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드웨인의 모략
돌아온 드웨인은 분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발할라 군은 그대로 보내주고 말았다.
아라크네 둥지에서 나온 재물들을 보고도 제9기사단은 관심 없다는 듯 그대로 떠나버렸다.
덕분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은 밸크로 기사단뿐이었다.
‘재물이라도 챙겨!’
드웨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고 수하들이 남아서 아라크네 둥지의 보물들을 챙겨왔다.
생각보다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이게 다 그 재수 없는 아시테르 때문이다.
“화염 마도사였구만…….”
그가 만들어낸 작은 불길은 결국 아무도 넘을 수 없었다.
이는 드웨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불길을 넘는다는 것은 마치 발할라와 제9기사단을 함께 상대해야됨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드웨인이 곧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흐 그래. 받은 만큼 돌려주마.”
드웨인이 홀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침 호가드니가 그를 찾아왔다.
호가드니는 곧바로 드웨인이 있는 막사에 안내되었다.
“이보게 드웨인!!”
“어서오십시오 성주님.”
“이번에 가서 아주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면서!?”
역시나 돈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아내는 호가드니였다.
그의 표정을 살핀 드웨인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적나라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얼굴이었다.
어차피 임무에서 얻어 올린 수익은 성주와 나누기로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무언가를 더 바라는 눈치였다.
“뭘 그렇게 있어? 빨리 말해보게. 이번에 얼마나 벌어들였지?”
“평소보다 2배쯤 됩니다.”
“그렇구만!! 역시나! 내 감이 맞았어. 아라크네 둥지는 꼭 한번씩 털어줘야 한다니까.”
“털다니요. 아라크네놈들이 점점 우리 영지로 가깝게 둥지를 틀어서 소탕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있긴 한데. 내가 일부러 아라크네 둥지를 놔둔 것은 거기가 상인들이 한번씩 지나다니는 경로거든. 자, 한 번 생각해봐. 상인들이 거기서 몇 번씩 아라크네한테 잡아먹히면 남은 재물들은 어떻게 되겠어?”
“한쪽에 쌓이니까… 아라크네를 소탕하는 사람 몫이 되겠지요.”
“바로 그렇지!”
호가드니가 손가락을 튕기며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상관이긴 했지만 정은 뚝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으니 드웨인이 슬쩍 말문을 열었다.
“저어… 그런데 호가드니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하게.”
저 자애로운 얼굴.
얘기는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 무언가를 더 바란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저런 태도가 필요했다.
“사실 이번에 저희들은 더 많은 재물들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호오… 그랬나?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발할라가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발할라가!!!! 이런 빌어먹을! 그놈들이 거기서도 개판을 쳐놨단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군. 자네와 밸크로 기사단의 실력이라면 발할라쯤은 편하게 처리할 수 있잖아? 거기다 왕실기사단도 함께 있었는데. 설마 아라크네놈들과 싸워서 힘이 빠진 상태였다 뭐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호가드니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드웨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만 뭐!? 답답하니까 빠르게 좀 얘기해주면 안 되겠나?”
호가드니의 눈썹이 중앙으로 모였다.
호가드니를 일부러 자극한 것은 저렇게 감정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이 얘기를 들어야, 감정에 따라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9기사단이 함께 저희를 방해했습니다.”
“제9기사단이? 놈들이 왜?”
“저야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동안 저희들을 질투해왔을 수도 있고, 아라크네 둥지의 재물들을 우리가 모두 가져가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여간 속 좁은 새끼들… 아닌 척해도 그런 마음들을 갖고 있었구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아니면… 솔직히 생각하긴 싫지만 제9기사단이 발할라군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9기사단은 왕실기사단인데 발할라와 손을 잡는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생각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제9기사단은 발할라를 보고도 놈들을 붙잡거나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저희들에게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흐음…….”
호가드니가 미간을 좁혔다.
드웨인의 말만 듣고 모든 것들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의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알았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우리끼리만 알고 좀 더 확인해보도록 하지.”
“조금 더 확인해보다뇨? 지금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겁니까?”
“쯧… 나도 그대와 함께 한 세월이 있으니 믿음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조금 다른 문제야. 상대는 일반 성주의 개인 기사단도 아닌 왕실기사단일세.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게 마법기사단이라면 왕실기사단은 말 그대로 왕실에서 관리하는 기사단이야. 함부로 그들에게 발할라와 내통했다는 명목을 씌웠다가 만일 그게 사실이 아니게 되면, 역으로 모두 뒤집어 쓰게 되는 것은 우리가 될 거야.”
“쳇… 알겠습니다…….”
드웨인이 불만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호가드니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다.
드웨인의 말만 믿고 움직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러니 이번 일은 다른 것들을 좀 더 알아내고 어느 정도 확신이 든 후에 움직이는 것이 옳았다.
“그럼 푹 쉬게.”
“알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호가드니가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은 드웨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드웨인의 곁으로 수하 한 명이 다가왔다.
“단장님. 뭐가 그렇게 고민인 겁니까?”
“성주라면 나의 말을 믿고 곧바로 에도피아로 들이닥칠 줄 알았는데 아주 의외야.”
