍼질 것이다.

밸크로 기사단이 나서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더 빠르고 간결했다.

그때 한쪽에선 누군가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오늘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나가라.”

안으로 들어선 사내를 본 밸크로 기사단 일원 중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중년의 사내는 그를 무시하고 안쪽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 있었군.”

“돌아가라고 했다. 오늘 여기는 밸크로 기사단이 자릿값을 모두 냈다.”

“흐음? 밸크로 기사단이? 하지만 저기 1층에 있는 이들은…….”

“아아 저놈들 말인가? 이제 곧 쫓겨날거다. 우리 단장에 의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로군. 저들이 왜 쫓겨난다는 말인가?”

“오늘 대결에서 패배한 놈들이니까. 아니 그나저나 당신은 뭔데 감히 나한테 말을 낮추는 거야?”

“그러는 자네는 뭔데 나한테 말을 낮추지?”

그러자 사내가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을 가리켰다.

밸크로 기사단을 상징하는 헬버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안 보여?”

“보이네만.”

“그럼 알아서 기란 말이야.”

“껄껄… 그게 무슨…….”

“근데 이 아저씨가 말을 안들어 쳐먹고……!”

슬슬 짜증이 치밀어올랐던 사내가 검을 들어 위협을 가하려 했다.

그러자 중년의 사내, 게벨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물건은 함부로 꺼내지 않는 것이 좋네만.”

“시끄러워. 그만 시끄럽게 떠들고 나가라고.”

게벨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뒤편에서 주먹이 날라왔다.

빠악!!

주먹에 맞은 사내가 뒤로 날라갔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에단틴. 성급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

“예? 하지만 저놈이 검을 들고 단장님을 위협하질 않았습니까.”

에단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자 게벨이 못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지?”

사실 게벨과 선임기사들은 안쪽에서 무슨 일들일 벌어지고 있는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본래는 제9기사단 일원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조용히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페아르틴이라는 사내가 먼저 도아르체를 자극하는 것도 지켜봤다.

“여기들 모여 있었군.”

게벨의 등장에 제9기사단 모두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밸크로 기사단도 자연스레 게벨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저자가 바로 게벨인가.”

처음보자 마자 드웨인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벨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와 기도는 어중이떠중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의 뒤로 들어오는 선임기사들도 상당히 날카로운 기도를 지니고 있었다.

드웨인과 게벨의 시선이 자연스레 마주쳤다.

헬버드를 휘두르는 드웨인의 몸집도 상당히 컸지만 게벨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잘 단련된 그의 몸은 탄탄한 근육질로 뒤덮여 있었다.

단단한 그의 주먹을 살핀 드웨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 게벨인가?”

“그렇네만. 그대는 누구지?”

“나는 밸크로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드웨인이오.”

“그렇구만.”

별로 관심 없어보이는 눈치였다.

그의 태도에 드웨인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밸크로 기사단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아니. 처음 듣네만.”

“우리들은 엠벨 영지의 호가드니님을 모시는 기사단이다. 우리가 이룬 업적으로는 사이클롭스 사냥과 트윈 헤드 오거 사냥, 그리고 또…….”

게벨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드웨인의 말도 멈췄다.

“내가 그것들을 알아야 하나?”

“뭐……?”

“내가 그것들을 알아야 하냐고 물었네.”

“하……!”

명백한 도발이었다.

드웨인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지금 그 태도는 무언가?”

“그러는 내가 먼저 물어보지. 수하를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다짜고짜 검부터 들이미는 거지? 그것도 왕실기사단의 단장인 내게.”

이번엔 게벨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드웨인도 그의 기세를 받아치며 말했다.

“호오… 이것 참 내 수하가 실례가 많았구만. 그러는 그쪽의 수하는 어째서 내 수하를 때린 거지?”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뭐라고……?”

“이녀석들이 못난 구석은 있긴 해도 이유 없이 소란을 일으킬 녀석들은 아니라서 말이야.”

게벨이 자신의 수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게벨의 등장에 제9기사단의 분위기는 진즉부터 바뀌어 있었다.

이들에게 게벨은 그런 존재였다.

게다가 게벨의 뒤로 서 있는 선임기사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덕분에 밸크로 기사단의 기사들도 여차하면 검과 마법을 사용할 기세였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게벨이 먼저 피식 웃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그대의 수하는 내게 검을 들이밀었고 나의 수하는 그대 수하에게 실례를 범한 것 같으니. 서로 비긴셈 치자고.”

“그럴 수야 있나.”

“그럼 이곳에서 한판 붙어보기라도 하자는 말인가?”

게벨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도 어디가서 대결을 피할 위인은 아니었다.

드웨인도 한성깔 하는 인물이었기에 손을 풀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맴도는 때 게벨이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재밌구만! 이대로 대결을 한 판 벌여보는 것도 괜찮지만. 같은 목적을 지닌 기사단 동료끼리 그럴 수야 있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대도 나도 서로 다른 주군을 모시고 있긴 하나, 궁극적으로는 이 왕국을 위해 일하고 있질 않나. 그러니 우리는 동료인 셈이지.”

“그게 갑자기 그렇게 되나.”

“그러니 같이 한잔 걸치겠나? 앞으로 자주 마주칠것 같은데 벌써부터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지 않나.”

“크음…….”

게벨이 먼저 술잔을 건넸다.

그가 이렇게 나오자 드웨인이 더 말을 잇는 것도 우스워졌다.

대인배처럼 먼저 술잔을 내미는 게벨과 다르게 자신은 속좁은 사람으로 내비칠 수 있었다.

결국 드웨인도 이번에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게벨과 드웨인이 술잔을 함께 기울임으로써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 보였다.

그 와중에 아시테르의 시선은 계속 엔류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이번 사이클롭스 사냥에서 가장 활약한 사람을 말하라면 그는 망설임없이 엔류아를 꼽을 것이다.

아시테르가 지켜보기에 밸크로 기사단은 엔류아 덕분에 적은 피해를 입었다.

아마 다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일테지.

밸크로 기사단의 진정한 저력은 어쩌면 엔류아의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살갑게 대해주질 않았다.

심지어 그녀 덕분에 부상에서 치료된 사람들 조차도.

텁썩.

큼지막한 손이 아시테르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표정 풀어라 이 녀석아. 뭐 때문에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게벨이 아시테르의 시선을 읽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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