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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75화 (175/424)

175화 부단장의 자격 (2)

“설마 지금 부단장의 자리에 아시테르를 추천하겠다는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허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문제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부단장의 자리는 단장의 재량이지 않습니까. 따로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하지만 베드롱. 자네는 지금까지 부단장이 되기 위해서…….”

게벨이 말끝을 흐렸다.

그동안 베드롱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는 오랫동안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부단장의 자리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게벨의 옆자리에 당당히 서기 위해 베드롱은 무수한 시간을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는 근래에 깨달았다.

그동안 해왔던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요 몇 달 동안 수련을 해오며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수 년동안 스스로 노력해왔다고 말하는 시간보다 근 반년 동안의 성장과 깨달음이 훨씬 더 많았다.

자신은 결국 멋들어진 말만 늘어놓고 정작 죽을 각오로 노력해오진 않았던 것이다.

말의 무게를 책임지지 못한 자신이 어떻게 부단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는가.

반면 아시테르는 여러모로 부단장의 자질이 있었다.

다른 이들을 이끄는 능력이며 기사단을 위하는 마음.

거기다 단단하게 받쳐줄 수 있는 실력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점이 없다.

생활적인 측면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긴 해도, 그건 부단장이 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베드롱. 이것은 너만의 생각이냐 아니면…….”

“다른 기사단원들 모두의 생각입니다.”

“검사들과 마도사들 모두?”

“네.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

“저희들이 판데아님께 수련을 받고 마도사들이 글로리아님께 수련을 받으면서 조금씩 해오던 생각 같습니다. 저희들은 단장님께도 많은 은혜를 입었지만 아시테르에게도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식… 저희 모르게 발칙한 짓을 했더군요.”

“발칙한 짓?”

“네. 자신의 봉급을 쪼개서 어려운 단원들의 가정을 돕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최근에서야 알았습니다.”

“하여간… 특이한 놈이야.”

말과 달리 게벨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보니 기사단 내에서 인망까지 쌓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놓고 티를 냈으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꼈을 텐데 오히려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들을 티내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너희들 잊고 있는 모양인데. 저 녀석은 우리 기사단에 파견온 녀석이다.”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 막내야.”

“그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단장의 자리에 올리겠다는 말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만큼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부단장의 자리를 맡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허 참… 너희들도 알다가도 모르겠군.”

“뭐… 제일 중요한 것은 단장님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그 자리에 최종적으로 아시테르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단장님이시지 않습니까.”

“흐음…….”

게벨이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 * *

그동안 아시테르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쪽으로 더 와주셔야 합니다! 마법기사 선배님들은 전방을 좀 더 지원해주십시오!”

아시테르의 자연스러운 리드에 기사들과 마도사들이 한데 뭉쳐 움직였다.

함께 수련해왔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시테르였다.

그는 각자의 실력을 파악해두어 무리가 없도록 판을 짜넣고 있었다.

덕분에 기사단의 움직임이 한층 더 안정되어 있었다.

쿠웅!!!

아시테르가 뒤편에서 밸크로 기사단을 도와주고 있는 것을 확인한 첼레레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지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예?”

“누가 너더러 우리들을 도와달라고 했나?”

“아…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마수들을 사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네가 나대지 않더라도 우리들이 알아서 한다. 괜히 숟가락 얹을 생각하지 마라.”

“네…….”

괜히 한소리를 한 첼레레오가 다른 선임기사들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

“저 건방진 녀석이 주제도 모르고 우리들을 도와주겠다 나서잖아.”

“녀석들도 아라크네 둥지에 있는 보물들의 무덤이 탐나나 보지.”

“됐고 빨리 안쪽으로 들어가기나 하자.”

새끼 아라크네들을 모두 죽이고 어미 아라크네까지 죽인 밸크로 기사단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체 아라크네를 죽이는데 아무도 죽지 않았다.

밸크로 기사단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뒤에서 서포트해주는 엔류아의 역할도 컸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네.”

치유 마도사의 존재가 이렇게나 컸다니.

실제로 전투를 지켜보니 더더욱 잘 느껴졌다.

곧바로 치유를 해주는 엔류아 덕분에 밸크로 기사단은 거리낌없이 싸울 수 있었다.

“수준 높은 치유 마도사로구나.”

“그런가요?”

“그래. 저 정도면 A급 치유 마도사다.”

“A급이요?”

“네가 탐내는 이유가 있구나.”

“탐내다니요…….”

“저 정도의 치유 마도사가 기사단 안에 있다면 굉장한 도움이 될 거다.”

“그건… 그렇겠네요.”

엔류아는 부상당한 밸크로 기사단의 기사들을 치유하면서도 종종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아시테르가 일부러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엔류아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를 본 게벨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거냐?”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근데 왜 저러는 거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시테르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때 드웨인이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먼저 안쪽으로 진입하겠소. 제9기사단은 후방에 남아 혹시 모를 마수들의 습격에 대비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알겠소.”