“그거라면 제게 아주 괜찮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 봐라 파르티엘라.”
파르티엘라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엔류아가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었다.
파르티엘라가 그녀를 의식한 듯 보이자 드웨인이 괜찮다는 듯 손을 저어 보였다.
“저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이쪽에 묶인 돈이 많아서 절대로 나를 배신할 수 없는 여자니까.”
“흐음… 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아무튼, 사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니까…….”
파르티엘라가 드웨인의 귀로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가 귓속말로 무어라 속삭이자 드웨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래…!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
“곧바로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그렇게 해라.”
드웨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아닌 척 해도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던 엔류아는 반대로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 드웨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네년과도 할 말이 있었지. 감히 그 사이를 못 참고 그놈들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해?”
“죄송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게 될까봐…….”
“지금 우리가 그놈 하나를 못 당했을거라 말하고 싶은 거냐?”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모두 위험해 보였기에 저는…….”
“시끄럽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죽게 되면 더욱 좋아할 것은 네년이 아니냐?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놈들을 불러온 건 우리들에게 창피를 안기고 싶어서겠지. 특히 그 시건방진 꼬맹이 말이야. 뭐? 네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될 거라고? 하! 아주 웃겨죽겠네…….”
드웨인이 아시테르를 떠올리며 똥 씹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이 어떻게 되든 그 새파란 애송이 만큼은 자신이 손봐줄 예정이었다.
“어이 엔류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 쓸데없는 희망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네년에게 함부로 손을 내민 놈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지?”
엔류아가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 드웨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함부로 희망조차 갖지 마라. 어차피 너는 영원히 우리들에게 종속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아니면 네 가문은 망했을 거다. 그러니 명심해. 너는 밸크로 기사단의 노예이자 도구다. 도구는 함부로 생각이란 걸 갖고 있으면 안 돼.”
“네에…….”
아주 만족스러운 태도다.
그래, 엔류아는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옳았다.
그녀의 기강(?)을 다시 잡았다고 생각한 드웨인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다른 쪽의 기강을 잡을 차례다.
* * *
간밤에 누군가가 긴밀히 움직였다.
그는 건물 내부를 훤히 아는 것처럼 안으로 스며들 듯 빠르게 움직였다.
얼굴을 가린 복면인은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밀었다.
그의 시선에 보인 것은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 두 명.
손속은 빨랐다.
그는 품안에 있던 단도를 빼들어 단숨에 병사들을 죽였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해버리고 말았다.
복면인은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가 곧바로 향한 곳은 성주인 호가드니의 침실.
복면인은 호가드니의 목을 노리고 침실에 잠입했다.
여기서 더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는 점.
침실에는 다섯 명의 복면인들이 모였다.
본래 일곱 명의 복면인들이 함께 움직였는데 두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니 들킨 모양이었다.
그들은 암묵적인 눈빛을 교환하고 잠을 청하고 있는 호가드니의 앞에 섰다.
두 명의 복면인들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은 곧, 그들의 습격이 이미 들통났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속도가 생명.
그들은 단숨에 호가드니의 목을 노렸다.
파앙!!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복면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이어 안으로 황급히 달려온 기사 한 명이 검을 들어 다른 복면인의 옆구리를 베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크게 소리친 그의 목소리 때문에 순식간에 고요했던 침묵이 끝나버렸다.
놀란 호가드니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뭐…. 뭐냐!? 무슨 일이냐!”
두 눈이 동그래진 그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한 명의 복면인은 벽에 기댄 채 쓰러져 있었고 남은 복면인들은 각기 병장기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획이 들통나버렸다고 생각한 복면인들이 시선을 주고받으며 일제히 호가드니를 향해 몸을 날렸다.
“놈을 죽여라!!”
“호가드니를 죽여!”
그러나 이를 가만히 두고 볼 기사들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달려온 밸크로 기사단이 호가드니를 지켰다.
이어 뒤늦게 등장한 드웨인과 파르티엘라, 포로마손이 복면인들을 하나둘 처치하기 시작했다.
모두 간밤에 벌어진 일이라 호가드니는 아직도 멍한 얼굴이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감히… 감히 내 영지에서 나를 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괜찮으십니까 성주님.”
드웨인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호가드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쓰러져 있는 복면인들을 확인했다.
“대체 저 자식들은 누구길래 날 노린단 말이냐!?”
의심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영지에서 쫓겨났던 귀족들일 수도 있고, 핍박 받던 평민이나 천민들의 소행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발할라나 국경지역을 맞댄 사우스 왕국의 어쌔신들일 수도 있었다.
“아! 그렇구나! 사우스 왕국에서 보낸 어쌔신들인가!?”
그러나 드웨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복면인들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잘 보십시오 성주님. 저 옷은…….”
“헙……!”
복면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로트말론의 수하들이 입는 옷이었다.
그 말은 즉, 에도피아에서 보낸 어쌔신들이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복면을 벗겨보니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로트말론!! 이 개같은 놈이 감히!!”
머리끝까지 분노한 호가드니가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