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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74화 (174/424)

174화 부단장의 자격 (1)

제9기사단과 밸크로 기사단이 함께 대기하고 있다.

전투를 앞둔 그들의 표정은 세상 어느 때보다 진지해 있다.

“준비는 끝났나?”

“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좋아. 그럼 아라크네 종족 토벌을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합동으로 움직이는 연합 작전이었다.

이들은 근래 영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아라크네 종족 사냥나섰다.

본래 아라크네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잘 움직이질 않는 종족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놈들이 남하하고 있었다.

“크흐흐. 무서우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어차피 이런 쪽에선 우리들이 전문이니까.”

“뒤에서 보조나 잘 맞춰주라고.”

선두에 서는 것은 밸크로 기사단이었다.

그들이 먼저 아라크네 둥지로 들어가면 제9기사단이 후방을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공을 가로채기 위해 호가드니가 바득바득 우겨 이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제9기사단 입장으로서도 그다지 불만 없는 배치였다.

이는 마르체니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딱히 공적에 욕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반면 밸크로 기사단은 속셈이 따로 있었다.

아라크네는 거미줄에 걸린 사람들을 납치해 잡아먹는다.

그들이 갖고 있던 재물들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다.

못 먹는 것들은 한곳에 버려 둔다.

그것들이 모여 아라크네 둥지 한편에는 늘 귀금속이나 장신구들이 숨겨진 보물들의 무덤이 생겨났다.

밸크로 기사단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9기사단은 이 역시도 그다지 관심 없다.

그들은 오직 수련에 또 수련이었다.

“아시테르. 아라크네는 어떤 마수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만…….”

“저도 아라크네는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러냐? 네가 안 만나본 마수도 있어?”

“네. 거미형 마수인 것만 알아요.”

아시테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지간한 마수들은 다 만나본 아시테르였건만 아라크네는 마주쳐본 적이 없었다.

“아라크네들이 살고 있는 곳은 둥지라고 불러요. 그 둥지에는 거미줄 실이 있어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앞쪽이었다.

걷고 있던 엔류아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거미줄에 닿으면 마력을 빼앗기고 말아요.”

“마력을 빼앗긴다고요?”

“네. 마력이 빼앗긴 마도사들이나 검사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죠.”

“하긴… 마력이 없으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없으니…….”

“그렇다고 해서 거미줄만 조심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마세요. 아라크네가 활발하게 이동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녀석 자체로도 굉장히 위험한 마수로 분류되어 있어요.”

“설명 고맙습니다.”

아시테르가 엔류아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최근에도 폭력에 당했는지 한쪽 눈두덩이가 부어 있었다.

이제보니 팔뚝에도 멍 투성이였다.

아시테르가 자신의 팔을 쳐다보는 듯 하자 엔류아가 소매를 슬쩍 내렸다.

“괜찮으시면 제가…….”

“함부로 말을 꺼내지 말아 주세요.”

“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값싼 동정심에서 꺼내려 하는 말이라면 넣어달라는 얘기에요.”

“아…….”

아시테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엔류아는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곤 떠나버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기사들이 쿡쿡 거렸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차였네 아시테르.”

“천하의 아시테르가 말조차 못 붙이는 사람이 있어?”

“아무래도 상처가 있는 모양이다.”

“하긴… 저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성격이 모나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기사들의 말을 들으며 아시테르도 생각에 잠겼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엔류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일전에 게벨이 한 말이 떠올랐다.

‘저 여인이 너한테 구해달라고 말했냐? 그게 아니라면 가만히 두어라. 네 멋대로 판단하지 마라. 네 말과 행동에 책임질 단단한 각오가 없다면 오히려 저 여인에게는 그런 것들이 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붙여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는데 그마저도 어렵다.

그때 선임기사 한 명이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많은 것들에 신경 쓰지 마라, 아시테르. 때로는 그대로 흘러가게 두어도 된다.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람 일도 그대로 두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는 법이야.”

“네.”

선임기사의 말에 아시테르도 잠시 생각을 비우기로 했다.

밸크로 기사단과 제9기사단은 어느새 아라크네 둥지쪽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쳐져 있는 거미줄을 보며 드웨인이 경고성을 터트렸다.

“거미줄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예!”

“예!!”

“네!”

“네!”

밸크로 기사단이 일제히 답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곳곳에 백골이 보였다.

아라크네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리라.

스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기사들은 숨을 죽인 채 앞으로 나아갔다.

“아으… 긴장돼 죽겠네.”

“우리가 긴장할 것 뭐 있어? 어차피 우리는 후방보조인데.”

“그래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잖아.”

“그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너무 긴장해서 행동해야 할 때 얼어붙지만 말아라.”

“개인적으로 거미를 너무 싫어해서 그런지… 이번 토벌은 영 내키지가 않네.”

왕실기사들이 한 마디씩 해댈 때 마침내 선두에서 아라크네의 등장을 알렸다.

거미줄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거미.

놈은 열 개의 눈으로 아래 기사단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라크네가 길게 돋아난 털들이 가득한 입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웨인이 빠르게 명령을 하달했다.

밸크로 기사단이 일제히 산개했다.

취에에엑―!!

아라크네에게서 뿜어져 나온 독액이 지면을 녹였다.

그것을 본 왕실기사들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독액에 맞은 돌덩이도 녹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위력에 모두 놀란 것이다.

“저거 맞으면… 큰일 나겠는데……?”

“뼈도 못 추리겠다…….”