이쪽에 있는 아라크네들은 모두 처리했으니 별다른 위협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 온갖 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아라크네 둥지에 다른 마수들의 습격이 있을 리도 없었다.

결국 안쪽으로 밸크로 기사단만 들어가겠다는 것은,

그곳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들을 편안하게 독식하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게벨은 별다른 이견 없이 드웨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제9기사단은 그런 것들에 욕심이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드웨인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표정을 감출줄을 모르니 그 속내가 너무도 훤히 드러났다.

“그럼 우리들은 출발하겠소. 뒤를 잘 부탁드리지.”

“부디 조심하시오.”

“걱정마시오. 우리들이 겨우 이곳에서 당할 것 같소?”

“전장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법이지.”

“으하하하!!! 전장이라면 그대보다 우리가 더 잔뼈가 굵을 것 같은데. 아무튼 충고는 잘 새겨 들으리다.”

드웨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뒤를 이어 밸크로 기사단의 선임기사들이 안으로 향했다.

그들이 모두 들어가고 제9기사단은 게벨을 중심으로 모였다.

“아라크네도 생각보다 별 것 없는데?”

“무슨 소리야.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그건 네가 방심해서 그런거고.”

“에이… 니네 다 아시테르가 뒤에서 도와줘서 산 거다.”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라크네 숫자가 좀 적은 것 같기도 한데.”

“새끼 아라크네는 엄청나게 많던데…….”

그들이 저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시테르가 그들의 앞에 섰다.

그리곤 이번 전투를 복기하며 피드백을 해주었다.

놀랍게도 제9기사단은 그런 아시테르의 피드백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호오…….”

진지한 태도의 수하들을 보며 게벨도 눈에 이채를 띠었다.

베드롱이 한 말도 이해가 되었다.

정말로 저 정도면 벌써부터 부단장의 자리로 올라서기에 손색이 없어보였다.

게벨은 우두커니 서서 아시테르와 제9기사단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마수들의 습격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밸크로 기사단이 진입했던 안쪽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달려나왔다.

“응?”

먼저 발견한 것은 아시테르였다.

다른 이들은 휴식 시키고 아시테르 홀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

그는 안에서 뛰쳐나온 엔류아를 보며 몸을 날렸다.

“무슨 일이에요?”

엔류아는 핏물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녀는 부르르 떨리는 몸으로 입을 열었다.

“도…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니…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안에 적들이 있었어요……!”

“적이라고요?”

“빠… 빨리 안 가면 모두 당하고 말아요……!”

치유 마도사인 엔류아가 급하게 뛰쳐나올 정도라니.

아시테르의 얼굴도 순식간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이미 준비되었다.”

“쩝… 밸크로 기사단이 하는 꼬라지는 마음에 안들지만… 그래도 왕국의 동료 기사단인데 도와줘야지.”

“얄밉긴 해도 언젠가는 등을 맞대고 싸울 동료들 아니겠나.”

“우리가 안간다고 해도 아시테르는 혼자서 갈 놈이다. 맞지?”

어느새 전투 준비를 모두 갖춘 제9기사단이 뒤에 섰다.

베드롱과 에단틴, 파이로트 등 선임 기사들도 뒤로 도열해 있었다.

아시테르가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게벨도 아시테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테르가 엔류아를 번쩍 안아들었다.

“앗…….”

“급한 상황이라 미안해요. 길을 안내해주시겠어요?”

“아…….”

엔류아가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아시테르의 발끝에 마력이 집중되었다.

파앙!!

그의 몸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순간적으로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착각에 엔류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동안 그녀는 아시테르가 말뿐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무수한 소문들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아시테르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테르의 실력을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밸크로 기사단의 사람들도 아시테르가 말뿐인 사내라 말을 해대니,

엔류아도 점점 그 말을 저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를 조금 다시 봤다.

뒤에서 사람들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그 행동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 것이다.

그런 아시테르를 믿고 앞에 나서서 더욱 용맹하게 전투에 임하는 제9기사단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상황과 비슷하지만 무언가 비슷하지 않은.

그런 묘한 느낌.

그래서 아시테르가 더욱 신경이 쓰였는지 몰랐다.

밸크로 기사단이 위험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달려와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지금도 이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괜히 이들까지 위험에 휘말리게 하는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와 이런 생각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화륵―!

아시테르의 주변으로 화염이 피어올랐다.

뻗어나간 화염구가 새끼 아라크네들을 덮쳤다.

“아…….”

놀란 엔류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아시테르가 검사인줄로만 알았다.

헌데 마법을 사용하니 순간 당황한 것이다.

놀라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체 아라크네까지 마법으로 처리해버렸다.

“마수들이 겁을 집어먹고 있다니…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우… 우리 기사단은 둥지 안에 있는 보물들의 무덤을 찾았어요. 그런데… 안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었다구요?”

“네…….”

“아아…….”

아시테르의 눈빛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저 앞에서 엄청나게 강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초월급 마도사가 아니라면 이 정도 존재감을 내뿜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수가 아니야.”

그의 시선에 보인 것은 단 한 명의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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