“남아나는 게 없겠어…….”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라크네의 새끼로 보이는 작은 거미들이 땅을 기며 공격을 가해왔다.

침입자들에 대한 응징이 시작된 것이다.

밸크로 기사단의 검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새끼거미들을 상대했다.

이어 마도사들이 뒤에서 마법으로 보조를 맞췄다.

“호오… 전보다 팀워크가 훨씬 나아졌네요.”

아시테르가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전에 대결이 저들에게도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밸크로 기사단은 제9기사단이 그랬던 것처럼 검사들과 마도사들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형성했다.

한층 나아진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아시테르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왕국 기사단의 성장은 곧 왕국의 강성이었으니까.

“뭣들하고 서 있냐!? 우리들도 보조를 맞춘다!”

게벨의 명령에 제9기사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너지는 방어선이 있으면 그곳으로 거침없이 끼어들었다.

왕실마법기사들도 마법으로 밸크로 기사단의 후방을 보조를 맞춰주었다.

“정말 저는 나서지 말아요?”

“네가 나서면 모든 것이 금방 정리되질 않냐.”

“다 태워버리면 편할 텐데요.”

“그럴 순 없지. 이것도 다 훈련이다.”

게벨의 말에 아시테르가 입맛을 다셨다.

어느새 게벨도 판데아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지켜보다가 위험할 것 같은 동료들이 있으면 도와주어라. 우린 어디까지나 경험을 쌓으러 나온 거다. 여기서 누구도 잃어선 안 돼.”

“흐음… 그러면 밸크로 기사단까지 신경 쓸까요?”

게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우리들이 저들의 전투에 끼어들 순 없지. 자존심도 워낙 쎄서 우리가 끼어든 것을 알면 굉장히 싫어할 거다.”

게벨의 말이 옳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밸크로 기사단은 제9기사단을 좋아하지 않았다.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밸크로 기사단은 그저 자신들이 제9기사단보다 뛰어남을 증명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물론 제9기사단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은 늘 자기들이 할 것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밸크로 기사단이 얼마나 크고 화려하게 활약을 하던 제9기사단은 제 할 일만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애초 왕실에서부터 무수한 시선과 질타, 손가락질을 받아왔던 제9기사단이었기에,

밸크로 기사단의 조롱이나 무시 정도는 어린아이의 장난수준에 불과했다.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

“우리 기사단 녀석들도 다 성장했어. 예전 같았으면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녔을 텐데 말이야.”

게벨이 바뀐 제9기사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제9기사단이 새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는 눈에 띄지 않게 제9기사단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밸크로 기사단으로 향하는 공격들도 사전에 차단해버렸다.

저런 식으로 도와주면 분명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아시테르가 어떤 식으로든 밸크로 기사단을 도와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게벨도 이것까지 말리진 않았다.

“하여간 저 녀석도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라니까.”

“보기엔 저래보여도 은근히 칼 같은 구석이 있는 녀석입니다 단장님.”

“호오… 베드롱, 그게 무슨 말이지?”

“수련할 때만 봐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만 되면 무슨 마음이 강철이라도 되는지 선배들이 사정사정해도 봐주질 않습니다.”

“후후후 그랬나.”

“어디 그것뿐입니까. 빈민가에서는 화적들을 몰살 시킨 적도 있다고 합니다.”

“화적들을?”

“네. 화적들을 모두 죽였다고 하더군요.”

“저 녀석이 그랬다면 이유가 있겠지.”

“맞습니다. 아시테르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화적들이 납치하고 죽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 녀석도 분노한 나머지…….”

“화적들을 모두 죽인 건가.”

“예. 맞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어쨌든 할 땐 하는 녀석입니다. 마냥 어린아이는 아니라고요.”

“누가 뭐라고 했나?”

“그냥… 단장님의 눈빛이 딱…….”

베드롱과 게벨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한지도 벌써 15년이 넘게 지났다.

그러니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이다.

“걱정마라. 너무 편애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많이 아끼는 걸로 해두죠.”

“티 많이 나나?”

“우리 제9기사단 누구라도 다 알아차렸을 겁니다.”

“후후후후… 이것 참 면목 없군… 단장이라는 자가 자신의 마음조차 숨기질 못하니…….”

“그랬으면 우리도 단장의 마음을 모르고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면 오히려 내가 고맙고.”

게벨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베드롱이 아시테르를 바라봤다.

“우리 기사단 녀석들 중 아시테르를 싫어하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런가?”

“네. 아시테르 덕분에 우리들은 강해졌고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거기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들 중 아시테르에게 목숨을 빚지지 않은 놈도 없을 겁니다. 단장님을 제외하면 말이죠.”

“흐음… 나는 내 목숨보다 더욱 큰 것을 빚졌지.”

“아하하!! 그랬습니까.”

베드롱이 크게 웃어젖혔다.

아시테르는 그 사이에도 이곳저곳을 오가며 단원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마법은 사용 않고 검술만 사용하는데도 감탄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런 아시테르를 지켜보던 베드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게벨 단장님.”

“말하게.”

“우리 부단장 자리 말입니다. 오랫동안 공석이 아닙니까?”

“그야… 자네에게 준다고 말했는데 자네가 한사코 거절했기 때문이 아닌가. 아직 자네는 부단장에 올라설 자격이 없다면서 말이야.”

“맞습니다. 그랬죠.”

“이제야 올라설 마음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아니요. 저는 여전히 부족한 놈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그 자리에 더 꼭 알맞은 인물을 추천할까 합니다.”

“뭐……?”

베드롱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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